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봄핀아이들 글, 최숙자 엮음 / 사분쉼표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우리집은 후암동이었다. 그러나 국민학교 4학년 때 광화문 부근의 학교로 전학을 갔다. 중학교 입시 때문이었다. 당시 전학 간 학교는 사립국민학교로 한 반에 45명, 매일 마다 시험 봐서 매주 전체 석차가 나왔고, 그 성적에 따라 아이의 등급이 결정된다. 철 없이 뛰어 놀던 한 아이가 갑자기 바뀐 환경 속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3년 동안 바보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그 아이, 즉 내 성적은 전체 45명 중에서 평균 35등. 전학가지 전 학교에서 반장도 하던 아이치고는 조금 창피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데.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런 성적의 내가 추첨 제로 바꿔 무시험으로 들어간 중학교에서 전교 석차 35등을 했다는 것이다. 총 학생 640명 중에서. 재미있지 않은가? 국민학교 3년 동안 매일 시험보고 야단맞고 혼 줄났던 보람이 있었나 보다.

그리고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다시 우열 반 시험을 치르고 우 반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2학년 때 다시 열반으로 복귀. 이를 보고 속 상한 어머니는 과외공부 집으로 끌고 가 고2말부터 과외수업 하는 집에서 먹고 자고 하며 1년 반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을 공부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새벽 1시까지 공부하고, 아침 5시에 일어나 아침 공부하고, 아침 먹고 학교 가서 하루 종일 공부하다 과외공부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 5시, 저녁 먹고 다시 공부시작. 곁눈질할 틈조차 없는 나날이었다. 당시 나의 낙이라고는 골목에서 줄담배 피우는 것과 성당 학생회에서 여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그리 힘든 줄 몰랐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또 그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었으니까. 영화도 고등학생 입장 가는 1년에 몇 편 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패스트 푸드점도 없었다. PC방이라고는 상상도 못해봤고, 90년대 고등학교 다녔다는 사람들이 즐겼던 하이텔, 유니텔 같은 것도 없었다. 고등학생이 공부이외 할 것이 없었는데 무얼 고민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들의 복장은 명품 경연 장이 되었고, 그들이 갖고 다니는 소지품은 거의 전자인간을 방불케 한다. 휴대폰, MP3, 전자계산기, 거기다 전자사전까지. 인터넷에서는 음악, 영화 다운로드도 부족해서 동,서양 구분 없이 옷 벗고 섹스 하는 포르노까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정보는 개방 시켜 놓고 아이들의 사고는 묶어 버리는 이러한 잔인한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가?

지금 고3인 내 아들. 아침 7시에 나가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온다. 눈은 항상 충혈되어있고, 말할 때마다 내신, 성적, 대학이야기다. 집에 있는 엄마, 아빠 중 누구 한명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아이가 알아서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성공의 척도가 명문 대학이고,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조건이 입은 옷의 브랜드가 되어 버린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지.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우아한 문장으로 가린 채 세상의 문제를 그대로 들어낸 의도가 무엇인지, 책을 보던 독자가 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고민하다 결국은 화가 나 책을 집어 던질 수 밖에 없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수준 높은 문장과 날카로운 아이들의 글 솜씨 속에서 “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라는 책 제목이 아이들의 울부짖음으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