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이런 주식을 삽니다 - 861% 수익을 올린 젊은 투자자 김현준의 실전 투자법
김현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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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유튜브 채널에서도 핫하게 초대손님으로 모셔지고 있는 김현준 님의 책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처음 봤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웃고 넘어갔는데, 이런 고수이실 줄이야.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과 방송클립으로 그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분이 책을 출간한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 하며 다시 보게 됐다. 심지어 책 하단에 출연한 프로그램이 유퀴즈 외에 <정산회담>, <돈워리스쿨2>까지 적혀있어서 책 출간 안내만 뜬 상태에서 정산회담을 정주행했다. 프로그램까지 재밌게 보고 책을 읽고 나니 책의 내용, 유튜브에서 하는 말, 방송에서 했던 말 그리 크게 다르진 않아도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분야에서 뛰어난 행보를 보이시니) 다시 한번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카페에서 디저트 사진과 함께 이 책 사진을 올려놓으니 다들 주식 공부하는거냐고 물어서 움찔했다. 사실 그냥 이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목적이었는데 말이다. 주식도 하고 있긴 하지만(정확히 이 분이 하지 말라는대로 100% 실천중^^) 사실 왕창 물려서 손절도 치지 못하고 담궈놓은 상태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공부도 하긴 해봤지만, 내 머리로는 주식 '투자'는 불가하다는 결론이 났다. 마치 복권처럼 내 돈으로 주식을 사서 랜덤으로 얻어 걸릴 수익률을 기대해보겠다는 마음으로야 할 수 있지만... '정석 투자'가 방법이라면 내게는 무엇보다 어려운 일라고 생각한다. 실패 내용을 복기해보며 내린 결론은 내가 투자에 적합한 기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를 알아보고 서치하셨는지, 그에게 이런 책을 출간 제의한 위즈덤하우스도 놀랍다. 저평가 우량주를 발견하신 느낌이려나! (물론 동종업계에서는 이미 알아주셨겠지만) 닳고 닳도록 들은 말이기도 하지만 정말 잘 시행되지도 않고 매번 자극이 필요한 게 투자할 때의 마음이기도 한데, 이번에 한번 쉽고 정확하고 따끔하게 매질을 맞은 것 같다. :)   


항상 현재 기준에서 우량주를 골라내고 그 주식들의 과거를 돌아보면 아쉽기 그지없을 것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생존편향의 오류다. 생존편향의 오류란 살아남지 못한 사례들을 수집하기 어려운 탓에 해당 시점에 생존해 있는 사례만을 대상으로 분석하여 성공사례를 일반화해 낙관적으로 전망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한 건에 맛을 들이면 암수(暗手)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정수(正手)가 오히려 따분해질 수 있다. 줄기차게 이기려면 괴롭지만 정수가 최선이다." - 이창호 9단 -

경영학자들은 몇 가지 (매우 달성되기 어려운) 조건이 충족되면 어떤 투자자도 주식시장보다 높은 초과수익을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경제, 산업, 기업의 변화가 주가에 빠르게 반영된다고 했다. 어떤 정보를 가지고 투자하든 주식시장 전체의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없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이 점점 현명해지고, 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늘어나면서 시장의 효율성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대강 투자해서는 돈을 벌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별다른 분석 없이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서 돈을 벌 수 있겠는가? 아마도 팔아버린 주식은 더 오르고, 꾸역꾸역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더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자들이 공통적으로 지키는 것이 하나 있다. ‘잡초는 뽑고 꽃은 심는다‘는 점이다. 주식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속칭 물타기가 아니라 불타기(물타기의 반대말로 자산 가격이 상승할 때 추가 매입해 절대 수익금을 높이는 행위를 이르는 신조어)로 돈을 번다.

어떤 사건이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시장 참여자들이 그 기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 그대로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워런 버핏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고 잘 지켜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 경험적으로 볼 때 직업 펀드매니저의 경우에도 한 번에 대여섯 종목 이상을 추적하려면 힘에 부친다. 그러니 수십 종목씩 투자한다는 것은 "나는 이 종목들에 대해 잘 모르니 대충만 분석하겠습니다"라는 고백과도 같다.

실제로 공부하고 노력한 만큼 수익률이 더 좋아질 수 있는 곳이 주식시장이다. 그렇다면 변동성은 우리의 친구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매수할 수 있도록 또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매도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자산의 변동성이 아니라 영구적인 자본 훼손이다. 다시 말해 기업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거나, 기업의 가치는 하락하지 않더라도 내가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위험이다.

