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리뷰는 24시 까페수다체로 써볼까 해. 오후 8시를 넘긴 평소 내 말투가 한 80% 반영될 거야. 그냥 편하게 들어줘. 일단 나는 이 책에 거부감이 좀 있었어. 순전히 제목 때문에. 아무리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듯이 나도 그런 게 여럿 있거든? 그런 기억들은 너무 강렬하고 선명해서 강산이 바뀌어도 늘 제자리에 있어. 잠깐의 떠올림으로 하루를 망치기도 하고 그래.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 오래도 망설였어. 근데 궁금해졌어. 이 책의 주인공은 대체 어떤 식으로 트라우마에 맞서고 저주받은 기억에 대항하는지가. 나는 고통을 피해만 다녔지, 극복할 생각까지는 못했거든? 상처받으면 혼자 앓는 타입이라서 몸 사리기 바빴어. 여튼 기억력 좋으면 쓸 데 많겠지만 모든 기억이 평생 가는 건 무서운 저주야. 이 책의 주인공처럼.


형사 데커 가족이 어떤 살인마에게 죽음을 당했어. 데커는 그 뒤로 정신이 망가져서 경찰도 그만두고 쭉 거렁뱅이 생활 중이야. 그러다 옛 파트너가 말해주길, 살인범이 자수했대. 살인 당시의 상황도 자세히 알고 있고, 가족 모두 죽인 것을 시인했대. 근데 데커 눈에는 영 엉뚱한 놈이거든. 근데 이놈은 뭔 생각인지 지가 한게 맞으니까 죽여달라네?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갑자기 옆 고등학교에서 총기사건이 터졌어. 경찰이 출동할 때는 이미 상황이 다 끝났지. 환장하게도 그 넓은 데서 범인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라. 할 수 없이 경찰은 데커한테 도와달라 해. 데커는 인간 블랙박스거든. 과잉기억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모든 것을 다 기억해. 지금은 그 이유로 악몽 속에 살지만. 아무튼 조사 도중에 기막힌 게 나왔어. 이번 사건과 데커 사건에서 발견된 탄환이 똑같대. 이제 답 나왔네. 그 놈만 잡으면 돼.


​알다시피 범죄소설 주인공들은 신체에 핸디캡 한두 개씩 꼭 있어. 관절을 다쳤든 병으로 고생하든 주인공들이 죄다 골골대. 근데 페이소스를 보여주려면 어쩔 수 없는 설정일 거야. 멀쩡한 캐릭터는 고뇌와 연민 같은 감정이랑 거리가 멀거든. 난 뭐 오만한 성격파탄자만 아니면 다 괜찮아. 웬일로 이번 주인공은 다 정상인데 뇌만 다른 신종 핸디캡을 갖고 있어. 그것이 자신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 되어 이 시리즈를 끌고 가는 기본 베이스인가 본데, 솔직히 타 시리즈만큼 흥미롭지는 않아. 이건 아직 1편이니까 그런가 보다 할 수 있어. 현재 두세 편 더 나와있던데 좀 더 지켜볼게. 그리고 주인공이 자꾸 ‘잭 리처‘를 생각나게 해. 빵빵한 하드웨어나 비상한 두뇌도 그렇고 인간미 상실한 것까지 완벽한 데칼코마니던데? 그래서 내가 시큰둥 했던 건지도 몰라. 내가 잭 리처 안좋아하거덩. 아무튼 유명한 해리 보슈나 링컨 라임 시리즈도 처음엔 엄청 딱딱했다가 점점 말랑해지면서 매력이 드러났거든? 상남자 캐릭터가 절대 좋은 게 아니야. 보여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데커도 분명히 소프트해질 것이라 확신해.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라고, 해리포터 작가가 쓴 탐정소설이 있거든? 진짜 주인공 혼자 다 해 먹던 게 아직도 기억나. 지 혼자 추리하고 결단 내리고 범인 지목해서 끝내버리는데 어찌나 허탈하던지. 근데 데커도 거의 비슷해. 지독한 싱글 플레이어라서 타인에게 기대려 하질 않아. 그래서 독자들이 함께 추리할만한 여지가 전혀 없어. 그렇게 주인공 혼자 다 해 먹으면 미스터리 분야로써는 탈락이지 뭐. 원래 작가가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만 하는 작품에서는 별다른 재미를 볼 수가 없는 거야. 보통 범죄소설은 초반부터 범인과 주인공의 대결 구도로 가던지, 추리 끝에 주변인 중에서 범인을 검거하던지 하거든? 그런데 감도 안 잡히는 할로우맨을 찾을라니 이게 참말로 김빠질 일이야. 나는 범죄소설에서 악역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근데 이렇게 범인 구경하기 힘든 작품은 기억력의 달인이라도 금방 잊어버려. 왜냐, 범인의 존재감이 뚜렷해야 주인공의 활약도 두드러지는 법이거든. 반면 실체 없는 범인과의 싸움은 혼자 노는 숨바꼭질처럼 재미도 없고 주인공의 매력도 발산되지 못해. 차라리 인질극이나 폭탄 설치 같은 데드라인 있는 걸로 일행들을 들었다 놨다 해줬으면 싶었어. 범인이 대놓고 위협하기보다 장난만 치는 것 같아서 긴장감은 하나도 없고 내내 같은 패턴이다 보니 은근 피로도가 높더라고. 온리 추측으로만 진행되어서 그럴싸한 용의자가 나와도 과연 이노마가 맞는가, 이 수사 방향이 맞는 건가 같은 의심도 자꾸 드는 거지. 아무튼 악역에게서 재미 볼 건 없었어. 복수라는 명분으로 저지른 범인의 만행들이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그럴 수 있겠다 쳐도, 데커를 타겟삼은 동기는 아무리 봐도 억지스러워. 근데 또 연쇄 살인마나 사이코패스가 논리적인 거 봤냐고 하신다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도록 할게.


