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 낯선 길에서 당신에게 부치는 72통의 엽서
변종모 지음 / 꼼지락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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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애정이 있는 작가의 책이다. 출간소식을 접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겨우 읽게 되었다. 책 취향이 달라진 이유가 있기도 한데, 이런 책은 읽고 싶은 마음이 한풀 꺾이고 나면 잘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역시 이병률 님의 글이나 책이 참 좋고, 변종모 님은 미세하게 다른 느낌이다. 상대적인 만족도가 조금 떨어지지만, 여행 에세이의 홍수 속에서 꾸준히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분이라 좋게 바라보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남은 글들을 정리하니 꽤 와닿는 말들도 많은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이런 책을 읽고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가 꼭 그랬고, 그 와중에 조금 더 내용이 있는 책들을 읽다보니 에세이를 덜 읽게 되었다. 가볍게 읽으려고 폈고, 오랜만에 감상적인 마음이 되서 좋기도 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봄이니까. 책이 사뿐히 전하는 마음이 잘 와닿는 계절이니까. 
 

구름을 보는 마음은 누구나 다 순해져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허공에 건다.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구름이 탄생하는 곳은 하늘이 아니라 정착하지 못하는 자의 마음 어디쯤이겠다.

싫어하는 장소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름다운 것처럼, 좋은 장소도 사람이 싫으면 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결국은 여행도 사람이다. 그 때문이다. 홀로 도착한 곳 어디서나 한쪽이 허전한 이유가 그렇다. 당신은 지금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으러 다니는 중이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름다운 곳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게 되는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지는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어라 요구하지 않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좋은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각자가 가지고 태어난 좋은 것들이 있게 마련이라, 세상이 아무리 거칠게 너를 굴리고 다녀도 너의 따뜻한 음성과 친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것이 너를 벗어나 누군가에겐 가장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숨을 가다듬고 나면, 삶에 치여 잠시 자신을 잊고 사는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조차 버릇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안다. 수렁처럼 질척이는 시간에도 너의 가장 온순하고 귀한 마음을 꺼내는 법을 너는 알고 있다. 너는 그런 좋은 것을 많이 가진사람이다. 너는 그런 사람이다.

모든 것은 가장 흔한 것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흔한 것을 즐기면 매일 행복 아니겠나.
여행이 그렇다고 한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 더 이상 거짓말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가슴속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 없는 문신이 있을 것이다.

크게 나아질 일 없는 삶도
크게 행복할 일 없는 일상도
불행하지 않으니 그게 어딘가.
그 어딘가는 어디에 있지 않다.
바로 지금 곁이거나
내 안에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사랑이 단 한 사람이라면 그건 내가 되어야겠다. 이제부터 그래야겠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이 되기란 온전한 내가되기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이제 나는, 나만 사랑하며 사는 일로 최선을 다해도 괜찮겠다는 위로를 한다.

밤을 견디는 것은 나를 견디고, 지나간 누군가를 견디는 것이다.그러니까 혼자 견디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잠들지 않아도 꿈처럼 따라오는 서로의 일들, 그 시간들을 꿰매는 일이다. 흐트러뜨리고 섞어놓은 것들로 차곡차곡 배낭을 꾸리는 일이다. 낯선 밤은 지나간 삶의 생각들로 채워진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밤.

문득 뒤돌아보며 웃게 되거나 자주 내 마음속을 간질이는 것. 제일 많이 생각나는 따뜻함이나 소소한 행복. 그것으로 견고한 집을 짓고 살자. 허무의 넓이도 공허의 깊이도 작은 따뜻함을 이길 수는 없다. 그것만 끌어모아도 커다란 행복이다. 굳이 떠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제법 많다.

삶이란 바깥으로 채우는 일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채워나가는 일. 내 안의 열정으로 바깥의 냉랭함을 다스리는 일. 스스로 뜨겁지 않으면 세상 그 무엇도 뜨겁지 않을 것이다.

쌓이고 쌓이면 마음이겠지. 그러다가 사랑이 되기도 하겠지. 털어내고 털어내면 내가 될 수 있겠지. 그러다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살게 되겠지. 그러기 위해 걷는 거겠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무엇도 되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오로지 내가 되기 위해서. 험한 세상에 함부로 연루되지 않도록.

사랑이 꼭 여행과 같아서, 사람도 꼭 여행과 닮아서, 저 홀로 떠났다가 끝내 저 홀로 돌아와야 하는 일, 사실, 우리는 처음부터 누구에게로 갈 마음이 아니었다. 서로를 보는 듯했지만 누구도 서로에게 온전히 건너갈 마음이 없었다. 다 안다고 생각했으나 고작 각자의 마음만 위로하고 헤어지는 일을 사랑이라 했었다. 끝까지 두 손 마주 잡고 뛰어내린 적 단 한 번도 없이 그걸 사랑이라 말했다. 길이 없는 곳까지 걸어보지도 않고서 다녀왔다고 말했다.

너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지.
그렇게 물으려다 삼킨 순간들이 모여 어금니가 되었다. 생각날 때마다 굳게 깨물었지만 이와 이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일은 단단하고 고집스럽다. 빈틈없는 간격에 너와 나의 모든 것을 넣어두고 침을 삼키는 일, 순한 마음으로 떠올렸다가 독한 마음으로 가라앉혀야 하는 너는 내게 그렇다.
겨우, 이만큼의 일로 평생을 사는 일, 결국 늙는다는 건 할 수 없고, 될 수 없는 일들을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너는,
정말 아무렇지 않을까?

아! 지랄 같은 마음이여, 내 마음이여. 부디 아무 데나 배달되어도 반송되지 않을 무난함이면 좋겠다. 내 마음 알아주기 바라지 말고, 남의 마음은 고사하고 내 마음이나 잘 다독이며 살아도 겨우 비난 면할 삶이여. 그게 뭐라고. 마음이 뭐라고. 고작 내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게 뭐라고 죽도록 매달리며 살까.

P에게

너는 나의 뼈였나.
이후로
나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온통 바닥이다.

너는 나의 뼈였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그냥,
그대가 나를 한번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정작, 묻고 싶은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그대의 얼굴을 마주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중요한 것을 맨 마지막에 꺼내는 이유로 실패를 경험한다.

삶은 발이 닿지 않는 물속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려야 겨우 하루다. 그마저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닐 때가 더욱 잦아지면 부모가 된다. 해는 졌는데 환한 밤이다. 우리가 아무리 어두운 길 위를 걷더라도 결국 한 번도 빛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끊임없이 건져 올리는 태양의 힘이라는 것을 알겠다. 이제, 해가 지는 시간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떠올리는 시간으로 알아야겠다.
그것으로 나도 누군가의 어둠을 지켜야겠다.
날마다 어머니는 해를 건져다 식탁을 차렸다.

그대의 소란스러운 마음이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같다 할지라도 잠시만 견뎌보라. 견디는 동안 면밀히 살펴보라. 소란의 덜거덕거림을 그대로 대면해보라. 과거를 만드는 유일한 일은 피하지 않는 것이다. 영원할 것 같던 그 소란도 자고 나면 이미 과거의 과거가 되어 있을 테니 피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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