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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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가 화두가 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언택트, 블렌디드, 인공지능, 디지털 변환 등이 아니었을까 싶다. 감염병이 가져온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격리와 고립을 강제할 수 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들이 우리를 다시 연결시켜줄 것이란 기대와 희망이 온 세상을 점유한 듯 했다. 


그런데, 인간이 정말 연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런 장애 없이 화려한 기술을 유려하게 활용하여 언제든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그것만이 전부일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돈으로 환산되어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은 점점 하락하는 것만 같은데, 여기에서 밀려나고 소외되어 처음부터 변혁의 연대 멤버로 상상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승자독식으로 점철된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 연대의 의미는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해야할까. 많은 것을 함께 보고, 듣고, 공유하므로 연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맞는 말일까. 연대는 왜, 꼭 필요한가.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오히려 질문이 더 쏟아졌던 것 같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다. 교사로 퇴직한 임여사는, 남동생의 조언을 듣고 남편의 유산으로 편의점을 차린다. 교사 연금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그녀는 편의점 직원들의 생계가 걸린 일이라는 생각에, 매출이 아니라 버티는 격으로 편의점을 운영한다. 


어느 날 임여사는 서울역에서 지갑을 잃어버리게 되고, 독고씨라는 노숙자가 지갑을 찾아주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편의점에 일하게 된 독고씨는 편의점 직원 시현, 선숙, 오여사의 아들, 경만씨, 인경씨, 임여사의 아들 민식씨 등 편의점을 둘러싼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낸다. 


독고씨는 폐기 상품을 불쑥 꺼내 나누는가 하면, 편의점 식품의 비밀 조합을 알려주는 등 소소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데면데면하던 이들의 관계를 복원시키고, 소통하게 하며, 다시 힘을 북돋아준다. 청파동 낡은 편의점은 독고씨로 인해 다시 일으키고 세워주는, 일종의 전초 기지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후 독고씨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코로나가 극성인 대구에 의료진으로 자원한다. 


일부 삽화는 어떤 전형적인 모습이 드러나 약간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주제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다. 


임여사는 직원 생계를 걱정하며 사명감으로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작은 호의로 독고씨를 편의점으로 불러들인다. 독고씨는 별다른 재주가 있어 사람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게 아니라 우직하고 성실하게 편의점 업무를 담당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관심을 갖고 챙겨준다. 그러면서 독고씨는 점차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과거를 바로잡으며,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간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돌아보며, 내가 할 수 있는만큼만 챙겨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뜨거운 연대는 가능하며, 거대한 기계처럼 몰려오는 시련 앞에서 생의 무기력을 넘어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고, 마침내 그것이 되먹임되어 다시 나를 살리는 근간이 된다는 사실, 어쩌면 너무 기본적인 해답이라서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포스트 코로나와 함께 앞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어야 할 단어들은 연대, 인간, 성찰..이런 말들이어야하지 않을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도울 것을 돕고 나눌 것을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사죄하기 위해 가족을 찾을 것이다.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사죄의 마음을 다지며 돌아설 것이다.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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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사회 - 팬데믹의 경험과 달라진 세계
김수련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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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엄청난 일을 겪은 후, 조금이라도 그 실체를 파악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중요한 방법론은, 아마도 어떻게든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투영해 되살려내고 어떻게든 기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쓰나미처럼 몰려온 코로나는 삶의 양태를 삽시간에 바꾸었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틈을 비집어 어떻게든 적응하도록 종용했다. 대유행의 파고를 몇 차례나 흩뿌리고도 여전히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 


앞으로도 수차례 되풀이 될 감염병 팬데믹은 이제 생생한 현실이 되었고, 수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코로나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대비해야할까.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 자신이 경험하고 마주한 코로나를 토로함으로써, 그 조각들을 이어 거대한 얼개를 그려나가도록 구성된 점이다.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칼럼니스트, 교수, 활동가 등이 설명하는 코로나는, 그 현장성 때문에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쏟아지는 환자, 부족한 병실과 의료 인력, 버티기로 감당한 업무 과부하는, 의료인들이 어떻게 노동을 갈아넣어 보건의료 시스템의 취약성을 메웠는지 처절하게 기록하고 있다. 