솔직히 인간미가 없어도 너무 없는 작품이더라. 목마르면 물 주고 배고프면 밥을 대령하는 전개라니. 이렇게 퍼즐이 척척 맞춰지는 건 너무 작위적이잖어. 이쯤에선 이걸 뿌려주고 저쯤에선 이걸 넣어주려는 계산법이 눈에 훤히 보여. 그게 나쁘단 게 아니라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 정직해서 탈이었지. 맨날 뒤통수치는 플롯만 보다가 이렇게 스트레이트한 플롯을 보니까 이거는 이거대로 또 신선하네. 더 참신했던 건 이제 겨우 1편인데 네트워크가 벌써부터 다 갖춰진 부분이야. 이번 사건으로 경찰, FBI, 기자와 한 팀이 된 데커는 이제 모든 사건마다 빵빵한 지원을 받게 되었어. 시작부터 어벤져스라니, 작가님 야망이 대단하시구려. 이렇게 모든 카드를 공개해버리면 나중엔 뭘 보여줄 건지 기대가 되기보단 걱정이 앞서네. 최신폰의 스펙이 현재 쓰는 거랑 비슷하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법이거든. 시리즈 소설도 그것과 비슷해서 후속작은 전작보다 새롭고 신선한 맛을 느끼게 해줘야 해. 이전보다 약하다, 아쉽다, 별로다 같은 평이 유독 시리즈물에서 자주 들리는 건 그 장르만의 특징이라 어쩔 수 없거든. 아무튼 이 작가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겠다 싶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티야의 여름
트리베니언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내놓은 소설마다 히트 쳤다는 그레이트한 작가라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스릴러 작가로 유명하시드만 어째 이 책은 순문학과 고전소설의 분위기를 더 띄고 있다. 그래서 다들 읽어보면 현대판 고전을 보는 기분이 들어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 쏟아내는 반전에 반전으로 독자들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볼 것이다. 이 분도 애거사 크리스티처럼 전반전과 후반전의 온도차가 심한 작가 같다. 이런 걸 볼 때면 확실히 옛날 작가들이 내공도 스케일도 발상도 훨씬 더 끝내줬던 것 같음. 현대작가들은 뭐랄까, 맛은 얼추 맞추지만 깊은 맛이 부족해서 아쉬울 때가 많다. 짠 거 먹으면 단거 땡기듯이 가끔은 이렇게 노장들의 묵직함이 확 땡기곤 한다. 그래서 지금 나 기분 좋아져쓰.


작은 마을의 의사로 일하는 주인공에게 카티야가 찾아온다. 그녀를 따라가 다친 쌍둥이 남동생을 치료해주면서 그녀의 가족과 인연을 맺는 주인공. 당시 품위 있고 고상한 프랑스 숙녀들과 달리 당돌하면서도 어딘가 몽환적인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다. 그는 일과가 끝나면 매일 그녀의 집으로 출첵하며 카티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무례한 동생 놈이 절대 누나와 썸 타지 말라고 핏대 세우며 경고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오직 사랑, 오직 카티야였던 의사는 구애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집안 사정으로 발목 잡힌 그녀를 구제해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죽어도 사정을 밝힐 수 없다는 이 집안은 일주일 뒤에 이 동네를 뜨기로 한다. 의사는 완강한 동생을 말려보지만 떠날 수밖에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체 그들은 어떤 사정이 있기에 쫓기듯 떠나야 하는가. 정말 이대로 첫사랑 카티야를 보내야만 하는 걸까.


