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인가 - 왜 지금 사랑이 중요한가
주창윤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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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지침서가 아닌 사랑에 대한 성찰을 목표로 기술된 책 답게 사랑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대학 강의 교재로 사용된만큼 각 주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의 장에서는 완결성을 갖추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저자는 사랑의 발견,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메우는 사랑, 관계맺음과 연결로 대표되는 디지털 사랑의 특성, 성적 본능과 에로스의 승화, 사랑의 역사, 기억의 공유, 또 다른 나의 발견, 내 안의 타자, 사랑은 왜 아픈가, 생물학-심리학-사회학 등 사랑의 과학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같은 주제를 다루었던 철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는 물론 관련된 미술, 영화, 소설 등 예술작품을 곁들어 풍성한 읽을거리도 친절하게 제시했다.

 

사랑의 발견을 기술한 첫 장에서는 피그말리온과 미켈란젤로를 대비하면서 사랑의 의미를 탐색한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안의 존재를 상호작용을 통해 깨우는 데 반하여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상을 조각으로 새기는데,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투사적 이상을 사랑하는 것은 중독이며,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발견하는 것이 사랑의 출발임을 단언한다.

 

사람 사이를 메우는 사랑을 다룬 두번째 장에서는 기대와 회상을 통한 대화적 관계는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데, 이러한 교환이 사랑의 의미를 그려나가고, 주관적이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두 사람의 마음속에 형성되는 기대지평을 만들어감으로써 서로 공유하는 경험을 확장해나간다는 점에 주목한다.

 

디지털 사랑에서는 유목문화의 그것처럼 사랑 역시 연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과잉연결 속에서 오히려 감정의 허기를 느끼면서 사랑의 독점적 속성이 와해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썸문화를 예로 들면서 성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사랑을 추구하되, 관계의 불협화음이 감정의 소모로 인식되므로 안전한 매뉴얼을 추구하게 되고 사랑을 합리적이고 공정한 교환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한다. 현실적으로 사랑하기, 일정 거리 유지하기, 갈등의 논리 파악하기, 낭만 연출하기, 백미러로 관찰하기 등  전략적 낭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사랑모델을 제시한 슐트의 주장은 일견 공감이 된다.

 

성적 본능과 사랑을 탐색하면서 섹스와 사랑의 관계에 대해서도 접근한다. 섹스와 사랑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어떤 경험이 사랑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약화된 점을 지적하는데, 본능과 욕망의 결핍 속에서 나눈 섹스는 오히려 사랑의 상실과 피학의 행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성관계의 고유한 특성은, 함께 있으면서 자신의 욕망과 충족을 넘어서서 타인의 욕망까지 경험하는 것으로써, 성적본능과 사랑의 결합을 통해 에로스의 승화를 추구하게 된다고 본다.

 

사랑의 역사를 다룬 장에서는 먼저 소크라테스의 사랑 유형을 소개한다. 에로스(연인의 사랑), 스토르게(가족에 대한 사랑), 크세니아(이방인에 대한 사랑), 필리아(친구같은 사랑), 아가페(자기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 등 소크라테스의 사랑으로 부터 출발하여 12-13세기에는 사랑을 이상화하였으며, 계급사회의 경계 내에서 개인의 욕망을 부분적으로 표출시키는 궁정 사랑이 유행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나타난 절대적 사랑은 중세에 이상적 사랑으로 변했다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열정적 사랑, 낭만적 사랑으로 확대된다. 19세기 이후 사랑은 개인화되었으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사랑의 유토피아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다만, 사랑의 개인화는 현대에 들어서서 다시 비개인화 과정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네트워크가 강화되면서 자아의 상실감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시대 변화 속에서는 불안과 불확실성으로부터 한 인격체가 온전히 인정되는 영역은 사랑뿐이므로, 이 시대야말로 사랑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랑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이고 내 안의 타자를 영원히 간직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흥미롭다.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처럼 사랑도 한 순간에 폭발하면서 죽음을 향하는 본능인 타나토스가 작동하여 고통스럽다는 대목은 심리학적 관점을 취했다.

 

사랑의 과학을 다룬 마지막 장에서는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에서 연구하는 사랑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생물학적 사랑에서는 호르몬의 변화, 중독과 보상체계 이론에 따른 사랑 관련 연구를 다루고, 심리학적 사랑에서는 스턴버그의 삼각 이론과 존 앨런 리의 사랑의 유형에 상당 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사회학적 사랑에서는 사회구조, 경제제도, 계급, 젠더, 결혼 및 가족 제도 등과 사랑의 변화를 소개하는데, 사회 변화와 사랑의 연관성을 추적하는 한편 자본주의와 낭만적 사랑의 결합을 통해 로맨스가 상품화되는 현상에 통찰을 제공한다.

 

사랑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관점과 실용적 사례를 접목하여 사랑에 대한 다층적 이해가 가능하도록 기술한 점이 뛰어나다. 다만, 주제의 순서를 사랑의 역사나 사랑의 과학, 사랑의 철학 같은 큰 주제로부터 시작하여 사랑의 속성과 특성에 대해 다루는 총론-각론의 제시 방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독자가 사랑의 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나가는 게 훨씬 용이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사랑을 다루는 학자이며 교수의 장점을 활용하여 사람들이 현재 실제 인식하는 사랑의 속성이나 개념을 정리하는 과정을 다루는 장도 있었다면 흥미로운 작업이었겠다 싶다. 개인화에서 비개인화로 나아가는 현대인들의 특징을 감안하면 스스로 인식하는 사랑의 개념과 중요성을 드러내는 작업이야말로, 이 시대에 사랑이 정말 중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주요한 반증이 되지 않았을까.

사랑에는 원본이 없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공유되는 고유한 체험이다.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찾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일 만개의 직소퍼즐과 같다. 수많은 퍼즐 조각들은 사랑을 개별적으로 구성하며, 그것들을 맞추어갈 때 어렴풋이 사랑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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