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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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가장 큰 손실은 영적인 감각을 잃어버린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이 놓인 다양한 층위를 외면하면서 모든 것을 단순하게 평가하고 편견으로 매몰시켜 버리는 태도는 점점 팽배해진다. 멀찍이 떨어져서 갖은 힐난을 쏟아부으면 그만이다. 나의 성결함은 한껏 고무되고 그러므로 나에게 구원은 필요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서 있는 좌표가 폭력의 중심부로, 내가 폭력을 목도한 증인이라면, 아니, 내가 폭력의 가해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엉뚱하게도 소설을 읽으면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마땅한 징벌만 받으면 그것이 속죄이고 그뿐일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방법론으로 모든 것이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까. 나는 왜 가해자가 되었으며 가해자인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 


작가는 피해자와 가해자 너머에 놓인 폭력을 배태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부터 탐색한다. 그리고 폭력에 스며들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을 다룬다. 주인공 미쓰사부로와 다카시는 네도코로가의 형제로, 가문을 관통하는 사건에 대해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하며 상반된 삶의 태도를 보인다. 


미쓰사부로는 대학의 전임 강사이자 번역가인데, 어느 날 기괴한 모습으로 죽은 친구에게서 어떤 것도 공유하지 못하므로 괴로워하며 침잠을 꿈꾼다, 장애아가 있지만 시설에 맡기고, 알콜 중독에 빠진 아내와 메마른 결혼 생활을 이어나간다. 다카시는 미쓰사부로의 동생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전향한 후 미국으로 가서 참회 연극을 한다. 그러다가 일본으로 돌아와 형과 형수, 그리고 그를 숭배하는 청년 호시오, 모모코와 함께 가문의 고향인 시코쿠로 떠난다. 


미쓰사부로와 다카시의 가문인 네도코로가는 세번의 주요한 봉기와 연관되어 있는데, 첫째는 만엔 원년의 봉기로, 번주에게서 돈을 빌릴 수 없자 네도로코가에게 골짜기 주민들이 돈을 빌리지만 이자가 너무 높아 폭동을 일으킨다. 이 폭동의 중심에 청년 집단이 있는데 그 주동자가 증조부의 동생으로, 이 폭동의 파급력은 점차 현 전체로 확대된다. 한편 증조부는 이러한 폭거 앞에 총으로 무장하며 끝까지 맞서고,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외부의 토벌대에 의해 청년 집단은 처형된다. 그러나 증조부 동생만은 어떤 이유로 사라진다. 증조부의 동생은 청년 집단을 탈출에 숲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가 소설 중반부에는 여러 서신이 발견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일상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그려진다. 


둘째는, 주민들이 감춘 쌀을 조선인이 몰래 판매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불량 청년 집단들을 동원해 조선인 부락을 습격하는 폭동이다. 이 과정에서 희생양으로 네도코로가의 S 형이 죽게 된다.  


미쓰사부로와 다카시는 증조부의 동생과 S형에 대해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미쓰사부로는 그들을, 폭거를 일으키고도 제 목숨만 부지하기 위해 도망치거나 무의미하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무기력한 이들로 받아들이는 반면, 다카시는 더 큰 구조적인 폭력에 대항해 싸운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이들로써, 모든 폭력의 죄를 대신 진 구원자로 이해한다. 


사실과 진실의 해석에 있어서 대척점에 놓인 형제는 자연스럽게 삶의 행보와 궤적이 달라지는데, 다카시는 증조부의 동생과 S형의 의기를 이어받아 골짜기 주민들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슈펴마켓 천황에 대한 항거를 준비한다. 그는 마을의 부랑배를 모아 풋볼 팀을 조직하고, 염불춤을 통해 슈퍼마켓 천황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적개심도 하나로 엮어내는 등 탁월한 지도력을 보인다. 


