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코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1
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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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화장실에서 클래식 음악이 24시간 흘러나온다. 콘체르토, 앙상블, 소나티네, 서곡, 왈츠, 행진곡, 교향곡, 심지어 성악까지. 볼일 보는 맛이 나서 되게 좋았는데, 얼마 전부터 한 대여섯 곡으로만 계속 재생되더니 이제는 트럼펫 솔로곡 하나만 반복 재생 중이다. 근데 그 곡의 멜로디가 워낙 우울하여 화장실 가는 게 싫어지다 못해 없던 변비까지 생길 지경이다. 그래, 이 정도 낭만은 있어줘야 참된 직장생활이라고 볼 수 있지. 시작부터 변비 가지고 뭔 낭만 타령이냐 하면, 직장보다 더한 낭만으로 가득한 교도소 배경의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주인공은 슬기로운 깜빵 라이프의 낭만파이자 비호감의 조건을 골고루 갖춘 캐릭터였다. 늘 그랬듯 고전은 아무 기대 없이 읽을 때에 얻는 깨달음도 크므로 이번에도 그리했더니 아무것도 건진 게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형을 살해한 죄로 팔코너 교도소에 갇힌 주인공은 죄수들과 마음껏 더티 러브를 즐긴다. 또한 마약중독으로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를 보이며, 답이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몸소 증명한다. 이렇게 동공 풀린 주인공의 시점을 실감 나는 글 속에 반영시켜 놓았다. 환각에 빠진 것처럼 몽롱한 분위기에다 주어도 없이 횡설수설하는 문장들이 연속된다. 그리고 매번 삼천포로 빠지듯이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는데, 이런 불친절한 작품은 꽤 오랜만이라 마음이 두근두근하데? 단단히 혹평을 벼르고 있었는데 점점 읽을 만 해지더니 후반부에는 글이 멀쩡해지는 게 아닌가.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을 즈음에 주인공의 약물 중독 상태가 완치가 돼버린다. 그러니까 중독자에서 정상인으로 바뀌는 과정을 글의 변화로 보여준 것인데 이 그라데이션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크게 감탄했다. 근데 이거 말고는 글쎄, 뭐를 말하려는 내용인지 몰라서 그냥 해설에 의존해야 했다. 확실히 이럴 땐 해설이 있는 게 도움이 된다.


인간이 지닌 본성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으로 유명하댄다.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자들을 모아놓은 것은 그들의 결함, 결핍, 타락, 부작용도 삶의 일부분이란 것을 강조하려는 뜻일 거다. 그러나 이 책을 작가주의로 분류하기엔 여러 가지로 장벽이 높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지를 마주하고, 언제나 내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되는 길로 결정한다. 결과가 어떻든 그 방향은 곧 나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사회에서 완벽하게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사회가 묵인하는 범위 안에서만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유지할 수가 있다. 반대로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될 수 없는 영역, 즉 공동체의 모습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인다면 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럼 마약, 살인, 동성애 같은 경우는 어떨까. 이것들이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준다 한들 사회는 절대 용납지 못한다. 그런데 교도소에서는 그것조차도 존중을 받는다. 뜻이 맞는 자들끼리 모였으므로 감옥만큼은 온전히 나다운 모습일 수가 있다. 그래서 죄수들은 자유롭던 바깥 생활에서 자신을 감출 때보다, 억압된 감옥에서의 자신을 더 좋아하고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의도는 알겠으나 동성애 장면이 투머치할 필요는 없었는데.


주인공은 본인의 할당량인 약물을 받지 못하자 난폭하게 변한다. 한때는 교수였으나 지금은 한낱 광인에 불과한 그의 상반된 모습으로 저자는 숨어있던 또 다른 자신을 끄집어냈다. 사람들은 빛 가운데서도 방황할 때가 있고, 어두움에 속해서 분간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팔코너의 죄수들도 그러했다.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사진을 찍은 죄수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애틋해진다. 이렇게 인간의 양면이 드러나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만하면 인간 자격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 작가의 음성이 내내 맴돌았다. 여기에 동의하는 건 죄수들을 옹호하는 기분이 들어 찝찝하단 말이지.


