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동물원에서 살아남기
리처드 스케이스 지음, 이수옥 옮김 / 황금비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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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변했을까? 십 년 전만 해도 직장인과 사업가가 확연히 구분되었던 세상이 이제는 누구나 창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인가? 게다가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왜 항상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가? 내가 그 동안 궁금했던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들이 이 책을 보며 많이 해소됐다. 우리가 현재 직면한,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세상의 변화를 하나의 방향성 속에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기술혁명으로 인한 세계화, 정보화, 고령화라는 것이다.

저자는 양비론적인 시각을 갖고 흐름을 설명한다. 우선 기업을 보자. 기업은 이제 신속하게 변하는 고객의 욕구를 쫓아가야 한다. 기업의 목적은 수익을 얻는 것이기에 이를 제공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아 이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속도를 높이기 위해 결정권을 하위단위로 보낼 수밖에 없었고, 그 결정을 받는 사람이 바로 우리 식으로 말하면 팀장이다. 즉 하나의 프로젝트를 책임진, 무소불능의 권한을 가진 소 사장인 것이다.

이와 같은 팀장, 프로젝트팀 시스템은 속도 면에서, 효율성면에서 과거의 중앙집권적인 관리방식은 도저히 쫓아올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다. 적으면 5~6명, 많아야 20여명 내외의 직원들 데리고 업무의 시작에서 끝까지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결정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은 운영구조 자체가 한계를 갖고 있다. 즉 과거처럼 기업의 전체적인 관리, 평가시스템을 약화시키고, 팀장의 권한을 강화시킴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개인 사조직처럼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개인의 평가 자체가 팀장에게 일임되다 보니 직원들은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팀장의 의사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팀장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창의력을 키우고, 시장의 변화속도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자는 시스템이 도리어 직원들의 입을 막고 팀장의 개인능력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된 것이다. 물론 그만큼 팀장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었지만, 팀장이란 직책 자체가 리더십 능력이나 팀원이 선발한 것이 아니라 바로 팀원으로서 이룬 성과에 근거한 승진이다 보니 이들에게 고도의 리더십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일은 더욱 늘어난다. 팀장에 대한 기업의 제재수단은 프로젝트 시작할 당시의 사업계획이다. 바로 기간과 인력, 자금, 지원시스템, 그리고 이를 통한 결과물을 명시한 보고서다. 팀장은 이런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고 승인받은 후, 이것을 약속대로 이행한다는 조건 하에 결과만을 보고할 뿐 크게 제재를 받지 않는다. 바로 과거 직장 생활할 때의 내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을 하다보면 항상 뭔가 부족하게 된다. 시간이, 돈이, 지원시스템이 말이다. 그 때 팀장과 팀원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단 하나. 일을 더 하는 것이다. 결국 개인의 자율성과 속도, 그리고 창의력을 높이기 위한 조직구조가 개인들로 하여금 일을 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으로 몰고 갔다. 창의력이란 자유로움과 여우 속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창의성은 저 멀리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런 조직 속에서 개인의 심정은 어떨까?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평가자체를 쥐고 있는 한두 명의 상관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 상황, 썩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보니 직원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세 가지뿐이다. 하나는 동조하고 시키는 대로 따른다. 또 하나는 불만스럽지만 참고 견딘다. 마지막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더 좋은 곳으로 간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어쩔 수없이 기업에 대한 조직원의 충성심을 잃어버리고, 평가에 대한 불만을 듣게 된다. 쉽게 말하면 공정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조직원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일에 대한 보상만을 갖고 직장생활을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미국, 영국식 기업 모델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많이 알게 되었다. 예전까지는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 기업 경영자의 가치관 부재 등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기업구조 안에 내재된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해보겠다고 한 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 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보고 누구를 나무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을 만들 것이 바로 직장인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인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뒤로 갈수록 내용은 점점 더 진지해 지고, 마지막에 나오는 공공기관과 기업과의 본질적인 차이 문제를 읽을 때는 정말 맞다고 무릎을 쳤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기업운영 시스템만이 최고의 모델이라고 공 기관을 모두 사기업처럼 운영하겠다는 정부의 발상 자체를 걱정하게 되었다. 저자 말대로 공공기관과 사기업은 목적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공공기관은 효율성이 아닌 효과성을 먼저 중시해야 한다.

기업의 생리를, 시장의 변화를, 사회의 흐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 보면 무척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책 제목과 내용이 조금 다른 것은 이해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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