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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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시대에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갖춘 인물들이 앞다투어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분업, 협력하면서 효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했지만, 변화무쌍한 사회의 변화는 전문 영역 외에 존재하는 부분을 포괄하여 사고할 수 있는 인재를 요구하고 있고, 이제는 통합과 전인적 역량을 갖춘 종합적인 지를 추구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제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한 차원 더 높고, 깊은 사고로 견인하지 않으면 분절적 지식의 한계로 기술 발달과 인간의 역량이 괴리되면서 현재에서 제대로 정진할 수 없으리라, 막연했던 추측을 다시금 저자들로부터 옳다, 승인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보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는 수도 없이 배우고 들어왔지만,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는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생경한 독서는 이질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저자들은 먼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로 의제를 바꿀 것을 제안하면서, 느낌, 감정, 직관을 생각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느낌, 감정, 직관 등이 실제로는 생각의 도약과 통찰을 가져오며,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통찰은 말이나 숫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영역에서 호출된 감정, 이미지에서 태어난다는 역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 속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 결실을 맺은 인물들과 사례를 소개하면서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등 13가지 생각 도구를 제시하고, 일상에서 또는 교육 현장에서 훈련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다. 


창조적 성과를 창출한 인물들은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몸으로 느끼는 관찰을 통해서 느낀 느낌과 감각을 어떤 심상으로 만들어 형상화하고 곧 몇 가지 원칙을 적용해 줄여나가는 추상화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화는 자주 패턴화와 짝을 이루는데, 법칙, 구조, 운율 등을 발견하는 패턴 인식 또는 어떤 패턴을 형성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달라 보이는 사물이나 대상 속의 중요한 특질, 기능 등을 유추하게 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한 언어와 상징을 뛰어넘는 감각, 감정, 느낌 등을 생각의 도약대로 활용하는 몸으로 생각하기 과정을 거치면서 대상과 하나가 되는 데 탁월하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또한 공간적 경험을 극대화하여 평면적 차원의 생각을 보다 고차원적인 사고로 확장하는 다차원적 사고 역시 그들에게서 생각도구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대형 작품이나 결과를 만들기 전에 모형을 만들거나 작업을 놀이처럼 시행하면서 그 안의 규칙, 관습적 절차 등을 뛰어넘기도 했다는 점을 주시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다양한 생각도구들을 활용하여 자신의 발견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 제시하는 변형, 그리고 수많은 경험 방식, 생각 도구들을 종합하고 연결하여 유기적으로 모든 것이 동시 다발적으로 작동하는 통합에 다다른다고 피력한다.  


저자들은 관찰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로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감각을 동원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미술, 음악은 물론 일상에서 수집활동을 하거나 대상의 형태, 선, 색, 소리, 촉감, 냄새 등 모든 것을 머릿 속에 집어넣고 대상을 치운 후 다시 복기하는 등의 연습을 통해서 예리한 관찰력을 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형상화는 시각적 이미지로의 전환을 상상하면서 시각적 사고력을 높이고, 상상의 연주와 실제 연주를 비교하면서 청각적 형상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며, 일상에서 예술을 하듯 실제 상상하면서 행동함으로써 형상화 기술을 익힐 수 있다고 강변한다. 


추상화의 방법으로 활용되는 단순화를 위해 주제를 잡아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다양한 특성과 특징을 두루 생각한 후 가장 본질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잡아 시간 및 공간의 거기를 두고 추상의 결과를 생각해나가는 방식으로 훈련할 것을 제안한다. 


패턴 인식과 패턴 형성을 위해서 여러 가지 재료로 콜라주를 만들거나 복잡한 배열을 일부러 만들어보면서 패턴을 만들어 볼 것을 권장한다. 또 기계 부품들의 조립을 통해 새로운 패턴을 고안하는 것도 하나의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유추는 단순히 닮음이 아니라 은유로 배워야 하는 것임을 알리면서 물건을 다른 용도로 상상하게 하고 그러한 유추를 하게 된 이유와 기능적 관련성을 연계하고 나름의 이론을 정립해보는 과정을 통해 은유를 만들어가는 훈련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몸으로 생각하기는 창조적 동작, 율동, 몸으로 느끼는 것 등을 통해서 또는 운동감각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안을 함으로써, 행함을 통한 이해를 익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둔다. 


감정이입의 본질은 다른 사람이 되거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가장 완벽한 이해는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때 이루어진다고 피력하면서, 차원적 사고를 위해서는 기하학적 모형을 통해서 초입방체의 그림자를 보면서 점, 변, 각, 면의 특징을 고려하며 차원을 높여가는 연습을 해보도록 권유한다. 


