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로 읽는 내 삶의 프로파일
홍광수 지음 / 엔씨디(NCD)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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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히포크라테스의 4가지 기질론을 바탕으로 콜롬비아 대학 윌리암 말스톤 교수가 개발한, DISC모델을 활용해 4가지 기질을 설명하면서 성경의 구체적인 인물과 연결하여 안내한다.

 

D형은 주도형으로 담즙질이다. 가장 적은 비율의 기질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주도하는 지도자적인 성향을 띤다. 자기중심적이고 목표지향적이며 직관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재적인 성향이 강해 자칫 감성적인 부분이 약점으로 나타날 수 있다. 비정한 사람, 후회를 잘하며 생색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담즙질의 모델로 솔로몬을 손꼽고 있는데, 불굴의 의지로 성전을 짓고 웅장한 성전 낙성식을 주도하지만, 인생의 말년에는 자기의 손으로 행한 모든 일과 모든 수고가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하는 것 같다며 전도서를 쓰면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마직막에야 깨닫는다.

 

I형은 사교형으로 다혈질이다.  관계지향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화려한 언어의 마술사이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실수가 많고 미혹당하기 쉬우며 자신이나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 책임감이 부족할 우려가 있다. 다혈질의 대표적인 인물로 베드로를 소개하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예언해주시는 예수님께 요한의 미래를 묻는가 하면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집을 지어 함께 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칭찬을 받으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호언장담하고는 예수님을 부인하는데도 앞장 선다.

 

S형은 안정형으로 점액질이다. 온유하며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침착하여 경청을 잘 하고 평온하여 압박받는 분위기를 제일 싫어한다. 자기는 웃지 않지만, 뜻하지 않게 상대를 웃길 수 있다. 갈등을 싫어하고 주어진 일에 성실하므로 외길 인생이 가능하다. 다만 온화하고 타협을 잘하지만, 자기만의 고집이 있어 유아적인 이기심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 게으른 것도 점액질의 약점으로 꼽힌다. 점액질의 표상으로는 유언을 하고도 43년을 더 산 이삭을 그려내고 있다. 성실하고 다투기 싫어하며 가정의 평온을 사랑했지만, 낯익고 편안한 환경을 선호하면서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성향도 드러난다. 자신에게 친숙한 에서를 사랑하면서 결과적으로 형제의 갈등을 불러온다.

 

C형은 신중형으로 우울질이다. 매사에 분석적이며 자신이나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재능이 많고 논리적이며 신중하다. 일견 까다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높은 도덕적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완벽을 추구한다. 우울질의 대표자로 모세를 내세운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쉽게 순종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설득하려 했지만, 한번 일을 추진하면 끝까지 꼼꼼하게 성취함으로써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대업을 이룬다. 모세는 하나님을 깊게 만나는 경험을 통해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정교한 제사법, 율법 등을 기록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다.

 

각 기질의 특성, 강점과 약점을 설명하고 성경의 인물을 대비시켜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배치해 가독성을 높였다. 독자가 주로 사역자 또는 사모님 등을 대상으로 하기에 적용 부분에서는 사역이나 설교, 양육 등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다.

 

다만,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히포크라테스의 기질분석 만으로 사람을 유형화하려는 시도는 유의해야할 필요가 있다.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경험과 관찰을 통해 적용되는 히포크라테스의 기질론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특히 다양한 기질을 가진 사람의 특성을 활용하여 약속을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하는 대목을 통해서 성경 읽기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열어주는 강점도 갖추었다.

 

사랑이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서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서로가 다르다. 달라도 다르다...중략..우리는 서로 틀린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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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8.0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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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자아내는 예술적 감흥이 어떻게 치료와 상담의 매개체가 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회화의 서사, 작품의 시대적 배경, 작가의 화풍과 예술적 의지 등을 걷어내고 그림 자체가 건네는 화두를 대면할 수 있도록, 작가는 세밀한 음성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림의 힘 I>이 일상의 다양한 편린들 속에서 마주하는 감성에 집중한다면, <그림의 힘 II>는 시험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겪을 법한 다양한 상황에서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1권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은 브뢰헬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랭부르 형제의 <베리공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류트를 든 자화상>이었다.

