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 시나리오에서 소설까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
김호연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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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글쓰기에 대한 강의나 작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 같지만, 한국에서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부제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인데, 말 그대로 작가 개인의 생존기만을 기록했다면 굳이 책으로 출간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자세히는 몰라도 전업작가가 힘든 건 웬만큼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근데 본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저자가 영화사와 출판사 및 각종 프로덕션을 다니면서 체험한 업계의 사정이나 로직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쪽으로 진로를 생각 중인 분들에게 제법 유용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나처럼 글 쓰는 행위가 즐거운 일반인에겐 보다 더 글에 대한 갈증과 방향성과 보완할 점들을 깨우쳐주는 책이다. 시나리오 공부, 작법 연구, 문장 연습 다 좋지만 부지런히 글만 쓰는 게 정답은 아니므로 이 같은 책도 읽어줄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히트친 작품들이 SF, 스릴러, 판타지 같은 장르소설인데 아직도 한국은 7080의 문학성을 최고로 여긴다. 작가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고 한국인들은 상업을 목적으로 쓴 소설을 등한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점 사이트의 구매 순위나 독서 커뮤니티의 인기 리뷰들이 죄다 문단 소설인 것도 그 증거다. 최근에 우리나라 배우들이 가수들을 무시한다는 온라인 기사를 봤는데 딱 그런 느낌이랄까. 나도 또한 다년간의 리뷰활동으로 실감한 게 있는데, 장르소설의 리뷰는 유독 반응이 약하다는 것이다. 잘 보면 내 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블로거들의 리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독자들보다 작가들이 더하고 평론가나 심사위원들은 더 더하다. 반응이 없다는 건 글쓴이의 입장에서 매우 기운 빠지는 일이다. 내가 자신 있는 쪽으로 도전했는데 전혀 먹히질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고 좌절한 다음 많이들 하는 실수가 남이 좋아하는 글만 쓰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일시적인 반응과 효과를 볼지는 몰라도 나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있다. 김호연 작가 역시 좌절과 회생을 수없이 반복하고 이런저런 작업을 거치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게 된다.


결국 글쟁이는 자신의 오리지널을 갖추어야 하고 개인 브랜딩을 해야만 한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롤모델을 연구하되 나만의 것을 완성해야 한다. 언제나 그래왔듯 내 글이 살아남으려면 ‘나의 것‘으로 부딪혀야 먹혀든다. 반대로 독자들이 흔한 글을 싫어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는데, 타인의 공감을 얻어내려 작정하고 쓴 글이라면 그만한 성의를 보이라는 말이다. 나는 분명 영혼까지 갈아 넣었는데 반응이 영 별로다 싶으면 고치고 또 고치면 된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들 하니까 쓰레기가 아닐 때까지 수정하다 보면 소위 ‘팔리는 글‘이 된다. 이 책의 저자가 그것을 증명했으니까 참고해보시길.


본인의 내공 쌓기나 필력 향상, 감각 기르기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의 7~8할은 도움 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데 그들이 먹고 살 길을 마련해줘서가 아니라, 작가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가 되어줘서 그렇다. 유튜브만 해도 편집자가 있고없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듯 글쟁이 또한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야만 글과 그릇이 성장할 수 있다. 나는 본격적으로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주변인에게 꼭 피드백을 받고 있다. 단언컨대 필력을 키우기에는 이만한 지름길도 없다. 글이란 게 죽어도 안 써지는 날이 있고, 문득 영감이 떠올라 미친 듯이 잘 써지는 날도 있다. 글 쓰는 행위야 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 리뷰글 말고도 편지, 공문, 협조전, 브로슈어, 이메일, 광고 디엠 등 살면서 중요한 글을 써야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정성이 들어간 활자들은 주목을 받든 외면을 당하든 자체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그러므로 글쟁이들은 반응의 유무와 상관없이 써야만 한다.


무산된 프로젝트, 공모전 탈락, 반려된 원고, 날아간 시나리오, 못 받은 계약금 등등. 온갖 고배를 다 마시고도 이 바닥을 뜨지 않은 저자는 고인물 중에 고인물이다. 자신의 길을 수도 없이 의심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마침내 그를 소설가로 등극시켜주었다. 제 삼자가 본다면 독종이 따로 없다고 할 텐데, 이 책을 보면 그저 순수한 열정만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이 비슷한 절차를 밟았을 테지. 그러고 보니 내가 세차게 혹평했던 작품을 쓴 작가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런데 저만큼 피드백 주는 독자도 없을 거예요.) 여튼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소설가로 자리매김한 저자에게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이 책 덕분에 나도 글 쓰는 게 한층 더 즐거워졌다. 앞으로도 쓰기 위해 독서하는 삶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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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13 23: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별 다섯! 물감님 글쓰기를 한층 더 즐겁게 만든 이 책 장바구니로 ~@~@

물감 2021-07-07 16:13   좋아요 4 | URL
ㅎㅎㅎ이제 스캇님 댓글이 안달리면 어쩐지 허전합니다. 알라딘 지박령 스캇님😀😀😀

그레이스 2021-07-07 16:11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물감 2021-07-07 16:24   좋아요 1 | URL
ㅋㅋㅋ올해들어서 가장 열일하는 분이시죠

scott 2021-07-07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 축!!

이책 내가 찜 👆

물감 2021-07-07 16:23   좋아요 2 | URL
오오 당선 되었군요, 소식 감사해요ㅋㅋ

새파랑 2021-07-07 16:45   좋아요 2 | URL
축하드립니다 물감님.언제나 멋진글 잘 읽고 있어요 👍

물감 2021-07-07 16: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저도 매번 새파랑님의 엄청난 독서 열기에 자극받고 있습니다.
알라딘 마을을 계속 달궈주세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1-07-07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려요^^

물감 2021-07-07 16:2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ㅎㅎ

서니데이 2021-07-07 16: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7-07 16:53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
어쩜 이렇게 다들 소식이 빠르신지 ㅎㅎㅎ

초딩 2021-07-07 23: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물감 2021-07-08 00: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고수님들에 비하면 저는 낄자리가 못되는데 먼가 쑥스럽습니다^^;

황후화 2021-07-08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물감 2021-07-08 00:1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황후화님🙂🙂🙂

이하라 2021-07-08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물감 2021-07-08 08: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