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리커버 특별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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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는 사실을 오롯이 증명하는 책이다. 저자가 페미니즘을 주제로 했던 테드의 강연, 잡지 등에 실린 삽화와 인터뷰를 모은 것으로 짧은 시간 안에 페미니즘이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오한 이론이나 생경한 운동의 모토를 드러내는 대신 자신이 겪은 경험과 사례를 통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고자하는 바를 명징하게 글로, 강연으로 옮기는 능력은 탁월하다.

 

나이지리아의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의 혜택, 부, 명예를 누렸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던 사례를 읽다보면, 뚯하지 않게 열등감의 발로를 페미니즘으로 둔갑시키는 일부 가짜 운동의 진의를 되돌아보게 된다.

 

일등을 했지만, 여성이라서 반장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경험, 여자 혼자서 호텔에 들어갈 때 느끼는 불편한 시선, 여성이라면 상사라도 여성적 손길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기대, 공식 회의 석상에서조차 미혼 여성의 발언권이 무시되는 것 같은 분위기, 호감가는 성격과 비젼을 갖도록 여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풍조, 여성이 팁을 주어도 동행한 남성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서비스 문화 등 너무 세밀하고 내면화되어 있어 주의를 한껏 기울이지 않으면 그것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사소한 삽화들을 통해 침잠해있던 인권적 감수성을 일깨운다.

 

<여성스러운 실수>에서는 친웨 아줌마를 통해 의사인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허구화된 이상적 여성상에 맞추어 교육받은 탓에, 남편의 외도를 보고도 화내지 못하고 우아한 여성답게(?) 눈물과 용서, 집착으로 추스르는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함으로써, 구조적이고 체계적이며 은밀하게 내면으로 침습하는 참담한 문화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페미니스트는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선언을 읽다보면, 이 책이 왜 스웨덴의 모든 16세 이상의 학생들에게 선물되었는지 납득된다.

고정관념이 우리의 사고를 얼마나 크게 제약하고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지, 특히 아프리카에 대한 생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엔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나아가 페미니즘이라는 개념 자체도 그런 고정관념들 때문에 제약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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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 왜 지금 사랑이 중요한가
주창윤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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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지침서가 아닌 사랑에 대한 성찰을 목표로 기술된 책 답게 사랑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대학 강의 교재로 사용된만큼 각 주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의 장에서는 완결성을 갖추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저자는 사랑의 발견,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메우는 사랑, 관계맺음과 연결로 대표되는 디지털 사랑의 특성, 성적 본능과 에로스의 승화, 사랑의 역사, 기억의 공유, 또 다른 나의 발견, 내 안의 타자, 사랑은 왜 아픈가, 생물학-심리학-사회학 등 사랑의 과학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같은 주제를 다루었던 철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는 물론 관련된 미술, 영화, 소설 등 예술작품을 곁들어 풍성한 읽을거리도 친절하게 제시했다.

 

사랑의 발견을 기술한 첫 장에서는 피그말리온과 미켈란젤로를 대비하면서 사랑의 의미를 탐색한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안의 존재를 상호작용을 통해 깨우는 데 반하여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상을 조각으로 새기는데,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투사적 이상을 사랑하는 것은 중독이며,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발견하는 것이 사랑의 출발임을 단언한다.

 

사람 사이를 메우는 사랑을 다룬 두번째 장에서는 기대와 회상을 통한 대화적 관계는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데, 이러한 교환이 사랑의 의미를 그려나가고, 주관적이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두 사람의 마음속에 형성되는 기대지평을 만들어감으로써 서로 공유하는 경험을 확장해나간다는 점에 주목한다.

 

디지털 사랑에서는 유목문화의 그것처럼 사랑 역시 연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과잉연결 속에서 오히려 감정의 허기를 느끼면서 사랑의 독점적 속성이 와해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썸문화를 예로 들면서 성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사랑을 추구하되, 관계의 불협화음이 감정의 소모로 인식되므로 안전한 매뉴얼을 추구하게 되고 사랑을 합리적이고 공정한 교환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한다. 현실적으로 사랑하기, 일정 거리 유지하기, 갈등의 논리 파악하기, 낭만 연출하기, 백미러로 관찰하기 등  전략적 낭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사랑모델을 제시한 슐트의 주장은 일견 공감이 된다.

 

성적 본능과 사랑을 탐색하면서 섹스와 사랑의 관계에 대해서도 접근한다. 섹스와 사랑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어떤 경험이 사랑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약화된 점을 지적하는데, 본능과 욕망의 결핍 속에서 나눈 섹스는 오히려 사랑의 상실과 피학의 행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성관계의 고유한 특성은, 함께 있으면서 자신의 욕망과 충족을 넘어서서 타인의 욕망까지 경험하는 것으로써, 성적본능과 사랑의 결합을 통해 에로스의 승화를 추구하게 된다고 본다.