모형 만들기는 미술이나 수학적 모형 뿐만 아니라 정치학, 역사학, 인류학 등을 배울 때조차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면서 각 학문을 배울 때 물리적, 기능적, 이론적인 모형으로 만들어 학습하는 방식을 권유한다.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지적 오락은 충분한 어린 아이처럼 몰입할 때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기계나 물건이 고장나면 바로 바꾸지 말고 분해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내고 그 부품들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하는 등의 놀이를 통해 본능적인 느낌, 정서, 직관, 쾌락 등을 통해 창조적인 통찰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설파한다. 


변형은 연극이나 영상물을 제작하도록 하는 것, 다양한 종류의 조리 실습, 컴퓨터 프로그래밍, 연을 만드는 것, 언어로 된 생각을 이미지화 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서 연습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통합은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는 것,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는 인식 아래 느끼는 것과 아는 것을 하나로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주지시킨다. 


저자들은 마지막으로 현재의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일갈하면서, 통합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통합 교육을 위해서 각 과목의 지식을 획득하는 것 외에 보편적인 창조의 과정을 가르치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창조 과정에 필요한 직관적이고 상상적인 기술을 가르치며 예술 과목을 과학 과목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 다학문적 교육을 수행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한 혁신을 위해 학문 분야에서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여 교과목을 통합하고, 한 과목에서 배운 것을 여러 분야에 응용하도록 하며 과목 간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허문 사람들의 경험을 창조적 본보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모든 과목에서 해당 개념들을 여러 형태로 발표하는 법을 가르치고 상상력이 풍부한 만능인을 양성하는 개척자적인 교육 방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교육의 목적은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을 길러내는 것이며, 통합 교육의 목적은 오로지 이것이라고 천명한다. 


전체적인 체계와 맥락으로 연결되거나 조직화되지 못한 파편화된 지식만으로 덧없이 되풀이되는 생각이 아니라 경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연결성과 전체성을 지향하려는 교육철학적 사유,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론과 예시는 몇 번이고 읽어도 부족할 만큼 완벽에 가깝다. 

우리에게는 박식가와 개척자가 필요하다. 그들은 상상력이 발흥하는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감각적 체험이 이성과 결합하고, 환상이 실재와 연결되며, 직관이 지성과 짝을 이루고, 가슴속의 열정이 머릿속의 열정과 연합하고, 한 과목에서 획득된 지식이 다른 모든 과목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는, 그런 때를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은 ‘전인‘을 길러내는 데 있어야 한다. 전인이야말로 축적된 인간의 경험을 한데 집약하여 전인성을 통해 한 조각 광휘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통합교육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오로지 그것 하나이다.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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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서가명강 시리즈 14
박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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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한 관심과 교류는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를 자문해보면 모른다는 사실 밖에는 답변이 없어 궁색하던 터에, 일본의 현재를 있게 한 메이지 유신부터 살펴보자는 흐릿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메이지 유신의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므로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단번에 파악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역사의 전환점에서 인물들의 서사가 어떤 매듭으로 잇달아 연결되는지 뒤따르는 과정을 통해, 역사에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 한층 더 무게를 두도록 이끈다. 


일본의 천황 중심 국가주의나 식민주의를 지향하는 팽창적 국가관, 보수적 사회상의 근간을 이룬 메이지 유신의 유산을 이끈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영웅들의 발현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두려움이면서, 동시에 당대 그들이 가진 실용성, 유연성, 객관적인 현실 판단 능력 등을 갖춘 인물들이 우리에게서는 왜 웅거하지 못했나 아쉬움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메이지 유신은 막번 체제의 혼란과 계급 간 경제적 격차, 서양과의 교류 등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에도에 수도를 두고 전국은 번으로 나뉘어 다이묘에게 자치를 허용했다. 막번 체제 속에서 상인 계급의 경제적 성장은 두드러졌지만, 농민이나 하급 무사 등은 경제적 빈곤에 처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페리호의 내항, 외세와의 불평등 조약에서 막부가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점차 신망을 잃기 시작한다. 더욱이 서양 문물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개화 사상이 퍼지기 시작했고, 사쓰마, 조슈 등의 유력 번에서는 자체적으로 군사력, 경제력을 갖추면서 합종연횡을 통해 천황 중심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게 된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이 책에서는 메이지 유신의 주요 인물로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유신을 직접 실행한 당사자는 아니지만, 메이지 유신이 실현될 수 있는 사상적 기틀을 만드는 인물로 광인으로 묘사된다. 그는 지성을 다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는 신조 아래 서양 관련 서적을 구해 필사하면서 서구 열강의 침략 의지를 짚어낸다. 또 존왕양이 사상을 중심으로, 번주에게 서양 무기와 서양식 병제의 채용, 군함 건조의 필요성 및 네덜란드로부터의 군합 구입 등을 촉구하는 등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페리 함대를 지켜본 쇼인은 해외도항까지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송하촌숙을 세워 인재들을 길러낸다. 송하촌숙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토론이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해외팽창에 대한 구상이 이루어졌다. 부국강병을 통해 함선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해외팽창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왕양이는 단순한 쇄국 정책이 아니라 항해통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단순한 양이가 아니라 천황을 중심으로 막부체제의 개혁을 꾀해야 한다는 다다른다. 그러나 쇼인은 막부의 불평등 조약에 대해 반대하고 막부 인사의 살해 및  정치 체제를 전복하려는 반란을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사형된다.


