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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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가장 큰 손실은 영적인 감각을 잃어버린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이 놓인 다양한 층위를 외면하면서 모든 것을 단순하게 평가하고 편견으로 매몰시켜 버리는 태도는 점점 팽배해진다. 멀찍이 떨어져서 갖은 힐난을 쏟아부으면 그만이다. 나의 성결함은 한껏 고무되고 그러므로 나에게 구원은 필요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서 있는 좌표가 폭력의 중심부로, 내가 폭력을 목도한 증인이라면, 아니, 내가 폭력의 가해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엉뚱하게도 소설을 읽으면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마땅한 징벌만 받으면 그것이 속죄이고 그뿐일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방법론으로 모든 것이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까. 나는 왜 가해자가 되었으며 가해자인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 


작가는 피해자와 가해자 너머에 놓인 폭력을 배태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부터 탐색한다. 그리고 폭력에 스며들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을 다룬다. 주인공 미쓰사부로와 다카시는 네도코로가의 형제로, 가문을 관통하는 사건에 대해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하며 상반된 삶의 태도를 보인다. 


미쓰사부로는 대학의 전임 강사이자 번역가인데, 어느 날 기괴한 모습으로 죽은 친구에게서 어떤 것도 공유하지 못하므로 괴로워하며 침잠을 꿈꾼다, 장애아가 있지만 시설에 맡기고, 알콜 중독에 빠진 아내와 메마른 결혼 생활을 이어나간다. 다카시는 미쓰사부로의 동생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전향한 후 미국으로 가서 참회 연극을 한다. 그러다가 일본으로 돌아와 형과 형수, 그리고 그를 숭배하는 청년 호시오, 모모코와 함께 가문의 고향인 시코쿠로 떠난다. 


미쓰사부로와 다카시의 가문인 네도코로가는 세번의 주요한 봉기와 연관되어 있는데, 첫째는 만엔 원년의 봉기로, 번주에게서 돈을 빌릴 수 없자 네도로코가에게 골짜기 주민들이 돈을 빌리지만 이자가 너무 높아 폭동을 일으킨다. 이 폭동의 중심에 청년 집단이 있는데 그 주동자가 증조부의 동생으로, 이 폭동의 파급력은 점차 현 전체로 확대된다. 한편 증조부는 이러한 폭거 앞에 총으로 무장하며 끝까지 맞서고,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외부의 토벌대에 의해 청년 집단은 처형된다. 그러나 증조부 동생만은 어떤 이유로 사라진다. 증조부의 동생은 청년 집단을 탈출에 숲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가 소설 중반부에는 여러 서신이 발견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일상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그려진다. 


둘째는, 주민들이 감춘 쌀을 조선인이 몰래 판매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불량 청년 집단들을 동원해 조선인 부락을 습격하는 폭동이다. 이 과정에서 희생양으로 네도코로가의 S 형이 죽게 된다.  


미쓰사부로와 다카시는 증조부의 동생과 S형에 대해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미쓰사부로는 그들을, 폭거를 일으키고도 제 목숨만 부지하기 위해 도망치거나 무의미하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무기력한 이들로 받아들이는 반면, 다카시는 더 큰 구조적인 폭력에 대항해 싸운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이들로써, 모든 폭력의 죄를 대신 진 구원자로 이해한다. 


사실과 진실의 해석에 있어서 대척점에 놓인 형제는 자연스럽게 삶의 행보와 궤적이 달라지는데, 다카시는 증조부의 동생과 S형의 의기를 이어받아 골짜기 주민들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슈펴마켓 천황에 대한 항거를 준비한다. 그는 마을의 부랑배를 모아 풋볼 팀을 조직하고, 염불춤을 통해 슈퍼마켓 천황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적개심도 하나로 엮어내는 등 탁월한 지도력을 보인다. 


다카시의 진두지휘 아래 폭동은 짐짓 성공에 이르는 것 같지만, 결국 슈퍼마켓 천황 백승기는 다시 자신의 권력을 쟁취한다. 그리고 다카시는 어느 날 밤 염불제에서 만난 아가씨를 강간하다 죽였고 자신은 살인자로서 죽어 마땅하다면서 미쓰사부로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미쓰사부로는 증거를 살펴볼 때 다카시가 아가씨를 죽인 게 아니며, 다카시가 아무리 자신의 죄를 입증하려 해도 확신에 차서 자신이 죽인 것으로 증거를 날조할 뿐이라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다카시는 장애가 있던 여동생과 근친상간을 했고, 임신중절까지 한 여동생을 자살하도록 내몰았다며 자신의 과오를 고백한 후 죽음을 선택한다. 


