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젠더 수업 창비청소년문고 27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젠더'가 개념화되고 그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면서, 청소년이 성의식을 갖는데도 일종의 교과서격인 가이드가 필요할텐데,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그 요구에 충실하게 부응하고 있다.

 

사회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혼선과 혼돈의 물결이 범람하는 가운데, 젠더교육이 지향하는 철학은 물론 알아야할 내용도 쉽게 서술해 가독성이 좋다.

 

저자는 여자와 남자는 얼마나 다를까, 다이어트에서 내 몸을 지켜 줘, 사랑은 언제나 낭만적일까, 모성은 위대하다 우리 엄마만 빼고, 누가 왜 무슨 일을 해야할까, 우리 가족은 팀워크가 필요해, 혐오의 말은 그만 모두가 나답게, 로 소주제를 열거하고, 각 장마다 그동안 우리가 지녔던 편견, 고정관념을 깨는 데 집중한다. 중간에 제시되는 연구 결과나 사회적 삽화들은 이해력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남녀의 성은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며, 복잡한 미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상품화되고 획일화되는 미적 욕망 속에서 씨름하는 몸의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역사와 시대에 따른 사랑의 담론과 연애 각본에 따른 사랑은 청소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신선하다. 본능적 모성의 강조가 가져오는 폐해나, 남녀 역할 구분이 아니라 남녀 협업이 필요한 가족공동체의 삶, 젠더박스를 넘어서는 나다움 등은 각성하도록 도전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다만, 독자 입장에서 욕심을 내자면, 젠더의 관점을 넘어서는 성의식도 일부분 소개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가령 생물학적인 관점이나, 융처럼 남녀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적 관점도 대조함으로써 젠더 이상의 그 너머를 종합하는 부분이 할애되었더라면 뭔가 성의식의 지평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또 젠더의 탄생이 필요했던 역사적, 사회적 맥락도 짧게나마 언급되었더라면 왜 청소년의 성의식 구성에 있어서 젠더가 강조될 필요성이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더 탐구하도록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때때로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함, 또는 다른 옷을 입고 싶은 답답함을 느낄 거예요. 그런 불편함과 답답함을 억지로 모른 척하지는 마세요.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진짜 자기 모습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 P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펜하우어 인생론 범우고전선 14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1991년 2월
평점 :
품절


위로와 위안, 행복과 긍정이 넘쳐나는 시대야말로, 쇼펜하우어의 직설적인 일갈 앞에 전면으로 마주서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알콩달콩 확실한 즐거움을 찾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고 자위할 때, 벼락같은 호통으로 우리의 삶은 단지 맹목적인 생의 의지가 확장된 구현의 한 형태일 뿐이라는 철학자의 단언은, 사라져가는 통증마저 다시 명징하게 되살려낼만큼 예리하다.

 

쇼펜하우어의 인생관은 분명한데, 삶은 즐거움을 누리도록 우리에게 부여된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고역으로 갚아야할 의무나 과업으로 인식해야한다는 것이다. 파리가 태어나는 것은 거미에게 잡혀 먹히기 위해서이며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번뇌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라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면서, 인간이란 생의 의지가 맹목적으로 드러난 욕구 덩어리라고 명료하게 정의내린다.

 

인간의 삶이란 궁핍과 권태의 양극단을 오가는 것과 다름 없으며, 특히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이 결국은 육체적인 쾌락과 고통을 근간으로 이루어지며, 동물처럼 간단하게 현재적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다보니 쾌락을 추구한다면서 중독에 이르고, 필요 이상의 망상적 쾌락을 꿈꾸면서 야심, 명예 등을 쫓아 한 무더기의 권태를 부여받는다는 것. 압권은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실상 행복하지 못하며, 누구나 거의 파선당해 항구로 돌아오면서 죽게 되는 마당에 이르면, 행복했던 일이든 불행했던 일이든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주장.

