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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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공부와 가벼운 궁리, 철학 공부를 위해서 무엇이 바른 방향인지 결정하려면 아무래도 그 좌표와 맥락을 살피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할 것이다. 따지고 보자면 이 책은 가볍고 쿨하고 소소하게 행복한 일상을 꿈꾸는 사회를 읽어내고,  철학 공부의 진중함보다 실생활에서의 효용성을 강조함으로써 도서 판매의 마케팅이란 어떠해야하는지 스스로 입증하는 독특한 측면이 있다.

 

도입부에서 기존의 철학서와 자신의 저작이 어떻게 다른지 상당 부분 지면을 할애한 저자는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의 측면에서 다양한 철학자 등을 소개하고 그들의 중심 사상과 관련된 삽화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함으로써 책의 발간 목표를 철저히 성취하고 있다.

 

 철학 전공자이면서 마케팅 전문가답게, 재치있고 매력적인 개념을 설파한 철학자와 사회학자, 인류학자 등을 등장시키면서 적당한 선에서 독자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동시에 가독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철학 공부를 위한 입문서를 기대하거나 심도 깊은 논의로 확장되는 주제의식을 바라는 독자에게는 한 없이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철학자 등과 주요 주장, 관련 삽화 들이 2-3장 내외로 소개되고 있어 강의나 짧은 글쓰기 등의 서두에 인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철학자 등의 심오한 사상을 다 알지 못해도 압축된 몇 문단 속에서 서너 줄만 뽑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이고 기가막힌 마케팅 전법인가.

 

개인적으로는 세르주 모스코비치의 공평한 사회일수록 차별에 의한 상처가 깊다는 주장, 멜빈 러너의 공정한 세상 가설, 후설의 에포케,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신체적 표지, 데리다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탈구축 개념, 들뢰즈의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등이 흥미 있었다. 즉 개별 독자들에게 선뜻 깊은 지대로 나아가도록 매력적인 단초를 제공하는 장점도 충분하다.

이런 연유로 이 책에서는 철학, 사상의 핵심 개념을 다루는 데 철학사의 학문적인 중요성은 반영하지 않았다. 분명 철학이나 근대 사상에 익숙한 사람은 칸크, 스피노자, 키르케고르가 싹 빠져 있는 철학 입문서는 허용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비판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업인 조직과 인재에 관한 컨설팅과 실생활에서의 문제 해결을 위한 유용성을 토대로 편집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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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기도 - 사도 바울에게 배우는 성경적 기도
D. A. 카슨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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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도약을 소망하는 일은 얼마나 쓰리며 고통스러운 것인가, 동시에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소원인지 성찰하게 하는 데 기준이 되는 책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데살로니가 전후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에베소서, 로마서 등 바울 서신의 중요한 내용을 개괄하는 일종의 주석서 역할도 훌륭하게 마감한다.

 

가장 큰 미덕은 아마도 비루한 믿음의 좌표와 엉성한 신앙의 속살을 반추하게 하므로 쉴 새없이  중단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하면서도, 끊임없는 갈증으로 마지막 장까지 읽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는 점일 것 같다.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단순히 긍정의 마음을 갖거나 인간사의 평안과 복을 구하는 통로가 아니라,  그 분의 부르심을 온전히 깨닫고 그 뜻에 합당하게 나아가는 것임을 바울의 기도를 예로 들어 꼼꼼하게 짚어나간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에서는 우리의 감사와 바울의 감사가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바울은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며, 사랑이 풍성해지고, 환난중에도 인내하는 은혜의 징후들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종말에는 성도들을 신원하실 것에 대한 확신에 대해 기도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편안함과 안락을 추구하면서 물질의 풍족으로 채워지기를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가 과연 예수 재림을 소망하는 기독교의 본질과 맞닿는 것인지 되묻는다.