사카모토 료마는 도사번 출신으로 탈번까지 감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막번을 극복하고 천황 중심의 국가주의를 탄생시키는 데 유연성을 발휘한다. 일본의 근대적 해군을 창설하는가 하면 서로 원수였던 사쓰마와 조슈번의 동맹을 이끌어내면서 막부에 대항하는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데 발굴의 능력을 발휘했고, 나아가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권력을 반환하도록 설득하여 대정봉환을 성사시킨다. 일본의 첫 신혼여행이라고 불리는 오료와의 여행,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막부에게 끝내 암살당한 비운 등은 그의 업적과 더불어 낭만성을 더욱 고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는 서양과 근대를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전통을 껴안으려는 행보를 보여줌으로써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 인물. 그는 사쓰마번 출신으로 히사미쓰의 부하 위치였으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를 갖추고 대중의 인기를 얻었으며 권모술수보다는 성심을 앞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쓰마 조슈 동맹의 당사자로 나섰고, 대정봉환 이후에 말만 천황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여전히 도쿠가와 막부가 권력을 행사한다는 판단하에 막부제를 공식 폐지하고 천황 중심의 행정 체계를 포고하는 왕정복고를 단행한다. 이에 반발한 요시노부와의 전쟁에서 총사령관으로 나서게 되고 요시노부측 가쓰 가이슈와 차 한잔으로 회담을 하면서 에도성에 무혈입성한다. 이후 천황 중심의 신정부가 막부보다 더 서구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무라이 계급의 동요가 일어나자 그는 조선을 무력으로 정복하자는 정한론을 내세우지만, 정권 내에서 기각되면서 실권을 잃고 사쓰마로 돌아간다. 거기에서 나름의 독자적인 군대도 만들면서 권력을 유지했는데, 정부가 가고시마의 탄약고를 반출하려는 데 맞서 사무라이들이 탄약을 탈취하면서 마침내 정부군과 갈등하게 되고 이는 서남전쟁으로 이어진다. 서남전쟁에서 정부군에 패퇴하면서 결국 할복을 선택한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친구로서, 바둑을 배워서 히사미쓰에게 접근했다고 알려질만큼 전략적이고 현실적이다. 사쓰마 조슈 동맹에서 사이고와 함께 업적을 이루었고,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하는 중앙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다. 필사적인 서양 공부를 통해 산업을 장려하고 국가주도의 근대화를 지향하면서 서구에서 배워 더 위대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실천한다. 그는 사이고의 정한론을 기각하고, 서남전쟁에서 정부군의 총괄 책임자로 사이고와 적으로 마주한다. 사이고 죽음의 책임자로 각인되면서 사무라이 계급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힌 후 결국 급진파에게 암살당한다. 


메이지 유신은 주역들은 비록 암살당하거나 사형, 자결했지만, 정작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은 칼이 아니라 협상 또는 담판으로 이루어졌다. 저자가 붙인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라는 부제는 그러므로 더 의미심장하다. 사상과 행보는 달랐을지라도 냉철한 현실 인식 속에서 일본의 미래를 그린 사무라이들을 우리 입장에서 무조건 비판할 수 없는 이유, 일본을 더 많이 알아야 할 까닭, 묵직한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이제 내 조국은 일본의 식민지도 아니고 상대도 안 되는 후진국도 아니게 됐다. 한일 간에는 이제야 비로소 ‘베스트 팔렌 체제‘가 시작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의 경쟁이다. 그러려면 양국 시민들은 역사를 숨김없이 직시해야 한다. 그런데 직시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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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소통 -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근력 훈련
김주환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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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감정을 지배하고, 몸을 견인한다는 주장이 주류적인 입장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전적으로 거꾸로 거스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즉 몸도 소통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 