 

그는 결국 식욕과 성욕이 인생의 요란스런 소동의 기저를 이루는 두 축이며, 거기에 권태가 부수적으로 따를 뿐이라고 간결하게 정리한다.  사랑에 대해서도 다음 세대의 생산이라는, 생의 의지가 갖는 목적은 감추어져 있다보니, 인간은 사랑의 욕구 충족을 위해 자유 의지를 발현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결국은 생의 의지에 따르는 무의식적 노예가 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평생 미혼이었던 철학자는 개보다도 여자에 대해 낮은 평가를 내리는데, 여자의 미덕은 우매하고 근시안적이어서 큰 어린아이와 같을 뿐이며 이성의 힘이 약해 남자보다 현재에 더 충실하다는 관찰을 덧붙인다. 흥미로운 점은 남편의 신분이나 간판을 내세우는 이유는, 여자들이 누구나 할 것없이 가사에 종사하고 있어 피차 비슷한 처지에 있다보니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어떤 남자의 사랑을 받고 있느냐 밖에는 차별점이 없다고 비꼬기도 한다. 위대한 철학자가 편견에 사로잡혀 주체적으로 독립된 여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이러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의 죽음이 자연에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는 점을 기억해야한다면서, 죽음으로 명멸하는 것은 형상일 뿐, 우리 속에 숨어서 끊임없이 작동하고 활동하는 의지 속에 우리가 다시 깃들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쇼펜하우어는 특히 음악을 찬양하는데, 단지 현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 자체를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극찬한다. 음악은 의지의 몸부림을 표현하는 것으로, 음악을 듣다보면 자신의 생애가 어떤 영원한 꿈이고 죽음은 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고 고백한다.

 

쇼펜하우어의 위대함은, 아마도 고통의 의무로서 부과되었다는 삶의 의미를 견고히 파헤친 까닭일 것이다. 그는 불행과 궁핍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고통 속에 놓인 인간으로서 서로를 인식하게 되면, 인간은 설사 피해를 입힌 사람이 있더라도 오히려 동정하게 되며, 이 의식이 확장되면서 모든 생물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도 확대될 수 있다고 풀이한다. 특히 세계와 인생의 고통과 번뇌를 깨닫게 되면 오히려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고 확고한 안식, 내적 명랑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절망의 나락에 부딪히면서, 마침내 살려는 의지가 피워낸 모든 것이 허상임을 깨닫게 될 때 진정한 심적인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것.

 

일부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면도 있지만, 인생의 대전제를 역전시킴으로써 다시 딛고 일어서는 힘을 부여하는 매서운 훈계는, 쓴 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통과 고뇌를 받아들이고, 한계를 긍정하며 명멸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현재에 충실하도록 하는 쓴 소리야말로,공허한 긍정, 들뜬 행복론을 끌어내리는, 진정한 격려와 힘이 되는 철학이 아닐까.

세계의 영: 여기 네가 고생을 달게 받아야 할 일이 있다. 너에게는 거기에 정력을 기울이는 것이 곧 생존하는 것이 된다. 다른 모든 생물도 그렇지만. 인간: 그런데 내가 대체 생존에서 무엇을 얻고 있단 말입니까? 생존을 요구하면 궁핍에 시달리고, 요구하지 않으면 권태에 사로잡힙니다. 나에게 이런 고역과 번뇌를 주면서 어찌하여 그 대가는 이처럼 보잘 것 없습니까?...중략..세계의 영: 나는 잘 알고 있다. (옆을 돌아보면서) 저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 줄까. 생존의 가치는 오직 그를 타일러 그 생존을 원치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그가 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미리 생존 자체로부터 예비적인 단련을 받아야 한다. - P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 남경태의 48가지 역사 프리즘
남경태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수많은 책이 출간되고 있지만,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독자에게 신뢰를 제공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므로 다소 딱딱한 인문학의 껍질을 손수 벗겨내어 속살을 먹기 좋게 잘라 융숭하게 대접하는, 근사한 기술을 지닌 저자의 소중함은, 떠나간 자리를 더욱 짙은 그리움으로 물들게 한다. 둔탁한 책상에서 거대한 암기 덩어리들로 다가왔던 학창 시절의 역사를,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교양의 분야에 걸맞게 배치하고 의미화한 저자의 치열함 덕분에, 몸 편히 기대고 누워 평안한 독서로 역사의 가르침을 탐독할 수 있었다. 새삼 감사하다.