 

바울의 간구는 생경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새롭다. 저자는 그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기도하면서, 믿음에서 난 선한 목적을 능력으로 이루어주시기를 소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또한 바울이 주 예수의 영광을 구하고 이 세상에서 성도도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도록 하는데 기도의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간구하는 것이 기도의 핵심이며 믿음의 간구라니 그동안 얼마나 곁길로 엇나가 있었던 것인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과 함께 있고 싶은 열망이 있었지만, 이것이 외로움이나 그들의 칭송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과 사랑, 인내, 강건함에 대한 순전한 기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기록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한 감사가 넘치며 바울로 인해 신자들이 더더욱 굳건해지며 신자들간 사랑이 넘치기를 간구하는 등 자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 가는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라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채워주시기를 간구하며, 철저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도록 기도했다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네가지도 성경 본문을 들어 설명한다. 즉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며 모든 견딤과 오래참음을 보여주고 기쁨으로 감사하여 아버지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누리며 안락하게 성공하여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주님의 기뻐하시는 바로 오도해온 것은 아닌지 통렬한 반성도 잊지 않는다.

 

바울은 능력을 구하는 기도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구하는 능력의 기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무한한 차원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고, 끝끝내 성취하여 오롯이 추앙받는 권력과 권위의 능력이 아니라 낮아지고 깊어지는 능력이라는 점도 명확하게 이해시킨다.

 

화려하고 달콤한 삽화 없이 성경 본문을 통해 그 의미를 명확하게 조준하는 담담한 서술은 읽는 내내 가슴을 후벼파는 죽비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곁길에서 빠져나와 바른 길로 가도록 종용하므로 위안보다는 불편감이 가중되지만, 그러므로 더욱 가치 있는 책. 참 오랫만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부르심을 받기에 합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게 아니다. 그들은 이미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래서 이제 바울은 그들이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를 위해 기도한다...이를 위해 교인들은 모든 면에서 성장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요컨대 그들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해야 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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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개혁 2019-04-21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ttps://blog.naver.com/7days_henoch - 성경적인 기도는 반드시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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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타락을 허용하시고, 구원을 제시하는가. 영적 세계로 가는 길목에에서 봉인같은 이 질문은 좀처럼 넘어서기 어려운 난제다. 영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때로는 광기로 포효하는 자유의지를 제어할 수만 있다면,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과 결과를 가능케 하는 제도와 사회를 만들수만 있다면 숱한 불행을 미리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고민은 역사의 현장마다 날선 질문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완벽한 답은 아니더라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의식을 통제하고, 동일한 행동을 예측하며 모두를 올곧다고 믿는 방향으로 이끄는 제도와 사상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이 소설을 통해 통렬하게 비판한다. 자유의지가 가져올 선과 악의 결과에 집중하는 대신 인간의 본질에 자유의지가 속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해설에 따르면 체르니셰프스키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쓰면서 푸리에의 공산주의 사회의 이상향을 찬양하는 데 대한 반박으로 씌여진 소설이라고 하는데, 작가는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천재적인 문장력으로 단숨에 푸리에의 주장을 결박한다.

 

주인공은 자신을 스스로 다른 이들과 섞이지 않는 병적인 인간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는 한, 이성으로 교도하고 이끌어 그 행동과 사유를 예견하는 대수표를 제작하여 통제하려 할지라도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범인으로 자처하면서 엄청난 범죄를 날조하기도 하고, 파괴와 혼돈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 고통을 통해 자의식을 확장하는 비이성적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파고든다.

 

음울하고 방탕하며 고독했던 주인공은 네프스키 거리에서 낯선 장교와 마주친 후 먼저 길을 비키지 않으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장교에게 지지 않으려 허세를 부리며 터무니 없이 돈을 빌리는가 하면 그를 주인공 삼아 풍자 소설까지 집필한다. 초대받지 않은 동창회에 나가 유령 취급을 받으면서도 자존심에 자리를 지키고 2차까지 따라 나섰다가 20대 앳된 영업집 아가씨 리자를 만나 하룻밤을 보낸 후 자못 도덕적인 삶의 진수를 충고하기도 한다. 그 하룻밤 만남 이후 자신을 찾아온 리자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모욕하며 쫒아낸 후 스스로 괴로워 통곡하기도 하는 등 시종 갈팡질팡하는 심리를 보여주며 자유의지의 민낯을 삽화를 통해 고스란히 묘사한다.