거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득세가 가져온 각자도생의 필살기 현상도 분석하고 있다. 코로나에 대한 과민한 불안과 공포는, 코로나의 불활식성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서 더 큰 사회적, 경제적 조건과 더 맞닿아 있다는 것. 감염이 되는 순간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개인의 책무는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는 설명이다. 경력, 연금, 가정 생활에 예상하지 못한 타격을 받을 때는 각자 잘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신자유의적 기제와 요건은, 불안 체제를 증폭하고 개인화를 더더욱 내면화시키는 한편, 감염병이라는 공공의 문제를 민간으로 외주화하여 대응함으로써 집단 복지의 연대성을 더더욱 약화시킨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개인화와 민간화 속에서, 감염병의 특성상 공공재의 축적이 필요한데도, 잘못된 정치화로 인해 뉴노멀이 오히려 불평등, 부정의를 정상화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 


코로나 감염자의 측면에서는 정신질환자, 요양병원의 노인 환자, 성소수자 등이 그 취약성으로 인해 감염병 확산이 더 용이했다는 점과  생산이나 유통, 서비스 등 핵심 분야의 노동자는 감염을 감수하더라도 초과 노동을 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즉, 이들에게는 사회적 거리가 거의 포기 내지는 방치 수준이었다는 것. 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감시 체계가 인권 침해라는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진 점도 성찰의 주제로 제시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기독교 입장에서 종교인의 자세를 짚어본 대목도 인상 깊다. 모두가 셧다운이 되어 격리되고 고립될 때 교회가 새로운 생존 공동체의 모델이 되어야한다는 것. 소외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자발적인 소유를 나눌 수 있는, 사회적 거리를 영적 거리로 극복하려는 노력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로 인한 격리에 있어서 돌봄 노동이 주로 여성에게 전가된 점이나 공적 영역의 시간 안에 돌봄의 시간을 자리매김하는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도 눈길을 끈다. 


기후변화와 감염병의 영향, 감염병과 역사의 전환, 일본의 코로나 대응 등 각각의 주제가 흥미롭다. 


다만, 독자로서의 욕심은 학교-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회사-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또는 회사 분야별-, 자영업, 보건소, 동네 병원 등의 코로나 상황은  어떠했는지 후속격인 토로의 장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염병의 사회적인 특성을 고려한다면, 더 다양한 사회, 더 세분화되고 가려진 사회, 그 안에서 경험한 코로나의 또 다른 모습은, 추가될 수록 더 큰 통찰을 제공할테니까.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감염병을 둘러싼 사건은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발현한 종합이며 총체물이다. 대부분 생물학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감염병 전파와 유행도 사회적인 것과의 상호작용이거나 두 가지 속성의 통합물이라 해야한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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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Ensemble Pierre Robert - 샤르팡티에: 사순절을 위한 묵상곡집 H.380-389, 오 달콤함 오 형언할 수 없는 축제여, 5성 푸가, 오 사랑 오 선함 오 자비 등 18곡
Ensemble Pierre Robert / Alpha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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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보내면서 묵상집으로 추천을 받아 읽었는데, 읽으면서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린 주님의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이 위대한데, 그에 대한 내 삶의 응답은 얼마나 미미하고 부끄러운지. 예수님만 묵상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고흐를 통해 주님을 바라보니 작은 예수의 삶을 살면서 치열했던 화가의 생 앞에 다시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광기에 사로잡혀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피상적인 그간의 인식이야말로 내 일천한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식. 주님으로부터 동일한 사랑을 받았는데, 그의 깨달음은 곁길로 새는 법 없이, 올곧이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눈으로 보고, 주님이 사랑하신 것들을 쫒고, 주님께 받은 재능으로 그의 영광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그의 모든 몸짓은, 짧은 생 동안 날것 그대로의 기도며 묵상이며 신앙이 되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사랑으로 행한 일은 어떤 것이든 훌륭하다, 고 단언하면서 사랑 안에 진정한 힘이 들어 있다고 되내인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다시금 사랑하도록 강한 충동을 주는, 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감지하는 일이라고도 들려준다. 그림 한 장을 그리기 위해 스스로 살아 있는 한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짐하는가 하면 하나님은 고통과 슬픔을 보시며 그의 능력이 우리 삶을 견디게 하신다고 단언한다. 우리의 본성이 슬픔으로 가득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거듭남이 계속되며 줄곧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감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텅 빈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삶 자체도 무한히 비어 있는 공백이지만, 확신과 힘과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 현혹된 곁길로 가지 않으며 삶 속으로 진입하고 행동하며 삶을 든든히 세운다고 전한다. 