애인이었던 조디가 탈옥을 하면서 스토리의 방향이 팍 꺾인다. 인생이 끝났다고 보는 다른 죄수들과 달리 조디는 이 막다른 길에서 절망하지 않았고 목표를 가졌다. 그리고 계획을 보란 듯이 성공해내자 주인공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였다. 저 또한 새 삶을 살아도 된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에. 다시 세상에 나간다는 것은 진짜 나로서 살아갈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결국 그도 팔코너를 탈출하고 세상에 발을 내디디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열린 결말이면서도 납득할만한 엔딩을 보여주고 있어 묘하게 여운이 남는다. 그건 아마도 탈출 직전에 형을 죽인 이유가 밝혀져서 그에게 연민을 품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평과 작품의 주제가 많이 동떨어졌을 수도 있는데 그냥 작품에서 부각된 것들만 적어봤다. 존 치버도 꽤나 위대한 작가로 알려져 있던데 이 작품만으로는 잘 모르겠네. 좀 더 지켜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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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20 20: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첨들어보는 작가라니 ㅜㅜ 물감님 별3개이면 이건 정말 3개인듯 하네요😌 전 책 다읽고 해설읽으면 ‘아 이게 이런거였어?‘ 하는 순간이 많더라구요 ㅎㅎ 해설없는 책은 뭔가 좀 아쉽더라구요~~

물감 2021-06-20 20:20   좋아요 3 | URL
너무 제 평을 믿진 마세요ㅋㅋㅋ
취향은 다 다르니깐요😎
저는 고전을 해설때문에 문학동네 꺼만 읽는데, 다른 출판사 고전들도 해설이 있나요?

미미 2021-06-20 20:28   좋아요 5 | URL
민음사도 해설이 제법 잘 쓰여져 있습니당ㅋㅋㅋ😎

새파랑 2021-06-20 20:39   좋아요 3 | URL
전 요즘 ‘열린책들‘ 이 좋더라구요. 해설도 있는데. 양장이어서 좋아요 ^^

미미 2021-06-20 20:43   좋아요 3 | URL
열린책들이 사이즈도 아담하고(그립감 굿) 표지도 더 이뿌죠ㅋㅋ

물감 2021-06-20 20:47   좋아요 3 | URL
역시 고전은 해설이 필수군요. 양장본이 좋긴한데 책장에 자리를 너무 차지해요...ㅋㅋㅋ

coolcat329 2021-06-20 21: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은 책인데 내용이 좀 하드코어일거같아 나중에 사야지하고 미뤄뒀네요.

횡설수설 삼천포>점점 읽을만>글 멀쩡 ㅋㅋ 이건 내용을 떠나 가독성이 좋다는 거죠?
열린 결말이면서도 결말이 납득도 된다니 다행입니다 🤭
리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물감 2021-06-20 21:55   좋아요 5 | URL
뭐 그렇게 매운맛은 아닙니다만, 동성애가 싫은 분들에겐 비추합니다...ㅋㅋㅋ

가독성의 변화는 놀라워요. 중반까지는 한 내용이 계속 이어지고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요, 그러다가 갑자기 챕터가 나뉘더니 문장이 또렷해져요. 그 변화를 잘 못느끼고 있다가 주인공의 약물치료가 끝났다는 내용이 나와서 소름돋았어요. 그 직전부터 읽기가 수월해지고 있었거든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비종 2021-06-21 0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무척 당황했던 자로서 격하게 공감합니다~‘아무것도 건진 게 없어서‘에ㅋㅋㅋ

성욕에 대해서는 아직도 답을 모르겠어요.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가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는 말에 대해서 꽤 오래전부터 의구심을 품고 있거든요. 전문적인 서적을 뒤적거린 게 아니라 별 신빙성은 없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여기저기 찾아보니 ‘성욕‘이 기본 욕구에 포함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도 하고. ‘배설욕‘이 대신 들어간다고도 하고. 이 책에서 이성애자로 보였던 주인공이 교도소 안에서 동성애에 빠지는 것을 보면 역시 기본적인 욕구에 속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성직자분들을 떠올리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성적인 정체성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타고난 본성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커다란 테두리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끌리는 걸까 싶기도 하고. 매력을 느껴보니 남자였다, 여자더라 뭐 이런?ㅎㅎ
중독자의 관점에서 쓴 글이라... 오~~ 신선한 관점이십니다!! 다시 한 번 그라데이션을 짚어보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역시 재미는 없는 작품이라 냉큼 포기했습니다~ㅋㅋ

‘언제나 내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되는 길로 결정한다. 결과가 어떻든 그 방향은 곧 나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이 부분 좋습니다. 많이 생각하게 되네요.^^
똑같은 행위라도 속해있는 공동체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용인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절대적인 선이나 악이 존재할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동성애 장면을 읽으면서 본능을 따라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말하고 싶은 걸까, 작가는 이걸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많이 생각했어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만ㅎㅎ^^;