우리는 보통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할 때 정말 많은 요소를 고려한다. 직장과의 거리, 학군, 주변 편의 시설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없다. 그러나 주식투자를 할 때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무턱대고 주식투자에 임한다. 그러고는 하루빨리 주가가 폭등하기를 바란다. 이런 식의 투자는 ‘필패‘다. 맹목적인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 외에 기업의 성장 요인을 면밀히 점검할 수 있는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좋은 투자가가 되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인내심을 주가가 떨어졌을 때, 즉 ‘본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에만 쓰고 있지는 않은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를 때 섣불리 팔지 않는 인내와 좋은 타이밍이 올 때까지 사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다.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강인한 투자자가 되기 전까지는 매뉴얼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군중 안에 있으면서도 ‘이번만은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영적인 투자가 존 템플턴은 투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것을 꼽으라면 "이번만은 다를 거야(This time is different)"라는 말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투자로만 세계적인 부자가 된 워런 버핏도 연 복리 수익률은 20% 내외다. 이 정도만 확실하게 벌어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반 투자자들은 투자할 때 ‘이것만 되면‘이라는 생각으로 대박을 좇는다. ‘그것이 안 되더라도‘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투자 아이디어가 실패하더라도 잃지 않는 방법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기존의 사업 영역만으로도 기업가치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쌀 때 사야 한다. 둘째, 해당 투자 아이디어나 종목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많지 않아야 한다. 사실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두 번째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두 가지로 나눈 이유는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시기마다 천차만별이라 ‘충분히 싸다‘는 것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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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4-26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참 다양한 분야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죠. 모두 두각을 드러냏 기회를 얻는건 아니지만.. 저마다 빛을 발하진 옷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는 길을 걸었으면 좋겠죠. 아름다운 봄 날들. 그런 주말이 지나갑니다

milibbong 2021-04-29 23:3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열심히, 잘, 한다고 해서 모두가 빛을 보는 것도 아니고 잘되는 것도 아니라... 그게 좀 그렇네요. 두부님 말씀처럼 각자 나름의 위치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 이제 6시가 넘어도 7시가 넘어도 아직 초저녁 같아요. 4시가 되도 해가 강렬하고 말이죠. 여름이 다가오고 있나봐요... ㅎㅎ
 
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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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박제해야 한다. 우연히 알게 되서 읽게 됐는데, 200 페이지가 안되는 이 작고 얇은 책이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모르는 내용이 아니라 너무 잘 아는 내용을, 섬세한 언어들로 미세한 틈바구니에 끼일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까지 잘 표현해주신 것 같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고, 옮기고 싶은 구절을 다 적을 수도 없었다. 이 책이 전하는 내용을 전달받으려면 요약할 것도 없이 이 책 한 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여자쪽에 치우친 의견 아닌가 하며 이 책에서 하는 말에 이의가 있는 남자가 있다면 누가 내게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준다면 좋겠다. 감정적으로 화가 난다거나 단순히 남자에게 불공평하다는 식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해 피력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길 바랄 뿐이다.
 페미니스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도 모두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여성에 대하여 부르짖기에는 나조차 가부장제에 익숙한 사고를 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는 순간 온간 나쁜 말들로 부정당하기 쉬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바뀌어가는 방향이 맞는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그런 의미에서도 논리적인 반대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시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은 며느리에게서 나온 걸로 쉽게 의심받는다. 근거는 없다.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자꾸만 허공의 며느리를 노려본다. 아들이 그러한 결정을 했을 리가 없다고 믿는다. ‘며느리는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들이 지금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그 뒤에 숨어 있을 며느리 탓이다. 조종당하는 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시부모는 당신들의 아들을 스스로 허수아비 취급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

작가 박완서는 산문집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에서 탁월한 비유를 들어 이러한 여성의 처지를 설명한다. 즉,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람 대접받는 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 한명이라도 종이라는 이유로 박해받는 게 정당한 사회라면 아무리 나머지 종들이 주인과 겸상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사람 대접이 아니라 특혜를 받고 있을 뿐이며, 특혜란 권리가 아니기에 언제든 빼앗겨도 항의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팔자 좋은 여자도 팔자 사나운 여자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남자가 겉보기에 효자 노릇을 하는데 알고 보면 단지 갈등을 만들기 싫어서, 또는 갈등을 대면하고 처리해야 할 자신의 임무가 피곤하고 번거로워서 아내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부모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기의 편의가 목적인 비겁함. 부모의 안녕에 전보다 큰 관심이 생겼다기보다 부모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도 쓰지 않은 채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남편의 효였다.