미쓰사부로는 다카시가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고, 강간을 서슴없이 시도하며 절대 권력에 대항해 폭거를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폭력의 지도자로 남고 싶다는 위선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고 그를 심판하는데, 슈퍼마켓 천황 백승기 무리가 발견한 곳간채의 지하에서 증조부 동생의 자취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살면서 과거를 잊고 소시민으로 살아간 것으로 믿었던 증조부의 동생은, 실제로는 지옥도가 그려진 지하에서 죽을 때까지 투쟁을 위해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쓰사부로는 그제서야 증조부 동생과 다카시에 대한 재심을 결심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지옥에 살면서 지옥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항거했으며 심판을 받아야할 당사자는,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도 무심하게 앉아 지옥을 마주하지 않았던 자신임을 자각한다. 


그는 다카시가, 중국에서 무슨 일인가 꾸미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정신 질환이 생긴 어머니, 거기에 전쟁에서 큰 형이 죽고, S형이 죽은 상황에서 장애가 있는 여동생과 함께 친척집에 맡겨졌고, 불안하고 경계하는 심리 속에서 근친상간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또 다른 폭력의 실상도 이해하게 된다. 또 다카시의 몰락 속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폭거를 지지했으면서도 금새 돌아서서 다카시와 부랑배들 앞에서 침묵한 골짜기 주민이나, 다카시의 죽음 이후에 그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풋볼 팀들을 상기하면서, 오히려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는 마침내 다카시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시설에 맡겨진 장애 아이까지 챙겨 함께 아프리카로 떠날 결심을 한다.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 탄생하는 인간은 다시 폭력을 만들어가는 환경의 인자가 되고, 폭력으로 폭력을 극복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기에, 삶은 지옥으로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가만 앉아서 매일매일의 삶 속으로 투척되는 폭력의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최선인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모순 속에 놓여 있을지라도 백기 투항은 안된다는 것, 어떻게든 살아내고 품어내 지옥을 극복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단순히 폭력을 정당화하여 가해를 옹호하고 피해를 축소하려는 것이 아닐테다. 작가는 미쓰사부로의 1인칭 관점을 고수하면서, 증조부 동생과 다카시의 치열한 투쟁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 폭력적인 방법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쓰사부로의 마지막 결단을 통해, 자신에게 가해자가 된, 동생의 아이를 가진 아내를 품고 자신의 손으로 시설에 맡긴 폭력의 피해자인 장애아를 안으면서 자신의 무기인 번역을 붙잡아 아프리카에서 통역을 해보려 한다. 폭력이 낳은 지옥 앞에서 폭력 말고 분투할 수 있는 제 3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폭력이 자꾸만 재생산되는 구조 속에서 누군가를 폭력의 화신으로 밀어넣으면서, 실상은 폭력의 이득을 착복하는 시코쿠 주민들은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희생양이 되고, 속죄양이 되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저항했던 증조부의 동생과 다카시에게 뉘라서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렇게 공동체는 늘 희생양을 필요로 하면서 자신의 유지와 증식을 위한 힘을 기른다. 조선인이라는 외부인을 만나 마을이 단합하면서 보여주는 활기는, 공동체주의의 잠재된 폭력성일 수 밖에 없는데 가시화되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적이다. 나아가 오에는 한 사회가 잉여적 존재를 만들어내 그들을 외부자의 침입을 막기 위한 희생물로 이용해왔던 구조까지 보여주고 있다 - P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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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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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한 것은 은유와 비유로 말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접적이고 명확한 개념들이 주는 사실이 결코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야 할까. 


역사가 신화가 되고, 신화가 역사가 되는 것은, 그 사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의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일견 공감하게 된다. 


신화는 단순히 다양한 신들의 개성 또는 그들의 서로 뒤엉킨 관계를 추적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치부되거나, 길고 복잡한 신들의 이름을 우아하게 부르면서 잰체하기에 좋은 소재 정도로 여겨지는 게 일반이라면, 이 책은 인간이 가진 본성, 인생에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풀어내는 수단으로서 그리스 신화를 한껏 활용한다. 


게다가 신화의 교훈을 적용하는 일차 독자를 자신으로 삼고 있다는 데서 탁월함이 돋보인다. 저자가 이 책을 쓰던 당시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훗날의 독자로서는, 비교적 빨리 찾아온 작가의 소천을 생각해보면, 그의 치열했던 중년에 대한 존경은 물론, 신화로 자신을 걸러내며 바른 삶을 갈망했던 그 의지를 반추하게 되면서, 더욱 책에 몰입하게 된다. 