다카시의 진두지휘 아래 폭동은 짐짓 성공에 이르는 것 같지만, 결국 슈퍼마켓 천황 백승기는 다시 자신의 권력을 쟁취한다. 그리고 다카시는 어느 날 밤 염불제에서 만난 아가씨를 강간하다 죽였고 자신은 살인자로서 죽어 마땅하다면서 미쓰사부로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미쓰사부로는 증거를 살펴볼 때 다카시가 아가씨를 죽인 게 아니며, 다카시가 아무리 자신의 죄를 입증하려 해도 확신에 차서 자신이 죽인 것으로 증거를 날조할 뿐이라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다카시는 장애가 있던 여동생과 근친상간을 했고, 임신중절까지 한 여동생을 자살하도록 내몰았다며 자신의 과오를 고백한 후 죽음을 선택한다. 


미쓰사부로는 다카시가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고, 강간을 서슴없이 시도하며 절대 권력에 대항해 폭거를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폭력의 지도자로 남고 싶다는 위선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고 그를 심판하는데, 슈퍼마켓 천황 백승기 무리가 발견한 곳간채의 지하에서 증조부 동생의 자취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살면서 과거를 잊고 소시민으로 살아간 것으로 믿었던 증조부의 동생은, 실제로는 지옥도가 그려진 지하에서 죽을 때까지 투쟁을 위해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쓰사부로는 그제서야 증조부 동생과 다카시에 대한 재심을 결심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지옥에 살면서 지옥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항거했으며 심판을 받아야할 당사자는,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도 무심하게 앉아 지옥을 마주하지 않았던 자신임을 자각한다. 


그는 다카시가, 중국에서 무슨 일인가 꾸미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정신 질환이 생긴 어머니, 거기에 전쟁에서 큰 형이 죽고, S형이 죽은 상황에서 장애가 있는 여동생과 함께 친척집에 맡겨졌고, 불안하고 경계하는 심리 속에서 근친상간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또 다른 폭력의 실상도 이해하게 된다. 또 다카시의 몰락 속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폭거를 지지했으면서도 금새 돌아서서 다카시와 부랑배들 앞에서 침묵한 골짜기 주민이나, 다카시의 죽음 이후에 그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풋볼 팀들을 상기하면서, 오히려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는 마침내 다카시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시설에 맡겨진 장애 아이까지 챙겨 함께 아프리카로 떠날 결심을 한다.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 탄생하는 인간은 다시 폭력을 만들어가는 환경의 인자가 되고, 폭력으로 폭력을 극복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기에, 삶은 지옥으로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가만 앉아서 매일매일의 삶 속으로 투척되는 폭력의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최선인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모순 속에 놓여 있을지라도 백기 투항은 안된다는 것, 어떻게든 살아내고 품어내 지옥을 극복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단순히 폭력을 정당화하여 가해를 옹호하고 피해를 축소하려는 것이 아닐테다. 작가는 미쓰사부로의 1인칭 관점을 고수하면서, 증조부 동생과 다카시의 치열한 투쟁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 폭력적인 방법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쓰사부로의 마지막 결단을 통해, 자신에게 가해자가 된, 동생의 아이를 가진 아내를 품고 자신의 손으로 시설에 맡긴 폭력의 피해자인 장애아를 안으면서 자신의 무기인 번역을 붙잡아 아프리카에서 통역을 해보려 한다. 폭력이 낳은 지옥 앞에서 폭력 말고 분투할 수 있는 제 3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폭력이 자꾸만 재생산되는 구조 속에서 누군가를 폭력의 화신으로 밀어넣으면서, 실상은 폭력의 이득을 착복하는 시코쿠 주민들은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희생양이 되고, 속죄양이 되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저항했던 증조부의 동생과 다카시에게 뉘라서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렇게 공동체는 늘 희생양을 필요로 하면서 자신의 유지와 증식을 위한 힘을 기른다. 조선인이라는 외부인을 만나 마을이 단합하면서 보여주는 활기는, 공동체주의의 잠재된 폭력성일 수 밖에 없는데 가시화되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적이다. 나아가 오에는 한 사회가 잉여적 존재를 만들어내 그들을 외부자의 침입을 막기 위한 희생물로 이용해왔던 구조까지 보여주고 있다 - P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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