생각을 바꾸면 감정이나 정서를 바꿀 수 있다는 의견을 비틀어, 생각이 만들어지는 뇌과학을 고찰하면서 눈으로 보도 듣고 느끼는 것부터 출발하여 의식의 흐름을 개괄하면서 우리의 감정과 정서의 문제는 결국 내면의 소통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도발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 내면소통을 물질의 작용, 정보의 패턴, 흐름과 구조 등과 연관지어 프리스턴의 자유 에너지 원칙, 마코프 블랭킷 모델, 데이비드 봄의 내재적 질서와 내향적 펼쳐짐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기계론적인 인간이라는 설정에서 벗어나 소통하는 인간으로서의 전환, 이  도드라진 주장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읽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제대로 된 내면소통을 통해 마음 근력을 강화하는 첫번째 단계로 뇌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을 살피면서 마음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관을 소개한다. 핵심은 뇌의 편도체와 전전두피질의 연결망으로, 이들은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성장 과정에서 교육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발달하며 시소를 타듯 점차 부적인 관계를 보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마음근력은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자기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나 자신과의 소통능력인 자기조절력, 타인과의 통합 및 연결을 지향하는 타인과의 소통능력인 대인관계력, 열정과 변화를 이끄는 세상과의 소통능력인 자기동기력으로 이루어지며,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신경망은 mPFC(내측전전두피질)임을 밝힌다. 흥미로운 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 상태에서 오히려 활성화되는 디폴트모드네트워크의 핵심이 바로 이 신경망이며,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바라보는 메타인지 또는 성찰의 과정에서 디폴트모드네트워크가 더욱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미래 교육이 지향하는 창의력, 문제해결력 등과도 이 신경망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마음근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의 전제로, 유전자 결정론이 아닌 환경의 영향에 따른 후성유전학, 그리고 신경 가소성에 기반을 두고 뇌의 습관적인 작동 방식을 바꿔 뇌의 신경망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즉, 마음 근력은 뇌 신경세포의 연결망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나'는 단 하나의 정해진 실체가 아니고, 오히려 '나'라는 관념 자체가 내 몸이 지각하는 경험에 대한 스토리텔링의 경과이며, '나'라는 실체는 내면소통의 방식과 내용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언한다. 


자아 역시 일상을 경험하는 경험자아와 이를 지켜보는 근본적인 배경자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물리학과 생물학의 통합, 양자역학에 착안하여, 의식도 양자역학적 원리에 따라 발생한다는 관련 이론들을 설명하는데, 이에 따르면 우주적 의식은 짝을 이뤄 존재하는 보완성, 창조적 상호작용, 진화성, 숨겨진 전체성, 우주적 통제성, 반복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 몸의 세포가 작동하는 방식과도 일치한다고 제시한다. 


뇌의 의식은 일종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내가 실체라는 단일성, 다양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하면서 편집하는 동시성, 시간이 흘러간다고 믿는 연속성, 내 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체화성, 능동적인 추론을 하고 있으면서도 외부를 투영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수동성 등이 이에 속한다. 


저자는 뇌의 작동 방식으로 자유에너지의 원칙과 마코프 블랭킷 이론을 차용하고 있다. 뇌는 감각 자료를 추론하여 감각정보를 생산하고 통합된 환상들을 만들어내는데, 여기에서 능동적 추론이 작용한다. 이때 적용되는 자유에너지의 원칙은 모든 생명 시스템은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는 경계를 가지고 있고, 경계 밖 외적 정보와 경계 안 내적 모델 간의 괴리가 생길 때 예측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내적 모델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예측 오류를 줄이려는 내재적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이 때 최고 상단에 자의식이 위치한다는 것이다.  


