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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예스 리커버)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올해의 독서는 유명작 또는 화제작 위주로 읽는 게 목표이다. 현재까진 그럭저럭 유지 중이긴 한데, 그저 그런 작품을 자주 만나다 보니 독서하기가 너무 싫어진다. 그리고 실망스러운 유명작이 얼마나 많은 지도 제대로 실감하고 있다. 독자마다 감동, 감탄하는 포인트가 다르단 걸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거품이다 싶은 유명작들이 너무 많은 거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읽은 <로드>도 크나큰 실망이다. 헤밍웨이의 정신을 계승했다느니,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라느니, 아주 그냥 작가 소개 글부터 미국뽕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한 비장함으로 가득한데 그럼 뭐 하나.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다. 작품성 말고는 다 갖다 버린 건지, 건조한 문체와 단조로운 스토리를 어찌하면 즐길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심지어 글맛조차 없던데.
대재앙이 지나간 뒤의 시점을 기록한 작품이다. 붕괴한 인류와 문명 가운데서 겨우 생존한 아버지와 아들은 끝없이 길을 걷는다. 어떤 재앙이었는지,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등등 부연 설명이 하나도 없는 갑갑한 작품이다. 이들의 여행은 오로지 양식을 구하기 위함이다. 겉으로 보기엔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지만 사실 이들도 언젠가 죽음이 곁으로 다가올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마지막을 그려보며 오늘을 버티는 부자에겐 매 순간이 공포였겠지만, 내게는 남극의 펭귄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어서 불쌍하지만 그게 자연의 이치 인양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시선만 갖게 할 뿐이었다.
어쨌든 이야기가 끝나기까지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건과 갈등이 일어나야만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모든 사건과 갈등이 다 똑같다. 날씨의 위협을 받고, 숙식 문제에 부딪히고, 다른 생존자들을 경계한다는 사건의 반복. 아들만은 살리고 싶은 아빠는 모든 위험 요소를 계산하느라 바쁘고, 어린 아들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못 본체하려는 아빠에게 실망한다는 갈등의 반복. 다 고만고만한 내용과 장면들 중 대체 어느 부분에서 열광할만한 포인트가 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독자들이 재미 보단 매력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던데, 어디가 어떻게 매력적인지는 시원하게 설명들을 못하더라.
실제로 작가에게는 노년에 얻은 아들이 있었고, 아들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없음을 고민했을 것이다. 후에 혼자 남겨질 아들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할지도 고민 많이 했겠지.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답변과 결론을 위해 이 작품을 쓰지 않았나 한다. 작중에서는 부자를 가리켜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라 정의했다. 멸망해가는 세상 중에서도 희망을 간직하는 이들처럼, 매카시는 어린 아들이 간직한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로드>도 다양한 해석을 가지는 작품이라는데, 솔직히 해석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일단 재미가 없어. 그래서 그런지 리뷰도 영 재미가 없군. 잠이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