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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토끼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읽으면서 리뷰 쓰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던 작품이다. 내용이 심오하면 모를까, 어렵지도 않으면서 핵심 주제는 모호한 이런 경우는 분석하기보다 텍스트 그대로 이해해야 속 편하고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래서 이번에는 힘 빼고 편안하게 써보겠다. 존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 중 첫 번째 편으로써, 주인공 해리의 방황기를 다루고 있다. 국내에선 그닥 주목받지 못했었는지 지금까지도 1편만 출간되어있다. 솔직히 문학동네 정도면 후속편들도 출간해줄 법한데 안 나오는 건 진짜 재미도 없고 무익해서일까. 이 작품도 우리나라 정서와 다른 장면들이 줄줄이 나와서 눈살 찌푸려질 때가 종종 생기는데, 이런 적이 뭐 한두 번이어야지.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도 너무 잦은 데다, 어르신들을 대할 때의 예의를 짬통에 갖다 버린듯한 주인공의 태도 등등. 서양 문화를 받아들임과 존중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선지 작품에 온전히 녹아들기란 참 쉽지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런 것도 고전문학에 속하나 싶을 만큼 고전치고는 매우 라이트 했던 터라 선정 기준이 대체 무엇인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다.
읽어보시면 제목에 ‘달려라‘는 ‘달아나다‘라는 뜻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토끼는 주인공의 별명이다. 과거 화려한 농구스타였던 주인공 해리. 그러나 지금은 꿈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유부남이다. 가진 건 자랑 못할 직업과, 마약중독인 아내와, 먹여살릴 아이와, 말이 안 통하는 양쪽 부모님들이 전부이다. 현실에 숨 막혀하던 그는 갑옷들을 벗어던지고 떠나서 한 매춘부를 만나 같이 지낸다. 그를 찾아온 지인들이 설득해보고 달래보지만 해리의 오춘기는 너무나 강경하였다. 그러다 두 달 뒤, 아내의 출산 소식으로 병원에 간 해리는 딸의 탄생과 아내의 변화에 감동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신의 존재감을 지나간 옛 영광 속에서 찾고자 하는 해리. 그래서 과거의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인정받고 싶어 했다. 아직도 건재하며 모두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확인하는 건 좋았는데, 그 방향과 수단이 영 아니었던 거다. 그는 트러블을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그냥 회피하자는 일차원적인 방안을 택한다. 주변에 도움을 구했다면 금방 해결될 것을, 자존심 상하는 게 싫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린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해리의 미성숙함을 지적하였다. 그런 말 백날 들어봤자 꿈적도 않던 그의 고집이 처음으로 흔들린다. 집을 나간 후 정원사로 일하면서 얼떨결에 이웃에게 기쁨을 주었고, 여기서 어렴풋이 자신의 존재감을 발견한 것이었다. 어쩌면 해리의 진짜 문제는 자존심 찾기가 아니라 자존감 회복이 더 먼저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주인공이 가장이고 애 아빠라 해도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이다. 이십 대가 어른스러워봤자 얼마나 어른스러울까. 한참 놀러 다닐 나이에 짊어진 게 많다 보니 분명 컨트롤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치만 힘들다고 가족을 버리고 막장 인생을 찍는 건 좀 아니지. 그나마 나중에라도 자신의 죄를 자각한 걸 보면 양심이 있긴 하구나 싶다가도, 목사의 아내를 보며 음욕을 품는 이런 정신 나간 토끼시끼는 개과천선이고 뭐고 확 갈아 마셔버리는 게 정답이다. 그나마 시리즈라니까 참고 보는 거지, 그게 아니면 전혀 공감 안되는 이런 캐릭터를 누가 좋아해 준단 말인가. 잠시 반성했다가 또 정신 나간 모습을 반복하는 이노무 토끼시끼는 죄와 비난 속에서 온통 달아날 궁리만 하고 있어 궁둥짝 스매싱이 좀 많이 필요해 보인다.
좀 생소한 작가라서 별도 검색을 해보니, 미국의 중산층들을 다루는 소재의 작품이 많더라. 그래서 가난함, 소외감, 비참함 같은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내놓는 작품마다 항상 논란을 몰고 오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목사의 불륜, 테러리스트로 변한 청년, 흑인과 백인의 사랑 등등 왕성히 활동했던 60년대에는 다소 파격적인 장르들을 많이 다루었다. 그러나 문장과 문법이 어딘가 이빨 빠진 것처럼 들쑥날쑥한 것과, 지나치게 성적인 장면을 남발하여 자연스럽게 하루키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이 작가는 하루키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더라. 아무리 그래도 하루키의 농염 주의보는 절대 따라갈 수가 없음. 이분도 미국에서는 엄청 유명하고 각광받는듯한데, 일단 이 책만 놓고 보면 절대 납득하기 어렵다. 시리즈인 걸 감안해도 이야기에 핵심이 빠져있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건지, 주인공의 죄를 회개한다는 건지, 각각의 메시지들이 너무 얕달까. 적당히 순한 맛이면 그냥저냥 먹겠는데, 이거는 간이 안된 밍밍한 맛이라오. 누구라도 읭? 하게 만드는 미완성품이란 말이죠. 요즘에 이런 글을 쓴다면 곧바로 악플 수천 개 예상 각인데, 참 시대를 잘 타고나셨다는 생각이 듭디다, 예.
이럼에도 불구하고 후속편들이 출간되면 읽어보고는 싶다. 주인공의 성공이나 행복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막장이 어디까지인지, 파탄 난 인성의 끝은 어디인지 궁금해서이다. 아무튼 이렇게 진리나 깨달음을 논하기보다 비평 거리만 가득한 고전 작품도 참 보기 드물다. 겨우 이 한 권만으로도 논란이 가득한데 다른 작품들은 과연 어떠려나? 하루키는 단 두 작품만으로 손절하게 만들었는데, 업다이크는 타 작품도 비평해보고 싶게 만드는 오기가 생긴 달까나. 여튼 이번에는 손이 가는 대로 리뷰를 써봤는데, 이야~ 역시 사람은 어디 안가는구만. 내 안의 까칠 요정은 여전히 건재했어 후후. 아주 오랜만에 즐거운 글쓰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