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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삼성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님께 24가지 질문을 보내게 되고, 이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적임자로 여겨진 정의채 신부님께 건네진 편지의 복사본을 받게 된 후 차동엽 신부님이 질문을 재구성하여 답한 일종의 질의 응답서라고 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신은 왜 우리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었는지, 종교는 과연 필요한지, 영혼은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지, 신앙이 없어도, 악인도 부귀를 누리는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지, 기독교 믿음이 강한 공동체에서 왜 범죄가 많고 공산주의가 득세할 수 있었는지 등 죽음에 직면해 평소 궁금해 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이 질문들에 직독직답하는 대신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질문을 Big Q로, 동시대인으로서 느끼는 질문을 Real Q로 표현하고 생명의 몸살, 고독한 영혼의 초월 본능, 내 인생의 비밀 코드, 피할 수 없는 물음 등 4가지의 소 주제 하에 질문을 재구성하고 배치해 답변을 이어나간다.
생명이 깃들면서 시작되는 고통, 불안과 두려움, 분노, 선악과 부의 누림 등을 먼저 훑은 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마주하는 고독, 사회적 현상 등을 분석한다. 이후 신과의 조우를 추적하면서 삶의 의미와 연계시킨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앞두고 천국과 지옥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정 자유로운 삶과 지구의 종말 등 인생과 세상의 종결 지점에서 파생하는 절박한 질문들에 대해 응답한다.
공학도 출신의 신부님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인과론식 현실적 실례와 초월적 신앙을 적절히 조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각 장의 답변을 채워나간다.
다른 여느 신학 서적과 달리 고통의 문제를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고통의 문제는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3차원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겪는 자연 발생적인 결과라고 규정하면서, 다만 고통은 보호, 단련, 정신적 성장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고통 속에서 희망을 품고 희망을 말할 때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힘들 때는 잠깐 짐을 내려 놓고 정지 시간도 누려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현실을 바꿀 수 없어도 현실을 보는 눈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불안과 두려움은 희망을 가진 인간이 가진 특권임을 선언하면서 인간이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불행을 겪더라도, 이것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부에 대하여는, 부는 악이라고 단순히 인식하는 것이 아닌, 선을 행할 기회로 간주해야 하며 행복은 발생하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니기에 행복을 먼저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또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물질로만 채워질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점을, 인간 존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설명한다.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학문의 깊이와 결과에 빗대어 숱한 역사의 심판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은 종교의 기능과 진정성을 일축하는 어리석음에 선동되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하게 주장한다.
천국과 지옥, 부귀한 악인의 득세 등과 관련하여 파스칼의 갈무리도 들려준다. 천국과 지옥을 확률로 생각하도록 권고하면서, 죽어 보니 천국도 있고, 하나님도 있다면 생전에 어떤 편을 선택해야 지혜로운 것인지 냉정하게 살피도록 한다. 범죄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조사하면 비종교인에게서 범죄 비율이 높게 나온다는 통계를 들면서 오히려 종교로 인하여 범죄가 억제되고 있는 측면이 있음을 실증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목적론적, 우주론적 논증을 소개하면서 칸트의 실천이성을 빌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특히 물리학을 예로 들어 우주는 현재 11차원까지 파악되었다는 사실과 대비하여, 3차원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체험가능성과 파악불가능성의 괴리가 무한대로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신의 창조는 자연 세계를 통해서, 또 죽음의 현장에서 남긴 증언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점,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수단 가치가 아니라 목적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창조와 진화에 대한 대담도 흥미롭다. 베이컨의, 약간의 과학은 사람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더 많은 과학은 그를 하냐님께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는 고백이 어우러져 있다.
고통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없다는 본 회퍼의 신앙을 통해, 배신하고 타락할 수 있는 자유의지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역설을 되새긴다.
너무 진중하지 않으면서도 성마르지 않게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해 꼼꼼하게 답변하기에, 평소라면 쉽게 사유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기쁨이 있다. 다만, 24가지 질문에 대하여 고지지식할 정도로 순서대로 응답하는 서술 방식은 어떠했을까 싶기도 하다. 질문의 배치와 재구성 방식으로 편집된 탓에 어쩔 수 없이 답변 내용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반, 모반, 심지어 거부까지 감수하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갖는 속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속성상 함께 아파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중략..하나님께서 스스로 고통을 모르면서 인간의 고통에 동참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인간과는 무관한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중략..이를 나치 시대에 암살범으로 몰려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통 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역설입니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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