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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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흩어져 있는 조각을 맞추어 논리적 산물을 획득하는 데 있을 것이다. 다만, 추리의 결과가 진위 여부로 정확하게 판별될 때 희열은 극대화 된다. 존재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은 흡사 추리와 닮아 있는데, 추리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극명하게 갈리는 관점의 교차가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진위 여부를 현세에서 확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때로는 논란이 증폭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지적 호기심을 배가하는 원인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진화론에 회의적이지만,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창조론이 내세우는 창조의 순서와 진화의 차례가 흡사해서 다시 한번 놀라기도 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생명의 시작도 세포가 아니라 우주 대폭발, 빛의 창출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은 어떤 전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


저자는 생각의 출현을 철저하게 진화와 물질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생명 탄생의 기원을 우주에서 출발하여 다시 우주에 빗대어 뇌가 발현하는 생각의 확장, 창조성을 밝혀내고자 한다. 


대칭성이 깨지면서 우주의 외연이 만들어지고 이 때 만들어진 잔류물들이 지구에서의 생명 탄생의 초석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생명의 초연으로 세포가 등장하는데, 단세포들이 모여 다세포가 되고 다세포들은 다시 계통별로 연합해 기능화되었다고 소개한다. 세포들의 역할 구분의 이면에는 DNA가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뇌의 신경 세포는 수초화, 시냅스, 신경전달물질 등의 구조화 및 미세 조정 등을 통해 운동을 명령하고, 감각을 수용하는 최고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 즉 의식의 출현은 철저하게 이러한 뇌세포의 화학적 반응, DNA의 변주, ATP에 의한 에너지 합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운동과 감각으로 축약할 수 있는 거대한 기계적 시스템의 산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을 비롯해서 시상, 편도체, 해마, 소뇌 등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을 해부도나 도표를 활용하여 제시하고,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간추려 소개함으로써 주장의 체계성을 갖춘 것이 무엇보다 탁월하다. 우주의 기원과 물리학의 학문적 성과를 연계하여 창의적 사고의 확장성을 설명한 부분도 인상 깊다. 


좋은 책의 요건이 독서 후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이 책은 그 기준을 가뿐히 통과하지 않을까. 


가장 먼저 드는 질문은 우연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일 것 같다. 우주의 잔류물들이 모여서 우연히 세포를 만들고, 세포들이 진화해 왔다면, 왜 어떤 존재들은 거기에서 진화를 멈추고(?) 더 진화하지 않은 걸까, 혹은 왜 못한 걸까. 


또 단순히 DNA의 변주에서 출발하여 세포들의 화학적, 물리적 반응의 결과물로 의식을 설명한다면 무의식, 양심이나 영혼 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만 범위를 좁혀서 생각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기계적인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의식이 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가, 문화, 환경, 역사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질문과 더불어 통찰을 제공해주는 점도 있는데, 우주의 작은 먼지 하나부터 빛 한 줄기, 나뭇잎 하나, 개미 한 마리까지 생명을 관통하는 그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각 개체의 생명을 넘어서 개체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전체의 생명이 있다는 것, 온생명의 개념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또한 세포의 연대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적 결합이나 연합일 수도 있지만 세포의 각자도생을 연합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 즉 오히려 기계적인 시스템으로 생명을 이해하는 것의 오류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데, <건강의 배신>이 보여주는 면역 세포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생명의 유사성 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 종류가 다르고 계통이 다른데도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각자에게 적합한 일정한 원리와 법칙에 의해 생명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기제가 작동하도록 하는 화학, 물리적 반응을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여튼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저자의 꼼꼼함과 바지런함 덕분에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다양한 학문의 현 좌표를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지식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다.  