 

사랑의 역사를 다룬 장에서는 먼저 소크라테스의 사랑 유형을 소개한다. 에로스(연인의 사랑), 스토르게(가족에 대한 사랑), 크세니아(이방인에 대한 사랑), 필리아(친구같은 사랑), 아가페(자기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 등 소크라테스의 사랑으로 부터 출발하여 12-13세기에는 사랑을 이상화하였으며, 계급사회의 경계 내에서 개인의 욕망을 부분적으로 표출시키는 궁정 사랑이 유행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나타난 절대적 사랑은 중세에 이상적 사랑으로 변했다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열정적 사랑, 낭만적 사랑으로 확대된다. 19세기 이후 사랑은 개인화되었으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사랑의 유토피아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다만, 사랑의 개인화는 현대에 들어서서 다시 비개인화 과정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네트워크가 강화되면서 자아의 상실감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시대 변화 속에서는 불안과 불확실성으로부터 한 인격체가 온전히 인정되는 영역은 사랑뿐이므로, 이 시대야말로 사랑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랑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이고 내 안의 타자를 영원히 간직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흥미롭다.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처럼 사랑도 한 순간에 폭발하면서 죽음을 향하는 본능인 타나토스가 작동하여 고통스럽다는 대목은 심리학적 관점을 취했다.

 

사랑의 과학을 다룬 마지막 장에서는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에서 연구하는 사랑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생물학적 사랑에서는 호르몬의 변화, 중독과 보상체계 이론에 따른 사랑 관련 연구를 다루고, 심리학적 사랑에서는 스턴버그의 삼각 이론과 존 앨런 리의 사랑의 유형에 상당 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사회학적 사랑에서는 사회구조, 경제제도, 계급, 젠더, 결혼 및 가족 제도 등과 사랑의 변화를 소개하는데, 사회 변화와 사랑의 연관성을 추적하는 한편 자본주의와 낭만적 사랑의 결합을 통해 로맨스가 상품화되는 현상에 통찰을 제공한다.

 

사랑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관점과 실용적 사례를 접목하여 사랑에 대한 다층적 이해가 가능하도록 기술한 점이 뛰어나다. 다만, 주제의 순서를 사랑의 역사나 사랑의 과학, 사랑의 철학 같은 큰 주제로부터 시작하여 사랑의 속성과 특성에 대해 다루는 총론-각론의 제시 방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독자가 사랑의 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나가는 게 훨씬 용이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사랑을 다루는 학자이며 교수의 장점을 활용하여 사람들이 현재 실제 인식하는 사랑의 속성이나 개념을 정리하는 과정을 다루는 장도 있었다면 흥미로운 작업이었겠다 싶다. 개인화에서 비개인화로 나아가는 현대인들의 특징을 감안하면 스스로 인식하는 사랑의 개념과 중요성을 드러내는 작업이야말로, 이 시대에 사랑이 정말 중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주요한 반증이 되지 않았을까.

사랑에는 원본이 없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공유되는 고유한 체험이다.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찾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일 만개의 직소퍼즐과 같다. 수많은 퍼즐 조각들은 사랑을 개별적으로 구성하며, 그것들을 맞추어갈 때 어렴풋이 사랑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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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로 읽는 내 삶의 프로파일
홍광수 지음 / 엔씨디(NCD)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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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의 4가지 기질론을 바탕으로 콜롬비아 대학 윌리암 말스톤 교수가 개발한, DISC모델을 활용해 4가지 기질을 설명하면서 성경의 구체적인 인물과 연결하여 안내한다.

 

D형은 주도형으로 담즙질이다. 가장 적은 비율의 기질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주도하는 지도자적인 성향을 띤다. 자기중심적이고 목표지향적이며 직관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재적인 성향이 강해 자칫 감성적인 부분이 약점으로 나타날 수 있다. 비정한 사람, 후회를 잘하며 생색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담즙질의 모델로 솔로몬을 손꼽고 있는데, 불굴의 의지로 성전을 짓고 웅장한 성전 낙성식을 주도하지만, 인생의 말년에는 자기의 손으로 행한 모든 일과 모든 수고가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하는 것 같다며 전도서를 쓰면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마직막에야 깨닫는다.