 

도덕과 비도덕, 선과 악, 강박과 여유, 경의와 모욕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자유의지가 무엇인지 성큼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그 무엇이라도 인간 모두가 똑같은 생각과 동일한 행동을 하도록 견인하는 것이라면 인간다움을 말살하는 것 아닌가, 작가는 이야기 내내 묵직한 화두를 거두지 않는다. 종국에 인간의 실존이 사라지는 결과로 귀결된다면 과연 선한 것인가, 반사경처럼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소설을 읽고 나면 영적 세계의 확장이든 사회의 개혁과 혁신이든 인간의 본질을 인정하는 것, 거기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확신이 서도록 이끌어준다. 또한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후에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천재성을 알리는 시초가 된다고 단언하는 데 그러한 평가를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당신들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수정궁을 믿고 있다. 즉 남몰래 혀를 내밀거나 눈을 흘기거나 하는 따위 짓을 할 수 없는 건물을 믿고 있다..자 바꿔보라. 다른 것으로 내 눈을 현혹시켜 보라. 다른 이상을 나한테 안겨줘 보라...어서 마음대로 웃기 바란다. 나는 어떤 조소라도 감수하겠지만, 그렇다고 밥이 먹고 싶은데, 나는 배부릅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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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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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후기에서 밝힌 대로,  일부의 내용은 학회나 공개 강연, 세미나에서 발표된 것으로 언뜻 보기에는 가벼운 것 같지만, 정련된 논문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묵직한 책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보수의 레토릭을 분석해서 진보 진영이 대비할 수 있도록 정리한 류의 책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만, 학술적 관심으로 시작된 만큼 말미에서는 보수에 대응하는 진보의 수사학도 자연스럽게 정리해낸다.

 

허시먼은 보통선거권의 확대, 복지국가의 실행, 프랑스 혁명을 고찰하면서 보수가 내세운 주장의 주요 수사 명제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역효과의 명제, 즉 오히려 본래의 취지에서 어긋나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무용 명제, 어떤 시도를 하든 결국은 기존의 체제나 문제점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셋째, 위험 명제, 변화는 결국  지금까지 수호해온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세 가지 수사적 기법은, 지난 200여년간의 역사적 사건과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실제로는 잘못된 주장으로 입증된 적이 많으나, 사람들은 이들 수사학이 주는 매혹에 빠져서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개혁이나 변화가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평가될 때는, 역효과론과 무용론은 정형화된 주장으로 이들 평가를 뒷받침했고, 발생 비용 또는 나타난 결과가 그로 인한 이득을 초과할 때는 위험 명제가 그 근거로 제시되면서 공고한 논리의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따져보면 이들 세 가지 명제는 한 두가지가 서로 조합하면서 강력한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양립 불가능한 경우도 보이는데, 수사학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에게는 이들이 마치 공존이 가능한 논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약점도 밝혀내고 있다. 가령 참정권을 확대해도  결국은 특정 기득권을 공고히 하므로 민주주의는 허상이라는 무용 명제와, 참여가 확대되는 민주주의는 자유를 위협하는 체제라고 주장하는 위험 명제는 서로의 취지를 손상시키게 된다. 즉 여기서의  무용 명제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위험 명제는 민주주의는 체제로서 인정하는 주장인데도 불구하고 그럴 듯 하게 공생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보수와 진보가 쌍을 이루는 수사학의 대립 명제를 만들었다. 보수가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할 때, 진보는 계획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보수가 새로운 개혁이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역설할 때, 진보는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준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보수가 계획된 행동은 사회질서의 법칙을 바꾸려 하고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 반면, 진보는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뒷받침되므로 거기에 맞서는 것은 쓸데 없다며 항변한다고 제시한다.

 

보수의 수사학을 훑으면서 그와 대립하는 진보의 수사학을 간단하게 정리한 저자의 진의는, 책의 결론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는 각 진영의 수사학을 진지하게 다루어야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정형화된 수사학에 대중이 매혹당할 때, 토론과 토의를 통해 실제로 짚어내야할 그 문제의 쟁점과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 논쟁만 증폭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간단하고 명료한 수사학을 압축한 정치인의 허상같은 주장에 맹목적으로 추종할 때, 그야말로 순식간에 민주주의의 주요한 틀들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단단하고 복잡한 논리로 무장한 논쟁이 아니라 풍자와 모욕, 경쟁과 비하를 앞세우면서 몇몇 수사학으로 지난 200여년의 주요 정책들이 사회적, 학문적 논란을 겪었던 점을 상기한다면, 이 책이 주는 가치는 더더욱 크고 깊을 수 밖에 없다.