남편의 효가 게으름과 비겁함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자, 가부장제 안에서 ‘남자가 효자라서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말의 맥락도 똑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남자가 효자라서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것은 남편이 부모와 아내 사이를 조율할 의지가 없음을 뜻한다. 며느리로서 부여받은 부당한 요구들에 대해 부당하다는 인식이 희박하며 설령 있더라도 본인이 부모와 논쟁하고 설득할 생각까지는 없다. ‘남자가 효자라서‘란 부모에게는 착한 아들인 척, 아내에게는 효자인 것처럼 굴지만 실상 자신의 원가족과 새로운 가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이기심이 본질이며, ‘아내를 힘들게 한다‘란 그에 따른 책임 전가와 며느리의 대리 효도를 의미한다. 이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효의 실체인 것이다.

이 사회는 서툴다는 이유로 남성들에게 돌봄노동의 책임을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면 생기는 일‘이라며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등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남성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전시한다.
이분법적으로 한쪽 성별은 단순하고 무심하게, 한쪽은 섬세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도록 타고난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무심함을 용인받는 성별을 정해놓은 것뿐이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남성은 무심해도 되는 특권을 가졌다. 남편이 나의 생활 방식이나 필요에 무심한 반면, 내가 남편의 사소한 호오까지 관찰하고 인지하는 것은 철저한 사회화와 학습의 결과이다.

"집안일은 여자 몫이지." 이렇게 노골적인 말은 이제 누구도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에 따라 다르게 묻는다. 여자에게는 "남편이 집안일 잘 도와줘?"라고, 남자에게는 "와이프가 아침밥 차려줘?"라고. 혼자 사는 남자 방이 지저분하거나 냉동실에 인스턴트 식품이 가득한 걸 보고 사람들은 어서 장가가야겠다는 농담을 던진다. 반면 여자가 비슷한 농담을 듣는 순간은 요리를 좋아하거나 집을 잘 꾸미거나 과일을 능숙하게 깎을 때다.

여성은 개인적 야망이나 환경과 관계없이 언제든 일을 그만둘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퇴사자 취급을 받는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면 임시로, 재미로, 자아실현을 위해, 결혼할 때 직업이 있는 게 아무래도 좋아서 일하는 게 되고, 결혼한 상태라면 역시나 임시로, 가정의 추가 수입을 위해, 아이들의 간식비와 학원비에 보태려고, 용돈벌이로, 조금 더 악의적으로는 일 욕심이 많아서, 이기적이라서 일하는 게 된다. (가사, 돌봄, 육아노동을 해야 하는데 그것에 온 에너지를 쏟지 않고 임금노동을 하니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본분이 아니기에 여성의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게 된다.)

‘여자에게 좋은 직업‘은 정시퇴근이나 육아휴직이 가능해서 가사와 양육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정년이 보장되어서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은 돈을 벌어 남편을 기죽이지도 않는 직업을 말한다.
다시 말해 ‘여자에게 좋은‘ 게 아니라, ‘여자에게 돌봄노동과 임금노동을 이중으로 시키기에 좋은‘ 직업이 정확한 정의인 것이다.

