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시네 - 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이수원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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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르 클레지오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소설을 별로 안 보는 나로서는 남프랑스 니스출신의 소설가를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신문에서 언뜻 본 기억이 나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필체가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되었다. 뭐라고 할까. 화려한 문체, 감성을 건드리는 단어, 누에고치가 실타레를 풀어내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주변상황과 자신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 등이다. 그렇기에 재미있다고 말하기엔 말이 너무 늘어지고 재미없다고 하기엔 내용자체가 무게가 있는 그런 책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칸 국제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위원장인 질 자콥이 저자에게 영화에 대한 단상을 책으로 써달라고 요청했다. 아마 위원장은 프랑스 대표작가인 그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칸 국제영화제 60주년이라는 의미를 좀 더 강하게 부각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 것 같다. 그런 면으로 볼 때 이 책은 일단 성공적인 것 같다.

오랜 시절, 인공적으로 빛을 만들기 시작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얀 백지위에 단순한 영상이 움직이는 초기 영화와 무성영화에서 최근 우리나라 영화까지 오랜 시간동안의 영화변천사가 저자의 개인이야기와 함께 정당하게 버물어져 진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특히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던 하얀 백지위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나뭇잎이 떨리는 장면에 감격했고, 그것을 바라보며 눈물짓고 웃음을 자아냈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보며 그리 큰 감흥을 얻지 못했다. 책에 나와 있는 영화의 대부분을 본 적이 없었고, 게다가 <발라시네>를 보고자 했을 때는 서평 보듯이 영화 하나하나에서 관람객이 얻을 수 있는 것, 이미 본 영화를 다시 한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에세이라서 그런지, 에세이라고해서 반드시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단지 영화라는 소재를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같았다.

화려한 문체를 통해 창고에 쌓아놓았던 지난 앨범을 꺼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같은 분위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전에 나와 상처투성이인 LP판을 켜 놓은 채 와인 한잔을 들고 시거를 피고 있는 프랑스의 한 농부를 떠올렸다. 이것이 저자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지난 과거의 일기를 뒤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이다.

얼마 전에 ‘책은 죽었다’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셔먼 영은 이제 출판사는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책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볼만한 책, 즉 트렌드에 맞거나 저자 자신이 유명세를 타고 있어 저자 브랜드만으로 팔릴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데 급급하다는 말을 했다. 사람들이 책을 워낙 안 읽다보니 과거처럼 좋은 책만을 갖고서는 출판사 역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상하게 이 책을 보며 셔먼 영의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문학상까지 수상한 저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떤 출판사의 기획에 의한 책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물론 글을 어떻게 쓸지는 저자의 마음이겠지만, 이 책을 보며 계속적으로 느낀 감정은 빛바랜 영화필름을 앞에 놓고 그것에 묻은 먼지를 닦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을 받은 작가들의 책이 수상과 동시에 몇 권씩 출간되는 현 출판계의 상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 속에 담겨있는, 특히 저자의 마음속에 담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잘 봤다. 그저 영화관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지나치듯 봤던 영화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그 안에 녹아있는 감독과 배우들의 노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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