타고난 이야기꾼을 만난 기념으로 삼삼칠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이 정도로 짧고 굵게 임팩트 때리는 작품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한 남자의 순애보를 잔잔하게 그려나가다 갑자기 장르를 전환하여 미친 듯이 단타를 날리는 플롯이라니. 이런 게 왜 치명적이냐면 방금 전까지도 소풍 날씨였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 우박 태풍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듯한 당황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가지의 떡밥은 대놓고 보여주었지만 딱히 그것들이 별 의미도 없어 보였기에 독자들은 스릴러라는 장르를 망각하고 느긋하게 읽으며 방심하게 되는 것이다. 읽어보면 아실 텐데 이 작품은 시간도 짧고 장소도 한정되고 인물도 아주 적다. 그런 최소한의 조건만으로도 이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진짜 그레이트한 작가였음.


일단 몇 없는 등장인물의 뚜렷한 캐릭터성이 매우 훌륭했다. 카티야부터 말하자면 교양 있는 척하지 않았고 자연에 동화되어 즐거워했다가 갑자기 몽상에 빠져 저만의 세상에 노닐던 살짝 사차원 끼를 보여주는 여자였다. 동생을 의지하면서도 멋대로 행동하는 철부지 같은 면모도 보여주는 그녀. 요즘 남자들이 환장할만한 미를 골고루 갖춘 그녀를 흠모하는 주인공 몽장. 그는 신사다움, 허세, 윤리, 정의로움, 낭만이 약간씩 들어있는 어중간한 순진남이다. 이런 캐릭터가 요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자주 보이는 이유는 여러 상황에 써먹을 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사랑에 울부짖고 답답함에 울분을 표했다가 간혹 허당 미도 보여주는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그런 의사를 견제하는 카티야의 남동생 폴은 까칠함과 무례함의 아이콘으로 프랑스 버전의 나쁜 남자라 할 수 있다. 툴툴대면서도 가족을 끔찍이 챙기는 동생은 이 책에서 가장 비중 높고 존재감 있는 캐릭터이다. 누나에게 흑심을 품는 주인공을 경고할 때 자신이 킥복싱 선수였다고 으름장 놓는 게 어찌나 웃기던지. 유치하게 굴면서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려는 폴이 밉상이라기보단 그저 귀여웠다. 동생보다 더 매력 있는 아버지와 의사 어르신이 더 있지만 이건 패스한다. 아무튼 인물 설정은 정말 칭찬해줘야 함.


카티야 집안사람들은 말도 생각도 전부 일방통행이다.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은 동생은 권위적인 말을 자주 뱉고, 부친은 아무도 관심 없는 역사에 대해서 늘어놓고, 카티야는 백일몽에 계속 빠져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이런 독특한 가족에게 계속 정붙이는 주인공을 봐서라도 집안의 비밀을 말해주거나 귀띔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끝까지 안 알려주려고 하데? 그래서 분명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막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어쩌다 그 집의 비극을 알게 된 몽장은 왜 그들이 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며, 동생은 왜 그따위로 삐딱해졌으며, 왜 카티야를 사랑하면 안 되었는지 모두 알게 된다. 처음엔 동생의 과도한 경고가 일종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앞전에 그녀를 사랑한 남자에게 성폭행당한 카티야를 보호하기 위함이었고, 그러면 동생이 과잉보호할만하다며 납득 중이었는데 그보다 더한 비밀과 반전이 준비되어있었다. 마치 바나나 껍질을 벗겨보니 후랑크소세지가 들어있는 정도의 당황스러움과 충격이랄까.


사랑을 시작할 때는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만 생각하다가 사랑이 한참 진행되면 그 사람의 배경을 안 볼 수가 없게 된다. 제아무리 낭만파에 로맨티스트 사랑꾼이라도 현실을 부딪힐 때가 오고 부담을 안고 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상대방을 아무리 사랑해도 나 자신이 다치는 걸 방치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주인공도 첫사랑의 복잡한 사정을 듣고 나자 뜨거운 여름 같았던 마음이 점점 찬바람 부는 겨울로 바뀌어간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불행 속에 갇힌 그녀를 꺼내주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새드엔딩이지만. 이 책이 스릴러 소설이긴 해도 나는 하나의 고전문학처럼 읽었다. 특히 주인공의 순애보가 고전 속의 여러 사랑꾼들과 닮아있었고, 금지된 사랑 속에 담긴 페이소스도 현대문학 스타일과는 다르게 보여서 신선했다. 이 작가도 관심 작가 명단에 추가해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08-25 1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심 작가 발견을 축하합니다. 제가 요즘 두 번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려고 하거든요. 관심 작품을 찾는 거죠.
다작보다 두 번 이상 읽는 정독을 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책을 만나는 건 행운인 것 같습니다.