여자로 산다는 건 어떤 행동을 해도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는 것만 같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커리어를 지속해도 이기적이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고 커리어에 집중해도 이기적이며, 전업주부를 하면 남편 돈으로 놀고먹어서 이기적, 결혼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비난받는, 모든 선택지가 벌칙인 삶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기혼은 기득권이 맞다. ... 결혼해서 얻는 것이라고 열거한 앞의 목록을 짚어보며 나는 오랜 의문을 풀 한 가지 힌트를 얻는다. 여성 작취의 긴 역사를 돌아보며 여성들이 왜 이토록 불리한 환경을 견뎌온 것인지 의문을 품곤 했다. 적어도 가부장적 결혼 제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답을 얻은 것 같다. 지금 이 사회는 안전과 경제력을 포함하여 결혼을 통해 얻는 이점들로 여성을 볼모 잡고 있는 모양새다. 애초에 삶과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을 여성에게서 박탈해놓고 그것들을 줄 테니 결혼하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렇게 여성이 부당함을 견디게끔, 결혼 제도로 걸어 들어가게끔 사회 제도가 설계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반드시 결혼을 통해 얻어야 할까? 성인이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경제력, 주거 환경은 ‘성별에 관계없이’ ‘결혼이 아니어도‘ 보장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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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4-12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돼었을지 모를 이 불평등 또는 차이는 어떤 단어로 표현하기도 버거운 지겅에 이른듯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이든 뭐든 세상이 뒤집어지고 인간종이 개벽이 일어나지 않는한 이 차이는 없어지지도 바뀔수도 없지 않을까.. 이렇게 글을 통렬하게 쓴 그 작가의 표현이 날카로울수록 실은 그 자신의 논리들도 베이고 아파지지 않나 싶습니다. 저를 젠더 감수성이 없는 꼰대라고 할 수도 있을것 같은데.. 사회적으로 여성의 기본권과 차별을 없애는건 마땅하고 노력할 일인데.. 그 불공정이 차이로부터 삐죽 삐죽 솟아난 부작용들이고 뿌리깊은 것들이라면 어떻게하면 공정한 차이의 공감이 가능할까요. 그 표현과 그 달성을 위한 노력은 어디까지가 정당한 것일까요. 저 역시 이런 부분에서 한마디도 할 처지는 못돼지만 생각할 수록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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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소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별점이다. 평화롭고 따스한 마음이 깃든 책이었다. 다만 다른 이를 통해 듣는 책 내용을 즐기지 않을 뿐더러, 내가 지독한 무감정과 고독, 회의 등 부정적 감정에 오래 노출된 상태라 작가님의 다정한 말들이 허공에 붕 뜬 말, 알맹이가 없는 말들처럼 느껴졌다. 본의 아니게 죄송하다. 내 취향의 글과 결이 다른 것 같아 작가님의 소설도 한번 읽지 못했는데, 어렵게 접한 에세이 책에서 평점을 낮게 드려서... ;(


이상하고 슬픈 일투성이인 세상이지만 당신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그래서 당신이 다른 이의 매일매일 또한 다정해지길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여유를 지녔으면.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상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휴가가 삶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때로 진실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거짓말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 필립 로스, 울분

네 마음의 집이 잘 보이지 않을 때 / 스러져 갈 때 /
마음의 방에 혼자 있을 때 / 창밖으로 비가 올 때라도 //
걱정하지 마. // 이 세상에는 다른 마음들이 아주 많거든. //
그 마음들이 네 마음을 도와줄 거야. / 언제나 너를 도와줄 거야.
- 김희경, 마음의 집

어느 한 가지를 깊이 있게 할 줄 몰라서, 여기저기만 기웃거리다가 그 무엇도 제대로 쌓아 올리지 못한 인생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소설이 삶을 닮은 것이라면, 한길로 꼿꼿이 가지 못하고 휘청휘청 비틀댄다 해도 뭐 어떤가. 내가 걷는 모든 걸음걸음이 결국엔 소설 쓰기의 일부가 될 텐데.

나의 말이 타인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재단하지 않기를.
내가 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무시무시함에 압도되지 않기를.
나의 글에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나의 글이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워지기를.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나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서 당신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가족이란 대체 뭘까?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영영 이해할 수 없고, 서로를 가장 견딜 수 없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가장 친밀한 공동체인 가족.

병원이라는 곳은 참 이상한 장소다. 나를, 그리고 상대를 좀 더 밀도 있게 바라보게 하니까. 그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어쩌면 병원이 연약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장소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열정이나 도취를 쉽게 떠올리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게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넘치는 건 젊음뿐,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여유는 조금도 갖지 못해 서로를 오독하는 시기를 지나야 우리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도. 공고한 ‘나‘의 성을 허물고 타인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마침내 사랑은 그 눈부신 폐허에서 시작할 테니까.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하루와 하루 사이를 박음질하듯 이으며 살아갈 뿐이니까.