 

I형은 사교형으로 다혈질이다.  관계지향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화려한 언어의 마술사이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실수가 많고 미혹당하기 쉬우며 자신이나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 책임감이 부족할 우려가 있다. 다혈질의 대표적인 인물로 베드로를 소개하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예언해주시는 예수님께 요한의 미래를 묻는가 하면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집을 지어 함께 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칭찬을 받으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호언장담하고는 예수님을 부인하는데도 앞장 선다.

 

S형은 안정형으로 점액질이다. 온유하며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침착하여 경청을 잘 하고 평온하여 압박받는 분위기를 제일 싫어한다. 자기는 웃지 않지만, 뜻하지 않게 상대를 웃길 수 있다. 갈등을 싫어하고 주어진 일에 성실하므로 외길 인생이 가능하다. 다만 온화하고 타협을 잘하지만, 자기만의 고집이 있어 유아적인 이기심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 게으른 것도 점액질의 약점으로 꼽힌다. 점액질의 표상으로는 유언을 하고도 43년을 더 산 이삭을 그려내고 있다. 성실하고 다투기 싫어하며 가정의 평온을 사랑했지만, 낯익고 편안한 환경을 선호하면서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성향도 드러난다. 자신에게 친숙한 에서를 사랑하면서 결과적으로 형제의 갈등을 불러온다.

 

C형은 신중형으로 우울질이다. 매사에 분석적이며 자신이나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재능이 많고 논리적이며 신중하다. 일견 까다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높은 도덕적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완벽을 추구한다. 우울질의 대표자로 모세를 내세운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쉽게 순종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설득하려 했지만, 한번 일을 추진하면 끝까지 꼼꼼하게 성취함으로써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대업을 이룬다. 모세는 하나님을 깊게 만나는 경험을 통해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정교한 제사법, 율법 등을 기록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다.

 

각 기질의 특성, 강점과 약점을 설명하고 성경의 인물을 대비시켜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배치해 가독성을 높였다. 독자가 주로 사역자 또는 사모님 등을 대상으로 하기에 적용 부분에서는 사역이나 설교, 양육 등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다.

 

다만,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히포크라테스의 기질분석 만으로 사람을 유형화하려는 시도는 유의해야할 필요가 있다.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경험과 관찰을 통해 적용되는 히포크라테스의 기질론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특히 다양한 기질을 가진 사람의 특성을 활용하여 약속을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하는 대목을 통해서 성경 읽기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열어주는 강점도 갖추었다.

 

사랑이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서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서로가 다르다. 달라도 다르다...중략..우리는 서로 틀린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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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8.0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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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자아내는 예술적 감흥이 어떻게 치료와 상담의 매개체가 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회화의 서사, 작품의 시대적 배경, 작가의 화풍과 예술적 의지 등을 걷어내고 그림 자체가 건네는 화두를 대면할 수 있도록, 작가는 세밀한 음성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림의 힘 I>이 일상의 다양한 편린들 속에서 마주하는 감성에 집중한다면, <그림의 힘 II>는 시험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겪을 법한 다양한 상황에서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1권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은 브뢰헬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랭부르 형제의 <베리공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류트를 든 자화상>이었다.

 

브뢰헬은 바다의 한 구석에 거꾸로 처박히는 이카루스를 작게 표현한 반면 소를 몰며 쟁기질하는 사람을 대비시킨다. 치기어린 열정과 무덤덤한 성실성의 구도속에서 일상의 겸허함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랭부르 형제는 12개월의 달력에 맞추어 각각의 달에 맞는 그림을 섬세하게 그려냈는데, 한겨울에에도 쉬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집중하는 동안 우주의 시간이 흐르는 천체의 시계를 인상깊게 표현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성적 치욕감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서서 연주를 결심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포착해 스스로가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2권에서는 앙리 마티스의 <꿈>, 야코프 반 훌스동크의 <레몬, 오렌지, 석류가 있는 정물>, 토마스 비크의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마티스는 아무런 걱정 없이 평안히 잠든 여인의 모습을 통해 휴식의 기쁨을 전달하고, 훌스동크는 초록, 노란색, 빨간색의 강렬한 색감으로 집중력과 산뜻함을 선사한다. 토마스 비크는 흐드러진 방 안에서 책읽기에 집중하는 사람을 통해 몰입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정해진 주제에 따라 수십편의 명화를 보면서 저자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실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다만, 저자의 일방적인 그림 해석에 반발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자가 공감을 위해 제시한 대화를 반박하다보면,  스스로 그림의 의미를 찾거나 감성을 추적하면서 어느새 자기상담이 이루어지는 장점도 마주하게 된다.

