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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정치인류학 논고
피에르 클라스트르 지음, 홍성흡 옮김 / 이학사 / 2005년 6월
평점 :
배움의 기쁨은 앎의 즐거움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진을 위한 배신과도 맞닿게 된다. 인류의 역사란 문명을 건설하고 국가를 조직하며 사회의 위계가 세워지는 일보의 전진이었다는 학습 효과는 너무 단단해서 깨질 수 없는 일종의 철옹성 같은 개념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의 여정은 정해진 수순을 따르게 되어 있고, 그 틀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진일보한 제도와 사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일종의 관념은 좀처럼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가정었다. 그런데, 저자는 다양한 인디언족 문화와 풍속을 연구하면서 흔들림 없는 허상의 중심에 치명적인 균열을 가져왔다.
그의 질문은 국가 사회와 권력이 없는 사회에서 정치적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단절, 불연속, 급격한 도약을 발견할 수 없는 데,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회를 일종의 틀로 분류하는 것은 오히려 명령-복종이라는 권력이 전형적인 사회의 현상인가에 대해 질문을 품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한다.
앞 장은 상당 부분 그간의 연구가 보여준 독단에 따른 편견, 통계의 오류 등을 짚어내는 데 할애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진, 권력이 있는 국가 사회가 역사의 진보에 따른 결과라는 확고한 가정은 인디인들이 가진 다양한 문화와 사회의 특징을 왜곡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클라스트르는 중간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게 되는데, 송두리째 기존의 지식을 뿌리뽑는 삽화들 때문에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조바심이 날 지경이 된다. 그에 따르면 인디언 사회는 한 마디로 치열하게 권력에 대항하고 지배를 배척하는 사회다.
그가 발굴한 여러 삽화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특징들로 가득하다. 가령 사냥의 결과물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냥꾼의 식용품이 된다. 즉, 최선을 다해 사냥을 하지만 다른 이들의 결과로 종속되고, 다른 이들의 노력이 나의 결과로 주어지도록 사회가 설계되어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는 만큼 상대도 최선을 다해 사냥하리라는 믿음의 기초 안에서 소유를 교차시키고 있는 것.
말과 권력에 대한 삽화도 인상깊다. 인디언족의 추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권력자라기보다는 조정자,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추장의 말은 명령과 지배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의무의 언어라고 소개한다.
과라니족의 사상은 흡사 성경책을 읽는 것처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놀라기도 했다. '모든 사물은 전체 속에서 하나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원치 않았던 우리에게 모든 사물은 악이다' 이러한 주장은, 세상은 불완전한데 이 뿌리가 모든 사물이 전체 속에서 하나라는 사실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사람이 사람일뿐인 동일성의 원리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장인 이 세계에서는 만물에 한계를 짓고, 유한성과 불완전성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 그들이 생각하는 완전성은 인간은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일 수 있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일 수 있고 동시에 둘다 실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들은 불완전한 세상을 벗어나 이상향의 세계를 향해 늘 떠난다. 그들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는 만물-심지어는 인간도-을 하나의 존재로 고정시키고, 머물러 있도록 종용하므로 불완전한 세계에 적극적으로 합일하고 불행의 대지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년식 문화는 경계 존중과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온 몸에 나뭇가지 등을 꽂고 손을 대지 않고 저절로 빠지면 마침내 성년으로 인정하는데, 그 때는 그 누구도 지배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지배 당하지 않는 온전한 경계, 권력이 침투되지 않는 그 자유를 인정해준다. 그러므로 일부 전투에서는 그 자유를 온전히 지켜주느라 몇 몇만 참여하기도 한다. 이겨야만 하는 결과를 앞에 두고도 결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개인의 자유라는 무게의 엄중함. 어리석은 처사라고 쉽게 비웃을 수 있을까.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누리는 그들에게 진보를 위한 도약을 일으키지 못한 미개한 족속이라는 타이틀이 과연 옳을까. 그들은 권력이 찬탈하는 자유의 침탈, 국가가 종용하는 개인의 몰락, 부가 불러오는 인간의 소외를 꿰뚫어보고, 온 힘을 다하여 국가와 권력에 대항해왔다는 것이 클라스트르의 결론이다.
권력의 본성을 꿰뚫어 힘껏 저항하고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실현해온 인디언족들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적어도 그것돠 똑같은 정도의 진리로서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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