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것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지식여행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그  날, 생각보다 대방역에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 동안 역내 중고 서점을 기웃거렸다. 여자라는 것, 제목이 신기롭고 향긋했다.단 몇 천원으로 좋은 책을 골랐다는 자긍심도 한 몫해서 내내 기분이 좋았었다.

뜨거웠던 스무 해, 서른 다섯을 넘기면, 여자의 여성됨을 온전히 덧입을 수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생물학적 여성은 서른 다섯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한다는 데, 서른 다섯이 되면 애벌레가 탈피하여 날개를 갖듯, 이상처럼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날 것 같은 허튼 상상이 뇌리로 쏟아져내렸다. 
 

니나 부슈만처럼 거침없이 대담하게 삶을 가로지르는 존재로서의 여자됨을 관통하지 않고, 통상의 여성됨을 거론하는 것은, 못된 겁박이거나 질시일뿐이라고 단정지었다.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내 삶에  만족하려면, 우리 사회에서는 적어도 서른 다섯은 되어야하리란 사유. 동시에 생물학적인 여자가 죽어가는 그 자리에서만이 존재로서의 여자가 부활하여 싱싱하게 자라
날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견고했졌다. 생각의 나래는 몰아치는 태풍처럼 격렬했다.

 

어느 비평가가 쓴 글을 보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여성관은 세 축에서 바라볼 수 있단다. 남성을 온전히 내조하는 여자, 성적인 욕망을 채우는 바깥 세상의 여자, 그리고, 여행이나 모임 등에서 우연히 만나 심미적 감각을 일깨우는 여자.

기요노를 사랑했지만, 사야마와 결혼하여 그를 완벽하게 내조하는 중년의 이치코. 이치코를 동경하면서도 사야마를 좋아하는 사카에. 가난하고 유약한 아리타를 사랑하게 되는 살인자의 딸 다에코. 그리고 사야마, 기요노, 아리타, 고이치. 4명의 남자들 속에 뒤섞인 여자들은 소설 속에서 남자들의 데칼코마니처럼 존재한다.


남자들이 있어야만, 반대편에  대조적인 무늬로 그려질 수 있는 여자. 이치코는 사카에의 방황을 마지막까지도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몸짓으로 이해했다. 사카에가 그저 여자라서, 남자를 사랑할 뿐이라고 인식할 수는 없었을까. 가와바타란 남성 작가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인 듯 하여 안타까웠다.


마광수 교수는, '감자'의 복녀가 피폐한 구조속에서 타락할 수 밖에 없는 힘없는 여성의 퇴락이
아니라, 오히려 복녀가 주체적으로 성을 무기삼아 생의 구조를 거슬러가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었다.

역설은 몰매를 맞았지만, 나는 마광수 교수의 그 일탈된 관점을 환영했다. 적어도 그 시도는 여자를 인간 자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남자가 바라보는,  객체로서의 여자로만 바라보는 견고한
통념의 틀을 깨고자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마광수 교수를 만난다면, 어떤 대화가 오갈까. 스스로에게는 강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져줘라...여자여서가 아니라, 인간이어서받아들여야 하는 명령임을 깨닫는다면, 사카에가 흔들리는 촛대처럼 그렇게 방황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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