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같은 리뷰 #2

2010.8.8.일요일 대학 교정에서 

일요일 저녁, 대학교정에 다녀왔다. 1Q84를 읽는 여운을 가지고, 인문대 뒷편 슈퍼를 찾았다. 두 개의 슈퍼중 하나는 커피판매점으로 바뀌었고, 다른 하나는 슈퍼대신 마트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카운터에는 세월의 흐름을 잔뜩 안고 옛 슈퍼의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다. 맥주캔 하나를 사서 인문대로 돌아왔다. 

연극반에서 발성 연습하느라, 시키느라 내 젊음의 일정을 쏟아내던 장소, 인문대 옆 소운동장 스탠드의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달이 없는 구름 낀 밤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몇 개비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동아리방도, 학생회실도, 소극장도 굳은 현관의 굳은 자물쇠와 경비업체의 안내문 속에 갇혀있었고, 막걸리와 수다로 풍성하던 잔디밭도 가로등 하나에 의지한 채 조용히 숨 죽이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 나는 결국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변해버린 공간에서 뒤를 돌아보며 의미찾기에 열중했다. 그럴수록 아련하고 가슴이 아렸다. 학교와의 인연이 시작된지 이제 20년 째. 수많은 이름의 사람들과 얽히고 설켰던 그곳에서 난 혹시나 밤 하늘에 두 개의 달이 뜨지 않았는가 자꾸 하늘을 봐야했다.  

차라리 다른 세계로 평행이동을 한다면. 나의 시간이 휘어져 흘러 또다른 상황과 맞딱뜨릴 수는 없을까. 물론 그것이 지금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시간이 휘어져 흐른다해도 결국은 흘러 지나갈 것이다. 장소 역시 내 기억속의 의미만을 가진체 홀로 변해 갈 것이다. 무엇이 변하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특히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그 자리에서 살아가며 만들어진 기억과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결국은 내가 문제란 것이다. 

나는 유독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인간관계에서 갖는 커다란 약점이다. 전날 소개팅에서 만난 분을 다음날 병원에서 만나고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해서 무척이나 죄송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자의식이 강한 걸까. 사람에 대한 기억을 애써 저장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내 몸 속 깊숙이 각인되어 버린 것일까. 왜 그럴까. 친구가 많지 않은, 그러나 주변에 늘 사람들이 모여있기를 바라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이고 싶은 욕망은 나의 어떤 트라우마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한없이 느껴지는 고립감과 외로움. 내 의식은 왜 그 쓰린 감각을 애타게 끄집어내고, 급기야 그런 기분을 갈구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것일까.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면, 그것은 필시 인간은 근원적으로 불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불행의 근원엔 결국은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립감, 그로 인한 두려움이 결코 버려질수 없는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가보다. 

대학로로 나와서 모형총 사격장에 갔다. M16 자동소총과 베레타 자동권총을 쏘았다. 누군가를 향한 공격적 패턴이 가장 편하고 빠르게 형상화되는 것이 사격이 아닐까. 그 결과도 너무나 뚜렸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씩 M16과 AK소총 모형을 조립했고, 베레타는 두 자루나 조립했다. 플라톤식으로 말하면 실제 총이라는 이데아에 대한 모방에 불과한, 또 다르게 말하면 시뮬라르크의 생산에 해당하는 행위의 반복. 그 속에서 느껴지는 위안과 위로. 

본질에는 다가서지 못하고 항상 경계 밖에서 허상이나 상상만으로 본질을 꿈꾸는 삶이 무조건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나의 그러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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