무한히 번져갈 때에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에 완성이 영원히 지연될 수밖에 없는, 사랑. 사랑의 속성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오늘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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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4-11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토요일을 보내셨어요 뽕님
오늘 바깥을 좀 돌아다녔더니 살짝 피곤한 밤입니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신것처럼, 때론 세상 다정한 말들이 의미없는 가벼움으로 들려올때가 있는 듯 해요
화자가 그러했을 수도 있지만 내게도 그런 맘이 있어서겠지요.. 흠. 편안힌 밤 돼세요^^..

milibbong 2021-04-11 20:27   좋아요 0 | URL
두부님은 외부 일정을 보셨군요. 계획한 일들은 잘 마치셨나요?
전 어제는 일을 하고 오늘 잠깐 나들이 겸 산책을 다녀왔더니
살짝 피곤하긴 하네요 ^^ 나들이 한 것 이상으로 앉아서 먹기 바빴는데 말이죠 ㅎ
오늘 나갔다온 일들 다 정리하고 씻고 빨래까지 하려고 했는데
리뷰 하나 올리기가 이렇게 벅차서야... ㅎㅎ 나머지는 다 .... ㅋㅋㅋ ㅠㅠ
이제 다시 한주가 시작되겠죠? ㅎ
내일 비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맞다면 우산 잘 챙기시고
다시 새로운 힘 내시길 바랄게요 ㅎㅎ 오늘도 편안한 밤 하세요 두부님~ :))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고영 지음, 허안나 그림 / 카시오페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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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께 송구스런 마음이 든다. 책은 쉽고 재밌게 읽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내 마음엔 감흥이 일지 않았다. 대단하다라던가 부럽다 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으니, 정말 (여전히) 운동할 생각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제목은... 정말 나와 비슷할 수도 있었는데! 내용을 열어보니 살기 위해 운동을 하다가 점점 프로 운동러가 되어가는 이야기일 줄이야!... 내겐 그냥 운동 이야기도 많이 버거웠을텐데 말이다.
 언젠가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땐 분명히 하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었다. 방치해둔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 이제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방법도 잊은 것만 같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조그마한 방아쇠라도 당겨지길 소망했지만, 내겐 아직 머나먼 이야기인 것 같다... ;) 웃프다.      


내가 못한다는 걸 진솔하게 받아들이는 경험이야말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한 핵심 단계다.

자신의 목적에 맞는 운동 방식을 맞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있어 가장 큰 목표는 더 많은 근육과 건강이다.

잘하는 것에 베팅하는 것은 효율적인 일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과 적은 돈으로 남들보다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잘하는 것을 잘해서 남들로부터 ㅇ니정을 받는 것은 제법 유쾌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못하는, 새로운 것에 빠져드는 것은 힘들다. 새로운 것, 그것도 내가 재능이 없는 일에 빠지는 데는 너무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와 운동을 오랜 기간 이어 주었던 실은 ‘못하는 것에 집착해보는 기묘한 경험‘인 것 같다.

익숙해지려는 유혹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강한 것이 꼭 부드럽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고, 부드러운 것이 꼭 강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요가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었다.

삶은 언제나 ‘rise and fall‘이 있고, 때로 삶이 바닥을 칠 때 그 아래 작은 발판이나마 있는 것과 그마저도 없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대체로 ‘fall‘은 나의 의지로 불가능한 일들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무언가 해내고 성취해낼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은 굉장한 위안이 되곤 한다.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을 때, 이보다 더 최악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때, 홀로 몰두해서 모든 것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활동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 내게 있어선 운동이 그렇다.

운동에 있어서 목표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향하는 삶과의 균형, 기준 등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야 포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운동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 삶의 활력을 위해 운동을 도구로 삼으려는 이들이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극기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절대 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

항상 어제보다 조금 더 건강해질 것. 현재로서 내 지향점은 이 정도다.

운동을 생활화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을 이벤트가 아닌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3개월 단기 몸짱 프로젝트가 아닌 30년 생활화 프로젝트다. 비싼 돈을 내고 배우는 PT도, 관장님도 그것만큼은 대신해줄 수 없다.

운동도 넷X릭스 틀어 놓고 자듯 ‘그냥 습관‘이 될 수 있다. 조금 게으르게 하면 된다. 운동은 완벽하게 금욕적이고 철저한 자기관리의 대명사가 아니다. ‘운동 시작하자, 땡!‘ 하는 순간부터 흙고구마 궤짝과 냉동 닭 가슴살만 안고 바다 한가운데 떨어져야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이 외려 운동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붙잡아맬 수 있다.

본격적인 취미를 갖는 것. 그것은 내가 선 자리가 아닌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워라밸의 조건을 기껏 만들어 놓아도 워크의 반대 항인 라이프에 넣을 재료가 없다면 밸런스는 무색해지고 만다.