물감 2019-08-26 08:29   좋아요 1 | URL
자신과 맞는 작가를 만나면 정말 기분좋죠. 이제 저는 ‘나중에 다시 읽을‘ 책만 구매합니다. 한번 읽고 끝날 책은 소장할 필요를 못느껴서요. 저도 이웃분들처럼 벽 한면을 책으로 꽉 채워보고 싶은데 그만큼 소장하고 싶은 책이 별로 없어서 아쉬워요ㅎㅎ
 
아이스 콜드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8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은 혼자 살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 이 의견은 1인 가구/N포세대가 늘고 있는 요즘, 온라인에서 엄청나게 찬반이 나뉘고 있다. 남들과 관계를 맺는 게 부담이 되고, 있는 관계도 끊고 사는 시대인데 혼자 사는 게 뭐가 대수라고 그렇게 호들갑이냐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시장도 상품을 1인 가구에 맞춰서 내놓는 추세이므로 돈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사회에 가득하다. 그 말에 나는 뭐 반반 입장이다. 그러나 절대 사람은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가 없다. 마이웨이 독고다이의 싱글 플레이어 캐릭터들(007요원이나 람보나 셜록 홈스 같은)도 사실은 누군가에게 계속 도움을 받는다. 그러면 호신술도 할 줄 모르고 사고 대처도 못하는 우리가 납치되거나 인적 없는 곳에서 사고 나거나 조난당했을 때도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까? 내가 위급상황일 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면, 내가 죽거나 없어져도 아쉬워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너무나 괴로울 것 같다. 이런 상상만 해봐도 사람은 완벽하게 혼자일 수는 없다. 그 생각은 이 책을 보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이번 편은 인적 없는 설산에 갇힌 병리학자 마우라 아일스의 이야기이다.


성직자와 밀애 중인 마우라는 절대 평범치 않은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 중이다. 생각도 정리할 겸 병리학 컨퍼런스를 참석하러 날아간 캘리포니아에서 대학 동기를 만난다. 기분전환을 위해 그의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산 길에서 차 사고가 나서 다친 동료를 주변 마을로 데려가게 된다. 그런데 이 마을은 모두 빈 집이었고 집문이 전부 열려있다. 바깥은 폭설 중이고 전화는 안 터지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상처하나 없이 죽어있는 반려동물들과 의문의 피 웅덩이... 한편 그녀의 실종을 눈치챈 형사 리졸리 일행은 마우라의 사고 차량을 발견하고 근처에 죽은 시신들이 마우라 일행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살아있는 진짜 마우라는 이제 아무도 찾으려 하질 않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하나의 그림자. 마우라는 자신을 반기는 위험과 공포 가운데에서 무사히 구조될 수 있을까.


고립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조난 사건과 사고들. 흔한 소재라 딱히 기대감 같은 건 가지지 않았다. 다만 같은 소재라도 추리소설과 스릴러소설의 패턴이 다른 것에 흥미가 생겼다. 보통 추리소설이 밀폐 장소에서 범인을 밝히는 게 기본 플롯이라면, 스릴러소설은 건물 안과 밖에서 두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어 범인도 찾으면서 위기에 빠진 자들을 구하는 과정까지가 기본 플롯이다. 이 책은 밀폐된 공간을 집안 같은 좁은 장소에서 마을과 지역 전체로 확산시켰다. 무대가 커지면 써먹을 장치도 더 많이 늘어난다. 작가는 텅 빈 곳에서 인기척을 느끼게 함으로 공포감을 형성하였고, 일행들이 의견 불일치로 싸워서 흩어지게 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조난 장르물이나 비슷한 흐름이다. 그러나 후반전이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그녀가 잠깐 밖에 나간 사이에 누군가가 집들을 불질러서 일행들이 전부 죽었고, 그 지역의 보안관들이 그녀를 죽이려는 황당무계한 전개가 진행된다. 이렇게 뻔하면서도 예측불허한 특징이 장르소설만의 매력이다.


이번 작품은 유독 마우라의 심리상태가 뒤집히는 상황이 자주 있다. 항상 시크하고 완벽주의에다 일 외에는 모든 게 서툴고 유연치 못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서 사람들을 그리워할 줄 알게 되고, 사랑하는 이와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고,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늘 죽은 사람만 상대해온 마우라는 처음으로 산 사람을 수술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 죽은 사람은 해부할 때 피도 안 흐르고 비명 지르는 일도 없고 옆에서 통곡하는 가족도 없었다. 그러나 산 사람은 모든 게 정 반대였다. 환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괴로움은 그녀의 전공이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는 그녀의 돌 같은 심장을 깨뜨렸고, 산 사람이 가진 생명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로 마우라의 성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그런데 꽤 비중 있었던 일행들이 화재 이후로 갑자기 다 퇴장해버려서 급 당황스러웠다. 뭔가 있어 보였던 등장인물이 알고 보니 병풍 역할이라면 이 얼마나 허무한가. 스릴러 장르는 이렇게 김빠진 콜라 하나가 작품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주의해야 한다.


