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시절 열린책들 세계문학 103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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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첫 장편소설인 <버마 시절>을 읽었다. 재미와 몰입감이 정말 대단하시더군. 출간 당시 막 서른을 넘긴 나이로써 생각보다 좀 늦은 감이 있는데 그래서인가, 작정하고 정치 소설을 쓰겠다는 인상을 여러 번 받았더랬다. 양측 간에 갈라치기 해대는 오늘날의 정치 기사들만 보다가 오웰의 글을 읽었더니 바보들의 행진에서 빠져나온듯한 기분이 든다. 오웰의 정치적 비판은 언제나 자신이 속한 세계를 향하고 있다. 무조건 내가 옳고 당신네들은 틀렸다는 식의 현대인들과는 사뭇 다른 입장이다. 오웰은 중립보다도 철저하게 세력 싸움을 일으켜 끝장을 보는 스타일인데, 다소 야만적인 이 방식에서 그의 영리함이 드러난다. 잘 살펴보면 오웰은 정반합 및 변증법 사고를 써서 현 정책과 방침을 양날의 검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하여 승자와 패자가 없는 결말, 즉 너 죽고 나 죽자는 진흙탕 싸움이 되고 말 것을 경고하는 식이다.


<버마 시절>은 오웰이 20대 때 버마 지역에서 경찰로 근무하던 경험을 토대로 썼단다. 이것은 식민지인 버마 원주민을 지배하는 영국 관리들의 이야기이다. 열명 남짓의 영국인들은 관할별로 원주민들을 통치하며 지루하게 살아간다. 뼛속까지 제국주의인 이들 가운데 원주민과 공생관계를 이어가는 플로리의 애매한 수난이 펼쳐진다. 영국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며 동료들에게 비난을 사고, 원주민들도 다른 영국인들보다 플로리를 만만하게 여기곤 하였다. 원주민을 가축으로 대하는 제국주의를 반대하지만 본인의 입장도 있고 해서 늘 어중간한 태도로 일관하는 주인공. 그러나 이 생활도 더는 못 해먹겠다 싶을 때쯤 뿅 하고 나타난 젊은 영국 여인 앞에 도파민이 과다 분비하는 그의 인생 2막이 시작된다.


주인공에게 호감을 느낀 그녀는 그를 따라 곳곳을 동행한다. 헌데 이 남자는 저 미개한 원주민들과 동양의 문화를 왜 자꾸만 치켜세우는 것일까. 플로리는 혹시라도 자신과 결혼하게 될 그녀가 이곳에 애정을 갖게 하자는 속셈이었다. 저가 돌연변이라는 자각이 없었던 주인공은 결국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고, 적당한 남편감을 찾지 못한 그녀는 훤칠한 헌병 하나가 등장하자 잽싸게 노선을 변경한다. 검둥이들의 반란이 날 거라는 풍문으로 파견된 헌병은 그녀와의 만남으로 시간을 때웠고, 이에 위축된 주인공은 전보다 더 삶의 의미를 잃어갔다. 한편 출세에 눈먼 현지인 하급 판사가 일으킨 원주민 폭동으로 영국인 관리들은 위기에 처한다. 여기서 판사가 폭동을 막아 공을 세울 계획이었는데, 하필 플로리가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버린다. 제대로 물먹은 판사는 타깃을 바꿔서 주인공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린다. 하, 진짜 미친듯한 빌드업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역시 영국인들이 옳았다고 할지 모른다. 저 통제불능의 짐승들한테는 매가 약이라면서. 그런데 식민주의의 억압 속에 자라난 적개심의 원인 제공을 누가 해왔던가. 그들 위에 군림하며 신사 놀음을 즐기는 게 다인 그 정책의 어디를 대체 옹호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오웰이 버마에 근무하던 시기에도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한다. 이에 회의감을 느꼈을 그는 자신들의 정치 이념이 어떻게 파멸로 이어질지를 훗날 이 작품으로 그려냈다. 인간이 태어나고 나라가 형성된 이래로 전쟁은 끊임없이 반복되어왔다. 나와 뜻이 다르다 해서 힘으로 제압해버리는 방식은 오웰이 말하는 진흙탕 싸움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이 좁은 땅덩어리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 세력 싸움이 일어나는가. 다들 내 말이 맞다고만 하지, 상대의 주장은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시대는 갈수록 발전하고 후세대는 날로 똑똑해져 가는데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은 왜 아직도 그대로인가. 그것은 각자의 이념에 어떤 맹점이 있는지 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은 구멍 난 배를 고칠 것인가, 아니면 배에서 탈출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함께 침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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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의 여행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빛소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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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츠바이크인데 이 분도 작품마다 편차가 좀 있네그려. 내가 생각하는 츠바이크란 사람은 허공에 떠다니는 형용 못할 감정들을 캐치할 줄 아는 재주꾼이다. 물론 그쪽 계열의 작가들이 많긴 하지만 유독 츠바이크를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가 절제의 미학을 지녔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리도 필력이 주 무기인 작가들을 싫어하냐면, 문장 하나에 많은 걸 집어넣느라 글과 글 사이가 온통 여백으로 가득해져서 그렇다. 널따란 공원에 나무가 두세 그루 심어져 있는 모양새랄까. 나무를 관찰하는 재미는 있어도 공원을 둘러보는 맛은 없단 얘기다. 반면에 츠바이크는 유리알 같은 감정선을 그려내면서도 너무 거기에 치중하지 않게끔 적당 선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저번에 서머싯 몸을 가리켜 생태계 교란종이라고 했었는데 츠바이크 또한 마찬가지라 하겠다. 대단혀.