과거의 살육적이고 비타협적인 담론에서 보다 ‘민주주의 친화적‘인 종류의 대화로 가기 위해 밟아야 할 길고 험난한 노정이 남는다. 이 원정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사실상 대화와 논의가 불가능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고안물인 논쟁 같은 몇 가지 위험 신호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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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의 창조 - 인간다운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마사 누스바움 지음, 한상연 옮김, 이양수 감수.해제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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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나 이론이 주는 가장 매력적인 정점은, 익숙한 시각을 송두리째 잡아 끌어내고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인식을 재정비하도록 하는, 일종의 벼리 역할을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국가 성장, 잘 살기의 지표로써 발전경제학의  GDP 접근법이 지배하는 현 세계의 정 중앙을 향해 누스바움은 센과 함께 역량접근법을 들고 나와 날카로운 짱돌을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다. 저자는 인도의 바산티를 예로 들어 아무리 1인당 GDP가 늘어도 개인의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한 개인이 정말 잘 사는지, 삶의 질이 높은지를 측정하는 데 있어서는 1인당 GDP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녀는 역량은 '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과 같은 것으로, 성취할 수 있는 기능의 선택 가능한 조합을 의미한다면서, 결합역량과 내적역량을 구분한다. 결합역량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기회와 관련되어 있으며, 내적역량은 선천적 능력과는 다른 것으로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사람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구분이 유효한 까닭은 내적 역량을 기르도록 지지하면서도 내적역량에 맞게 기능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들이 있다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또한 역량접근법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목적으로 보고, 선택과 자유를 중시하며, 가치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바, 국가나 사회가 어떻게 해야 역량접근법이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가를 궁리하면서 핵심역량의 개념도 소개한다. 누스바움은 생명, 신체건강, 신체보전,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천이성, 관계, 인간 이외의 종, 놀이, 환경통제 등을 핵심역량으로 손꼽는다. 핵심역량이 GDP를 대신하여 그 사회, 그 개인이 정말 잘 살고 있는지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역량접근법은 이러한 핵심역량을 어떻게 최저수준 이상으로 보장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를 연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역량접근법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GDP 경제학으로는 발전한 국가일지 모르지만, 국민 개개인의 핵심역량 최저수준을 보장하고 있는지 비교한다면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

 

저자는 공리주의, 칸트의 철학, 롤스의 정의론, 스토아 학파의 정의론 등과 역량 접근법의 정의를 비교하면서, 사람을 목적으로 하는 기본 입장을 근거로 모든 인간, 즉 어떤 소수자라도 존중받아마땅할 권리를 명징하게 선포한다. 더불어 역량의 이행을 위하여 인권사, 각종 판례를 비교하면서, 정치의 중요성, 특히 헌법과 법률 등 제도적 개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저자가 역량접근법을 현실에 당장 적용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를 잘 포착하면서도 결코 연구를 단념하지 않겠다는 학문적 자세를 견지한다는 점이다. 특히 사회적 맥락이나 문화적 다양성, 국가 정치의 발달 과정 등을 고려하면서 역량접근법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탁월하다. 같은 역량접근법을 추구하면서도 센과 다른 학문적 견해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대목도 인상깊다.

 

책의 말미에 덧붙인 해제에서도 소개되었듯이 저출산 고령화 등 새로운 모습의 사회가 출현되는 이 때, GDP식 성장론이 우리 사회 현장의 급한 불을 왜 못 끄고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점진적으로 근본 문제의 뿌리에 접근하고 있지 못하는지, 역량접근법은 꽤 근사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양적 경제 성장이 아니라 질적 경제 성장이 논의되어야할 시점에서, 명망있는 학자가 나서서 이론의 학계와 실제의 대중을 연계하기 위하여 책을 집필한  시도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이윤 동기가 지배하는 시대, 경제성장에 안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공공정책의 일부이며 단순한 수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국가정책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발전의 목적도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계발하고 동등한 인간 존엄성에 어울리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풍요롭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데 있다. 달리 말해 발전의 진정한 목적은 인간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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