 

2권의 초점이 '시험'으로 한정되어 있다보니, 1권보다는 주제와 그림, 그리고 대화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일관성이 부족해 매끄럽지 못한 것 같은 느낌도 받게 된다. 일부 색감이나 그림과 관련한 과학적 연구에 좀더 지면을 할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치료, 상담을 접목하는 관점에서 그림 보기를 시도한 점은 두고두고 칭찬 받아 마땅하다.

20여년 간 미술 치료 현장에서, 인생의 시험을 앞둔 사람들의 불안과 초조를 접해왔습니다.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주고 지쳤던 뇌를 자극하고, 자신감 불어넣는 등 그림이 만든 긍정적인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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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구광렬 지음 / 작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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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삶의 우연을 필연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제야 철이 드는 것이라고 일갈했었다. 그 때는 숫된 이들이 떠들어대는 어설픈 설화라며 설핏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돌아보면 생의 숱한 지점에서 마주친 우연의 삽화들은 웅신하게 점화되었다가 어느 순간 필연으로 불타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히 EBS에서 스치듯 소개된 반구대 암각화를 본 것은, <반구대>를 읽도록 한 필연의 벼리였던 것 같다. 짧은 영상에서 본 호랑이, 사슴은 물론 거북이, 물고기,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향고래, 긴수염 고래, 귀신고래 등은 한동안 열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역사 시간에 빗살무늬토기를 연신 암기하며 신석기 시대를 겨우 이해했던 나에게는, 신석기 전기 시대에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고래잡이를 하며 살았다는 것과 반구대가 인류 최초의 암각화라는 사실이 한순간에 일천한 역사의식을 부셔버릴 만큼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러므로 <반구대>를 읽는 내내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들떴다. 높이 3m, 너비 10m에 아로새겨진 암각화를 보고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상상하는 것은, 흡사 드라마의 다음 회를 기다리는 시청자라도 된 듯 조바심 나게 했다.

 

<반구대>의 이야기는 크게 세 줄기로 나누어진다. 1부에서는 가람의 으뜸  하와 그에 대한 배신을 모의하는 부하들, 큰 주먹과 그리매의 탄생의 비밀과 꽃다지를 사이에 둔 갈등, 그리고 사냥 대신 바위새김에 마음을 뺏기는 그리매의 모습이 주가 된다.

 

2부에서는 하의 죽음과 그의 뒤를 이어 으뜸으로 올라선 포악한 갈의 모습이 그려진다. 갈의 횡포를 그대로 둘 수 없는 매발톱은 솔나리의 도움을 얻어 오동또기로 을 독살하고, 큰볕터 너머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참돌을 가져온 여우주둥이가 매발톱을 돕는다. 또 꽃다지는 두려움 속에서 매발톱에 의해 마을의 큰 어미로 거듭나게 된다. 갈의 죽음 이후 새로운 으뜸으로 올라선 작, 반항하는 큰 주먹을 내쫒고, 그리매가 큰 주먹을 구하면서 둘은 다시 해우한다. 급족의 친절에 속은 가람에서는 의 무리와 꽃다지가 큰볕터로 끌려가게 되고, 이 사실을 안 그리매와 큰 주먹은 꽃다지를 구하기 위해 한 뜻으로 큰볕터를 찾아, 다 죽게 된 작까지 데리고 다시 가람으로 돌아온다.

 

3부는작이 없는 틈에 으뜸의 자리를 찬탈한 을 물리치고 큰 주먹이 으뜸으로 올라선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큰볕터가 가람을 쳐들어온 사이 큰주먹과 그리매를 필두로 큰볕터를 역공하면서 가람의 둘레는 큰볕터의 영역까지 넓혀진다.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식량을 얻기 위한 고래잡이는 더욱 치열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진다. 살만한 곳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가람에서 시작된 큰 어울림은 점점 더 커져 온누리가 되어간다. 한편 꽃다지가 큰 주먹과 같은 육손이를 낳자 그리매는 우울해하고, 꽃다지는 첫 얼음 후 알들을 묻다가 제 어미아비하고 다르게 태어난 사슴을 보며 육손이가 큰 주먹의 아이가 아님을 직감한다. 이에 사실을 알리러 그리매에게 가지만, 그리매와 함께 있는 얼레지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서면서 큰 어미의 숙명을 자각한다. 한편 그리매는 하나가 멀리 있는 하나를 바라보는 두 얼굴을 바위에 새기면서 가슴 가득 그리움을 채워가며 눈물을 흘린다.