요 책은 중편 두 가지를 묶어놓은 건데, 표제작인 <과거로의 여행>만 리뷰해 보겠다. 아, 다른 하나는 재미없어서 중도 하차했다. 열차 타고 도피하는 두 남녀의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여자는 남편과 사별한 상태이고, 남자는 처자식을 나 몰라라 한 상태이다. 따라서 전형적인 내로남불 이야기되시겠다. 그렇지만 이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나도 모르게 허물을 감싸주고 싶어진달까. 제조업 사장님의 비서가 된 루트비히는 거동이 불편한 사장님의 권고로 그 집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젊은 사모님의 배려와 지원으로 고단한 삶에 큰 위안을 얻는다. 어느 날 사장님의 지시로 장기 해외출장이 확정된 주인공은 그제야 사모님을 향한 자신의 찐 사랑을 깨달아 오열한다. 아픔을 뒤로 한 채 두 사람은 훗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헤어진다. 그래 뭐 해외를 가면 떼부자 된다고 하니까, 또 사장님도 곧 돌아가실 거니까, 복귀만 하면 만사형통 꽃길을 걷게 될 테니 딱 2년만 고생하자는 마음으로 떠난 루트비히. 이윽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세계대전 늬우스. 에헤이.


밀항하려던 그의 계획은 틀어져 버렸다. 현지의 사업을 독립적으로 경영하라는 본사의 연락이 왔고, 완전히 발목이 잡혀버린 주인공은 잡생각을 지우기 위해 밤낮으로 일에만 매달리기 시작한다. 사모님과의 약속을 못 지키자 죽을 맛이었던 그는 일부러 몸과 정신을 혹사시켜야만 했다. 아마도 이쯤에서 많은 군필자들이 공감했지 싶은데, 군대 가서도 자꾸 생각나는 애인 및 전여친 때문에 애써 바쁜 일과를 보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일말상초 정도 되면 군 생활에 적응하면서 애인 생각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그처럼 주인공 루트비히도 서서히 사모님을 잊고 딴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다. 어쩐지 첫사랑은 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츠바이크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도 같고.


차라리 그대로 묻어두면 좋았을 것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보다 멀고 우정보다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그러다 사업차 본국에 갈 일이 생기자 내친김에 사장님 집을 찾아간다. 미망인이 된 사모님이 반겨오자 총각 때의 감수성이 돋아난 그는 다시 예전의 관계를 이어나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본인의 나이 듦과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민하는 그녀였다. 확실히 츠바이크가 이런 윤리와 욕망의 줄다리기를 잘 한다. 이처럼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서로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 해도 한번 생긴 인연의 끈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아갈 뿐이지. 깔끔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씨앗은 마음 밭 어딘가에 심어져 있다가, 희망고문에 불과한 비라도 내리게 되면 저절로 싹을 틔우는 법이다. 혹자는 이것을 순애라고 부르던데, 나는 사랑의 성질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들의 금지된 사랑을 응원할 순 없지만 나쁘다 말할 수도 없었다.


