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산 이야기 - 불황기 10배 성장,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 1위, 신화가 된 회사
김성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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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간에 들은 기억이 나, 주저없이 집어 들었다. 지역의 작은 구멍가게 같은 회사에서 모터 분야 세계 1인자가 되기까지, 30여개가 넘는 적자 회사 합병후 1년여 만에 모두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키기까지, 독특한 경영 방식을 보여준 일본전산 나가모리 회장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하라는 모토가 가슴에 와닿는다. 큰 소리로 말하기, 밥 빨리 먹기, 화장실 청소하기, 오래 달리기로 뽑은 "깡"직원들이 써내려간 성공신화를 읽고 나니, 영양제라도 맞은 느낌이다. 


나가모리 회장의 말대로, 스스로 불은 못 붙이더라도 불 곁에 서서 함께 타오르는 사람이라도 되어야한다. 안된다는 보고서를 수시로 쓰면서, 나태를 여유로 포장하면서, 수시로 불을  꺼트리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빈둥거리면서 일말의 반성조차 없는 습성을 일갈한다. 거친 소리들이 반갑다. 


"한 가지 일에 실패하고 문책당해서 회사를 그만두면,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똑같은 패턴으로 그만두게 된다. 한 번 정복하지 않은 실패는 또다시 엄습하게 되어 있다. 이 회사만 아니면, 이 상사만 벗어나면, 뭔가 새로운 환경이 주어지면 잘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라. 실패와 포기의 패턴은 마치 유전자 코드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에 세팅된다. 그 세팅을 한번이라도 어그러뜨려서
뒤집어 놓아야 동일한 패턴을 다시 반복하지 않게 된다. 그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진보적 반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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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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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로 비껴가는 풍경을 배경 삼아 지성인의 독백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온전히 혼자서만
누릴 수 있는 유쾌한 경험이 된다. 


재일 한국인이란 경계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매순간 검열하듯 고민하며 살아온
학자의 글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유연하고 푸근하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철학적 사유를 자신의 삶과 생각에 접목시킨 후 씹어보고
음미하는 과정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여정 속에 깊은 호흡으로 참예할 수 밖에
없다.


자유와 독립, 믿음을 고민하면서, 어머니를 떠올리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모든 제도와 이념과 이데올로기와 풍습과 가치관이 이미 정형화되어 있어, 단순하게 받아들이며 살기만 해도, 어느 정도 행복하다라고 느낄 수 있었던 시대에 대한 부러움. 인간의 고뇌는 결국 동일선상에 놓이게 되는가 보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인간 군상들 중 누가 가장 살아가는 데 힘겨울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평범보다 약간 비범한 사람들이 가장 힘들지 않을까..이도 저도 아닌 그들은 삶에서 NO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면서도, 막상 NO가 가져올 파장을 책임질 능력과 권한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그 능력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한껏 갈아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인데도 무기력하게 한 숨만 짓고 있다는 것. 내 고민의 결론은 적어도 그 때는 명쾌했다. 

어째서 강상중 교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이 하릴없는 고민이 떠올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느림의 미학으로 살아가는 저자의 질의는  앞으로도 두고 두고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돈이 세계의 전부인가/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청춘은 아름다운가/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늙어서 '최강'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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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 양장본
앤서니 기든스 지음, 한상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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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길>은 10여년 전, 메일 친구였던 그 분이 적극 추천하셨던 책이었다.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의 병폐와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려는 서구의 노력을 읽어보는 것은, 간호학도 이전에 사회적, 정치적 시민으로써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고언과 함께. 

변명을 하자면, 그 조언을 듣고도 1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약속을 이행하게 된 내 게으름이, 뜻하지 않은 행운을 잡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기든스가 제시했던 사회 변화의 징후들을 예견이 아니라 검증하며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므로.2009년 대한민국. 신자유주의 정책이 더 강화되고 있는 지금, <제 3의 길>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억하기 위하여, 두서 없이 적는다.
 

1. 신자유주의가 가진 태생적 모순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합리적인 개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비롯되는 시장만능주의, 그리고 합리적 개인을 키워낸다고 믿는 전통과  도덕에 대한 악착같은 집착. 서로 상반된 이 두 줄기가 신자유주의의 물살을 내부에서 가르며, 두터운 마찰로 맞부딪혀   질주를 소강시킬 힘이 되리라는 통찰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었다.  

2. 생활 전반의 민주화에서 시민 사회의 발전과 사회민주주의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교육의 역할을 읽고 나니, 그 날 그 분이 우리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비젼이 기든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아니라 근로자의 근무 시간을 유연화하여 자기계발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학교 밖 교육 제도를 공고히 하여, 수많은 전문가들이 다시 전문가를 양산할 수 있도록, 학위 제도가 아니라, 전문가 창출 교육의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비장했던 주장.그것과 일맥상통한다.  기든스가 제시한, 근무 이외에 봉사나 사회 참여를 표준화하여,  의료비나 교육비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은 참신했다. 
 