저자의 꼼꼼함은 책의 차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신화의 주인공들과 그들이 드러내는 가친 및 의미를 함축하면서도 본인의 사색과 연결되는 지점을 대응시켜 소제목을 붙여놓았다. 이러한 배열 덕분에 언급되는 다양한 주인공들을 한 눈에 헤아려보는 동시에 신화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과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어떻게 다루어질런지 가늠해볼 수 있다. 


본문에서는 신화의 본래 이야기를 충실하게 다루면서도 문학, 미술, 예술가들의 삽화 등을 배치하여 깊이 있는 이해를 돕도록 구성했다. 그리고 신화경영의 모토를 내세운 책답게 마지막에는 다짐이나 소회 등을 덧붙였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고 통섭하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빚어가고, 그 결과를 교훈이나 전략으로 연결해가는, '독법'의 방식을 배운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판도라라는 인간의 마음상자를 뛰쳐나간 나쁜 것들, 조직세포 하나하나가 갈망하는 육욕의 냄새를 신화 속에서 하나씩 채집해보려 한다. 원초적 본질인 그것들, 깊숙이 숨겨둔 신들의 축복과 저주, 사람들의 얽힌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작동 원리를 탐험해보려 한다. 지금 어떠한 삶 속에 있든지 우리는 살아내야 할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 희망이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이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 우리를 낫게 하고, 우리를 타락하게 한 것이 우리를 청결하게 하고, 단명한 것이 영원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그래서 중국 선불교의 육조 혜능은 기가 막힌 명언 하나를 남겨두었다. 우리의 순수한 정신은 타락한 정신 속에 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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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처럼 생각하는 법 - 스토아주의자는 어떻게 위대한 황제가 되었을까
도널드 로버트슨 지음, 석기용 옮김 / 황금거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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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야가 접목되고, 각 분야의 관점에서 서로를 투사할 때 나타나는 생경한 시각은 그 어떤 것보다 흥미롭고 창조적이다. 


살아갈 수록 당혹스럽고 불안이 가중될 수 밖에 없기에, 어떻게 하면 평온하게 흔들림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관심 때문일까, 사회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정신의학, 심리치료에 대한 초관심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근래 들어 인지 행동 치료는 이성적인 인간의 면모를 드높여 인간의 품위를 지켜내는 데 발군의 역량을 발휘했기에 더욱 관심이 쏠린 듯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독자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면서도 스스로 실천하도록 독려하는 책을 찾기란 난망했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명상록의 저자이자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삶을 훑으면서, 스토아주의자였던 그가 어떻게 삶 속에서 정진해 왔는지 소개하고 스토아 철학의 핵심을 설명하는 한편, 거기에 대비되는 인지 행동 치료의 실제 기술을 교차시켜, 자연스럽게 저자의 의도를 강조하고 중첩시키는 데 있다. 이 작업은 매우 자연스럽게 전개되어 어느 순간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인지 치료 기술을 미리 알고 스스로에게 적용한 것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저자는 서문에서 심각한 정서적 문제에 대한 예방적 접근을 위해서는 스토아 철학과 인지 행동 치료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책 전반에 걸쳐 이 목적의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도 유익한다. 


먼저 스토아주의자의 특징으로, 이들은 인간이 성숙해질수록 자신의 이성 능력과 일체가 되며 타인과도 일체가 되기 시작한다고 믿었고, 인간의 좋은 감정을, 지혜와 덕이 있는 삶으로부터 얻는 희열과 평화, 양심, 명예, 존엄, 고결 등과 같이 악덕을 혐오하는 건강한 감정, 우정, 친절, 선의를 통해 본인과 타인을 돕고자 하는 욕망 등 세 가지로 구분하면서, 불합리한 욕망이나 바르지 않은 쾌락을 이들 좋은 감정들로 교체해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 대해 소개한다.  