스릴러 소설은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가장 외면받는 장르이다. 이유야 많겠지만 잔인하고 폭력적인 게 싫은 것과, 문체가 딱딱해서 싫다는 이유가 가장 많다. 전자는 어쩔 수 없지만 후자의 이유라면 이 작가의 책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테스 게리첸은 감성 스릴러 작가로 유명한데,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여성으로 설정하였고, 사건 사고마다 여성만의 아픔과 연민의 감정으로 연결시키는게 특징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사건보다 캐릭터들의 인간적인 면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아무튼 글도 하드보일드 하지 않고, 작품의 거친 면만 보여주고 땡이 아니기 때문에 이 작가의 책은 스릴러 장르에 입문용으로 적격이다. 플롯도 그리 복잡하지 않으면서 재미는 재미대로, 교훈은 교훈대로 다 갖춘 편이라 부담이 덜할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 출간된 테스 게리첸의 작품은 2013년도에 출간된 이 책이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후속작이 없는 건 국내에서 인기가 없기 때문에 안 나오는 걸까. 수요가 없으니 공급도 끊어진 걸까. 그래 뭐 나중에라도 작가의 신간을 볼 수 있길 희망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 그리고 기성세대의 정치과잉
안성민 지음 / 디벨롭어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먼저 연락 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정치/사회 분야는 평소 잘 안 읽는 편이지만 궁금해서 신청했다. 근래에 내가 빨간 표지와 맞지 않다고 글 쓴 적 있었는데 떡하니 빨간 책이 와서 당혹스러웠다. 혹시나 이번에도 꽝일까 싶어서. 다행히 꽝은 아니지만 비문학들은 문학보다 실패 확률이 적지 않나? 암튼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꽤 만족스럽게 읽었다. 저자는 오늘날 청년층이 겪고 있는 수많은 사회문제들을 보기 쉽게 정리 및 분석하였고, 국민들의 혐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한국 정치가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 아주 잘 돌아가는 국내 정치판에서 청년들의 입지는 얼마나 열악한가를 알아보자.


청년을 지칭하는 나이는 다 다르나 통상 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쯤 된다. 이 연령층이 나라를 움직이고 유지하는 주역이라지만 여전히 다 해 먹는 건 기성세대들이다. 그들은 물러나지 않고 건건이 사회에 개입하여 청년들을 자기 발밑에 두려 한다. 이미 수없이 거론된 부동산 경제, 비결혼, 일자리, 저출산과 같은 문제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증명해 보였건만, 청년들의 외침을 근성 부족으로 치부해버린 기득권과 정권 아니었던가. 지금 청년들은 나라에 욕하는 것도 지쳐서 돈 없고 빽 없는 스스로를 신세한탄하고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20대 초반의 친구들에게서 이런 말이 나온다면 말 다한 거 아닌가.


헬조선의 한국 청년들은 온갖 나쁜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다 들어맞는 세대가 되었다. 성실하기만 해도 잘 살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모든 게 풍족하고 발전했음에도 미래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의 앞길을 기성세대가 전부 막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이야,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이놈의 헬조선은 ‘니도 당해봐라‘ 식의 보상심리가 학교와 군대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입들이 들어오면 경력자들이 도와주긴커녕 지 밥그릇 뺏길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말이다. 방송인 유병재가 이런 말을 했지. 다 경력자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 가서 경력을 쌓냐고. 딱 이것처럼 억울한 일 투성이인 게 지금의 청년들이다. 직장을 못 구해도 힘들지만 취업을 해도 상황은 여전하다. 월급쟁이도 퇴직 걱정하고, 자영업자도 매출 걱정하고, 알바생도 무인 시스템에 밀릴까 봐 걱정한다. 이쯤 되면 청년들이 정치판에 개입하는 게 싫은 기성세대와 정치인들이 2030의 생존 문제들을 일부러 외면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결과만이 전부인 세상이다. 늘 그래왔지만 요즘 시대는 유독 심하다. 그래서 성과나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들은 자연히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인간관계?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끊어도 문제없다. 워라밸? 옆집 개 사료처럼 나와 상관없는 단어다. 도전정신?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해서 자폭할 필요 있나. 이런 마인드의 친구들이 사회로 나와서 꼰대 마인드 기성세대와 부딪히니 회사가 잘 돌아갈 수가 없다. 잘못을 밑에서만 찾으려는 꼰대들은 후배들이 사회 적응 못하는 이기적인 놈으로만 보일 뿐이다. 시대는 날로 급변하는데 아직도 7080년도의 사고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는 기성세대는 그게 지금도 먹힌다고 믿는다. 이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청년들은 침묵을 택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인주의가 된다. 국가는 청년들이 왜 이러는지 원인 파악도 안 하고, 눈앞에 불만 끄려고 말 같지도 않는 대책만 꺼냈다가 몰매 맞기를 반복 중이다. 아무도 청년들 마음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고 공감하려 들지도 않는다. 굳이 말 안 해도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지금 젊은 것들은 노오력이 부족하단 말이 한때 나돌았다. 고것 참 희대의 뻘소리다. 당장 내 주변에는 풀야근에 주말 근무하는 분들이 널렸는데 이 워크홀릭들이 노오력 부족이라? 근무시간은 지금도 한국이 세계 탑 순위권 아니던가? 그렇게 버닝하면서도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가야만 하는 심정을 기성세대가 모르는 게 아니다. 그저 내 일이 아니므로 관심 없는 것 뿐. 문 대통령은 취임 시에 평등, 공정, 정의를 강조했지만 과연 그렇게 되고 있는지 저자는 묻는다. 위에서는 청년들이 도통 정치에 관심 없다고 생각들 하는데,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평생직장이 사라지면서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청년들에게 정치까지 관심 가지 길 바라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정치에 참여 안 하면 무관심하다고 뭐라 하고, 관심을 가지면 어린 게 뭘 아냐고 하고. 대체 어쩌라는 걸까?