 

역사 시간에 우리의 혁명-항거는 왜 이렇게 족족 실패했는지, 관군 대신 백성들이 직접 나서 싸운 전쟁이 왜 이렇게 많았는지 답답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정치 분야부터 가려웠던 곳을 막힘 없이 긁어주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지배이념을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에게 내면화함으로써 통치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지배자의 권위를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적 의미로까지 확장시켰던 절대성의 철옹성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할까. 삼권분립을 외치면서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기보다는 행정부에 기대어 대통령을 왕처럼 인식하는 우리의 정치 의식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혈통 정치가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참화를 통해 북한의 세습정치, 재벌의 경영 세습 등이 갖는 불안정성, 중앙집권체제의 단일 소유권 독점이 갖는 강고함의 취약점, 불법 쿠테타 정권의 권력욕과 레임덕에 대한 분석도 신랄해서 기억에 남는다.

 

신항로 개척과  금융제도의 발달, 세금을 의무가 아니라 권리의 통로로 인식한 서양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한 동양 사회의 차이점, 계약과 신용에 대한 동서양 인식의 비교, 수탈을 당하면서도 충성을 다하게 한 이념의 배태가 낳은 권력지상 사회의 면모, 분열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자본주의의 본질 등은 경제의 역사가 시사하는 바를 성실히 다루었다.

 

사회를 다루는 장에서는, 상식을 위해 싸운 미국 독립의 혁명 정신, 좌파와 우파의 기원과 공식화의 필요성, 대동단결의 위험성과 파시즘, 중화세계에서 꽃피우는 서열주의,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대하는 섬세한 전환에서 시작되는 강국의 면모, 상하 개념과 역할 배분 개념의 차이가 낳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제도가 아닌 문화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 등을 거론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탐색한다.

 

국제 상황의 변모도 세심하게 다루고 있는데, 서양 문명이 외부로 진출한 방식, 역사 자체의 흐름 속에서 그 경로를 따르는 역사의 전개 방식, UN과 교황의 유사점, 중세 발명품의 운명, 새로운 프레임의 등장과 변혁, 기후변동과 역사, 국경에 대한 인식과 통일 문제, 미국이 강국이 된 이유, 사회주의 등장의 이론과 현실의 괴리 등도 흥미롭다.

 

융합 방식 및 충돌과 정복 방식의 동서양 문명 비교, 노마디즘과 정착민의 정신, 해외 진출의 상반된 방식과 그 결과, 달력과 주권, 중화주의에서 비껴난 일본의 독자적인 역사, 진리와 천리의 철학 비교, 고전의 해체와 독해, 심층을 바로보는 안목과 구조주의 인식, 사용가치-교환가치-기호가치의 개념, 신학과 과학의 분리, 종교의 첨단성, 예술과 상업성, 호모루덴스의 중요성은 문화를 형성한 역사의 근간을 또렷이 보여준다.

 

교육을 관통하는 역사의 프리즘은 대학입시와 과거제, 대학 등록금 문제, 아비투스와 교육, 소비자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 국사가 아닌 지역사여야 하는 이유 등을 살펴본다.

 

현재의 좌표로 밀어온 역사의 파도는 눈에 쉽게 보이지 않으므로 더더욱  인식하기 어려운데, 저자 덕분에 쉽게 파도 위를 올라타고 파고를 넘나든 느낌이 든다. 언제 또 어디서 저자처럼 쉽고 풍성한 이야기로 채근질하는 글들을 만날 수 있을까.

어느 나라나 사회에 관해 가장 절약적으로 알게 해주는 방법은 뭘까? 다시 말해 최소의 비용과 시간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게 해주는 지식은 뭘까? 바로 역사다...역사에는 생략이나 비약은 없어도 지름길은 있다. 단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어도 전체 과정에 소요되는 기간과 노력을 줄일 수는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역사적 두께를 채우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 P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 대를 위한 동화 속 젠더 이야기 - 남자다움, 여자다움에 갇힌 나다움을 찾아 떠나는 동화 속 인문학 여행 십 대를 위한 인문학
정수임 지음 / 팜파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 성교육용 동화는 이제는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동화를 소재로 청소년에게 접근하는 도서는 여전히 난망한 상황이라, 출간 자체가 반가운 책이다.