스토아주의에서는 어떤 불안이나 위기가 주는 첫 인상을 원형적 정념이라고 하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으로, 수사학적 표현에 주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수사학적인 덕, 정확한 문법과 풍부한 어휘, 표현의 명료성, 필요 이상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간결성, 표현 양식의 적절성, 저속함을 회피하고 예술적 우수성을 추구하는 탁월성에 주목한다. 상황에 대한 적확한 표현은 원형적 정념에 무방비로 휩쓸리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과장된 가치판단을 회피하고 파국화가 아니라 탈파국화하기로 전환하게 하며, 마침내 생각에 대한 생각, 메타인지를 통해 인지적인 거리두기가 가능해져 '정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을 익히는 데 주요한 전략으로 마르쿠스가 실천한 글쓰기와 상상하기를 권고한다. 또한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한 일관된 삶을 위하여 스토아주의자들이 중시했던 명상을 권유한다. 이 때의 핵심이 '가치명료화'인데, 내 삶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 묘비에 어떤 비문이 써지기를 원하는가 등 소크라테스의 문답처럼 가치 기준을 성찰하도록,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함으로써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쿠스는 현명한 사람이 얻는 삶의 궁극적인 환희는 덕에 부합되는 일관된 행동으로부터 나온다고 단언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덕을 사색하고 자신의 운명을 환대함으로써 이를 성취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고통의 극복 방법에 대해서는 인지적 거리두기, 기능적 분석, 객관적 표상, 분석에 의한 가치저감, 유한성과 비영속성 사색하기, 덕을 사색하기 등을 설명한다. 또한 역경을 미리 사색하고, 정서를 습관하는 방법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분노에 대해서도 자기 탐색, 인지적 거리두기, 유예, 덕 모델링, 기능적 분석을 토대로 인간은 서로 돕는 존재라는 점, 한 사람의 성격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 아무도 완벽하지 않으며 일부러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 다른 사람의 동기를 확신할 수 없으며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 우리를 망치는 것은 스스로의 판단이며, 분노는 우리를 해롭게 하고, 자연은 이미 우리에게 분노를 대처할 수 있는 덕을 주었다는 점, 다른 사람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은 미친 생각이라는 점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은 인지 행동 치료가 단순한 기술적 실천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인식에 바탕을 둔 철학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토아 철학은 이성을 발휘하는 인간을 넘어서서, 신과 교통하는 인간으로서의 바른 삶을 지향하는 영성을 가진 인간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총체적인 인간이라는 관점 대신 단순히 기술과 방법을 투영하는 기계론적 인간에 대한 접근이 강화되는 요즘, 대담한 통찰력을 제공하므로 더욱 반갑다. 

아도는 이런 철학적 수행들을 초기 기독교의 영적 훈련들에 비교했다. 정신 요법 치료사로서 나는 그가 확인한 철학적 혹은 영적 훈련들 대부분이 현대 심리치료의 심리적 훈련들에 비견된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챘다. 실제로 스토아주의는 가장 명시적으로 치유를 지향하고 있으며,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심리 기법들로 꽉 찬 가장 큰 설비 혹은 공구통을 갖춘 고대 서양 철학의 학파였다는 것이 내 눈에는 보자마자 명백해졌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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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 - 2021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선정,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 1
김필영 지음 / 스마트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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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분야의 책을 읽다 보면, 지도나 연표처럼 계보와 분류를 한 눈에 나누어 내가 지금 어디를 읽고 있으며 무엇과 연결되고 대비되는지 알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전공자가 아닌 이상, 그리고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없는 이상 스스로 터득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진가는 발휘된다. 


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유튜브를 보면서 컨텐츠를 보게 되었는데, 광고를 통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바로 구매를 해 읽었다. 


이 책은 서문에서 일종의 철학사 지도를 제공한다. 철학의 세 분야인 진, 선, 미를 구분한 후 이성과 지성의 진에서는 존재론, 인식론, 논리학, 과학철학, 수학철학, 언어 철학을, 의지와 도덕의 선에서는 윤리학, 종교철학, 정치철학, 심리학을, 욕구와 욕망의 미에서는 미학의 분과로 분류하여 제시한다. 그리고 다시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시대적 구분과 교차하여 각각의 주요 주제와 문제 제기, 그리고 대표하는 사상가를 표로 도식화하고 있는데, 저자의 주장대로 철학과 친해지는 공부 방법의 근간이 된다. 또한 철학은 생각을 명료화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에도 공감하게 된다. 


철학의 방대한 분과를 비교하거나 대조하면서 짧지만 굵게 훑는 장점이 있다 보니, 전반적인 부분을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흥미로웠던 분야는 아무래도 생소했던 과학, 수학, 언어 철학 등이었다. 