생명현상 역시 대칭성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우주 대칭이 깨어져 네 가지 힘이 분화되어 전자기 상호작용이 출현한 후에야 지구 생명현상이 발현으로까지 연결되니까요. 대략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서 태초의 생명현상이 일어났죠. 그 무렵에 생명 진화 역사에서 중대한 랑데부가 하나 있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커다란 아메바성 생명체와 세포 내 공생 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세포 생명체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죠.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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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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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상당 부분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삶'에 대한 소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각종 생존에 대한 분투기로 가득 차 있다. 정치, 경제, 건강, 사회, 문화의 모든 소식은 추적하면 결국 생과 접목되어 있다. 물론 죽음의 소식도 분명 존재하지만, 삶의 소식처럼 다채롭고 구체적이지 않다. 물론 문학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죽음은 흥미로운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대게는 죽음은 '삶의 종결'이라는 큰 맥락에서만 주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선택하면서, 모두가 경험하고, 경험해야 할 죽음이지만, 이토록 죽음에 대해서 무지할 수 있을까, 어떤 소소한 각성 같은 것이 일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물리적인 지면 탓에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동기화는 충분해지는 느낌이다. 


저자는 법의학자로서 살아오면서 고민한 내용을 담백한 어조로 전달한다. 책은 크게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우리는 왜 죽는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법의학이란 무엇이며 법의학자는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검시와 부검을 통해 사망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만이 아니라 검찰, 경찰, 법원, 보험 회사 등의 자문을 맡는다는 점이 새롭다. 철저하게 증거로 대변하는 학문이다 보니 사건의 추적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부침도 수긍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선구자적 역할을 자처한 몇 몇 학자로부터 법의학 분야가 발전해온 과정을 읽다 보면 소명 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선진국과 비교하여 열악한 기반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2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간단하지만 죽음의 역사를 통해 어떻게 죽음을 의학으로 일임하게 되었는지 설명한 대목이다. 과거 영혼 불멸과 필멸 등 죽음을 영혼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과학이 발달하면서 주로 죽음을 유물론적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의학이 주도하게 된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의 주도권을 의학이 가지면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영, 혼, 육의 존재에서 육의 존재로 축소되고 어떤 기계의 소멸처럼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은 여전히 우리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에 죽음에 대한 문제를 왜 의학에만 떠넘겨서는 안되는지 어떤 단초를 발견한 느낌이다. 


3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죽음 중에서도 특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의 문제, 연명의료, 죽을 권리,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해 기술한다.


일본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써 유행하는 종활, 근엄한 장례식이 아니라 유쾌한 장례식을 준비하는 저자의 준비, 과학의 발달로 더는 죽을 수 없는 세대의 도래 등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준비와 수용에 대한 부분이 더 할애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독사를 넘어서 무연고사가 많아지고, 국회에서는 사회적 개념 확립과 지원을 위해 고립사라는 법적 용어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죽음의 양태마저 누군가만 향유할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고 할까. 

모두가 한 사람 개인으로서의 죽음이지만 이 한 사람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어떤 죽음은 그 죽음으로써 사회적인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살인 사건에서의 죽음 또한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드러내면서 삶의 가치를 새롭게 질문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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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여정
존 번연 지음, 박영호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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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천로역정>은 운 좋게도 몇 번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주일 학교 때도 간단한 내용을 접했고, 몇 해전에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보기도 했다.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가장 많이 인쇄된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우화 형식의 내용이라는 점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가장 어리석은 편견인데, 천성을 향해 가는 주인공의 여정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에 우화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를 진득하게 읽어볼 생각을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읽지 않을 수 없는 매가지에 몰린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빨리 읽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동시에 지금이라도 읽게 된 행운에 대한 감사가 흘러나왔다.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자신이 겪은 회심의 과정을 바탕으로 구성한 일종의 우화로, 청교도 운동에 열정적이었던 그가 감옥 생활을 하면서 쓴 책이다. 1부에서는 크리스천의 천국을 향한 여정을 다루고, 2부는 그의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네 아들의 순례길에 집중한다. 