 

브뢰헬은 바다의 한 구석에 거꾸로 처박히는 이카루스를 작게 표현한 반면 소를 몰며 쟁기질하는 사람을 대비시킨다. 치기어린 열정과 무덤덤한 성실성의 구도속에서 일상의 겸허함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랭부르 형제는 12개월의 달력에 맞추어 각각의 달에 맞는 그림을 섬세하게 그려냈는데, 한겨울에에도 쉬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집중하는 동안 우주의 시간이 흐르는 천체의 시계를 인상깊게 표현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성적 치욕감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서서 연주를 결심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포착해 스스로가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2권에서는 앙리 마티스의 <꿈>, 야코프 반 훌스동크의 <레몬, 오렌지, 석류가 있는 정물>, 토마스 비크의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마티스는 아무런 걱정 없이 평안히 잠든 여인의 모습을 통해 휴식의 기쁨을 전달하고, 훌스동크는 초록, 노란색, 빨간색의 강렬한 색감으로 집중력과 산뜻함을 선사한다. 토마스 비크는 흐드러진 방 안에서 책읽기에 집중하는 사람을 통해 몰입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정해진 주제에 따라 수십편의 명화를 보면서 저자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실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다만, 저자의 일방적인 그림 해석에 반발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자가 공감을 위해 제시한 대화를 반박하다보면,  스스로 그림의 의미를 찾거나 감성을 추적하면서 어느새 자기상담이 이루어지는 장점도 마주하게 된다.

 

2권의 초점이 '시험'으로 한정되어 있다보니, 1권보다는 주제와 그림, 그리고 대화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일관성이 부족해 매끄럽지 못한 것 같은 느낌도 받게 된다. 일부 색감이나 그림과 관련한 과학적 연구에 좀더 지면을 할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치료, 상담을 접목하는 관점에서 그림 보기를 시도한 점은 두고두고 칭찬 받아 마땅하다.

20여년 간 미술 치료 현장에서, 인생의 시험을 앞둔 사람들의 불안과 초조를 접해왔습니다.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주고 지쳤던 뇌를 자극하고, 자신감 불어넣는 등 그림이 만든 긍정적인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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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구광렬 지음 / 작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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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삶의 우연을 필연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제야 철이 드는 것이라고 일갈했었다. 그 때는 숫된 이들이 떠들어대는 어설픈 설화라며 설핏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돌아보면 생의 숱한 지점에서 마주친 우연의 삽화들은 웅신하게 점화되었다가 어느 순간 필연으로 불타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히 EBS에서 스치듯 소개된 반구대 암각화를 본 것은, <반구대>를 읽도록 한 필연의 벼리였던 것 같다. 짧은 영상에서 본 호랑이, 사슴은 물론 거북이, 물고기,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향고래, 긴수염 고래, 귀신고래 등은 한동안 열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역사 시간에 빗살무늬토기를 연신 암기하며 신석기 시대를 겨우 이해했던 나에게는, 신석기 전기 시대에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고래잡이를 하며 살았다는 것과 반구대가 인류 최초의 암각화라는 사실이 한순간에 일천한 역사의식을 부셔버릴 만큼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러므로 <반구대>를 읽는 내내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들떴다. 높이 3m, 너비 10m에 아로새겨진 암각화를 보고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상상하는 것은, 흡사 드라마의 다음 회를 기다리는 시청자라도 된 듯 조바심 나게 했다.

 

<반구대>의 이야기는 크게 세 줄기로 나누어진다. 1부에서는 가람의 으뜸  하와 그에 대한 배신을 모의하는 부하들, 큰 주먹과 그리매의 탄생의 비밀과 꽃다지를 사이에 둔 갈등, 그리고 사냥 대신 바위새김에 마음을 뺏기는 그리매의 모습이 주가 된다.

 

2부에서는 하의 죽음과 그의 뒤를 이어 으뜸으로 올라선 포악한 갈의 모습이 그려진다. 갈의 횡포를 그대로 둘 수 없는 매발톱은 솔나리의 도움을 얻어 오동또기로 을 독살하고, 큰볕터 너머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참돌을 가져온 여우주둥이가 매발톱을 돕는다. 또 꽃다지는 두려움 속에서 매발톱에 의해 마을의 큰 어미로 거듭나게 된다. 갈의 죽음 이후 새로운 으뜸으로 올라선 작, 반항하는 큰 주먹을 내쫒고, 그리매가 큰 주먹을 구하면서 둘은 다시 해우한다. 급족의 친절에 속은 가람에서는 의 무리와 꽃다지가 큰볕터로 끌려가게 되고, 이 사실을 안 그리매와 큰 주먹은 꽃다지를 구하기 위해 한 뜻으로 큰볕터를 찾아, 다 죽게 된 작까지 데리고 다시 가람으로 돌아온다.

