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의료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요시다 타로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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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에 의미 있는 피서를 했다. 마른장마 속 폭서(暴暑)에 쿠바 여행을 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던가. 아열대에 위치해 있는 쿠바, 그 나라를 나에게 소개해 준 사람은 알레이다 게바라 마치(Aleida Guevarb March) 박사였다. 그녀는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15일이었다. 서울대 의대 행정관 3층 대강당에서 강연 하나가 열렸다.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에서 주최한 강연이었는데, 강사는 위에서 밝힌 알레이다 게바라였고 주제는 '쿠바의 1차 의료'였다. 의료는 생명과 관련된 것으로 국민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분야이다. 지금 우리는 의료 민영화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지 않는가.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지구상의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국가 GDP로 따진다면 개발 도상 국가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라의 의료와 교육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뒤지지 않아 여러 나라의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나라 보건 의료 관계자들과 정치하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 보면 좋겠다.

 

알레이다 게바라는 쿠바의 의료체계에 대해 2시간 강의를 하고 30분 정도 청중의 질문을 받고 답했다. 스페인어 강의에 영어 통역이어서 전체 내용를 온전히 수용할 수는 없었지만 쿠바의 1차 의료에 대해 적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국가의 의료 보험 체계와 나 개인의 건강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을 구입했다. 여름 피서를 이 책 읽기로 대신할 생각이었다. 쿠바의 1차 의료에 대한 강의 내용을 보완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의료 민영화 문제가 국민 각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욕심도 작동했다. 그 책 제목이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이다.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가난한 나라 쿠바에 '천국'이란 수식어를 붙일 정도의 의료체계라니!

 

이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한 사람이 알레이다 게바라이니 그녀가 쿠바 여행을 소개한 사람이 되는 셈이고, 책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의료천국 쿠바를 재미있게 읽었으니 내겐 쿠바 여행을 다녀 온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책을 읽음으로써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빠지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좋은 피서가 되겠다.

 

이 지구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국가들이 존재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건강하게 지켜 주어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 소수 특권층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국민 다수를 위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쿠바의 의료 정책에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철저하게 국민 다수를 위해 확립 운영되고 있는 의료 정책, 그들에겐 '돈'이 아니라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시스템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일본인 관리이다. 요시다 타로는 유기농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쿠바를 방문했고, 유기농 관련 문제뿐 아니라 의료와 교육까지 관심 영역을 확대해서 관찰 탐구한 것을 리포트 형식의 책으로 출판했다. 그는 이미 쿠바를 여행하고 의미 있는 여러 권의 책을 공간한 바 있다. <200만 도시가 유기채소로 자급 가능한 이유>, <세계가 쿠바의 고학력에 주목하는 이유>,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등 주로 리포트성 글들이다.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도서출판 파피에, 2011년)는 '들어가며','마치며'를 포함해서 총 5부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이 땅의 사람이 아니지만 내가 좋아했던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간적 의료가 아름답다'는 제목의 추천서도 따사로왔다.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하지만, 우선 각 부의 제목에서 책에 담길 내용을 가늠할 수 있도록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부 '단연 돋보이는 쿠바의 지역예방의료' 2부 '외화획득의 수단-전문의료와 의약품' 3부 '대체연료와 전자정보 네트워크' 4부 '국경 없는 의사단' 5부 '지속 가능한 의료와 복지사회 구조 만들기'로 되어 있다.

 

쿠바의 의료체계는 국가의료시스템이다. 국가에서 모든 의료 행위를 책임지는 체계이다. 암 수술에서부터 심장 이식까지 모든 의료비는 무료이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자본주의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살펴볼 가치가 있는 의료 시스템이 아닌가 한다. 쿠바는 1차, 2차, 3차로 의료 체계가 나뉘어 있다. 이런 의료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가정의(家庭醫, family doctor)이다. 쿠바 전체 의사 6만7천 명의 47%를 차지하는 가정의는 1차 의료 조직을 책임지고 있으며 환자의 98%를 커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쿠바 예방중심 의료체계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쿠바 혁명(1959년)을 성공하기 전의 의료체계는 순전히 미국식이었다. 철저히 가진 자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스트로는 병원 갈 돈이 없어 죽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보고 소외 받아온 농촌 지역에서부터 의료체계를 정비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농촌 지역에 의료 시설과 서비스를 집중 지원하고, 이런 곳에 양질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파견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과거 소련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1989년 소련과 동구 사회주위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쿠바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미국이 '쿠바 민주화법', '헬름스버튼 통상금지법' 등을 통해 대 쿠바 봉쇄정책을 강화함에 따라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쿠바 정부는 이 기간을 '특별시기(special period)'로 명명하고 전체 국민이 연대하여 어려움을 공동 대처했다.