멸망의 도시에 살던 크리스천은 복음 전도자를 만나 진노를 피하라는 안내를 받고 주위에 설파하지만 가족까지 그를 비방하자 홀로 고민하다가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다. 처음에는 무줏대와 외고집이 그와 함께 호기심에 함께 하지만 이내 그들은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크리스천은 혼자서 짐을 잔뜩 지고 길을 떠난다. 여정의 시초에서 만난 세상의 지혜자는 그에게 짐을 벗기 위해서는 도덕을 찾고 율법이나 예절을 고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그 날카로운 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면서 다시 복음 전도자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는 그의 안내에 따라 좁은 문에 다다라 문을 두드리고 거기서 율법과 복음의 은혜가 어떤 관계인지 청소를 통해 배운다. 율법이 닦을 수록, 청소를 한다지만 먼지를 일이키는 것과 같다면, 복음은 먼지를 가라앉히는 물과 같다는 점을 듣게 된다. 다시 힘을 가다듬은 그는 구원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이르고 거기에서 짐을 벗게 된다. 이후 멸망의 도시의 왕인 아볼루온과의 결투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그는 신실을 만나 함께 허영의 시장에 가게 된다. 모든 것이 거짓 진리의 허영 뿐인 그곳에서 유일하게 진리를 구하다가 그들은 엉터리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고 신실은 사형 선고를 받는다. 처형된 신실과 달리 기적적으로 그곳을 빠져 나온 크리스천은 이후 소망을 만나게 되지만 경계심이 풀려 넓은 길로 갔다가 의심의 성에 사는 절망 거인 부부에게 걸려든다. 거기서도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게 되는데, 기쁨의 산에서 지식, 경험, 경계, 성실의 목자들을 만나 천성의 일부를 보게 된다. 


이후 무지, 무신론자 등을 만나면서 주춤하지만, 끝끝내 천성의 바로 앞 기쁨의 땅 쁄라에 이르고 요단 강 앞까지 이른다. 믿음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요단강 앞에서 그는 두려움에 빠지지만 소망의 확고하고도 끈질긴 도움으로 천성에 입성하게 된다. 


크리스티아나 역시 남편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천성으로 향해 나아가는데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 은밀한 도움을 받아 끝내 천국에 이르게 된다. 


천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물은, 존 번연이 실제 신앙 생활 가운데 만났던 이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신앙을 망치고 열매 맺지 못하도록 하는 다양한 양태에 이름을 붙여 신앙의 성장 과정 중 어디에서 출몰하게 되는지 정확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더욱이 나의 신앙은 지금 어떤 양태로 변질되고, 어떤 방해를 받고 있는지 따끔한 경고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그 바탕에는 다양한 장면마다 그에 맞는 성경 말씀과 인물들의 양태가 소개되어 있기 때문. 


이 책의 강점은 소명, 중생, 회심, 믿음,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로 이루어진 구원의 서정을 말씀을 따라 분명하게 그려내면서도 우화 속에 나타난 다양한 인물이 나타내는 의미를 분명하게 분석하고, 신앙의 제 문제들을 함께 토론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책의 말미에 연구 지침서를 실었다는 것이다.


또 존 번연의 일대기를 세밀하게 수록하여 이 책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존 번연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소중한 믿음의 대가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이를 모두 엮어 명작 탄생으로 이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승전결 형식의 스토리가 뚜렷하지 않아 내용을 한꺼번에 각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책의 서두에는 크리스천의 여정을 그림으로 그려 제시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각 장이 어느 지점, 어느 좌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면인지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성도가 읽어야 할 기독교 고전을 넘어서 인간이 육적인 존재에서 영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한편, 인간의 실존이 어떤 상태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데서 출발하므로 왜 이해와 논리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저는 제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무거운 짐으로부터 편안함을 얻는 것입니다...중략..저쪽을 보시오 저 도덕이라는 마을에는 율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매우 판단력이 뛰어나고 당신처럼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짐을 벗도록 돕는 능력이 있어 명성이 뛰어난 분이지요. ..중략 크리스천은 율법 씨의 집을 찾아가 도움을 얻기 위해 길을 바꿨다. 그런 그가 힘들게 언덕까지 갔을 때 그 언덕은 매우 높아 보였고 길가에 솟아 있는 언덕 측면이 상당히 돌출되어 있어 언덕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더 앞으로 나아가기 두려웠다...중략..그가 길을 바꾸어 오는 동안 등에 진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갑자기 언덕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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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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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삼성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님께 24가지 질문을 보내게 되고, 이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적임자로 여겨진 정의채 신부님께 건네진 편지의 복사본을 받게 된 후 차동엽 신부님이 질문을 재구성하여 답한 일종의 질의 응답서라고 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신은 왜 우리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었는지, 종교는 과연 필요한지, 영혼은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지, 신앙이 없어도, 악인도 부귀를 누리는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지, 기독교 믿음이 강한 공동체에서 왜 범죄가 많고 공산주의가 득세할 수 있었는지 등 죽음에 직면해 평소 궁금해 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이 질문들에 직독직답하는 대신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질문을 Big Q로, 동시대인으로서 느끼는 질문을 Real Q로 표현하고 생명의 몸살, 고독한 영혼의 초월 본능, 내 인생의 비밀 코드, 피할 수 없는 물음 등 4가지의 소 주제 하에 질문을 재구성하고 배치해 답변을 이어나간다. 