마코프 블랭킷 이론은 마코프 체인의 개념이 발전한 것으로, 마코프 체인은 하나의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그 이전의 사건에 영향을 받을 경우 두 사건은 마코프 체인으로 묶여 있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여러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얽혀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네트워크를 이룰 때 마코프 블랭킷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데, 하나의 특정 사건 또는 어떤 변수 A가 있을 때, 그 A에 직접 영향을 주거나 A가 영향을 주는 변수들을 묶어서 A의 마코프 블랭킷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코프 블랭킷의 A 외 모든 변수는 A와 조건부 독립이 된다. 이를 생명체에 적용하면, 생명체는 내부 상태, 외부상태, 감각상태, 행위상태의 네 가지 상태를 갖게 되는데, 이중 감각상태 및 행위상태가 내부상태의 마코프 블랭킷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뇌의 내부와 외부 환경 사이에는 마코프 블랭킷 역할을 하는 몸이 있다. 그러므로 내 몸의 감각을 느끼고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보는 소매틱 운동은 단순히 신체활동이 아니라 내부 상태와 외부 상태를 연결하고 재조정하는 능동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도파민의 역할에 대해서도 단순히 보상의 체계 속에서 다루기 보다는,도파민이 예측적 조절 및 예측 오류의 최소화 과정에서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 아래, 무엇이든 처음 마주한 것처럼 마음이 작동될 수만 있다면 도파민 회로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마음 습관이 형성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저자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넘어서서 양자역학이 가진 불연속성, 비결정성, 비국지성을 포용하면서 데이비드 봄의 내재적 질서에 집중한다. 봄은 세계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주의 모든 정보는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접히고 얽히고 내포되어 있으면서, 이 서로 접힌 상태의 구조들이 계속해서 펼쳐지므로 현상의 세계로 나타난다고 본다. 모든 것이 전체 안에, 그리고 전체는 모든 것 안에 있다는 주장으로 대변되는데, 예를 들면 홀로그래피 같다는 것이다. 즉 작은 조각 하나에도 전체의 이미지가 담겨 있고, 흐릿한 개개의 정보가 모여 전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퍼스는 기호 현상을 주창하면서 기호는 해석하는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의미가 생성되는 과정이라고 보는데, 봄과 퍼스의 이론을 참고하여 저자는 내면소통의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양자역학이 물질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몸에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자는 고정된 입자가 아니고 내부의 구체적인 방향을 향해 붕괴되어 가면서 동시에 바깥으로 확장되는 과정에 있는데 이 과정은 양자잠재력에 의해 가이드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이 일정한 행위를 하는 능동적 실체로써 작용한다는 것이다.  배가 레이더 신호로 방향을 결정하여 나아가듯이, 실제 움직임은 엔진의 힘과 파도 및 바람의 힘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레이더가 배의 진행 방향을 형성시키는 과정인 것처럼, 정보는 형성시키는 과정의 잠재력이라는 것. 나아가 의식은 인과 관계가 아니라 생성 질서, 즉 스스로 펼쳐지면서 재조직해가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이론적 고찰에 치중한다면, 2부격인 책의 후반부에서는 내면소통 명상의 중요성을 일깨우는데, 명상은 나의 생각, 감정, 감각 움직임 등을 지금 여기에서 실시간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며 배경자아가 경험 자아의 다양한 측명을 알아차리는 것으로써 다양한 명상의 개념, 종류와 방법 등을 제시한다. 


이 책의 탁월한 점은 뇌과학 등의 환원주의를 경계하는 것인데, 내면소통을 위한 마음근력의 향상을 위한 기본 방향 설정에 도움을 받는 것일 뿐, 그 이론의 정확성과 효과성은 뇌과학자의 몫으로 철저히 남겨둔다는 점을 분명히 언급한 부분이다. 


다만 체계적인 이론과 실천적인 교재로써의 통합성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뇌신경망을 바꾸어나가야 하는 이유 나 관련 이론 등이 실제적인 효용성에 맞추어져 있어서, 뇌과학, 철학, 양자역학 등 이론적 깊이가 상당히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음에도, 관련 이론에 대한 심도있는 학습과 탐구는 철저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는 데는 넘치고도 남는다. 

마음근력 훈련을 통해 비인지능력과 성취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기본 역량을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나아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에 있어서 매우 새로운 관점이다. 앞으로의 교육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자기 자신이 먼저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과 그러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야만 한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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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 데리다 들뢰즈 지식인마을 33
박영욱 지음 / 김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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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에 대한 부정, 진부한 것에 대한 도전, 획일화된 감성에 대한 반성. 책 표지의 도발적인 문구는 일자포수라도 된 듯 들뢰즈와 데리다에 대한 호기심을 삽시간에 심장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에 대해 얼핏 주워들은 내용은 있었지만, 제대로 정리된 내용을 알았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기본 지식이 일천하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간만에 성하고 알찬 독서를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책 서두에서 저자는 피카소, 마네, 폴 세잔, 루치노 라우라나와 야코프 판 라이스달 등 회화의 발전과 비교를 통해 유일하며 변함없는 객관적 진리라는 표상을 근거로 세계를 개념화하여 이해하는 방식은 완전한가, 이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들뢰즈와 데리다의 철학이 출발했다는 점을 설명한다. 


