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처럼 생각하는 법 - 스토아주의자는 어떻게 위대한 황제가 되었을까
도널드 로버트슨 지음, 석기용 옮김 / 황금거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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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야가 접목되고, 각 분야의 관점에서 서로를 투사할 때 나타나는 생경한 시각은 그 어떤 것보다 흥미롭고 창조적이다. 


살아갈 수록 당혹스럽고 불안이 가중될 수 밖에 없기에, 어떻게 하면 평온하게 흔들림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관심 때문일까, 사회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정신의학, 심리치료에 대한 초관심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근래 들어 인지 행동 치료는 이성적인 인간의 면모를 드높여 인간의 품위를 지켜내는 데 발군의 역량을 발휘했기에 더욱 관심이 쏠린 듯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독자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면서도 스스로 실천하도록 독려하는 책을 찾기란 난망했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명상록의 저자이자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삶을 훑으면서, 스토아주의자였던 그가 어떻게 삶 속에서 정진해 왔는지 소개하고 스토아 철학의 핵심을 설명하는 한편, 거기에 대비되는 인지 행동 치료의 실제 기술을 교차시켜, 자연스럽게 저자의 의도를 강조하고 중첩시키는 데 있다. 이 작업은 매우 자연스럽게 전개되어 어느 순간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인지 치료 기술을 미리 알고 스스로에게 적용한 것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저자는 서문에서 심각한 정서적 문제에 대한 예방적 접근을 위해서는 스토아 철학과 인지 행동 치료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책 전반에 걸쳐 이 목적의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도 유익한다. 


먼저 스토아주의자의 특징으로, 이들은 인간이 성숙해질수록 자신의 이성 능력과 일체가 되며 타인과도 일체가 되기 시작한다고 믿었고, 인간의 좋은 감정을, 지혜와 덕이 있는 삶으로부터 얻는 희열과 평화, 양심, 명예, 존엄, 고결 등과 같이 악덕을 혐오하는 건강한 감정, 우정, 친절, 선의를 통해 본인과 타인을 돕고자 하는 욕망 등 세 가지로 구분하면서, 불합리한 욕망이나 바르지 않은 쾌락을 이들 좋은 감정들로 교체해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 대해 소개한다.  


스토아주의에서는 어떤 불안이나 위기가 주는 첫 인상을 원형적 정념이라고 하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으로, 수사학적 표현에 주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수사학적인 덕, 정확한 문법과 풍부한 어휘, 표현의 명료성, 필요 이상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간결성, 표현 양식의 적절성, 저속함을 회피하고 예술적 우수성을 추구하는 탁월성에 주목한다. 상황에 대한 적확한 표현은 원형적 정념에 무방비로 휩쓸리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과장된 가치판단을 회피하고 파국화가 아니라 탈파국화하기로 전환하게 하며, 마침내 생각에 대한 생각, 메타인지를 통해 인지적인 거리두기가 가능해져 '정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을 익히는 데 주요한 전략으로 마르쿠스가 실천한 글쓰기와 상상하기를 권고한다. 또한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한 일관된 삶을 위하여 스토아주의자들이 중시했던 명상을 권유한다. 이 때의 핵심이 '가치명료화'인데, 내 삶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 묘비에 어떤 비문이 써지기를 원하는가 등 소크라테스의 문답처럼 가치 기준을 성찰하도록,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함으로써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쿠스는 현명한 사람이 얻는 삶의 궁극적인 환희는 덕에 부합되는 일관된 행동으로부터 나온다고 단언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덕을 사색하고 자신의 운명을 환대함으로써 이를 성취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고통의 극복 방법에 대해서는 인지적 거리두기, 기능적 분석, 객관적 표상, 분석에 의한 가치저감, 유한성과 비영속성 사색하기, 덕을 사색하기 등을 설명한다. 또한 역경을 미리 사색하고, 정서를 습관하는 방법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분노에 대해서도 자기 탐색, 인지적 거리두기, 유예, 덕 모델링, 기능적 분석을 토대로 인간은 서로 돕는 존재라는 점, 한 사람의 성격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 아무도 완벽하지 않으며 일부러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 다른 사람의 동기를 확신할 수 없으며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 우리를 망치는 것은 스스로의 판단이며, 분노는 우리를 해롭게 하고, 자연은 이미 우리에게 분노를 대처할 수 있는 덕을 주었다는 점, 다른 사람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은 미친 생각이라는 점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은 인지 행동 치료가 단순한 기술적 실천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인식에 바탕을 둔 철학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토아 철학은 이성을 발휘하는 인간을 넘어서서, 신과 교통하는 인간으로서의 바른 삶을 지향하는 영성을 가진 인간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총체적인 인간이라는 관점 대신 단순히 기술과 방법을 투영하는 기계론적 인간에 대한 접근이 강화되는 요즘, 대담한 통찰력을 제공하므로 더욱 반갑다. 

아도는 이런 철학적 수행들을 초기 기독교의 영적 훈련들에 비교했다. 정신 요법 치료사로서 나는 그가 확인한 철학적 혹은 영적 훈련들 대부분이 현대 심리치료의 심리적 훈련들에 비견된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챘다. 실제로 스토아주의는 가장 명시적으로 치유를 지향하고 있으며,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심리 기법들로 꽉 찬 가장 큰 설비 혹은 공구통을 갖춘 고대 서양 철학의 학파였다는 것이 내 눈에는 보자마자 명백해졌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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