그의 그림과 글은 하나님과 사랑, 믿음에 대한 여정이자 도구가 된다. 그는 하나님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낮게, 겸손하게 살아가면서, 하늘에 오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복음서가 가르쳐 주는 대로 가난한 심령으로 낮은 땅에 처할 것을 뜻하셨다고 깨달으면서, 우리 인생은 천로역정이므로 많은 싸움을 싸우고 많은 고난을 겪으며 많은 기도를 드린 뒤 그 끝은 평안이리라고 이야기한다. 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사랑하고 고상하고 진지하게 친밀함과 동정심을 가지고 힘을 다하고 모든 지성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꿈은, 오염되고 뒤틀린 좌표의 지축을 흔든다..나는 그림으로 무엇인가 위로하는 말을 하고 싶다. 무엇인가 영원한 것을 보여주는 남녀를 그리고 싶다. 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람들이 내 작품에 대하여 그는 철저하게 깊이 느끼고 있구나, 민감 다정하게 느끼고 있구나 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진척 숙달되고 싶다..보잘것 없고 이름 없는 사람의 가슴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볼 눈과 들을 귀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나 자연 또는 하나님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느 화가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보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자마자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40일 동안 하루 하나씩 그림과 글, 그리고 저자인 최종수 목사님의 묵상을 읽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결코 가볍지 않다. 주님의 사랑과 구원으로 받은 삶, 나는 무엇을 향하여 치열해져 있는가, 무엇으로 고민하고 있는가, 다시 부끄러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한 것을 보는 눈이 복되다. 모든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가 행복하다. 만물과 조화를 이루어 하나로 어울리는 가운데, 듣는 소리, 보는 것을 전달해주는 거룩한 사명, 이러한 할 일을 찾은 사람은 복되다. 만물 공유의 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역사의 부름을 듣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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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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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을 기다리다, 원작부터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는데, 한숨에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 외면은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표방하지만, 군국주의 시대를 살면서 온갖 이념의 횡횡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바른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치열함에 순식간에 전염된 탓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거장의 생애에서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데,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 호기심은 책장의 마지막을 덮는 순간 깊은 수긍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혼다 준이치는 코페르라는 별명을 가진 중학교 2학년 소년.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도쿄 외곽에 사는데, 법학을 전공한 외삼촌과 교류하며 소소한 일상의 삽화들 속에서 인생의 가치와 삶의 원리를 배워나간다. 반향을 불러 일으킬만한 대단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저자는 작은 사건들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설정,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 들을 실타래처럼 뽑아낸다. 


준이치는 외삼촌과 함께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분자로서의 인간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외삼촌은 이를 두고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옮겨가는 단초를 제공한 코페르니쿠스에 빗대어, 준이치에게 코페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성장하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도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면서. 


반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 우라가와와, 비열한 야마구치 패거리들에 맞서 싸우는 기타미의 일화 속에서 준이치는 외삼촌으로부터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생각과 진심이 중요하며, 자신에게 떳떳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운다. 


외삼촌으로부터 뉴턴의 사과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전해 들은 준이치는, 분유에 대해 생각하면서 '인간 분자의 관계, 그물코의 법칙'의 발견에 대해 외삼촌에게 설명하고, 외삼촌은 사회학과 경제학을 예로 들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학문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필요성 등을 이야기하면서도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의 관계는 일견 분자화에만 머물러 있지만, 사람다운 관계를 맺어야한다고 강조한다. 


학교를 결석하고 두부 가게를 하는 자신의 집에서 유부를 만드는 데 한창인 우라가와를 만나고 돌아온 날, 외삼촌은 준이치에게 가난에 대해 설명하면서 환경에 상관 없이 자신의 가치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 그리고, 문명의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가난이 사라지고 있지 않다는 점, 그러므로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의 행운을 겸손히 고맙게 여겨 정진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놀랍게도 우라가와는 사회를 위하여 무언가 생산하고 있지만, 준이치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실제 소요되는 생산과 소비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점을 대비하면서도, 준이치에게 물건의 생산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낼 것을 주문한다. 


외삼촌은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영웅이든 위인이든 존경받는 이들은 인류가 진보하는 데 도움이 된 사람들뿐이라는 것도 기억하도록 강조한다. 


한편 준이치는, 구로카와 패거리들에게 기타미가 당할 때 우라가와나 미즈타니처럼 함께 나서지 못하는데,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비겁한 행동 탓에 자책감에 괴로워하고 때마침 감기에 걸려 결석하게 된다. 친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던 준이치는 외삼촌에서 사정을 털어놓게 되고, 외삼촌은 사람만이 올바른 이성의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행동할 힘이 있기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다며 다독인다.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러므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친구들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관계가 개선된 준이치는 수선화를 옮겨 심다가 성장하고 싶다는 본능으로 자라나는 풀과 나무에게 감명을 받고, 그리스인이 만든 불상의 스토리를 들으며 일본까지 흘러든 세계 문명의 전이에 전율한다. 그리고 당장 무언가를 생산할 수는 없어도 좋은 사람이 되겠다면서 외삼촌처럼 노트에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적겠다고 다짐한다. 