지금 정계는 6070이 다 해 먹고 있다 보니 새로운 복지나 정책도 그들 세대에 맞춰져있다. 청년세대에겐 특혜도 주지 않고 정치를 실패할 기회도 안준다. 누가 봐도 불평등, 불공정, 불의를 느끼는 청년들이 왜 가만있는 줄 아는가? 나서봤자 바뀌는 건 없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군대랑 똑같다. 군대는 온갖 부조리와 비합리적인 일과 융통성 없는 인간들의 소굴이다. 그런 곳에서 일개 병사가 기존의 시스템을 뒤엎고 개혁을 일으켜 보겠다? 강산이 수십 번 바뀌어도 그대로인 군대에 변화를 바라느니 그냥 버티다가 전역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군인들이 자기 부대에 관심도 없는 개인주의라고 비난받아야 할까? 어느 세대건 개구리는 올챙이를 이해 못한다. 개구리는 개구리의 세상이 더 중요하므로 올챙이까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게다가 올챙이 시절은 기억도 안 나거든. 본인은 처음부터 개구리였던 거야. 벽 타고 점프하고 사냥하는 스킬이 처음부터 타고났던 거야, 아주 그냥. 


정치인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이 프레임 씌우기이다. ‘어려서 뭘 몰라‘, ‘젊은 것들은 경험이 없어‘ 등등. 그래서 실패하면 ‘것 봐라, 내 말이 맞지?‘ 식으로 본인들의 입지를 다지고 밥그릇 하나라도 더 챙긴다. 청년들이 정치하려는 게 꼴사나워 대놓고 소외시키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자신들의 힘을 잃는 건 죽어도 싫은 모양이다. 어떻게 지켜온 자리인데 새파란 것들이 진보를 외치며 적잖은 위협을 해대니 본 때를 보여줄 수밖에 없으시겠지. 그러나 저자는 청년들에게 물러서거나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우리는 정치인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심판하여 본분에 맞는 정신을 갖게 하고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정계는 군 복무도 안한 사람이 군대 문제를 거론하고, 회사를 가본 적 없는 사람이 직장 문제를 거론하고, 자녀도 없는 사람이 육아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건 마치 새가 물고기 걱정하는 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서로 합심하여 시늉만 하는 국회와 정치인들을 놀지 않게 해줘야 한다.


제목 때문에 단순히 정치 분야의 내용인 줄 알았드만, 이 시대의 2030들이 겪고 있는 고충을 꼬집는 내용이 더 많았다. 그 많은 걸 다 조사하고 신조어까지 공부하느라 엄청 수고한 게 느껴진다. 다만 챕터마다 분량이 너무 짧다고 생각되어 그 부분이 좀 아쉽다. 하긴 이 많은 문제점들을 작정하고 다루면 성경책보다 두꺼워질 듯. 나는 20대에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청년은 왜 이리도 할 게 많은 걸까. 학점 관리, 스펙 쌓기, 군 입대, 취업 준비, 연애 사업, 저축, 청약, 대출 갚기 등등... 진짜 너무하다 싶은데 이 불만을 어디에 토로할 수 있지? 청년이 이렇게 극한 직업인 줄 알았다면 안 했을 텐데, 나이 먹으면 저절로 되는 거라서 더 억울하다. 아무튼 저자만큼이나 나도 할 말이 많은데 글이 계속 길어져 이만 줄인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08-16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네개나 주시고... 이 책을 읽어 봐야겠네요.

물감 2019-08-16 13:47   좋아요 1 | URL
사실 어떤 분야든지 점수를 줄때 작가의 성의를 가장 먼저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전문성이 대단하고 완성도가 높은 책이라도 작품에 대한 성의나, 독자에 대한 배려가 낮으면 제 능력 자랑하려고 쓴 것처럼 느껴지더라구요. 반대로 독자와 소통하려는 게 느껴지는 작가의 책은 얼마든지 점수높게 주려고 합니다. 이 책도 읽어볼만 하실거에요^^
 
염원 - 꿈꿀수록 쓰라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웬만해선 신간을 잘 안 읽는다. 검증 안 된 책들을 읽었다가 괜히 시간만 버리고 기분 상했던 경우가 허다해서 그렇다. 지금은 남들이 다 읽고 검증해준 책만 골라 읽는다. 그런데 시즈쿠이 슈스케의 신간을 고른 이유는 뭘까. 처음엔 이 작가는 당연히 읽어줘야지 했지만서도 돌아보면 이전 작품들은 별 세 개 이상을 넘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이분도 글은 참 잘 쓰는데 알맹이는 약한 것이 딱 하루키 스타일이다. 하루키는 멀리하는 내가 이 작가의 글은 왜 읽느냐면, 일단 작품마다 컨셉이 신선하고 둘째는 심리를 다루는 글을 주로 씀에도 전혀 올드하지 않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냥 한번 읽어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컨셉 얘기는 진짜니까 한번 읽어들 보시길.