3. 성찰적 현대화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 나아가는 숱한 지점의 폭력에 관심을 갖는 학자의 세심함에 숙연해진다. 근대적 현대화가 갖는 과격성을 배척하고, 폭력의 위험성을 견제해야하면서 성찰적 현대화로 진화해나가기를 바라는 학자의 바램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나, 너, 우리 모두의 소망이 되어야할 것.
 

제 3의 길은 탐색하며 다듬어나가야할  지향점이며, 그 역시 불완전하리라는 솔직한 고백이어서, 담백하다.시대의 불확실성을 참고 견뎌낼 수 있는 의식있는 시민을 길러낼 수 있는가, 이것이 제 3의 길로 나아가는 데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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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것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지식여행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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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생각보다 대방역에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 동안 역내 중고 서점을 기웃거렸다. 여자라는 것, 제목이 신기롭고 향긋했다.단 몇 천원으로 좋은 책을 골랐다는 자긍심도 한 몫해서 내내 기분이 좋았었다.

뜨거웠던 스무 해, 서른 다섯을 넘기면, 여자의 여성됨을 온전히 덧입을 수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생물학적 여성은 서른 다섯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한다는 데, 서른 다섯이 되면 애벌레가 탈피하여 날개를 갖듯, 이상처럼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날 것 같은 허튼 상상이 뇌리로 쏟아져내렸다. 
 

니나 부슈만처럼 거침없이 대담하게 삶을 가로지르는 존재로서의 여자됨을 관통하지 않고, 통상의 여성됨을 거론하는 것은, 못된 겁박이거나 질시일뿐이라고 단정지었다.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내 삶에  만족하려면, 우리 사회에서는 적어도 서른 다섯은 되어야하리란 사유. 동시에 생물학적인 여자가 죽어가는 그 자리에서만이 존재로서의 여자가 부활하여 싱싱하게 자라
날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견고했졌다. 생각의 나래는 몰아치는 태풍처럼 격렬했다.

 

어느 비평가가 쓴 글을 보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여성관은 세 축에서 바라볼 수 있단다. 남성을 온전히 내조하는 여자, 성적인 욕망을 채우는 바깥 세상의 여자, 그리고, 여행이나 모임 등에서 우연히 만나 심미적 감각을 일깨우는 여자.

기요노를 사랑했지만, 사야마와 결혼하여 그를 완벽하게 내조하는 중년의 이치코. 이치코를 동경하면서도 사야마를 좋아하는 사카에. 가난하고 유약한 아리타를 사랑하게 되는 살인자의 딸 다에코. 그리고 사야마, 기요노, 아리타, 고이치. 4명의 남자들 속에 뒤섞인 여자들은 소설 속에서 남자들의 데칼코마니처럼 존재한다.


남자들이 있어야만, 반대편에  대조적인 무늬로 그려질 수 있는 여자. 이치코는 사카에의 방황을 마지막까지도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몸짓으로 이해했다. 사카에가 그저 여자라서, 남자를 사랑할 뿐이라고 인식할 수는 없었을까. 가와바타란 남성 작가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인 듯 하여 안타까웠다.


마광수 교수는, '감자'의 복녀가 피폐한 구조속에서 타락할 수 밖에 없는 힘없는 여성의 퇴락이
아니라, 오히려 복녀가 주체적으로 성을 무기삼아 생의 구조를 거슬러가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었다.

역설은 몰매를 맞았지만, 나는 마광수 교수의 그 일탈된 관점을 환영했다. 적어도 그 시도는 여자를 인간 자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남자가 바라보는,  객체로서의 여자로만 바라보는 견고한
통념의 틀을 깨고자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마광수 교수를 만난다면, 어떤 대화가 오갈까. 스스로에게는 강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져줘라...여자여서가 아니라, 인간이어서받아들여야 하는 명령임을 깨닫는다면, 사카에가 흔들리는 촛대처럼 그렇게 방황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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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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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지 않는 언어..단단해서 결코 바스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 견고함을 참혹해하면서도 갈아내고 도려내오며 걸어온 60여년의 생. 우직하게 밀며 나아온 작가의 삶은 가볍지 않아서,  말은 정밀하고, 소리는 묵직하다. 
 
   그 날 결코 섞이지 않는 말들은 안으로 빨려들어가지 않고, 자꾸만 튕겨나갔다. 뒤섞이지 않는 말들의 팽팽한 균형은 존재가 썩어가는 그 자리에서 언제나 합법적이었다. 울음이 울음일 수 없고, 눈물이 눈물일 수 없는 좌표, 말들은 쓸모없이 대거리를 해댔다...우스운 꼴이이었지만, 이미 결판난 수작 앞에서 외침은 수굿거릴 수 밖에 없었다.    무참하여 바로 보지 못하고, 흘긋이다 지나치지 못하는 머뭇거림. 칼 앞에서, 현 곁에서..어쩌면 목이 메이도록 참회하였던 것은 아닐까. 읽는 내내 문자들이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세상에고 예리하게 편입될 수 있었던 지난 세대들의 그 눈물겨움이, 헤쳐내고 풀어내도 마름이 없는 단촐한 노래가락들이, 늙어빠진 혈관을 다시 맥박질해나가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그들 속에 섞여있던 나는, 험한 시대의 그들을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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