 

3부는작이 없는 틈에 으뜸의 자리를 찬탈한 을 물리치고 큰 주먹이 으뜸으로 올라선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큰볕터가 가람을 쳐들어온 사이 큰주먹과 그리매를 필두로 큰볕터를 역공하면서 가람의 둘레는 큰볕터의 영역까지 넓혀진다.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식량을 얻기 위한 고래잡이는 더욱 치열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진다. 살만한 곳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가람에서 시작된 큰 어울림은 점점 더 커져 온누리가 되어간다. 한편 꽃다지가 큰 주먹과 같은 육손이를 낳자 그리매는 우울해하고, 꽃다지는 첫 얼음 후 알들을 묻다가 제 어미아비하고 다르게 태어난 사슴을 보며 육손이가 큰 주먹의 아이가 아님을 직감한다. 이에 사실을 알리러 그리매에게 가지만, 그리매와 함께 있는 얼레지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서면서 큰 어미의 숙명을 자각한다. 한편 그리매는 하나가 멀리 있는 하나를 바라보는 두 얼굴을 바위에 새기면서 가슴 가득 그리움을 채워가며 눈물을 흘린다.

 

처음 반구대 암각화를 소개한 영상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기억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였다. 선사시대의 벽화는 동물에게 죽느냐 아니면 죽이느냐의 싸움에서, 필사의 전사로써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당시의 열망을 담은 주술적 표현이었으리라는 기억의 편린이, 반구대의 암각화에도 부지불식간에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므로 소설에서 주인공 그리매가 사냥으로 얻을 고기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사냥으로 희생되는 죽음을 애틋해하며 바위새김에 빠져드는 대목은 생경스럽기까지 했다. 특히 꽃다지의 첫 유산과 함께 새끼 벤 암고래의 암벽 윤곽이 점점 희미해지는 장면이 오버랩 되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먹거리 확보가 최우선의 목표가 된 생존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생살을 뚫고 침습하는 사랑과 아픔을 겪어냈을 터이니 주술적 기원 뿐 아니라, 그 반추의 상을 암각에 새겨 넣었으리란 상상을 마주하자, 그간 치졸할 정도로 협소했던 내 역사 인식의 경계가 단숨에 확장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나라가 세워지기 전, 민족으로 어우러지고 한 곳에 정착해 살기 전에도, 땅을 아우르고 바다로 나아가며 사람들은 살았고, 그저 당장 배를 채울 생고기만 갈구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못지않게 웅숭깊은 생을 살았으리란 생각에 이르자, 더위에 사위던 생의 의지도 다시 꺽실해지는 것 같았다.

 

특히 눈여겨 본 부분은 사실상의 으뜸인 그리매가 권력의 중심부가 아니라 삶의 주변부로 쫒겨 났으며, 으뜸의 물리적인 자리를 되찾는 데 고군분투하는 대신 암각화를 새겨 넣는 자신의 방식대로 온 마을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어깨에 메면서 맡은 바를 감당한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그는 큰 주먹에게 내내 괴롭힘을 당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다시 살려냈고, 뛰어난 사냥꾼은 아니었지만 지략으로 큰 주먹을 도우면서 삶의 터전을 넓혀나가는 데 일조했다. 단 한번이라도 중심부에서 물러나면 낭떠러지 뒤안길로 사라지는 무한경쟁의 시대, 가지고 싶고 차지하고 싶은 단순한 욕심에 사로잡혀 정해진 자리와 위치로만 내달리는 우리를 향해, 작가는 그리매를 통해 어떤 뜻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큰 노력 없이도 튼실한 고깃덩어리를 먹고, 욕정을 마음껏 채우기 위해 방향 없이 질주하는 것이 으뜸의 삶이어야 하느냐, 어느새 하의 육성으로 되살아나 소설을 읽는 내내 또 다른 울림이 되었다.

 

분명 허구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적한 선사 시대의 생동감이 살아난 것은 활용된 배경이나 도구들이 철저한 고증에서 비롯된 까닭일 것이다. 실제 신석기 시대 전후로 기후 변화가 심했으며 예고 없는 지진 등이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진 때문에 탈출에 성공한 여우주둥이의 귀향, 이 등극한 이후 샘물에 비추인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귀신들린 듯 천지가 요동친 장면이나 꽃다지가 몸에 품었던 돌송곳, 여우주둥이가 가지고 온 참돌, 조개무지, 움집, 돌도끼, 큰볕터의 들판에서 멋대로 자라난 조나 피에 대한 묘사는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당시의 생활상을 머릿속으로 재현하는 데 싱싱한 매개체가 되었다.