츠바이크의 작품은 막상 읽을 때엔 별 감흥이 없는데, 꼭 리뷰를 쓰면서 수면 아래 있던 감수성이 터져 나온다. 거참 이상하기도 하지. 이이도 교란종이 확실하다니깐. 나름 전쟁 같은 사랑을 치러본 사람으로서 두 번 다신 반복하고 싶지 않은데, 꼭 한 번씩 불꽃같은 사랑 얘기를 읽고 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그런다. 아마도 옆구리 시린 계절이 다가와서 그런 거겠지. 이래서 집 밖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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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10-31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태계 교란종 ㅋㅋㅋㅋㅋ

물감 2024-10-31 10:1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런 부류가 몇 있지요~

잠자냥 2024-10-3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구리에 이불을 꼭 끼고 읽으십시오~

물감 2024-11-03 17:14   좋아요 0 | URL
그게 좋겠군여.

stella.K 2024-10-3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츠바이크가 위대하긴하군요.
물감님의 과거 한 줄을 흘려놓게도 만드니..ㅋㅋ
맞아요. 이이도 편차가 있는 것 같드라구요.
지금은 거의 읽지 않고 있는데 지난 번에 <연민>을 평점이 좋아서 사 두긴했습니다만
언제 읽을지 모르겠어요.
전 츠바이크 읽은 책 중엔 체스가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발자크 평전까지도
좋은 것 같긴한데 그 다음부턴 왠지 심드렁~

물감 2024-11-03 17:19   좋아요 1 | URL
원래 다작하는 사람들이 좀 들쑥날쑥 하니깐요 ㅋㅋ
<연민>은 품절에다 도서관에도 없는 작품이네요. 읽어볼랬더니.
평전은 됐구 체스이야기나 읽어봐야겠습니다^^

stella.K 2024-11-03 20:17   좋아요 0 | URL
얼마 전까지 알라딘 중고에 딱 한 권 있는 거
제가 싹스리 했죠. 물감님을 위해 냅둘 걸 그랬나요? ㅋㅋ
 
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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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다음으로 유명하다는 스페인 소설가 사폰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다. 나는 그 소식으로 사폰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국내에서도 제법 팬층이 있는지라 계속 관심을 두고는 있었다. 그러다 이제야 대표작인 <바람의 그림자>를 읽고서 왜 대중들이 좋아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다만 늘 그렇듯이 너도나도 빨아재끼는 작품치고 확 만족스러운 경우가 없었던 것처럼 이 작품도 그러했다. 요즘 자주 쓰이는 ‘평균 올려치기‘라는 용어가 딱 생각나더라는.


먼저 팩트 한 가지 짚자면, 이 작품은 스토리가 아닌 분위기로 승부하는 쪽이다. 뭐라도 좋으면 된 거 아니냐 싶지만 막상 읽어보면 이렇다 할 내용은 별로 없고, 또 대부분 과거형 시점이어서 현재의 전개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느껴진다. 뭔가 바람잡이 MC처럼 애써 분량 채운다는 인상도 받았고. 뭐 그럼에도 고딕+컬트+미스터리한 아우라는 인정해야겠다. 점점 뒷심이 딸리는 게 보여서 별 하나 뺐지만.


소년 다니엘은 부친을 따라 ‘잊힌 책들의 묘지‘를 방문한다. 거기서 발견한 ‘바람의 그림자‘를 챙겨오는데, 운 좋게도 세상에 단 한 권 남은 책이라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 다른 인쇄본들은 전부 회수하거나 파기되었단다. 아무튼 소설에 사로잡힌 소년은 저자인 H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책을 넘기라는 악마의 등장으로 도망친 다니엘은 뭔가 일이 꼬였음을 느끼면서도 제 호기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위험을 감지하고도 강행하는 모습이 주인공답긴 하나 한 번씩 얘도 좀 맞아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친구였다.