 

저자는 국어교사의 전문성을 살려 독서를 기준점으로 삼되, 젠더의 관점으로 동화 읽기를 통해 남학생, 여학생이 겪는 성적 편견, 차별, 성적 대상화 등 다양한 주제를 연계해나간다. 겸손하게도 이 책이 동화를 읽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라는 고백도 덧붙이고 있다.

 

편지글 형식에, 남녀 주인공들과 별 반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언니, 형을 등장시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기술함으로써, 청소년 독자가 읽을 때 도덕적 훈계나 일종의 지침처럼 느껴질 수 있는 심리적 거부감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전반부는 여학생, 후반부는 남학생이 마주하는 젠더 문제를 배치하고, 각 장의 도입부는 동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기술했다. 이후 주인공과 언니, 형이 편지를 주고 받으며 특화된 주제를 확장해가가고, 끝부분에는  각 장별로 연결되는 개념이나 용어를 설명하고 있다.

 

여학생 대상으로는 <라푼젤>, <빨간 모자>, <백설 공주>, <피터펜>, <작은 아씨들>, <선녀와 나무꾼>, <빨간 구두>, <오즈의 마법사>를 소개하고, 각각 여성에게 묻지 않는 인생 목표, 여성의 평화로운 삶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만들어지는 모성애, 여자들이 겪는 문제의 해결사로서의 남자, 나의 것이 아닌 여자의 몸, 허영과 아름다움의 기준, 페미니즘을 주제로 연결한다.

 

남학생 대상으로는 <피노키오>,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 <플란더스의 개>, <푸른 수염>, <80일간의 세계 일주>, <행복한 왕자>, <춘향전>을 소개하고, 남자다움, 결혼에 대한 남자의 환상, 가부장제, 핑크택스, 금기를 지키는 여성과 벌주는 남성, 남성중심의 주인공, 동성애, 사랑에 대한 환상 등을 화두로 삼는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충분한 시사점과 젠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영민하게 조력한다. 다만 여학생과 남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동화에 대해 남학생과 여학생의 시선을 대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령 몸은 어느새, 여자 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나의 것이 아닌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부성애 역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

 

또 추후 개정판이 출간된다면 성별을 떠나서 다양한 주제의식을 뽑아내는 읽기 방식도 제안하면 어떨까 싶다. 가령 라푼젤은 꼭 사다리를 창밖으로 내달아 밖으로 탈출해야만 할까, 라푼젤의 노래에 반해 성안으로 들어온 왕자는 과연 잘못한 것이 있을까, 처럼 기존의 젠더 교육에서 질문하던 것을 뒤틀어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준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은 그것이 옳을지라도,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젠더 교육의 한 방향성일테니까. 누군가 처한 현재의 개개의 삶을 충분히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식에서부터 출발하는 시선, 부가되면 어떨까.

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동화책을 의심하며 읽는다면 어떨까?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고, 세상에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안다면 조금 더 단단하게 세상과 맞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속에서 소개하는 여러 편의 동화들이 그런 길을 열어주었으면 한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와해와 폐허로 남은 사실을 목도할 때 가장 먼저 평안을 찾는 손쉬운 방법은 아마도 때마침 존재한 외부의 적을 찾아내 온통 죄과를 뒤집어 씌우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찾아낸 적이 누가 봐도 탐욕스럽고 흉물스러운 모습이라면 감사하기까지 하다. 치우치기 십상인 주관적인 해석은 타인의 객관적인 인정까지 덧붙여져 견고한 확신으로까지 변모하고 시간의 혜택까지 덧입게 되면 애초부터 희미했던 진실은 흔적을 찾는것조차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눈을 부릅뜨고 사실을 헤집어 비탄한 진실까지 파고드는 것은, 단순한 용기를 넘어서 인간이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는 숭고한 어떤 괴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할 수 있더라도 피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도망치고 싶은 그런 작업을, 똘똘 뭉친 연대의 시선에서 비껴나 홀로 싸워나가는 치열한 탐구를, 뉘라서 도맡고 싶을까.

 

치누아 아체베는 이런 놀라운 작업을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통해 꼼꼼하고 투박하게 묘사해냈다.