여기, 한참 사춘기가 진행 중인 아들과 공부 좀 하는 딸이 있다. 부상으로 축구부를 그만둔 아들이 어느 날 실종되고, 뉴스에서는 아들의 친구가 폭행 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보도된다. 아들의 휴대폰은 며칠째 꺼져있고, 아들이 평소 질 나쁜 무리와 어울렸다는 정보를 듣는다. 사태는 점점 아들이 범죄하고 도주 중인 분위기가 되고, 대중은 이 가족을 범죄자 가정으로 몰고 간다. 당연히 아들을 믿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싹튼 의심은 믿음을 무너뜨린다. 아빠는 아들이 피해자가 되어 집안에 피해가 최소화되길 바라고, 엄마는 아들이 가해자가 되어 살아있기만이라도 바란다. 두 사람의 사고는 끝없이 부딪히고 집안엔 냉기가 흐른다. 아들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두 가지 가능성, 희망 없는 바람. 깜빡이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이 고난을 어떻게 감당해내야 하는가.


​늘상 일본 문학의 라이트한 맛이 싫다고 투덜대지만 이 작가 책은 망설임 없이 고를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알맹이는 다소 약해도 남들이 잘 안 하는 소재를 주로 쓰는 데다 짬밥이 팍팍 담긴 글을 쓰기 때문에.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임팩트는 다 다를진대, 슈스케의 글은 유독 그런 느낌이 강하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통달한 산신령 같은 이미지랄까. 하루키에게도 있는 이 고유의 분위기가 이 분에게도 있다. 사실 이런 섬세함과 정교함을 가진 사람들은 장르 불문하고 어떤 글을 써도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그런데 그 장점을 장르소설에 접목하면 서스펜스 묘사에서 엄청난 빛을 발한다. 이 책은 출간 전부터 심리를 다룬 끝판왕 작품으로 소개되었고, 작가의 이름을 듣는 순간 결코 과대광고가 아니란 걸 알았다. 마케팅 팀 제법이야?


부모는 아들의 심성이 본래 따듯하고 착한 아이란 걸 알고 있다.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었단 뜻이다. 그러나 날마다 집에 찾아오는 기자들의 압박과 그에 동조하는 주변인들로 인해 아들에 대한 믿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절대 범죄 하지 않았다고 믿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 일에 가담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비록 아들이 구경만 했다 쳐도 그 무리들 중에 하나라면 똑같은 공범이 된다. 더 이상 아들이 그 사건과 무관하지는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모의 억장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만약에 아들이 가해자라면 부모는 세상 앞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이 안되는 게 없었다. 이쯤에서 작가는 느닷없이 범죄자 가족으로 돼버린 한 가정의 멘붕 심리와 함께 방향을 잘못 잡은 대중의 분노까지 다룬다. 가족도 대중도 약간의 정보만 듣고 마음대로 추측하여 엉뚱한 길로 가는 것이다. 너도나도 똑같이 주장하는데 혼자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힘들 테지만.


아빠는 아들 친구를 통해 축구부를 그만둔 과정을 듣는다. 아들이 이 사건에 말려있는 게 맞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계기나 동기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아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였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부모로서 버티는 게 한계가 온다. 아빠는 사업 계약이 취소되고 업계에서 왕따가 된다. 엄마는 기자들 때문에 밖에도 못 나가고 초인종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린다. 당연히 집안일도 올 스톱 된다. 딸은 학교생활에 타격을 입고 고교 입시 준비는 엉망이 된다. 집 밖에서 받은 조롱과 상처를 집안에서 서로에게 화풀이하는 가족들. 개인에게 일어난 불행과 슬픔 때문에 내 가족이 느끼는 걱정과 근심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롭던 가족의 일상들이 단 한 명의 부재로 인해 무너지고 있었다. 단 한 사람으로 이 커다란 태풍을 몰고 올 줄 아무도 예상치 못했으므로.