먼저 들뢰즈는 칸트가 제시한 도식의 유용성을 포착하여 도식화를 통해 개념이 만들어지고 진부함이 일상화되는 실례를 파악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차이 자체를 가지고 있으며 이 차이를 드러내고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동일성의 억업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언한다. 


반면 데리다는 차이의 개념과 유사하지만 자신의 철학을 대표하는 차연을 내세운다. 차연은 두 가지 관점에서 고안한 것인데, 첫째 말과 문자의 위계를 파고드는 데서 시작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서양 철학은 말을 숭상하면서 문자를 폄하했는데, 말은 말을 하는 사람의 현전을 드러내지만 문자는 독자가 읽는 시점에서 볼 때 글쓴이의 부재를 전제하므로 항상 왜곡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문자가 말을 보조하고 대신하는 대리보충에 불과하여, 말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 소크로테스와 플라톤이 죽고 없는 현재 그들의 생각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남긴 기록으로, 사람들은 텍스트를 믿고 신뢰한다는 것이다. 글은 익명성을 통해 속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지만, 말은 오히려 은폐할 수 있으므로 문자를 통해서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리보충의 대리보충을 주장한다. 발음으로 들리는 말로서는 구분되지 않는 것들도 문자의 음절을 바꾸는 것으로 새로운 의미를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차이는 항상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처음부터 차이가 결정되어 있지 않고, 상황과 맥락 속에서 차이가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가령 '의협심'이라는 단어 하나로 어떤 인물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며, 어느 순간에는 '의협심'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다른 경우에는 '의협심'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차이는 진행되는 것으로 완전한 차이 또는 완전한 의미는 영원히 완결될 수 없다고 인식하면서, 차이는 공간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사과라는 기호가 사과라는 개념으로 연결되면 그 체계 안에서 기호의 변경은 절대 있을 수 없고, 시간의 변화 가능성도 배제된다는 것. 그러나 그의 사유를 확장하면 존재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며 절대 선과 절대 악의 개념 등도 모호해질 수 밖에 없다. 다만 기호는 상황적 전제 안에서 일시적으로 관찰되고 규정되는 것이기에 훨씬 많은 자유와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저자는 칸트의 개념과 이념에 빗대어 들뢰즈를 설명하면서, 사물 본래의 모습인 물자체는 우리의 지각이나 사고 능력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듯이, 가령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도'는 '도' 자체가 지닌 무한한 잠재적 소리 중 하나를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것이기에 잠재적인 수많은 소리들은 실재하며 다만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설한다.  또한 들뢰즈는 사람의 시각 구조를 닮은 카메라는 개념이나 관습 등에서 자유롭기에 우리의 진부한 사고를 소스치어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다. 


데리다는 선을 예로 들어 선은 선일 뿐인데, 관습에 의해서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경계 자체가 관습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면 안과 밖이 실재하며 구분 가능한 것인지 묻는다. 그러면서 이 틀로부터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파고든다. 


예술작품이 에르곤이라면 액자 틀처럼 예술작품의 주변적인 것이 파레르곤으로, 에르곤과 파레르곤은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예술작품 자체가 틀 안의 실체가 아니며 안과 밖을 구분하는 틀 자체라고 인식한다. 칸트가 주장하는 무관심성, 보편성, 합목적성, 필연성 중 합목적성에 주목하면서 목적없는 합목적성,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로서의 미에 집중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액자영화에 주목하면서 실제 공간과 영화 속 영화가 서로 반영하는 구조를 통해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공허한 것일 수 있으며 이것이 기호의 특성을 나타낸다고 인식한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변화되는 의미를 담지 않는, 그러므로 무의미한 기호에의 천착, 이것이 현대 미술 작품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세상은 무의미의 찌꺼기가 가득하며 의미와 무의미가 중첩되고, 무의미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편 들뢰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기계로 규정하는데, 다만 기계론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을 구분한다. 그는 기계론적인 것은 미리 설계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형성된 체계이며, 기계적인 것은 엄밀한 체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어떤 존재든 나름대로의 체계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절단에 근거하여 단절과 흐름의 연결을 통해 기관이 만들어지며 이를 근거로 기계는 단절과 연결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제라고 소개한다. 