다니엘은 웬 거지 아재와 친구가 된다. 의외로 똘똘했던 거지는 소년의 손과 발이 되어 H의 조사를 돕기로 한다. 잘 됐다 싶더니 그 거지를 쫓아다니는 깡패 같은 경감이 나타나 소년까지 위협해댄다. 아니 어째서 이런 거지 같은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게 H와 연관된 이유임을 짐작한 다니엘은 마침내 H의 지인들을 만나 인터뷰에 들어간다. 그리고 H의 옛이야기가 차례차례 소개되는데 귀찮으니까 생략하겠다. 쓸려니까 진짜 귀찮네.


H의 지인들은 다니엘이 그와 닮았다는 말을 종종 흘려댔다. 두 사람이 평행이론까진 아니어도 비슷한 구석들이 좀 있긴 했다. 과거 H는 사랑이란 이름의 똥을 밟아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다니엘도 뭐 그 같은 전철을 밟는 중이었다. 아무튼 H의 지독한 러브스토리 가운데 그 깡패 같은 경감이 등장하는데, 듣자 하니 경감의 짝녀를 H가 선수쳤다는 뭐 그런 얘기였다. 그 2~30년 전의 일로 아직도 욱하고 있다는 게 추해 보이기도 한데, H도 다니엘처럼 노답일 때가 꽤 있어서 그런지 이해가 될 것도 같고 참. 아무튼 긴 세월을 거듭한 추격과 복수전으로 끝이 나지만, 그 서늘하고 음산했던 초중반의 분위기는 쏙 들어가고, H의 과거에 밀린 주인공의 날려먹은 분량도 아쉬움이 컸다. 작품성은 좋았지만 방향성이 좀 문제였달까.


사폰이 정말 세르반테스의 뒤를 잇는 스페인 작가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제 겨우 한 작품 읽고서 이런 말 하는 것도 실례겠지만. 일단은 4부작을 다 읽어볼 생각인데 가독성도 좋았지만, 문장보다 서사를 중요시하는 게 내 스타일이라서 그렇다. 돈키호테의 후예인 나님은 어쩌면 스페인에 태어났어야 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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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29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선 아쉬운대로 스페인 이름 하나 지어두시죠. ㅎㅎ 저도 이책 읽고 괜찮네 해서 1권 읽을 때 내친김에 천사의 게임을 샀는데 1권 마칠 때쯤 가독성이 떨어져서 이것저것 다 모셔만 두고 있습니다. 다시 붙잡아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으니 참 병인 것 같습니다. ㅠ

물감 2024-10-30 10:52   좋아요 1 | URL
스페인 식의 이름은 어떻게 지으면 되는지 모르겠네요. 잘만 지으면 닉네임도 바꿀텐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대충 지었어요 ㅋㅋㅋㅋ
1권 초중반의 분위기가 압권이긴 했는데 2권부터는 영 맥을 못추더라고요. 많이 아쉬웠습니다. 솔직하게 별 세개 반이에요. 그래도 대표작인 만큼 읽어볼만 합니다. 다시 한 번 도전해보심이!

stella.K 2024-10-30 11:12   좋아요 1 | URL
헉, 생각은 해 보셨나 봅니다. 이렇게 혼자 웃는 걸 보면. 뭐지? ㅋㅋ 물감이란 닉넴 좋습니다. 그 보다 좋은 것이 아니라면 계속 쓰십시오. ^^

coolcat329 2024-10-29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20년 전인가... 읽었어요. 한 소년과 아버지가 나왔다는 거 빼고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좀 실망했던 거 같아요. 뭔가를 크게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거죠. ㅎㅎ 분위기로 승부하는 소설 맞는 거 같아요. 뭔가 엄청 있어 보여 굉장히 기대하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감 2024-10-30 10:56   좋아요 1 | URL
쿨캣님의 실망 포인트를 알 것 같습니다. 독자가 예상하는 (또는 그러길 바라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영 다른 길로 빠진 것도 그렇고, 그걸 풀어가는 방식도 좀 허탈해요. 이렇게나 빙빙 돌렸으면 그만한 결과물을 내놓았음 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이 작품은 다 읽고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달까요. 말 그대로 있어보이기만 했던 작품...

자목련 2024-10-30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읽었는데 분위기는 기억나는데 내용은 기억이....