 

미국과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 상황 아래 놓여 있었지만 국방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교육과 의료 등 복지 예산은 늘렸다. 여기에 더해 의학 과학 기술에 대해 투자를 확대했으며 지진과 해일 등 재난 발생 국가에 대해 의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쿠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난한 나라를 돕는 데 솔선수범했다. 모두 꺼리는 체르노빌 원폭 피해자들을 적극 도왔고, 2005년 파키스탄에 지진이 났을 때, 그 이듬해 인도네시아 자바 섬 지진에 맨 먼저 달려가서 가장 나중에 의료진을 철수한 것도 쿠바였다.

 

그것뿐만 아니다. 헨리 리브 국제구조대를 조직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이웃 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의료 지원을 아까지 않았고, 학생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의과대학인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ELAM)을 세워서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1만~1만2천 명의 학생들을 무료로 교육시키고 있다. 의학 공부를 하고 싶지만 형편이 닿지 않는 우리나라 학생들도 ELAM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보면 어떨까.

 

미국의 경제 봉쇄는 쿠바를 자급자족 경제로 진입하게 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나 할까. 의료 산업도 외국 의존에서 탈피해 대체 의료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접종되는 13종의 예방 백신 가운데 12종을 국산으로 대체했고, 항 콜레스테롤제, 수막염 백신, B염 간염백신도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쿠바의 바이오테크인데, 이런 자체 백신들을 개발도상국에 무상으로 지원까지 해 주고 있다.

 

쿠바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지도 못하고 국민 소득도 높지 않은 가난한 나라지만 의료에 관해서만은 부자인 나라이다. 아프면 누구나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치료 전에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을 의료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유아 사망률(1천명당 5.2명)이 세계에서 가장 낮으며 평균 수명도 78세로 선진국 수준이다.

 

지금 우리는 의료 민영화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의료 민영화는 미국식 의료 시스템을 따라가는 것이다. 흔히들, 미국식 의료체계는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첨단 의술을 가능하게 하지만, 살릴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죽이는 의료 체계라고들 말한다. 돈이 생명을 좌우한다는 얘기이다.

 

미국식 의료 민영화가 되면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맹장 수술을 할 때, 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는 일본은 6만 엔(약 80만 원), 우리나라는 평균 72~216만 원인데 비해 민영 의료 서비스가 발달한 미국은 244만 엔(약 3천2백만 원)의 병원비가 있어야 한다.

 

영국과 뉴질랜드의 복지 의료 제도가 무너져 내렸다. 공립병원 의료 서비스가 약화되고 이익이 나지 않는 지방 공립병원은 거의 폐쇄되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대도시 몇 개뿐이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이 민간 주식회사 병원이다. 이들 민간병원은 이익 창출을 제일의 목표로 한다. 과잉 진료와 과다한 의료비 청구는 불은 보듯 뻔하다. 의사의 능력도 수익을 얼마나 올리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

 

쿠바의 의료 제도는 돈이 아닌 사람 중심이다.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조류(潮流) 속에서 쿠바가 이런 생명 중심의 의료 시스템을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특유의 '호혜와 평등, 참여와 연대'라는 사회 가치에 기인한다. 의사도 생물학적이고 기계적이 아니라 주민 생활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연대의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쿠바의 의사는 지역 공동체에서 신뢰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지점에서 쿠바의 국가의료시스템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쿠바의 의료 시스템은 3가지 주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첫째, 사람의 생명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고 둘째, 모든 국민은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무상 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셋째, 의료 지원은 지역에 상관없이 어디에 살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는 의료체계이다.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는 의사 혁명가였다. 혁명 성공 후 쿠바의 의료 체계를 확립하는 데 그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체 게바라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단 한 사람의 생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의 전 재산보다도 100만 배나 더 가치가 있다.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자부심은 높은 소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축재할 수 있는 모든 황금보다도 훨씬 결정적으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민중이 갖는 감사의 마음이다"​

 