생명이 깃들면서 시작되는 고통, 불안과 두려움, 분노, 선악과 부의 누림 등을 먼저 훑은 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마주하는 고독, 사회적 현상 등을 분석한다. 이후 신과의 조우를 추적하면서 삶의 의미와 연계시킨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앞두고 천국과 지옥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정 자유로운 삶과 지구의 종말 등 인생과 세상의 종결 지점에서 파생하는 절박한 질문들에 대해 응답한다. 


공학도 출신의 신부님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인과론식 현실적 실례와 초월적 신앙을 적절히 조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각 장의 답변을 채워나간다. 


다른 여느 신학 서적과 달리 고통의 문제를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고통의 문제는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3차원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겪는 자연 발생적인 결과라고 규정하면서, 다만 고통은 보호, 단련, 정신적 성장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고통 속에서 희망을 품고 희망을 말할 때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힘들 때는 잠깐 짐을 내려 놓고 정지 시간도 누려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현실을 바꿀 수 없어도 현실을 보는 눈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불안과 두려움은 희망을 가진 인간이 가진 특권임을 선언하면서 인간이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불행을 겪더라도, 이것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부에 대하여는, 부는 악이라고 단순히 인식하는 것이 아닌, 선을 행할 기회로 간주해야 하며 행복은 발생하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니기에 행복을 먼저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또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물질로만 채워질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점을, 인간 존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설명한다.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학문의 깊이와 결과에 빗대어 숱한 역사의 심판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은 종교의 기능과 진정성을 일축하는 어리석음에 선동되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하게 주장한다. 


천국과 지옥, 부귀한 악인의 득세 등과 관련하여 파스칼의 갈무리도 들려준다. 천국과 지옥을 확률로 생각하도록 권고하면서, 죽어 보니 천국도 있고, 하나님도 있다면 생전에 어떤 편을 선택해야 지혜로운 것인지 냉정하게 살피도록 한다. 범죄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조사하면 비종교인에게서 범죄 비율이 높게 나온다는 통계를 들면서 오히려 종교로 인하여 범죄가 억제되고 있는 측면이 있음을 실증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목적론적, 우주론적 논증을 소개하면서 칸트의 실천이성을 빌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특히 물리학을 예로 들어 우주는 현재 11차원까지 파악되었다는 사실과 대비하여, 3차원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체험가능성과 파악불가능성의 괴리가 무한대로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신의 창조는 자연 세계를 통해서, 또 죽음의 현장에서 남긴 증언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점,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수단 가치가 아니라 목적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창조와 진화에 대한 대담도 흥미롭다. 베이컨의, 약간의 과학은 사람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더 많은 과학은 그를 하냐님께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는 고백이 어우러져 있다. 


고통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없다는 본 회퍼의 신앙을 통해, 배신하고 타락할 수 있는 자유의지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역설을 되새긴다. 