물감 2024-10-30 10:56   좋아요 0 | URL
그럴만 합니다...
 
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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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쇼의 작품은 처음인데, 신형철 평론가의 코멘트로 유명해졌다더군. 분야를 막론하고 나님은 평론가들을 썩 좋게 보지 않는데 그래서였을까, 이 작품도 그냥 심드렁하게 읽었다. 1964년에 출간된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한창 일본 학생운동이 뜨겁던 전후세대 청춘들의 이야기이다. 당 활동에 진심인 부류와 평범하게 살아가는 부류가 뒤섞인 당시 사회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당원으로써 긍지를 가졌던 학생들은 1950년 이후의 각종 사건들로 점점 변해가는 당의 지도 방침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군사조직에 들어가 지하활동까지 했던 그들의 마음 한편에는 어느덧 불안감이 자부심을 앞질렀다. 그럼에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혹은 혁명의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만 했다. 결국 당을 떠나 일반인으로 살아가 보지만 텅 빈 마음속의 공허함은 무엇으로도 메꿔지질 않아 방황하게 된다. 이 작품은 청춘을 잃어버린 자들의 푸념과 하소연으로 독자를 설득하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내가 동시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곱게 들어주진 못하겠더라.


나만 <노르웨이 숲>을 떠올린 건 아니었나 보다. 나님은 그 작품에도 별 셋을 주었었지. 다자이 오사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옛 일본 작가들의 사회주의 정서는 어째서 내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 거장들이 꺼내는 허무, 결핍, 상실, 방황 따위의 감성은 매번 코끝을 간지럽히는 선에서 그치곤 하는데, 그것마저도 독자와 소통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작가도 제 감정들이 정돈되지 않았는지, 무언가 떠오른 대로 일단 던져놓고서 당신 생각은 어떠냐며 억지로 턴을 넘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게 같은 글이라도 서양권에서는 화두를 물고 늘어지는 반면, 일본은 꼭 질문에 맞서질 않고 그저 회피하기에만 바쁘다.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하는 식이랄까. 그래서 일본의 고전 작품들은 이상하게 피로하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주인공 두 남녀에 대해서만 적겠다. 세쓰코는 자신의 먼 친척뻘인 후미오와 약혼을 한다. 한때 당원이었던 그녀의 과거를 들추지 않고 잔잔한 연인 관계를 이어나간 후미오는, 그녀에게 못난 놈 취급을 받으며 딸랑 편지 한 통으로 이별하게 된다. 세쓰코는 자신과 과거를 공유하지 않은 약혼자에게서 끝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통탄하였다. 사실 서로가 암묵적으로 그런 연애를 시작했고, 말 없는 동의하에 결혼까지 골인했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약혼자를 떠나며 남긴 그녀의 편지 내용은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도 어이없고 이기적일 따름이었다. 그와의 연애 중에도 좋아했던 당원을 떠올렸다며 그렇게 두 남자를 은근히 비교해댔다. 무엇보다 자신의 공허를 채우지 못했단 이유로 결혼까지 해놓고 떠나가겠다며 자신을 이해 바란다는 건 대체.


삶에 대한 정의나 이유를 찾고 싶다는 건 알겠는데, 그 많은 속내를 진작에 꺼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제 눈에 후미오가 영혼 없는 인간으로 보였다 한들, 부부까지 되었으면 좀 더 솔직하게 심정을 터놓고 둘이서 해결해 볼 수도 있지 않았느냔 말이다. 제대로 된 대화 한번 없이 그저 당신은 내 마음 몰라 하고 사라지다니, 나로선 참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배려한답시고 내내 다정히 대했건만 역시 그와의 사상이 맞지 않은 탓이었을까. 그녀는 둘이서 역사라 부를 만한 것들을 만들어갔으면 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각자가 지닌 것 중 서로 결합될 만한 게 없었다는 거였다. 그래 뭐, 존중은 하겠는데 진짜 남자 보는 눈이 없구만 쯧쯧. 그녀의 편지를 다 읽은 후미오의 판단은, 세쓰코가 불만스러운 자신의 세대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라고 보았다. 그 행위를 용기 있다고 본 후미오와 저자의 시선이, 오늘날의 불만스러운 사회를 탈출하고픈 현대인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가 되지 않았나 싶다. 뭐 나는 여기에 썩 동의하고 싶진 않다. 어느새 다 저물어가는 내 청춘을 생각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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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0-20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의 평론하시는 분의 코멘트
를 듣고 이 책을 기대하고 접했는데
그냥 시큰둥했습니다.