우리와 비록 다른 환경과 조건이지만 그들 삶의 질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의료정책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다.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그것 외에도 사람을 위하는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사람은 왜 가난한 나라 쿠바를 의료 천국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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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 신문사 및 잡지사 기자나 또는 방송 작가 등이 현장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지은이와 같이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을 지낸 것은 특별한 경험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그 경험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고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는 책이 <대통령의 글쓰기>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도 그 바쁜 와중에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는데, 그리고 이렇게 잘 썼는데... . 도전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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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목회 현장 이야기 - 생명의 영성이 약동하는 선교신학연구 10
한경호 지음 / 미션아카데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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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월간지 또는 계간지 등의 잡지는 우리에게 지식 정보를 제공해주는 하나의 루트가 된다. 나도 과거 한 때 장준하 선생이 발행하던 <사상계>라든지 강원룡 목사가 운영하던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발행하던 <월간 대화> 그리고 짧은 시기였지만 함석헌 선생이 만들어내던 <씨알의 소리> 등을 읽으며 지적 욕구를 달랬던 적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도 사이버 공간이 한없이 확장된 오늘날 이런 잡지를 보는 일이 많지 않다. 모든 게 변하는 추세에서 잡지라고 이외일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요즘 잡지는 나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게 만든다. 가끔 금융기관 등에 일 보러 가서 번호표를 뽑아 들고 기다리게 될 때 그곳에 비치된 잡지를 손에 잡는다. 하지만 너무 현란해 금세 제 자리에 꼽고 만다. 읽을 내용은 거의 없고 광고용 칼라 사진에 화사한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시대의 반영이려니 하다가도 내 정서와는 합치되지 않음은 피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요즘 잡지는 상품 광고지의 역할이 큰 것 같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광고들도 사람의 내면을 채워주는 것은 거의 없다. 모두 외면의 드러냄과 관계되는 광고물이다. 화장품이라든지 옷, 또는 스포츠 레저 용품 거기에 재테크 금융 상품 광고 등이 페이지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다. 나와 무관한 것들이니 외면하면 그만이지 하면서도 나라 장래를 생각할 때 염려의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중에 1년에 네 번 빠지지 않고 나에게 배달되는 잡지가 있다. <농촌과 목회>라는 계간지이다. 내가 잘 아는 한경호 목사가 만들어내는 농촌 목회 전문 잡지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런 잡지에서 외모엔 신경 안 쓰고 내용만 고집하는 옛 정취를 맛본다. 여러 가지 경제 여건이 따라 주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잡지가 무척 소박하다. 꾸밈이 없다는 말이다. 책의 무게로 보아 재질도 재생용지가 아닌가 싶다. 표지에 판화 작품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 검정 많아야 붉은 색 글자가 가끔 가세하는 1950년대의 <사상계>와 다를 게 없을 것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논문에서부터 농촌 목회 이야기, 목회 단상, 성경과 농사, 협동조합 이야기에 해외 농촌 선교 이야기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농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이라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생생하다. 탁상에서 나오는 농촌 목회 이야기가 아니라 실천 가운데 생산되는 이야기여서 얻는 유익이 크다. 나는 그 중 편집위원장이자 실질적인 발행인인 한경호 목사의 권두언을 꼭 읽는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 목회관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힘을 내 뿜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받은 <농촌과 목회> 2014년 여름호(통권 62호) 권두언 제목은 '세월호와 한국 교회'였다. 그는 이 글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 사회의 자화상이란 것과 우리 기독교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폐기 직전의 배를 일본에서 수입, 개조해 사용한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명의 소중함보다 이득이 먼저인 사고(思考)에서 이런 사건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성도를 더 많이 끌어 모으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예배당을 신축 증축하는 교회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 목사는 이렇게 권두언을 마무리하고 있다. "…세월호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책임이 더 무겁다. '바알에게서 떠나 나에게로 돌아오라!' 이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의 귀로 듣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은 계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참으로 두려운 경고가 아닐 수 없다.

 

<농촌과 목회>에는 매 번 빠지지 않고 특집을 꾸미는데, 이번 기획 특집은 지난 호에 이어 '한국 기독교 사상의 광맥을 캐본다(2)'이다.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등 민중신학을 체계화하는데 힘을 보탠 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분야 관련 학자들의 신학적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우리의 신앙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교계에 일침을 놓는 글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의 이론 전개의 근거는 오직 예수님이다. 갈릴리 무지렁이들 가운데 즐겨 계신 예수님,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장애인들을 편애하신 예수님 말이다.