들뢰즈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의 단일한 체계로 규정할 수 없으며, 이러한 다양체는 어떤 다른 것과 관계를 맺어야만 체계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기계는 다른 기계와 접속을 하는데, 이러한 통접은, 연결이 곧 단절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 다른 기능을 억제하는 분리의 과정, 즉 이접이 이루어지는 데 통접이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이접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설명한다. 이를 종합하면 기계는 연접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체계로써 이해된다.


그는  기계론적이고 개념적인 체계를 수목, 기계적이고 이념적인 체계를 리좀이라고 명명하면서 강제적이고 경직된 구분 체계는 수목, 일탈을 허용하는 유연한 절단의 체계는 리좀으로 구분하고, 엄격한 체계로서의 존재를 강제하는 사상들에 반기를 든다. 


제한된 지면 안에서 데리다와 들뢰즈의 사상을 보다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하여 다양한 철학자를 배치하고, 그들의 철학과 비교하면서 전개해 가는 과정이 탁월하다. 다만, 물리적인 한계 탓에 어느 정도 선행 지식이 있어야 비교나 계승, 반박의 과정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다양성,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전위, 고정과 단일에서의 퇴영 및 역동과 변화의 진취 등을 고양하는 철학으로서의 들뢰즈, 데리다가 왜 다양한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는지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어떤 면에서 구별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과 나와의 차이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번 자신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차이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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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전원교향곡 / 배덕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6
앙드레 지드 지음, 동성식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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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숨은 묘의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교리와 강령을 통해 성경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 정립되고, 어리석음이 지혜로 교의된다고 배우고 있지만, 분명 이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성경의 숱한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된다. 수많은 지류가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줄기로 통합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해설에 따르면 기독교 배경 하에 자란 지드는 신화를 읽듯 성경을 읽었다고 하는데, 그는 천재적 감수성과 꼼꼼한 성격, 그리고 끊임없는 궁리로, 자신이 마주한 삶의 일단들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풀어낸다. 때로는 너무 밀착된 나머지 엉뚱하게도 신에게로의 포섭을 내세우며 삶을 비극으로 몰아넣는가 하면, 냉담하고 범연해져 둘레 밖 세상을 무조건 동경하기도 한다. 마치 돋보기로 번득대며 생을 들여다보다 날카로운 반사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모티브로 성경 구절과 엮어 소설로 써 내려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위험천만한 독단을 발휘하면서도 누구보다 신앙적 고뇌를 보여준 까닭에, 소설 읽기의 재미는 독자에게 쏠쏠한 선물이 된다. 


<좁은 문>운 외사촌 알리사와 사랑에 빠진 소년의 성장기로 신에 대한 사랑에 과몰입된 알리사의 신앙에 대해 다룬다. 주인공 제롬은, 어머니의 외도를 알고도 침묵하며 슬퍼하는 알리사를 사랑하게 되고, 알리사 역시 제롬을 사랑하지만, 결혼을 향해 가는 길은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다. 알리사는 동생 쥘리에트가 제롬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일부러 제롬과의 관계를 멀리하기도 하고, 자신과 제롬이 결혼하면 앞길이 창창한 제롬을 막는 것이 아닐까 염려한다.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야 할 제롬을 자신이 방해하는 것 같다는 막연한 심정 탓에, 제롬을 향한 마음을 막아내다 죽어간다. 외도에 대한 배척과 성결에 대한 집착,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동시에 양립 불가능하다는 도착된 고집은 알리사를 죽음으로 이끄는데, 소설가는 치우친 신앙의 모순을 드러낸다. 


