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 14명의 삶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미하엘 코르트 지음, 이승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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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태생 교우라 그런지, 어릴 때부터 무척 많이 들어 본 단어다. 욕심내지 마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마라, 가난한자를 불쌍히 여겨라, 남에게 베풀어라 등등.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와는 상관 없는, 성인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단어이기도 하다. 꿈 많던 시절에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하며 살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 동안 나는 ‘비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것 같다. 할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세상,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오만가지 잡동사니가 널려 있는 세상에서 ‘비움’이란 곧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오랫동안 간직했던 삶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족쇄로 변해 버렸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느끼는 안타까움, 나보다 잘 되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 가진 것을 내 놔야 할 때 느끼는 박탈감, 남보다 앞 서 갈 수 없을 때 느끼는 절망감 등을 주는 원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심적인 괴로움이 극에 달할 때마다, 나는 ‘비움’을 생각하며 내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가질 수 없는 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느니 차라리 포기하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비움’은 순간적인 도피 수단이었기에, 어려움이 가시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또 다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발버둥쳤다.

 

가슴 깊은 곳에서는 항상 ‘버림’과 ‘무의‘가 좋다고 떠들어 대지만, 항상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오직 나만의 모습일까?

 

이 책의 저자인 미하엘 코르트는 이 책을 쓰기 5년 전에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아무 것도 되지 않은 삶, 빚더미에 억눌린 경제적 가정형편, 그 누구도 알아 주지 않은 버림받은 삶 속에서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 없었고, 그런 식으로는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히 스토아철학자들이 쓴 책을 읽게 되었고, 그 책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 때 그가 깨달은 것이 바로 ‘비움’이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의 마음을 바꿔준 말은 이것이다. “자립하라. 다른 사람에게서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스스로 서라.”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 책에 있는 문장들을 통해 정리해 보자.

 

“과거를 잊고, 현재를 무시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인생은 짧으며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일하려고 애를 쓴다. 그에게 그 사이의 시간은 짐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고통을 피하고 싶으면 “자신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만 하라. 그리고 다른 일은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할 수도 없고, 영향을 줄 수도 없다.” 그리고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네가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이 일어나기를 요구하지 마라. 일이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는 것에 만족하라. 그리하면 평안 가운데에서 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본래 자유로우며, 외부의 방해를 받거나 저지를 당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외부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며, 그것에 종속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영향과 훼방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세상을 버리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 14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재산을 버리고 조용한 시골로 은둔의 삶을 향해 떠난 사람, 관직을 버리고 조그마한 오두막에서 여생을 보낸 사람,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싫어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했던 사람,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를 지켰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비움’을 실천한 사람들이고, 대부분이 도시를 버리고, 농촌과 자연으로 돌아가 자립하며 살아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런 삶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비움’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그들의 말 속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자립’과 ‘행복’이었다. 즉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았던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안정과 평화, 그리고 삶의 여유로움이었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원한다. 그리고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 무엇인가 더 갖고 싶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것이 행복을 가져 다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폴레옹 정권시절, 2인자로서의 권력을 휘두른 탈레앙은 진정 행복했을까? 그는 자존심 대신 나폴레옹의 종이 되기를 선택했고, 그 대가로 권력을 얻은 사람이다. 나폴레옹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은 비단양말 속에 든 배설물일 뿐이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권력자의 방 앞에서 기다리지도 않고, 아첨하고 아부하는 무리에 끼지도 않고, 아양을 부리지 않고, 찬양가도 부르지 않는 사람이 이것을 모두 실천하는 사람과 어떻게 똑 같은 것을 얻을 수 있는가? 만약 이렇게 수고할 의지도 없이 권력자의 총애를 거저 받고 싶다면, 그것은 부당하고 오만한 태도다.”

 

나는 어떤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싶지 않아 얼마 전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위해 살고 싶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한다. 그러다 보니 누가 같이 일을 하자고 해도 내가 하고 싶어야만 한다. 자연히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 게 있다. 바로 과거 직장생활 할 때 받았던 적지않은 연봉과 안정된 지위에 대한 그리움이다. 남에게 매이기는 싫지만, 그래도 내가 가졌던 것은 계속 갖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리고 저자가 앞에서와 같은 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나같은 사람이 그의 주변에도 많이 있었나보다. 

 

이제 ‘비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억지로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탕을 움켜진 채 병 속에서 손을 빼지 못하는 원숭이와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인 것 같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닌 것을 갖고자 하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열심히 해 나가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라는 말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 하지만 이 말이 전혀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이 바로 이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 같다.

 

내가 버릴 것은 무엇인가? 아니 내 것이 아닌 것 중 내가 가지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다른 사람이 주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 중에서 내가 갈망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머리 한 구석에서 떠 올랐던 질문이다.

 

이제는 내 것이 아닌 것은 깨끗이 지워버리고, 공자의 말대로 그 빈공간에 내만의 꽃을 심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을 아는 자는 그것을 사랑하는 자에 미치지 못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즐기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 공자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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