 

10 년 가까이 <농촌과 목회>를 받아 보고 있다. 임지를 옮겼는데도 끊어짐 없이 보내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정성에 값하지 못하고 있다. 구독료 보내는 것도 번번이 빠뜨리고 있으니까. 열심히 읽는 것, 그래서 나의 목회에 도움 도구로 삼는 것, 그리고 교계의 약한 고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 내가 이 계간지를 읽으며 꿈꾸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농촌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전문 계간지라는 기치를 내 걸고 고군분투하는 <농촌과 목회>의 무궁한 발전,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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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2014-07-10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촌과 목회] 2014 여름호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 같은 저자의 비슷한 책에 서평을 올린 것입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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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이후 우리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서 시작해 현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1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굴곡의 현대사를 이어왔다. 좋든 싫든 그 11명은 우리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이끌어 왔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바로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따라서 국민은 늘 대통령의 입을 쳐다 보며 삶의 질 제고를 꿈 꾸었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의 자리에서 아니면 국무회의에서 또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그가 펼칠 국정 철학을 국민들에게 알려왔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알리는 국정을 준비하는 데는 많은 참모들이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연설비서관이 정리해서 올린 문건을 중심으로 대통령은 국민 앞에 발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용 문건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재미있게 하는 참모들이 있다. 의무감 뒤에 따르는 프라이드도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 하나에 속하는 이가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이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에게 연설문을 작성해서 올린 연설 비서관이었다. 한 사람도 아닌 두 분의 대통령에게 중용되어 일을 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는데, 독자들의 반응도 꽤 좋은 모양이다. 출판 두 달만에 20쇄를 찍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처럼 대통령의 글쓰기라기보다 솔직히 지은이 강원국의 글쓰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또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으로부터 글쓰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 전직 대통령은 글쓰기에 관한 한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 중 자기 생각을 글과 말로 거침 없이 표현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은이가 모셨던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들 정도가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붙는 별칭 중 하나가 '수첩 공주'이다.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와서 그것을 읽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독서량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수첩 공주 운운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최근에는 개각을 하면서 보기에도 거북스럽게 회전문 인사가 되풀이되자 언론에서는 수첩에 적어둔 인사풀이 동이 나지 않았나 의심을 받기까지 했다. 대통령이 이 정도면 연설 비서관을 비롯해서 참모들이 좀 잘 모시면 표가 덜 날 텐데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더 구체적으로 자기의 생각으 글로 매끄럽게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지은이가 두 대통령에게서 받은 글쓰기의 영감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계발하기만 한다면 본인도 놀랄 정도로 좋은 글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이 책은 불어넣어 주고 있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들은 원칙과 당위론적 내용으로 채워져 내 것으로 만들기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머리에 머무는 글쓰기를 벗어나 손으로 직접 쓰게 만드는 비법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은 들어가는 말과 나가는 말격인 집필 후기를 빼고 모두 이야기 열 마당 328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마당과 장에서 최고 통치자 대통령과 연설 비서관 사이에 오고 가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대통령은 권위를 좋아하고 체면에 민감하며 상황 논리를 꿰뚫는 그야말로 우리 범인과는 별종으로 이해되기 쉬운데, 지은이 강원국이 소개하는 두 대통령(김대중 노무현)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 먼저 친근감을 갖게 한다. 각 마당과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장들 속엔 그런 정감 넘치는 모습들이 세밀하게 스케치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 몇 개를 적기(摘記)하면 가령 이런 것들이다. 3.대통령과 축기 경기 한판-생각의 숙성 시간을 가져라, 7. 손녀 뻘 되는 비서 앞에서 연습하는 대통령-결국은 시간과 노력이다, 8.대통령 전화 받고 화장실에서 나온 이야기-메모하라, 11.짚신으로 나물을 만들 수 없습니다-자료가 관건이다, 17.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시작보다 중요한 퇴고, 21.대통령의 언어 vs 서민의 언어-쉽게 쓰자, 25.손목시계에 침묵이라고 써놓은 김 대통령-잘 듣고 많이 말하라, 28.어느 연설보다 위대한 웅변 '눈물'-이미지를 생각하라, 31."하느님 뜻에 따르겠다니요?"-유머에도 법칙이 있다, 37.국민을 위한 짝사랑 연서-편지를 써야 할 때, 40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거명하기 등

 