<전원교향곡>은 늙은 목사와 그가 거둬들인 눈 먼 소녀의 사랑을 통해 "눈을 뜬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주인공은 어느 날 죽어가는 노파의 임종 예배를 갔다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눈 먼 소녀 제르튀르드를 집으로 데려온다. 빈한한 가정 형편이었지만,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제르튀르드를 돌보기 시작한 그는, 그녀의 영특함과 성실함 등을 보면서 점점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부성애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아들과 제르튀르드가 가까워진 것을 보면서 자신 안의 질투를 대면하게 되고, 제르튀르드 역시 아들이 아니라 목사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목사의 친구에게 눈 수술을 받고 눈을 뜨게 된 제르튀르드는 눈을 뜨고서야 자신은 목사를 사랑한 것이 아니고 그의 아들을 사랑했다고 단언하며 절규한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그녀와 그의 아들이 카톨릭으로 개종한 것인데, 성경 말씀을 각각의 목사님이 자율적으로 전하는 개신교와 달리 모든 성당에서 동일한 말씀으로 선포되는 카톨릭교의 특성과 맞물려, 주인공들에 대한 지드의 관점을 엿본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배덕자>는 지적이며 정적인 삶의 굴레에 살던 미셸의 이야기다. 풍족한 명문가의 엘리트로 살던 미셸은 오직 죽음이 임박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일념으로 마르슬린과 결혼한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마침 떠난 신혼여행에서 병이 도진다. 식단을 바꾸고 산책을 시키는 등 마르슬린의 극진한 간호 속에서 그는 점점 기력을 회복하게 되고 여행지를 바꾸어가면서 염소를 모는 소년들, 생경한 아랍인들을 만나게 되고 육체의 단련에 힘을 쏟는다. 산책의 범위가 점점 확장되면서 마침내 남몰래 바위에 올라가 처음으로 벌거숭이가 되어보기도 하고, 수염을 밀며 머리를 기르면서 점점 '새로운 존재'로 변모해간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건강이 회복된 그는 아버지의 유산이 있는 라모리니에르에 도착해 농장 운영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샌님같던 그는 차차 농장의 운영에 대해 배우고 하인과 소작인을 다루는 데 익숙해진다. 특히 늙은 마름 보카쥬의 아들 샤를과 교제하면서 그의 젊음과 생기를 흠모한다. 강의와 저서 출간을 위해 파리로 돌아온 미셸은 마르슬린과 함께 파리의 고급 주택지에 자리를 잡고 사교 모임에 집중한다. 미셸은 자신의 전문 분야인 고고학과 언어학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기쁨을 추구하지만 사전을 펼치는 것 이상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를 구할 수 없다며 실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메날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미셸의 가위를 훔쳤던 목티르와의 일화를 꺼내면서 목티르는 자신의 절도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 미셸에 대해 알아차리고 있었다면서 목티르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목티르가 미셸을 쥐고 있었던 것이라면서, 미셸은 이제까지 신이 숭상하던 것, 소유의식이 없다고 칭찬한다. 당혹해하는 미셸과 이후 다시 만난 메날크는 사람들이 삶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흉내만 내고 있다고 단언하면서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남을 모방하면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쏟아 붓는다. 메날크는 사람들은 소유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소유당하고 있으며 모든 기쁨은 날마다 썩어가는 사막의 만나와 같은 것이라면서 떠나간다.


 메날크의 파렴치한 기쁨에 대한 증오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났던 미셸은 그제서야 아이를 임신하고 시름시름 앓던 마르슬린과의 현실을 급작스레 조우한다. 그는 마르슬린의 회복을 위해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곳곳에서 야성의 기쁨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르슬린이 조금씩 회복하자 계절과 고장의 특성에 심취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열과 빛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 여행지를 옮겼고, 마침내 목티르를 만났던 비스크라로 가게 된다. 거기에서 감옥에 다녀온 목티르를 만난 미셸은 마르슬린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투구르에 함께 가자며 약속을 한다. 마침내 투구르에 도착한 미셸은 마르슬린의 상태를 염려하면서도 한참을 무어인 카페에 머무르다 호텔로 돌아가고 마침내 마르슬린은 사망한다. 미셸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지금은 네가 허리띠를 두르고 원하는 곳으로 가려니와 늙어서는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말씀에 천착하면서, 자신이 가졌던 확고하고 고정된 사고가 진정한 인간을 만드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항상 푸른 하늘만큼 그 사고를 꺾어버리는 것은 없다고 도파한다. 


지성에 갇힌 굴레를 넘어서서 새로운 존재로 변모했던 미셸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지던 거짓된 삶을 팽하고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겠다며 거리와 여행지를 헤매지만 결국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인 아이와 마르슬린을 잃게 된다. 변함 없이 푸른 하늘-어쩌면 신의 모습일런지 모른다- 아래서 결국 할 말을 잃어버린 미셸의 이야기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가 대한 의문을 던진다. 


지드의 화두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을 전제로 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지드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죄인이라는 존재적 위치에서 출발하지 않는, 삶의 의미에 대한 치열한 구색이 어떤 배리의 현상으로 이어지는지 들추어 내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에 문제를 드라마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내 주인공의 영혼 속에서 연출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기이한 모험 속에 가둬 버리기에는 너무나 일반적인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내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내 작품보다 먼저 존재하고 있었다. 미셸이 이기든 지든, 그 문제는 계속 존재할 것이며 작가는 승리도 패배도 기정사실로 제시하지는 않는다...후략 <앙드레 지드>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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