 

더불어 어느 순간부터 소설 자체에서 쓰인 활자들이 백지에 새겨진 암각화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듯 이름들을 절로 되뇌었다. 하, 갈,, 탁, 단, , 꽃다지, 큰 주먹, 그리매, 매발톱, 개미취, 마타리, 솔나리, 은방울꽃, 얼레지, 여우주둥이, 들개코, 올빼미눈, 늑대귀, 가람돼지, 수리부리, 각시붓꽃 등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옛 한글과 우리말로 이루어져, 입에 착착 감기는 리듬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처음 <반구대>를 읽을 때만해도, 그동안 세계사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한반도의 선사시대를 소설로 구현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자긍심을 널리 깨우치는 계기가 되리라고 내심 확신했었다. 그러나 꽃다지, 그리매, 큰 주먹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니, 괜한 지깨비였다는 생각이 차오른다.

 

반구대 암각화가 품은 상상 속 이야기를 뒤쫓다보니, 단순히 오늘의 생존과 안녕을 바라는 편벽진 착념의 발로로 생과 역사를 이해할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생은 계속되며, 사랑과 아픔, 배신과 충성, 절교와 협력, 미움과 용서, 단념과 용기를 품은 인간 군상들의 실존과 어우러짐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생존이 아니라, 공존,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의미에서 다시 되새겨보는 역사 인식의 전환. 반구대 암각화가 단순히 한반도의 유물로 읽혀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찾는다면, 소설 <반구대>가 그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5. 독후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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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니체 How To Read 시리즈
키스 안셀 피어슨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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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철학은 기존 사상의 정반대 지점으로 비집어 올라가 기어이 비틀어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빛과 꿈, 예언과 밝음, 그리고 여기에서 기인하는 가현성, 이해가능한 지식, 중용과 관련된 아폴론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무정형의 흐름, 신비로운 직관, 극단과 관련된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를 상정하면서 아폴론적인 세계는 개별자를 대변하고, 디오니스소적인 세계는 개별성이 해체되어 자연의 근본적인 힘과 에너지로 녹아들어 그 안에서 기쁨을 향유한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비극의 영웅들은 아폴론적인 세계 속에서 시련과 고통을 분투하는 개별자로 그려지고 있지만, 실상은 개별화의 고통을 겪는 디오니소스적 영웅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자연으로 융합된 하나의 상태일뿐 개별성은 모든 악의 원인이므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즉, 우리의 고통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개인화되어 있고, 이를 인식하면서부터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의 비극이 감정을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주장했지만, 니체는 비극이 주는 공포와 연민은, 파괴로 인해 얻게되는 디오니소스적 숭고미를 통해 디오니소스적 세계로 편입되는 생의 기쁨을 선사하면서 인간의 의지를 억압하고 부정하는 허무주의를 극복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통해서는 절대 진리에 대하여 정면으로 부정한다. 니체는 형이상학적 철학의 결함을 지적하면서, 사물의 기원은 그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 물자체의 개념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는 승화과정을 통해 보여지는 일종의 현상이라고 단언한다. 특히 기원과 끝을 찾으려는 확실성에 대한 철학의 시도를 종교의 잔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우주의 기원, 목적 등을 묻는 질의는 윤리와 종교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리의 시선을 왜곡시키므로 이러한 질문에 맞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의 개발이 아니라 새로운 철학자들이 도래하여야한다고 주장한다.


<선악을 넘어서>, <우상의 황혼> 등을 통해서 니체는 심리학과 과학의 초보 단계에서 등장하는 이성의 언어가 특정한 방식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습관을 갖게 하며, 이 때문에 세계를 허구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할 중립적인 용어를 갖지 못한 인간의 결함으로 인해 진실에서 벗어나 비이성적 개념으로서 도덕과 형이상학을 찬양해왔다고 지적한다.


<즐거운 학문>, <이 사람을 보라> 등에서 니체는 신의 죽음을 언급한다. 니체는 세계 너머에 대한 환상이 현실의 삶과 그릇된 관계를 맺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상징적인 신, 기독교적인 신은 죽었으며, 우리가 천착한 구조와 질서, 즉 신학적, 철학적 신념 등도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우주를 유기체나 기계로 보는 것, 삶을 죽음에 대립되는 것으로 보는 것, 신에 대한 허구를 물질에 대한 숭배로 대체하는 것 등에 대하여 경계할 것을 강조한다. 현세를 경멸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영원한 세계를 갈구하는 대신 영원한 세계를 우리가 늘상 살아내는 유일한 현실에 아로새겨야 한다고 덧붙인다.

 

정치적 환상으로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삶을 다시 한번 살기 원하는 태도로 살아내는, 현재와 똑같은 삶이 반복되는 영원회귀의 개념을 삶에 적용할 것을 강조한다.