아마 그 시절에는 맞았는지 모르겠지
만 너무 늦게 만난 시절 인연 때문이
지 않나 싶더구요.

그냥 그랬습니다.

물감 2024-10-20 20:32   좋아요 1 | URL
시대불문하고 공감을 자아내는 세계문학도 많은데, 유독 이런 류의 일본문학만 이유모를 거부감 같은 게 들어요. 뭐랄까, 자기들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른다는 느낌적인 느낌? 말씀하신대로 그 시절에는 먹혔는지 모르겠는데... 아니 요즘 사람들은 좀 더 명료한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잠자냥 2024-10-21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드렁222222222

물감 2024-10-21 16:19   좋아요 0 | URL
이야 자냥님 오랜만에 뵙슴다 ㅋㅋㅋ

2024-10-27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4-10-27 21:44   좋아요 1 | URL
제안 감사합니다. 지금은 관심이 식은건지 안땡겨요...ㅎㅎㅎ 다음 기회를 노려보겠습니다😅

stella.K 2024-10-28 09:52   좋아요 1 | URL
네. 알겠습니다. 쫌 그러실 거 같았어요. ㅋ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세트] 나는 고백한다 1~3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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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살고 싶은데 도대체가 말야, 할 일도 많고 약속도 왜 그리 많은지 원. 연말도 아직 멀었는데 거참 평안한 날이 많지가 않다. 그래도 바쁘게 지내서 좋은 점은 현재를 알차게 살고 있단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요즘의 나는 어떤 계기로 각성하여 더 이상 과거의 아픔과 미련과 후회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한평생의 과제가 해결된 지금에야 비로소 번데기를 탈피한 나비가 된 기분이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이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질 못했으니, 고것은 묻지마 범죄같이 기원을 알 수 없는 복잡하고도 난해한 카탈루냐의 어느 고전 작품 때문이렸다. 한때나마 반짝 떠들썩했었던, 이름하야 <나는 고백한다>가 되시겠다. 털썩.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 쓴 회고록이라는 설정으로, 다소 두서없는 전개가 내내 반복되니 집중을 잘 해야 한다. 물론 나님은 반쯤 내려놓고 읽었으므로, 이번 글은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둘 생각이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일대기뿐만 아니라 16~17세기 스페인의 역사와 미술, 음악, 철학, 종교, 언어, 문학 등 온갖 분야를 넘나든다. 또한 예고 없는 장면전환과 설명 부실한 등장인물도 워낙 많아서 나처럼 가방끈 짧은 독자들은 애먹을 것으로 예상되오니 부디 건투를 빈다. 전에도 말했지만 분량의 압박이 심한 작품에는 꼭 없어도 그만인 구간들이 넘쳐나는데, <나는 고백한다> 역시 예외는 없었다. 어느 정도는 병든 노인에게 주어진 핸디캡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온갖 테마를 다루면서 발견해낸 악의 근원 치고는 뭔가 김빠진 콜라였단 말씀. 한마디로 과했다는 겁니다, 예.


출판사의 소개 글은, 골동품 거래상인 부친이 구해온 바이올린과 얽힌 사건 사고와 함께, 그 계보를 거슬러 악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식으로 나와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바이올린을 중점적으로 흘러가는 서사가 아니었다. 주인공 아드리아는 어려서부터 부친의 강압에 따라 여러 언어 공부와 바이올린 연습을 해야 했다. 총명했던 소년은 언어학에 재미를 느끼는 반면, 악기 연주는 점점 흥미를 잃어간다. 그러다 부친의 죽음이 그 바이올린 때문임을 알게 된 아드리아는 그 악기의 배경과 역사를 알아내어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그 악기의 마지막 주인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 가족 중 하나였고, 나치 장교들이 악기의 소유권을 두고 피를 묻혔다던 비극마저 드러난다.