자식이 범죄자일 때와 사망자일 때의 부모의 심정이 어떻게 다른지 세세히 나온다. 공통점은 남은 생애를 어떻게 버틸지 막막하다는 것. 아빠는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살인자라면 내가 알던 아들이 아니며 평생을 살인범으로 사는 거라고 주장한다. 반면 엄마는 설령 자식이 범인이라 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고 사는 동안 얼마든지 새 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는 아빠와 감정이 격해지는 엄마는 서로를 이해 못 하고 싸운다. 아빠는 혹시 모를 상황도 예상하고 그에 따른 대비도 해야 한다는 뜻인데, 엄마는 그런 주장이 자식이 범죄자이길 바라는 거로밖에 안 보인다. 현실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를 뿐 자식에 대한 믿음은 같은데 각자가 받은 섭섭함으로 분별력마저 잃어버리는 두 사람. 아내는 현실을 못 보고 남편은 사고방식이 잘못됐다는 생각에 서로 말도 꺼내지 않는다.


계속되는 압박감에 휘청이는 부모는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각오를 한다. 이런 경우에 가장 참담한 게 뭐냐면 가해자일 바에야 차라리 피해자로 밝혀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식이 죽었길 바라는 부모는 없으므로 가해자라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다오 할 것 같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가해자 가족의 입장으로 지내온 가족들은 아들이 피해자였단 사실에 안도했다. 아들의 죽음을 바란 게 아님에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단 게 더 참담한 것이다. 비슷한 상황을 꼽자면 ‘사랑해서 헤어진다‘ 정도 되지 않을까. 나만 좋자고 A를 택하느니 B를 택해서 여럿이 좋은 길을 가는 게 나은 그런 상황. 어떤 선택이든 이기적인 생각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반드시 피해자라야 가족이 누명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들의 죽어준 덕분에 구제받은 집이라니. 그토록 사람들에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아들은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울부짖었건만, 대중은 저마다의 추측과 여론몰이로 한 가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탄 내버렸다. 사건이 종료되고 진실이 밝혀져도 사과하는 이 하나 없었다. 게다가 오해했다며 용서를 구한들 가족이 받은 상처가 없던 일로 되겠나. 그런다고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나. 이런 대중의 두 얼굴 현상은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더 심각하다. 살인과 폭행, 루머 같은 자극적인 뉴스들은 항상 결과만을 따지므로 이슈의 발단과 과정은 늘 뒷전이 된다. 그래서 정황이 드러나면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했던 사람들은 관심 없던 척 돌아서고, 네티즌들은 올렸던 악성 댓글을 조용히 삭제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 만드는 게 숨쉬기 운동만큼 간단한 세상이다. 나도 비슷한 일을 크게 겪어봐서 그런 두 얼굴의 사람들을 정말 정말 경멸한다. 사정도 모르면서 멋대로 떠들고 제 말이 무조건 정답 인양 우쭐대는 사람들. 어깨에 힘주고 어슬렁대다가 이때다 싶으면 물어뜯는 하이에나가 세상엔 너무 많다. 정작 사자 앞에서는 깨갱할 것들이.


책 소개 글을 안 읽어서 소년의 실종사건이 중심인 줄 알았지만, 진짜 내용은 최악의 결과만큼은 피했으면 하는 부모의 간절함 바램과, 혹시나 그런 결과일 때 어떻게 해야만 좋을지 염려하는 과정에 더 중점을 둔다. 과연 심리 소설답다고 하겠으나 그 내용 외에 다른 내용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대략 난감이다. 배경과 무대도 좁고 주요인물도 적고 무엇보다 사건이랄 게 없다. 좀 심하게 비약하자면 ‘어떡해 어떡해‘만 반복하다가 끝나는 스토리였다. 차라리 모노드라마 형식이었다면 좀 더 달랐으려나. 전에도 말한 적 있는데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계속 먹으면 금방 질린다. 반찬도 골고루 먹고 밥이랑 국이랑 번갈아 먹고 물도 마셔줘야 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다채로움도 없고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맴돌고 있어 골방에 갇힌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왕이면 인간의 이중성도 더 세게 고발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심리묘사의 달인은 인정해드립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9-08-13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별 세개!!! ㅎ ㅎ ㅎ

물감 2019-08-13 13:41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ㅎㅎㅎ
근데 전 웬만한 책이 별 세개더라고요ㅎ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8-13 13:51   좋아요 1 | URL
물감님 까칠대마왕 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9-08-16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소설 같은데요. 자식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이길 바라는 부모의 심리라는 게
그리 간단치 않을 것 같네요.
아무튼 리뷰의 달인이십니다. 이렇게 재밌는 리뷰는 오랜만에 읽어 봅니다. 리뷰가 흥미진진...

물감 2019-08-16 13:53   좋아요 1 | URL
오.. 페크님께 인정받은건가요? ㅎㅎㅎ 기분 너무 좋습니다. 알라딘에서는 칭찬받는게 정말 하늘의 별따기라서요 ㅠㅠ
여러가지로 볼게 참 많은 책인데요, 그중 부모간에 이념대립이 가장 볼거리입니다. 작가도 그걸 다루고 싶어서 쓰다 나온 책이 이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심리소설 좋아하시면 읽어보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