 

배후와 이면을 살피고, 의문부호와 오해를 잔뜩 지닌 채 막연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들을 분석해야 한다고 믿은 니체는 집요하게, 그러므로 자기파괴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부정과 극단에 섬으로써 철학의 지평이 넓혀왔다. 그의 방식을 차용하자면, 인간의 개별성이 사라지는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지향한다면 도대체 영원회귀의 개념까지 펼치면서 개별적 생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차선은 하루 빨리 죽는 것이라는 섬뜩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닌가 싶은.

 

모든 만물은 생성해왔으므로 역사적으로 철학하기가 필요하다고 단언했는데,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정과 극단을 넘나들며 자기 모순과 자기 파괴의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댄 그의 삶의 이력을 분석함으로써 그를 알아가는 데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생각도 든다.

 

철학교수 출신인 저자의 장점은 니체의 저작을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그의 사상 읽기를 독려하는 데서 드러난다. 저자가 걸러내고 그려낸 니체가 아니라 니체 자신의 육성으로 그의 철학을 표현하도록하는 기술 방식은 친철하지는 않지만, 편견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서술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철학의 문외한들에게는 저자의 전문성을 살려 니체 철학의 개요를 간단하게라도 저자의 후기 방식으로 서술하여 삽입했다면 이해도와 가독성을 훨씬 높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슬로터다이크는 니체가 자기 정당화를 위해 자기중심적 논리에 빠져 있으며 스스로가 위대한 원한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중략..니체는 끊임없이 타인에 의해 찬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를 취하거나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못하는 동시대인들 때문에 스스로를 위한 찬가를 불러댄다는 것이다. 니체는 계속해서 자신을 착취하고 자신의 활력과 지적 능력을 명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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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의 감정수업 -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감정 선택 훈련
게리 D. 맥케이. 돈 딩크마이어 지음, 김유광 옮김 / 시목(始木)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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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열풍 이후 실제 감정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안내하고 실습하도록 하는 일종의 지침서격인 책이다.

 

트라우마는 비합리적인 사고 체계를 거쳐 일종의 목적을 가진 감정이 만들어낸 허상일뿐이므로, 트라우마는 없다는, 아들러의 관점을 성실히 반영한 실용서답게 매 장마다 기본 전제에 충실하다.

 

첫 장에서는 감정은 선택할 수 있으며, 일상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감정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특히 감정은 평소 우리의 믿음이나 관점이 결정하는 것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감정이 변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바꾸어말하면 관점의 스펙트럼을 넓혀야하고,  현재 시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여러 맥락과 중층의 진실들이 교차하며 표출된 결과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강조한다.

 

또 감정 선택의 8가지 원칙으로, 감정과 생활 양식 탐구하기,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닫기, 감정의 목적을 인식하기,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언어습과 바꾸기, 감정을 바꾸는 구체적인 계획 세우기 등을 제시하면서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더 고차원적인 인지체계가 작동해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다양한 감정의 목적이나 그러한 감정에 쉽게 노출되는 유형을 분석한 대목은 흥미롭다. 가령 분노는 타인이나 상황을 통제하려 하거나 경기에서 승리의 열정을 고취하기 위하여, 그리고 상대에게 복수하거나 억울한 경우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우울의 궁극적인 목적은 '책임회피'이며 부정적인 사고 방식,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사람,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높은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등에서 발현율이 높아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죄책감의 목적은, 본인을 스스로 처벌해 심리적 자유를 얻기 위함, 의무를 저버리려는 목적,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함.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표시하거나, 분노를 감춤 또는 자신의 선의를 입증하기 위함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불안은 위험요소는 과대평가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과소평가할 때 나타나며 나쁜 일이 벌어진다는 가정하에 행동할 때 생긴다는 점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아들러 관점을 반영하여 기쁨이나 행복도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ACE 방법을 활용하라고 제시하는데, A(인정), C(선택), E(실행)의 3가지 절차가 그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목적과 믿음, 감정을 선택한 후 새로운 선택을 위한 행동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실용서답게 아들러 철학의 기본을 소개하기 보다는 실제 감정을 다루는 기술에 대하여 집중하고 있는데, 다양한 감정의 목적과 유형을 소개하고, 실천적인 전략을 제시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실천하고 실습하는 부분이 더욱 구체적이어야 저술의 소기의 목적에 더욱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같은 상황, 같은 감정을 두고 프로이드나 아들러식의 접근법으로 다룰 때 어떤 점이 달라지겠는지 비교하는 부분이 있다면 더 깊이 있는 저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낀다면, 결국 관점이 감정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은 나의 관점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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