취미는 나이 먹은 직장인이 순수하게 돈이나 손해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다른 세계와 열정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리고 좋은 일들을 작당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통로 중 하나다.

삶에 가벼움과 유머를 곁들이기 위해선 얼마간의 떨어짐이 필요하다. 만약 부장이 내 기사가 엉망이라고 깬다. 이때 머릿속 생각 풍선에 뭐라도 우겨넣을 재료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꽤 버틸만 하다. (님이 아무리 뭐라고 하셔도 난 두시간 있다가 운동 갈 겁니다.)

그 재료가 무엇이 되어도 좋다. 운동이든 뜨개질이든 명상이든 목공이든.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하여. 앞으론 인생 취미를 찾는 직장인이 한 명이라도 더 많아지길.

하루하루 일상의 작은 조각이 모여 큰 그림이 되어간다. 더 나은 수면과 식사, 움직임이 내 삶의 조각들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평생 운동과 나 사이에 쌓은 담을 이제야 조금씩 허물어가며 생각한다. 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몸을 돌보는 기술이다. 차가 굴러가기 위해선 정기적으로 최소의 기름칠을 해주어야 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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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3-22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아침엔 부쩍 일찍 밝아진 창밖에 눈을 가물가물 거리고 있었어요.. 이제 열두시를 향해 가는데 바람은 잦아들고. 알싸한 바람. 또 하루를 놓아보내고 있어요. 뽕님은 하루 잘보내셨어요? 요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일에 대한 평가. 어떤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이 그렇게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이젠 제 모습도 무기력해 보이구. 이도 계절처럼 변하는 세월속 무상인지. 스스로의 부족함을 한살씩 더 먹으며 문득 깨달아가는건지ㅠ 암튼 그런 요즘입니다. 뽕님은 어떠실지. 저두 자주 (거창한 운동보단) 소소한 운동을 습관처럼하려고 하는데, 그게 즐겁고 재밌어야하지 해야한단 강박으론 절대 안돼는 것 같아요. 맘이 편하고 내킬때 하는 것이 뭐가됐든 젤 좋은듯 해요. 뻔한말이 , 평범한것이 젤 어려운ㅎ

milibbong 2021-03-24 20:19   좋아요 0 | URL
음... 두부님께서 관리자로써의 고충이 있으시군요. 어려운 자리인 것 같아요.
관리자라고 하는 특정 직책이 없다해도 한 자리에서 오랜 경력이 쌓이다보면
자연스레 후배들이 많아지니까 이끌고 조언하는 역할이 생기겠죠.
사람들의 관계는 참...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부분이잖아요.
정확히 제가 두부님의 심정을 알 순 없지만, 음...
여러모로 답답하신 것 같아요. ... 복잡한 마음이 저에게도 전해지네요. ㅜ
3월 초부터 유독 심해진 느낌이긴 한데... ㅠㅠ
이것저것 맘에 들지 않고 불만스런 마음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쉼없이 달려오셔서 지쳤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주변 상황상 영향을 받으실 수도 있겠죠... 그래도
너무 안타깝게 여기시거나 실망하시진 마세요. ㅎㅎ ㅠ
두부님이 평범하게 제일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시다 이런 느낌으로 ^^
하하... 아직 새로 읽은 책들은 없고... 제 곳간도 텅 비어가네요.
봄나들이 가고 싶은데... 마음은 아직 겨울 어딘가에 있습니다. ㅎㅎ
 
오늘도 집순이로 알차게 살았습니다 - 침대와 한 몸이 된 당신을 위한 일상 회복 에세이
삼각커피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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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봐도 내 얘기('집순이')였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지만, 실제 이 모든 걸 직접 겪었을 당사자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가 힘들었던 때를 난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가벼운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게 안타깝다.
 아는 동생이 걸핏하면 내게 브런치(자신의 글,사진 등의 작품을 독자에게 오픈하는 플랫폼)를 권했다. 글을 제대로 써보라는 것이었다. 자꾸 권하는 게 싫어서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브런치 글을 검수하는 담당자들이 꽤 까다롭게 통과를 시켜서 그 플랫폼이 신인작가가 데뷔하는 통로로 이용된다고 들었다. 이 작가도 그랬다. 서점 가면 쏟아져나오는 이름 모를 닉네임의 다양한 에세이들이 바로 브런치를 통해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브런치에서 이 글을 봤으면 훨씬 더 재밌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확실히 책의 무게로는 가볍긴 하다. 딱 그런 공간에서 공유되기 좋은 정도랄까. 물론 그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책이라는 보편적 매체로 접근되는 건 감사한 일이다. 살짝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가끔은 가볍게 읽을 책도 필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선 적잖이 공감도 되고 좋았다. 