어쨌거나 흐름은 바이올린의 장인이 저지른 살인죄가 악기에 저주라도 씐 듯, 세대와 주자를 거듭해서 악이 계승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데, 솔직히 악기를 거쳐간 사람들이 다 저주에 걸리고 악에 물든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악기 자체가 문제인 것도 아니니, 이 추상적인 악의 근원에게 접근하려면 관점을 좀 달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2권에서 주인공의 공상 친구인 보안관이 말하길, 아픈 이들은 멀쩡한 사고를 못해서 자신들의 악에 갇힌다고 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작품에서는 유독 머리가 비상하거나 사회적 위치가 높은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의 방대한 지식이 곧 탐욕으로 번지면서 시야가 좁아져 마침내 선악을 분별치 못하게 되는데, 이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악이란 무엇인가를 알 것도 같았다. 이것은 과거 나치 장교였던 부덴 박사에게도 해당된다. 복역을 마친 뒤 수도사가 되어 살아가는 부덴 박사도 과거 끔찍한 의술에 빠졌을 때엔 사리분별을 못했었다. 그가 저지른 악행도 죄악이지만 그 이전에 자신이 추구하던 신념과 사상이 결국 자신을 집어삼켰다는 사실. 이렇듯 작중에서 등장하는 악에 관한 언급들을 살펴보건대 모두들 광적인 집착이 있었는데 저자는 악행을 저지름보다도 악의 길로 들어섬을 비극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역시 좀 부족한데 나로선 도저히 설명을 덧붙이지 못하겠다.


이제 악기는 완전히 접고 대학교수가 되어 살아가는 아드리아. 그에게는 짧게 만났다가 길게 헤어진 연인이 있다. 훗날에 다시 재회하여 나름 깨소금 볶는 중이지만, 악기 주인을 찾아주라는 그녀의 말에 아주 그냥 마음이 단단히 상해버린다. 비록 부친이 좋지 못한 방식으로 구했다지만 그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말이다. 이후 그녀가 사고로 죽자, 자신의 어떤 집착에서 또 하나의 악을 발견했던 건지 생각을 고쳐먹게 된 아드리아. 그렇지만 알츠하이머에 걸려 이 회고록을 작성하는 때까지도 악을 완전히 떼어버리진 못했던 그였다. 쩝. 나는 지금 오로지 주인공에 관한 시점에서만 글을 작성하는 중인데, 작중 수많은 과거들 가운데서도 여러 악의 본질과 형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므로 부디 건투를 빈다. 난 이미 틀렸어.


내가 이 작품에서 건진 건 딱 하나다. 주인공의 절친 베르나트의 대사인, 모든 예술은 불만족에서 탄생한다는 말. 이것은 결핍이나 저항과는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 나의 이 글 쓰는 행위도 사실 작품을 대하는 나 자신에게 가진 불만족으로부터 출발한 거였다. 어쩌면 예술이란 극복이 불가능한 콤플렉스를 끌어안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이 아닐까 한다. 그러다 각성하면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는 걸 테고. 쓰고 보니 배꼽이 더 큰 리뷰가 된 듯하다. 여하튼 죄다 좋다고 난리던데 나만 또 별로였던 작품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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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18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다들 좋다고 난리인데 말입니다. 저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러면 또 흔들리는데요? ㅋㅋ
근데 읽어야지 하고는 아직도 못 읽고 있는 작품입니다. ㅠ

물감 2024-10-18 18:36   좋아요 1 | URL
음 제 생각에 스텔라 님도 저랑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 가방끈 탓이라기엔 좀... 구매 전이시면 대출로 보시길 추천해요ㅋㅋㅋ

북깨비 2024-10-20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서 쟁여뒀는데! 물감님께서 읽었다는데 의의를 둔다 하시니 ㅠㅠ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군요. 그럼 계속 미루는걸로 ㅋㅋㅋㅋㅋ

물감 2024-10-20 10:59   좋아요 1 | URL
북깨비님 살아계셨군요 ㅋㅋㅋㅋ 알라딘 떠나신 줄!
아 근데 저만 별로였다니까요?? 다들 재밌었다니까 저의 글은 거르시는게 어떨지 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이게 재밌어? 싶긴 함)

2024-10-21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21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