-
-
음양사 3 - 부상신편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미나모토노 히로마사. 그는 이른 바 엄친아다. 삼촌이 천황이고, 아버지는 친왕이다. 고귀한 피를 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 겸손하다. 그리고 친절하며 진지한 남자다. 그 뿐인가. 그는 풍류를 안다. 피리를 불면 바람마저 고요해지고, 떨어지는 벚꽃에도 무엇인가를 깨닫는 철학적인 남자이기도 하다. 너무나 성실하고 너무나 정직하며 너무나 진지한 그는 세이메이의 단짝 친구이다. 세이메이 역시 그를 믿고 따르며, 어떤 일이든지 히로마사와 함께하려 한다. 그만큼 세이메이는 히로마사를 믿는다는 것이다. 세이메이는 늘 히로마사에게 좋은 사내라며, 정직한 사내라며 히로마사를 칭찬하지만 히로마사는, 세이메이가 그런 말을 할때마다 세이메이의 얼굴을 살핀다. 세이메이의 말을 믿지 못하는듯. 그러나 둘은 언제나 서로에게 진실하다. 히로마사는 나라가 인정한 엄친아지만 마음은 너무 여리다. 귀신들의 사연을 듣고는, 신음성을 흘리거나, 가엾다 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곤 해서 세이메이의 퇴마에 초를 치곤 한다. 이런 남자. 참 괜찮다.
2권에서는 요물이 많이 등장했지만, 이번 3권에서는 귀신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전설의 고향> 못지않은 그런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이야기들도 많지만, 용에게 드리는 말을 적은 글을 먹고 요물이 되어버린 거머리 이야기나, 노래짓기 대회에서 패하여 그 충격으로 거식증에 걸려 죽어버린 귀신의 사연도 나온다.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진언을 적은 종이를 먹어 신통력을 얻은 거머리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가뭄이 너무 심할때는 기우제를 올린다. 세이메이와 히로마사가 살던 헤이안 시대도 어쩔 수 없는 가뭄의 시대가 있었으리라. 아주 옛날에 심한 가뭄이 들었을때 구카이 스님께서 제룡진언을 적은 쪽지를 연못에 넣고 기우제를 지냈었고, 10년전 아주 심했던 가뭄에도 기우제를 올려 비를 내리게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후지와라노 모로타다공이 기우제를 지냈었다. 그런데 그 모로타다공의 집에 우환이 생긴것이다. 밤마다 시녀들이 죽지 않을만큼만 피를 빨린다는 것이다. 피를 빠는 원흉을 잡으려해도 원흉이 나타날때면 항상 모두 잠이 들어 원흉을 잡지 못하자, 시녀들은 모두 불안에 떨며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가고자 하여 모로타다공은 세이메이에게 의뢰하기 이른다. 세이메이는 히로마사와 함께 모로타타공의 집을 방문하지만 모로타다공은 그보다 더 신분이 높은 히로마사가 어렵기만 하다. 더더군다나 시녀들의 피를 빠는 원흉을 잡기위해 시녀들의 잠자리를 보초를 서야하는데 세이메이는 그렇다쳐도 신분이 고귀한 히로마사가 시녀들의 잠자리 보초를 선다니 그에겐 머리가 곤두설 정도다. 밤이 되어 원흉이 나올 시간이 되고 자지않고 버티려던 히로마사는 결국 인간적으로 졸기 시작한다. 원흉이 왔다는 뜻이다. 세이메이는 히로마사를 깨워 피를 빠는 원흉을 현장에서 잡아내고, 모로타다공이 보는 앞에서 원흉의 정체를 묻는다. 원흉은 바로 150년전 구카이 스님이 기우제에 썼던 제룡진언을 적힌 쪽지를 먹고 요물이 되어버린 거머리였다. 며칠전 모로타다공이 기우제를 지내고 시녀를 그 연못에서 놀게 하였는데, 그때 이 거머리의 요괴가 씌인것이다. 거머리는 진언이 씌어진 종이가 너무 먹고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사람에게 씌자 너무 목이 말라 흡혈의 욕구를 참을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세이메이는 그 거머리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주고 거머리로 하여금 비를 다시 내리게 하라는 말을 용에게 전하라 당부한다. 모든 퇴마를 마친후 집으로 오는길에 다행스럽게도 비가 오기 시작한다.
흡혈을 하기는 했지만, 죽지 않을 정도로만 흡혈을 하는 조금은 귀여운 거머리다. 비가 오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비를 관장하는 용에게 부탁하는 글을 적은 <제룡진언>을 먹고, 그 맛을 잊지못해 자꾸만 먹고싶어하는 거머리. 하찮은 미물이지만, 그런 글의 의미를 알았을지 모르겠지만, 자꾸 먹고 싶어했다는 것은 그 글을 먹고 무엇인가를 느낀것이 아닐까 싶다. 제룡진언 역시 예사롭지 않은지 미물에게 신통력을 부여했다니, 정말 수맥을 담당하는 지룡께서 그 종이를 보았다면 비를 내리지 않았을까? 세이메이 말처럼 해를 멈춘다든지, 비를 내린다는 신통력은 불가하겠지만, 미물을 요물로 만들정도의 진언이라면 분명 무엇인가 변화는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미물도 그러할 진대, 인간은 어떠할까? 잠시 고민해 봄직 하다. 그 거머리는 다시 살던 곳으로 갔지만, 얼마나 오랜 세월을 연못속에서 도를 닦을지 알수는 없다. 그러나 흡혈을 하면서도 단 한명의 사망자를 내지 않았던 거머리를 보면, 오래 살아도 인간에게 해(害)가 될것 같지는 않다. 세이메이도 살려서 보내준걸 보면 역시.
히로마사는 로열패밀리 임에도 불구하고, 세이메이의 집을 찾을때는 흔한 시종하나 두지 않고 혼자 몸으로 온다. 책에서는 그 말을 거듭 하는 것을 보면, 혼자 다니거나, 걸어서 다니는 것은 지위가 낮은 사람이나 하는 듯, 귀족 남자는 스스로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절대 그렇게 다니지는 않은듯 하다. 이번 퇴마를 의뢰한 후지와라노 모로타다의 경우는 뼛속까지 스민 귀족들의 우월주의를 보는것 같아 히로마사의 매력이 더욱 돋보인다. 세이메이는 항상 히로마사와 함께 하지만, 특히 이번엔 히로마사에게 같이 가는게 좋겠다며 부탁한다. 그 이유는 세이메이는 귀족이 보기엔 고작 귀신잡는 음양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퇴마 후 어떤 말들로 세이메이를 곤란하게 만들지 몰라, 귀족과 동행하게 되면 입이 구린 귀족이 딴소리를 하지않을 것을 세이메이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한 히로마사 역시 귀족들의 그런 행태를 잘 알고 있었다 하니 이야말로 관존민비(官尊民卑) 형태의 관료제 폐해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히로마사의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만 한가!
이제 4권에서도 그들의 활약을 기대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