이 책의 압권은 아무래도 맨 마지막 부분, 저자의 <이 책이 나오기까지>가 아닐까 싶다. 군국주의가 확산되고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제약을 받으면서 자유주의를 지향한 지성인들은 미래의 청소년이 희망이라면서 '일본 소국민 문고 16권'을 기획했고, 이 책은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는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전쟁 후에야 다시 출판이 가능했다고 한다. 


인류는 진보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보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일념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주목했던 지식인들의 혜안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으로서, 아니 시대를 앞서간 거장으로서 마지막 작품으로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저자와 동일하게 느낀 절박한 마음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코페르, 현실이 이렇더라도 사람은 언제나 사람다워야 한단다. 사람들이 사람다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아쉬운 일이야. 너와 상관없는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당연히 분자와 분자가 교류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따뜻하게 만나야 한단다. 지금 당장 네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야. 단지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이란다. 사실 이 문제는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오면서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란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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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마스터 - 성경에서 배우는 리더의 시간관리
한홍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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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관리, 어쩌면 시간 경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시간의 활용에 대한 책은 넘치지만, 이 책의 특별함은 '성경'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시간 관리의 원칙을 제시하는 데 있다


서문에서는 '마스터'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는 주인으로서의 마스터 개념으로, 시간의 소유주인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은 시간을 임대받아 사용하는 관리인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어느 분야에서의 통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간을 만든 하나님의 매뉴얼대로 사용할 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한 마디로 창조주 하나님이 만든 시간 관리의 핵심을, 성경을 통해 배우는 한편 이를 적용해 주어진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시간의 개념에서 먼저 전제할 것은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의 개념이 전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흥미롭게도 천체 물리학의 빅뱅 개념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하루의 개념이 마치 우주 연대기에서의 하루와 완전히 다르듯,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우리는 시간 속에 있지만,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며 죄를 짓기 전 시간에 갇히지 않았던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원래 모습으로의 회복, 즉 시간을 초월해 하나님과 연합하는 영원을 갈구한다는 점도 성경에 근거해 제시된다. 


이러한 조건 안에서 한계를 갖는 인간이기에, 시간 관리의 핵심은 영원을 위한 준비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데 초점을 맞추어져한다고 강조한다. 


바울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푯대를 향해 나아갔듯이 우리 역시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억하며 푯대를 향해 경주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시간 관리가 필요하며, 관리하지 않는 시간은 나의 약점에 할애되거나 주변의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사람들에게 시간을 장악당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또한 급한 일들을 처리하는 데 시간을 쏟게 되고, 사람들이 칭찬하는 일에만 시간을 흘려 보낸다는 점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 푯대를 향한 삶을 위해서는 단순한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관계, 언어, 미디어 등을 절제하고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바울이 "쫓아가노라"고 했던 헬라어 원뜻은 '서두르다'라는 의미로, 강렬한 노력, 땀 흘림을 뜻하며 어느 좌표에 있든지 우리는  매 순간 업그레이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혼자서만이 아니라 주변인들이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고 동료, 가족 등을 챙기면서 함께 하는 데 헌신해야 한다는 점도 명징하게 제안하고 있다. 


한편 치열한 경주 속에서도 시간 안에 공간을 만들어 멈추고 비우는 훈련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흘려 보내야하는데, 특히 헨리 나우엔이 제안한 '희미해지는 훈련'이 눈에 띈다. 작아지는 것, 숨는 것, 약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


소명을 알면, 보통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외롭지 않게 되며, 인간은 함께 함으로써 거룩한 교집함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단언한다. 특히 마지막에는 입산, 엘론, 압돈 등 세 사사를 예로 들어 인생이 풍성하고 능력 가운데 거해도 하나님의 뜻에 비켜 나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낭비의 시간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밀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져야 한다. 


짧은 생애 동안 하나님의 사명이 시간 관리의 기준이 되었던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되어야한다는 에필로그에서는 마음 한 구석이 다시 묵직해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 이상으로, 그 과정에서 서로를 축복하고 세워주기를 원하신다.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는 아름다운 오늘이 필요한 것이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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