‘사람들은 빛 가운데서도 방황할 때가 있고, 어두움에 속해서 분간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저는 물감님의 이 문장이 왜 이리 찡한 걸까요. 많이 공감이 되는 문장입니다.
누구도 악인이지 않지만 악인이 될 수 있으며 악인이 되는 건 건조기 속 빨래 같이 랜덤으로 발생하는 실수일 뿐이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탈출하는 방식도 뭔가 의미심장하기는 해요.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삶을 얻는 컨셉이니까요.
이번 작품을 통해 고전과 나비종의 장르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읽힌다고 반드시 나와 맞으리라는 법은 없구나, 인간 본성이고 나발이고 나란 인간은 이런 거 싫어하는 인간이로구나 하구요.ㅎㅎ

물감 2021-06-21 10:09   좋아요 3 | URL
해설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요ㅋㅋㅋㅋ

식욕, 수면욕과 달리 성욕은 절제가 가능한 걸로 봐서 저도 갑자기 의구심이 드는데요? 성 정체성은 원래 있는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아내를 사랑하고 잘지내왔던 사람이 어느날 한순간에 동성을 사랑하게 된다는 게 그럴수가 있나 싶어져요. 근데 미국은 뭐든 다 가능할 것 같단 말이죠 ... 하하하

폭력은 나쁜 것이지만, 악인에게 휘두른 폭력을 보며 통쾌한 마음이 들때마다 생각해요. 선악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요. 동성애도 그렇고 형을 살해한 죄 역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신념 까지는 아니라도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건 그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니까... 누가 어느 길을 가던지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

사람은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고 크게는 죄를 범하기도 하면서 성장하곤 하잖아요? 또는 패러것처럼 자신을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어두움에 있어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동료의 죽음이 새삶을 생각하게 된 계기인 것도 같은 맥락인듯해요. 역시 말년에 쓴 작품이라 그런지 심오하네요 ㅋㅋㅋ

역시 다양한 작품을 만나봐야 독서력이 느는 기분이 들어요~ 항상 운좋게 좋은 책만 읽을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ㅋㅋㅋ 여튼 잘 안맞는 책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독서모임으로 또 뵈어요 !

Falstaff 2021-06-21 09: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전 이 책을 꽤 근사하게 읽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감상이 갈리는 것, 이게 바람직한 일 아니겠습니까. ^^

물감 2021-06-21 09:42   좋아요 5 | URL
아마도 저의 내공이 낮아서 음미하지 못한게 아닐까 합니다^^;
저도 사실 제가 제대로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ㅋㅋ
다른 장르들도 그렇지만 고전은 참 여러 갈래로 나뉘는 감상이 묘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분들의 평들도 신선해서 좋습니다. 근데 고전은 확실히 어려워요... ㅋㅋㅋ

잠자냥 2021-06-21 10:02   좋아요 5 | URL
저도 이 책을 꽤 근사하게 읽은 1인 중 하나입니다.
아마 제가 존 치버를 좋아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만, 전 그 동성애자의 고통을 굉장히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의 동성애+알코올 중독 경험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더 절절하게 다가온 것 같고요. 암튼 폴스타프 님 말씀처럼 다른 의견이 있어야 바람직하지요. ㅎㅎ

물감 2021-06-21 10:26   좋아요 6 | URL
고수님들이 몰려오니 저 점점 작아지는데요.. ㅎㅎㅎ
높다고 느꼈던 동성애의 장벽이 갑자기 높게 느껴지지 않네요.
어쩐지 재독하게 되면 잠자냥님처럼 좀더 동성애자에게 몰입할 수 있을것도 같아요. 일단 세월 좀 지나서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coolcat329 2021-06-21 1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위에 고수님 두 분 같이 다니셔서 넘 웃겨요 ㅋㅋㅋ

물감 2021-06-21 12:27   좋아요 1 | URL
고수들이 워낙 많아서 일반인 되기도 쉽지 않은 알라딘 마을이에요...하핳

coolcat329 2021-06-21 12: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점심 시간이라 기뻐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물감님 고전 리뷰 저는 늘 재미있게 읽습니다. 물감님의 개성있는 감상문이 저에게 자극이 되네요.

물감 2021-06-21 12:17   좋아요 1 | URL
알라디너 분들은 다 상냥하시네요ㅎㅎ덕분에 힘이 납니다! 이맛에 글쓰는가봐요😎😎😎

잠자냥 2021-06-21 13:05   좋아요 3 | URL
저도 물감 님의 그 특유의 날선 비판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좋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하는 그 리뷰! 좋아요! ㅎㅎ

물감 2021-06-21 13:16   좋아요 3 | URL
오늘 무슨 날인가요?
이렇게 많은 댓글과 응원을 받다뇨...얼떨떨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잠자냥님^^ 더욱 분발하겠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