인공지능은 생각하는 것인가, 이 논란은 앞으로 논의가 확대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튜링은 어떤 사람이 채팅에서 상대가 인간인지 인공지능인지 분별할 수 없다면 생각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존 설은 일종의 중국어 방에 중국어를 모르는 어떤 사람이 있어 계속해서 질문에 대한 정답을 책 목록에서 찾아 제시하면 방 밖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대화를 하는 것일 뿐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이에 대해 시스템 논변은 그 사람이 중국어를 몰라도 완벽한 중국어 답변이 나오면 과정이야 어떻든 그 사람, 그가 있는 방, 질문과 답이 적혀 있는 책, 중국어로 된 질문과 답 등 이 모든 것을 시스템으로 보아서 시스템 자체가 중국어를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되어 있다. 


융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통찰, 행복한 삶의 세 가지 측면, 즉 즐거운 삶, 좋은 삶, 의미 있는 삶에 대해 고찰한 셀리그만이나,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안니라 질문을 바꾸어 일의 가치를 묻는 왜 하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이후, 그렇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한다는, 사이먼 사이넥의 골든 서클의 개념도 신선했다. 


1권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2권에 대한 독서 의지도 불타게 되는데, 저자의 철학 공부 방법으로 설계된 유튜브와 이 책의 장점을 생각해볼 때,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짧은 지면에서 다루다 보니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서는 다시 저자들의 세부 저작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철학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을 살펴보는 거예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질문을 던졌으며 그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내놓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죠. 저는 이런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철학자들이 시대별로, 분과별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던졌는지 알면, 철학이 뭔지 느낄 수 있고 서양철학사의 전체 숲을 볼 수 있기 때문이예요....철학의 진정한 효용성은 ‘생각의 명료화‘입니다.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만드는 법을 알면, 살면서 마주하는 많은 문제가 생각보다 단순해져요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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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 세계사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17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클리퍼드 하퍼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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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평가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을 통해 사고나 관점의 전환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허튼 생각을 즐겨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나는, 종종 현대인의 우울은 너무 세미한 들여다보기의 습관 내지는 문화가 일부 일조하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볼  때가 있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현재'의 모습을 뒤로 하고, 잠깐만 멀리서 또는 높이서 '지금'을 조망할 수 있다면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한껏 우울하고 힘겨울 때 역사서를 읽으면 어떨까. 


이 책은 누가 뭐래도 그 허튼 생각을 뒷받침하는 굳건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줌 앤 아웃이 명확한 장점이 있다. 세세하게 시대를 구분하고, 특징을 비교하며 어떤 교훈을 끌어내는 방식의 역사서가 아니라 저자의 손녀가 저자의 서문을 인용한 대로, 학교에서 읽히는 교과서와는 전혀 다르다. 저자가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듯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이해하기 쉽다. 


그러므로 이야기 형식의 장점을 적절하게 살려낸다. 인위적으로 시기를 구분하는 대신 시대 전환의 배경과 현상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화자의 재치 있는 평가가 이야기에 첨언되어 사뭇 진지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쾌하게 전환한다. 역사는 암기로 기억해야할 학문이 아니며, 사람들이 살아가고, 싸워내고, 지켜냈던 이야기라는 점도 꽤 근사하게 인식시킨다. 


가령 왕과 교황의 다툼 이면에 놓인 토지 분배와 사제 임명의 권한 분쟁이라든지 오스트리아의 뒤늦은 제국 확장 의지와 1차 세계 대전의 발발, 독일 연방을 해체하고 제국을 세운 비스마르크의 분명한 목적 의식, 나폴레옹과 그 형제들의 지배 등 각 장마다 독서의 흥미를 유발하는 숱한 뒷 이야기가 숨어 있다. 


다만, 세계사라기 보다는 유럽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저자에게 조금만 더 풍성한 시간과 여유가 있어 한, 중, 일의 역사를 다루거나 동남아시아나 남미 역사 등을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상상도 하게 된다. 


역사가 품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는 승패, 흥망의 어떤 원리가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우연한 기회와 뜻하지 않은 영웅의 출현으로 한순간에 뒤집히기도 한다. 게다가 100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얽히고 이어져 장구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어떤 힘에 압도되는 것 같은 전율도 느끼게 된다. 돌아보면 억울하고 원통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삶은 한 데 모여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들려줄 짜릿한 이야기가 될 것인데. 

이 책은 학교에서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를 대신할 의도로 집필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학교에서 읽히는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나는 독자들이 필기를 하고 또 이름이나 연대를 외워야한다는 부담 없이 느슨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꼬치꼬치 질문을 하지 않으리란 점도 약속하겠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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