 

처음 반구대 암각화를 소개한 영상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기억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였다. 선사시대의 벽화는 동물에게 죽느냐 아니면 죽이느냐의 싸움에서, 필사의 전사로써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당시의 열망을 담은 주술적 표현이었으리라는 기억의 편린이, 반구대의 암각화에도 부지불식간에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므로 소설에서 주인공 그리매가 사냥으로 얻을 고기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사냥으로 희생되는 죽음을 애틋해하며 바위새김에 빠져드는 대목은 생경스럽기까지 했다. 특히 꽃다지의 첫 유산과 함께 새끼 벤 암고래의 암벽 윤곽이 점점 희미해지는 장면이 오버랩 되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먹거리 확보가 최우선의 목표가 된 생존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생살을 뚫고 침습하는 사랑과 아픔을 겪어냈을 터이니 주술적 기원 뿐 아니라, 그 반추의 상을 암각에 새겨 넣었으리란 상상을 마주하자, 그간 치졸할 정도로 협소했던 내 역사 인식의 경계가 단숨에 확장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나라가 세워지기 전, 민족으로 어우러지고 한 곳에 정착해 살기 전에도, 땅을 아우르고 바다로 나아가며 사람들은 살았고, 그저 당장 배를 채울 생고기만 갈구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못지않게 웅숭깊은 생을 살았으리란 생각에 이르자, 더위에 사위던 생의 의지도 다시 꺽실해지는 것 같았다.

 

특히 눈여겨 본 부분은 사실상의 으뜸인 그리매가 권력의 중심부가 아니라 삶의 주변부로 쫒겨 났으며, 으뜸의 물리적인 자리를 되찾는 데 고군분투하는 대신 암각화를 새겨 넣는 자신의 방식대로 온 마을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어깨에 메면서 맡은 바를 감당한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그는 큰 주먹에게 내내 괴롭힘을 당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다시 살려냈고, 뛰어난 사냥꾼은 아니었지만 지략으로 큰 주먹을 도우면서 삶의 터전을 넓혀나가는 데 일조했다. 단 한번이라도 중심부에서 물러나면 낭떠러지 뒤안길로 사라지는 무한경쟁의 시대, 가지고 싶고 차지하고 싶은 단순한 욕심에 사로잡혀 정해진 자리와 위치로만 내달리는 우리를 향해, 작가는 그리매를 통해 어떤 뜻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큰 노력 없이도 튼실한 고깃덩어리를 먹고, 욕정을 마음껏 채우기 위해 방향 없이 질주하는 것이 으뜸의 삶이어야 하느냐, 어느새 하의 육성으로 되살아나 소설을 읽는 내내 또 다른 울림이 되었다.

 

분명 허구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적한 선사 시대의 생동감이 살아난 것은 활용된 배경이나 도구들이 철저한 고증에서 비롯된 까닭일 것이다. 실제 신석기 시대 전후로 기후 변화가 심했으며 예고 없는 지진 등이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진 때문에 탈출에 성공한 여우주둥이의 귀향, 이 등극한 이후 샘물에 비추인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귀신들린 듯 천지가 요동친 장면이나 꽃다지가 몸에 품었던 돌송곳, 여우주둥이가 가지고 온 참돌, 조개무지, 움집, 돌도끼, 큰볕터의 들판에서 멋대로 자라난 조나 피에 대한 묘사는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당시의 생활상을 머릿속으로 재현하는 데 싱싱한 매개체가 되었다.

 

더불어 어느 순간부터 소설 자체에서 쓰인 활자들이 백지에 새겨진 암각화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듯 이름들을 절로 되뇌었다. 하, 갈,, 탁, 단, , 꽃다지, 큰 주먹, 그리매, 매발톱, 개미취, 마타리, 솔나리, 은방울꽃, 얼레지, 여우주둥이, 들개코, 올빼미눈, 늑대귀, 가람돼지, 수리부리, 각시붓꽃 등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옛 한글과 우리말로 이루어져, 입에 착착 감기는 리듬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처음 <반구대>를 읽을 때만해도, 그동안 세계사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한반도의 선사시대를 소설로 구현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자긍심을 널리 깨우치는 계기가 되리라고 내심 확신했었다. 그러나 꽃다지, 그리매, 큰 주먹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니, 괜한 지깨비였다는 생각이 차오른다.

 

반구대 암각화가 품은 상상 속 이야기를 뒤쫓다보니, 단순히 오늘의 생존과 안녕을 바라는 편벽진 착념의 발로로 생과 역사를 이해할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생은 계속되며, 사랑과 아픔, 배신과 충성, 절교와 협력, 미움과 용서, 단념과 용기를 품은 인간 군상들의 실존과 어우러짐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생존이 아니라, 공존,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의미에서 다시 되새겨보는 역사 인식의 전환. 반구대 암각화가 단순히 한반도의 유물로 읽혀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찾는다면, 소설 <반구대>가 그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5. 독후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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