너무 진중하지 않으면서도 성마르지 않게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해 꼼꼼하게 답변하기에, 평소라면 쉽게 사유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기쁨이 있다. 다만, 24가지 질문에 대하여 고지지식할 정도로 순서대로 응답하는 서술 방식은 어떠했을까 싶기도 하다. 질문의 배치와 재구성 방식으로 편집된 탓에 어쩔 수 없이 답변 내용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반, 모반, 심지어 거부까지 감수하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갖는 속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속성상 함께 아파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중략..하나님께서 스스로 고통을 모르면서 인간의 고통에 동참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인간과는 무관한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중략..이를 나치 시대에 암살범으로 몰려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통 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역설입니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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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연습 : 국내 최초 완역본 - 단조로운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로렌스 형제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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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궁극적인 결과는 성화라고 얼핏 듣기는 했지만, 성화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늠하기에는 일천한 믿음을 갖고 있기에 항상 그 구체적인 실상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물론 성경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성화의 모습을 어느 정도 추상할 수는 있었지만, 일상에서 하릴없이 부유하고 있는 습관적인 또는 문화적인 믿음(?)을 관통하는 어떤 모범을 마주하고 싶은 것은 모태 신앙을 가진 나에게는 어떤 갈망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로렌스 형제는 나의 오랜 소원을 한번에 성취해 준 본보기인 동시에 나의 믿음이 표류하는 까닭을 정확히 짚어주는 메트로놈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이 책은 맨발의 까르멜수도회에서 부엌 일이나 잡다한 일들을 맡아 행하던 로렌스 형제와 드 보포르 대수도원장이 주고 받은 편지, 그리고 로렌스 형제가 남긴 메모 등을 모아 그의 사후에 출간한 것으로, 어떻게 소박하고 굳건한 믿음으로 일생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임재를 맛보는 영광된 삶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로렌스 형제는 가난한 가문에서 태어나 잠시 전쟁에 나가 군 복무를 하기도 하고, 은행가의 사환으로 근무하기도 했지만, 세속을 떠나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수도원에 귀의한다. 세상의 이력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그는 수도원에서도 허드렛일을 맡아 처리하는 데 그의 믿음에 수도원장은 물론 주변 성도들이 감탄한다. 한마디로 그의 믿음은 꾸미는 말이나 위선적인 행동을 벗어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않은 방법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으며, 믿음의 실력은 결국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내가 아니라 한나님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며 하나님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가르친다. 


로렌스 형제의 글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모든 믿음의 발로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일 것 같다. 주인의 말을 듣는 종의 위치에서 수행하는 복종을 넘어서서 사랑하기에 나를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순종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의 행적을 쫒으면 당연하게 터득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그가 골방에 앉아 몇 시간 씩 기도하는 대신 일상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시라면 이 상황에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묻는 질문보다 오히려 그의 대화는 수많은 기쁨과 감사, 영광스러움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잇었다는 점. 


심리학적 긍정성과 다른 점은, 그는 싫고 좋은 것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하나님께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모든 언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그는 그의 육체적 고통과 그에 대한 자신의 대응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고민하느라,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정말 아픈 것인가 의심할 정도였다니 영성이 육체의 고통에만 몰입하지 않도록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계시고 오직 믿음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는 것에 익숙하라는 당부와,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를 정화시키시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의 문을 두드리는 한편 하나님을 아는 것을 본분으로 삼으라는 격려는 잠잠하면서도 강력한 일침이 된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는 불신앙과 죄악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대화해야 하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급함과 충동성을 버리고 부드럽고 차분하게 행동하며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하며 나의 모든 수고를 받아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이러한 모든 행위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항상 어떤 미덕이 필요하고 어떤 죄악에 쉽게 넘어지는지 주의 깊게 살피라고 다진다. 


하나님을 혼자 계시게 하지 말라는 역설에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진다. 그는 천상의 보좌를 버리고 죄인과 함께 하고 싶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기에, 그 믿음의 행보는 도전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기의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시때때로 너무나 적은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각종 규율과 행실에서 믿음을 취하는 대신, 날마다 변덕스럽게 오락가락하는 수준 낮은 헌신에 기대는 모습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기본 정신이요, 아주 높은 수준의 완전함으로 우리를 인도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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