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오늘의 젊은 작가 8
김엄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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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오지 않았고 두통이 생긴 토요일 새벽이다. 두통이 생긴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책 때문일 수도 있겠지. 일에 대한 고민 때문일 수도 있고, 불면증 때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새벽 4시에서 6시까지 이 답답한 책을 읽는 느낌이란... 기분이 참 묘했다. 글씨가 가슴에 와서 새겨지지 않고, 눈앞에서 읽자마자 흩어져버리는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집중되지 않는데 쓸쓸하고 암울한 느낌이 책안에 그득했다. 곰팡이, 비, 18, 쓰레기, 토사물, 등을 돌린 여자.......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공감의 느낌은 대체 왜 드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난 아무래도 E가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더불어 a도, d도, b와 c도, E에게 아무 답도 주지 않았던 여자들도.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많다. 나를 끝으로 몰아가는 일련의 시련을 겪으면서 나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너에 관한 것들, 나는 너를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남자와 여자는 뜨는 해를 보았을 것이었다. 그들의 행복을 확신한 E는,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가로등이 아직 켜지지 않았고, E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불행한 것인가. E는 그렇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떤 깨달음은 불편함이었다. E는 요즘 부쩍 그런식의 불편함을 자주 느꼈다. 나이가 들고 있군. E는 그렇게 생각했다.

E는 올해 봄부터 나이가 들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봄부터 망설임이 늘었다. 사소한 고민에 빠졌고, 별것 아닌 일에 쉽게 화가 났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할 만한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과 별개로 E는 자주 포기하고 싶었다. 울적했고,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났다. 식은땀의 원인에 대해서, 나이가 들고있기 때문이라고, E는 생각했다.

E는 자주, 더 자고 싶었다. 오랫동안 자고 일어난 뒤에도 그랬고, 잠깐 동안 자고 일어났을 때에도 그랬다.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자고 난 후에도, 더 자고 싶었다. 더는 잘 수 없을 정도로 잠을 잔 뒤에 일어나 이를 닦으면서도 더 자고 싶었다. 변기에 앉아서는 그대로 잠들고 싶었고, 가끔은 정말 변기에 앉아 그대로 잠들기도 했으나 완전한 수면이 될 수는 없었다. 궁핍함일 뿐이었다. 그의 마음은 자주, 더 자고 싶었고, 그의 마음과 다르게 몸은 때맞추어 일어났으며 더 자지 못했다.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나면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의 기대는 소박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담배 한 대를 다피웠지만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을 뿐이었다.

언젠가 E도 스물과 스물둘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때 E의 삶은, 조금 덜 지쳤을 뿐,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담배를 한 개비 피우는 동안 E는 다섯 번 씨발을 중얼거렸다.

깨달음은 곧 불편함이 되었고, 불현듯 극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을? 무엇을 어떻게 극복한단 말인가.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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