모두들 누군가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외출하는 꽃 피는 봄날. 나는 시간, 날씨 개념을 모두 잊은 채 혼자 방 안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그냥‘ 있었다. 겨우 숨만 쉬고, 밥만 먹고, 잠만 가면서.

몸도 아프고 마음속도 우울한데 돈까지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일부러 웃으려고 얼굴 근육을 움직여도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정도로 상황이 절박했다.

10년 전, 5년 전 나와 비슷했던 사람들도 어느새 자리를 잡고 짝을 만나 행복을 찾아갔다. 창 너머 보이는 사람들 역시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어째서 나는 왜 10년 전 모습 그대로 멈춰버린 걸까.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뭘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과연 정답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사실은 이렇게 태어난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싫은데.
나도 누군가에게 화내고 맘껏 울고도 싶은데...
탓할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모두 다 타고 남은 자리에 그을음 같았던 날들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꿈도,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이대로 잠든 채 생이 끝나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이 엉망진창인 생을 끝내는 것이 유일한 답 아닐까? 내 죽음에 슬퍼할 사람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레 모두 잊고 자기 삶을 살아가기 바쁠 것이다.

몸이 아파서 우울한 걸까, 우울해서 무기력한 걸까.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못하니, 미래가 보이지 않아 우울한 걸까. 누워만 있다 보니 몸이 아파진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무엇도 판단할 수 없었다.

요즘 정신과를 다니는 사람이나 상담 후기가 많아져서 거부감은 많이 줄었지만, 사실 그보다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고정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돈이 계속해서 나가고, 더욱이 심리 상담을 받으면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받아야 할 텐데, 그러면 얼마가 들지 모르니 부담스러웠다. 살아가려는 의지를 다잡으면서도 돈은 아까웠나보다.

주방에 소리 없이 몰래 들어가 저녁에 먹었던 잔반을 뒤지다가 먹을 게 없으면 조용히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 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입에 들어오는 음식이 주는 쾌락은 마약처럼 굉장했다. 머릿속으로는 ‘지금 먹으면 살 진짜 많이 찔 텐데. 소화시키고 자려면 또 늦게 자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손과 입은 계속 음식을 향했다. 다 먹어버리고 나서야 자책하기 일쑤였다.

가끔 화장실에 갈 때에만 거울에 비친 꾀죄죄한 내 모습과 마주한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바라보고 또 외면하는 유일한 목격자다.

잘 보일 사람이 없으니 다 늘어나고 구멍 난 옷을 입고 기름진 머리로 하루 온종일 보냈다. 귀찮다고 이틀 이상 머리를 감지 않고 묶고만 있었다. 그 상태에서 매일 헌옷을 입거나 잠옷 차림으로 있다 보니 꾀죄죄한 모습이 내 고정 이미지가 된 것처럼 ‘그래, 이게 나야. 원래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존재인걸‘이라고 나를 단정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지만, 이런 일상이라도 잘 살아내는 것이 내 일이야!‘

오늘만이라도 오늘부터라도 못나게 느껴져 모질게 꾸짖기만 했던 나를 사랑하고 싶다.

전에는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탓하다가도 스스로를 위하는 일이라 여기며 나 자신을 모질게 채찍질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결과를 최대한 담담히 인정하고 나를 믿고 지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나라도 내 편을 들어주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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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2-20 0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만 있으면 뭘 해먹기도 꾸미기도 싫어지긴하지만.. 그런 편안함으로 치부할 수 없는 숨쉬듯 가까운 그러나 생각은 미뤄둔 치통같은 주제인듯 합니다.. 누구나 이렇지만 똑같을 수 없는..
참.. 뽕님. 브런치를 찾아가 봤어요: 진짜 뽕님 함 시작해보시는건 어떨까요?^^ 이미 쓰신글도 많아서 좀씩 다듬어 올리보시면 좋을것 같은데요ㅎ

milibbong 2021-02-24 12:37   좋아요 0 | URL
^^ 저는 글솜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이야기 소재가 많은 인생도 아니라서요 ㅎㅎ 칭찬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