 

병약한 아버지-남자답지 못하다는 손가락질을 받던-아래에서 최고의 남자로 우뚝서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가를 이뤄낸 오콩코는 부족의 신념과 문화를 온전히 숭상하고 예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일상의 몸짓, 판단, 예견 등은 모두,  부족의 굳건한 유산으로부터 유래한다. 그 유산을 비판적 성찰 없이 받아들은 그는, 단적으로, 자신이 수양 아들처럼 길러온 이케메푸나를, 자신이 나약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두려워 죽이는 데까지 나아갈 정도다.

 

가장으로써 당연히 가족들을 부양해야하지만, 가풍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때로는 가혹하게 대했고, 두려움, 외로움 등을 숨기며 늘 당당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썼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부족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살던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던 에제우두의 장례식에서 그의 총알이 우발적으로 에제우두의 아들을 쏘면서 마을을 떠나게 된다.

 

처가로 떠난 그는 다시 맨 몸으로으로 일을 하면서 가세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던 중 오콩코가 살던 우무오피아에는 백인들이 새롭게 접근하는데, 많은 남자와 여자들은 새로운 체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이 짓는 교회, 교도소, 경제 활동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게 된다.

 

처음 온 브라운 신부는 우무오피아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신신당부하고 조심하지만, 부족의 일원이었던 에노치는, 백인들의 종교에 경도된 나머지, 우무오피아의 대지의 신을 경배하는 연례의식에서 전령인 에구구의 가면을 벗겨냄으로써 부족의 분노를 일으킨다. 브라운 신부의 뒤를 이어온 스미스 신부는, 중무장을 하고 교회를 흙더미로 부순 우무오피아 에구구들을 용서하지 않고 사법당국에 고발을 하고, 이들은 곧장 재판을 받고 수감된다.

 

벌금을 지불하고서야 겨우 풀려난 오콩코는 수감중에 수치를 당했고, 훌륭한 남자들이 사라졌다며 분노하고, 앞날에 대해 결정하는 집회에서  백인들과의 전쟁을 결정하는 대신 타협을 택한다면 자신이 대신 복수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장터에서 집회가 열리는 동안 뜻하지 않게 백인들의 전령들이 비집고 오자, 오콩코는 그 자리에서 누가 말릴 겨를도 없이 분노의 화신처럼 전령을 도끼로 내리친다. 이후 치안판사가 그를 검거하기 위해 집으로 왔지만, 그는 집 뒤의 나무에 목을 맨 후였다. 그의 시신을 끌어내리라는 명령에 우무오피아 사람들은 그가 남자는 스스로 죽어서는 안된다는 대지의 신을 거슬렀기 때문에 그에게 손을 댈 수 없다고 답하고, 치안판사는 부하들을 시켜 그의 시신을 끌어내린다.

 

치안판사는  전령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겠다면서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이라는 제목까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 작가는, 마치 카메라처럼 현상과 사실을 그대로 비추고 묘사하는 데 주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처럼 평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 상이한 인격들이 역사적 시공간에서 마주할 때 어떻게 무너지고, 교섭하는지 담담하면서도 대담한 시선으로 포획한다. 그러므로 침탈은 단순한 수탈이 아니라 내부의 붕괴와 외부의 압력, 내부의 부활과 외부의 침잠으로 자연스럽게 교차되고 연결되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한 인간의 일대기가, 그리 나아보일 것 없는 정복자의 평정으로 단순히 평가되는 마무리는, 단선적인 역사관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통렬하게 지적한다.

 

자기 내부의 연약함을 드러내면서도, 강인한 자부심을 드리우는 소설의 기법은 생경한 아프리카 소설 읽기의 매력을 한껏 고양시킨다. 또 아프리카 문화와 문학의 풍성함까지 맛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신을 버리고 당신들의 신을 따른다면 버림받은 우리 신과 조상님들의 화를 어떻게 면할 수 있는가요? 그대의 신들은 살아 있지 않으며 사람을 해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나무고 돌멩이입니다. 이것이 마을 말로 옮겨지자 비웃음들이 터져 나왔다...하지만 거기에는 이에 마음이 사로잡힌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름은 은워예로 오콩코의 장남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삼위일체의 이상한 논리가 아니었다. 그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새로운 종교의 시, 뼛속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 그를 사로잡았다. - P1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