이야기 열 마당 속 40 개의 장 중에 생각나는 대로 정감 넘치는 것들을 위에 열거했지만 각기 장이 모두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적합한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책은 지은이 경험의 산물임을 두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경험을 허투루 풀어놓지 않는다. 책을 손에 잡으면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다. 맨 뒤에 수록된 48 권의 참고 문헌은 이 책이 한 권의 에세이(小論)집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 강원국은 두 대통령 밑에서 연설 비서관으로서의 생활이 행복했다고 회고했지만 솔직히 그 생활이 그렇게 행복한 생활이었을까 의문이 간다. 왜냐하면 많은 독서량을 확보하고 있으면서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쓰는 똑똑한 대통령을 모신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긴장 풀린 호락호락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한 김영삼 대통령 같은 분과 함께 일하는 것이 부담 없고 훨씬 여유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군대식으로 밀어붙이는 현대 신화의 주인공 이명박 대통령이나 수첩이 없으면 모든 게 올 스톱 되는 현 박근혜 대통령 같은 분이면 널널하게 비서관 생활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다른 대통령에 비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경외(敬畏)로운 위치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부족한 점이 있을 때 참모들이 보완해 줘야 할 인물이라는 것을 지은이는 지적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이 가진 훌륭한 정치적 경륜과 뚜렷한 역사의식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오는 리더십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연설 비서관 등 참모들의 역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노무현 대통령을 우리가 슬픈 마음으로 추억하는 것은 그분이 가진 서민 정서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희망 사항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는 책으로 나는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권하고 싶다. 바쁜 국정의 한 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두 대통령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런 노력하는 대통령 밑에서 참모로서 또 얼마나 신명나게 뛰어야 했는지, 그렇게 노력하고 뛴 결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글을 잘 쓰기 위해 그렇게 해 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여진다. 글쓰기에 대해 안내하는 책은 많되 진정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책을 독파함으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짚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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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치릴로 테스카롤리 지음, 성염 옮김 / 성바오로출판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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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는 8월 중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본명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인 그는 266대 교황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쓰지 않았던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정했다. 13세기의 성인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에서 따왔음은 물론이다. 인터넷 뉴스에 의하면 지난 21일, 이탈리아의 한 도로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천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만 멈춰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이었다. 지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차에서 내려 장애 여성 레베카 머리에 키스를 했다는 기사였다. 가족뿐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 기사를 접한 뒤, 눈에 들어 온 것이 서재 한쪽에 꽂혀 있는 프란치스코 전기(傳記)이다. C. 테스카롤리가 쓰고 성염이 옮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성바오로 출판, 1999)가 그것이다. 지은이 테스카롤리는 이탈리아의 전기 작가이고, 옮긴이 성염은 가톨릭 사제로 전문 번역가 겸 저술가이다. 성바오로출판사도 가톨릭 전문 출판사이니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서적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성 프란치스코는 종교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형제로 생각하는 성인(聖人) 중의 성인이다. 지금은 물질적 욕심과 육체적 욕구가 팽배한 시대이다. 자기 것을 모두 내려놓고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함께 한 프란치스코의 사랑이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이 책은 무척 얇다. 모두 합해야 65쪽에 지나지 않는 책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에 대해 알찬 내용을 빠짐없이 담고 있다. 아마존에 올려 있는동일 제목의 영어 원서가 페이퍼북으로 13달러인 것으로 볼 때(책 쪽수 표시는 없었음), 요약해서 번역하지 않았나 싶다. 여담(餘談)이 되겠지만, 목회자로서 가끔 가톨릭 전문 출판사 책을 구입하게 되는데, 소박한 장정과 고졸미(古拙美)가 마음에 든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표지 왼쪽 상단에 프란치스코의 사진이 배치되어 있고, 제목으로 '모든 사람의 형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라고 되어 있다. 하단 중앙에 출판사 마크와 함께 '성바오로'라는 출판사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이 얇은 책은 총 19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기문의 전형적 양식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한 장이 3쪽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고 짧은 것은 2쪽, 긴 것도 6쪽을 넘지 않으니 먼저 읽기에 부담이 없다. 또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읽는 시간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도 책을 독파하는데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아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다 담고 있어 유익하다. 작은 책자에서 꼭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에서 아씨시는 도시 이름이다. 그리고 프란치스코가 사람 이름이 된다. 프란치스코의 세례명은 요한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엔 이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아버지 베드로 베르나르도네가 프랑스와의 무역으로 많은 돈을 번 관계로 아들 요한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바꾸었다. 프란치스코는 '프랑스인'이라는 뜻이다. 프란치스코의 아버지는 국제적(?)인 포목상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호의호식하던 프란치스코의 첫 시련은 전쟁에 징발되면서 찾아왔다. 아씨시와 페루지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그는 포로가 되어 1 년여를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심한 병을 앓았는데 병중에 이런 환시를 경험한다.

 

"프란치스코야, 주인을 섬기는 일과 종을 섬기는 일 중에 어느 편이 그대에게 이롭겠는가?" / "물론 주인을 섬기는 일입니다." / "아씨시로 돌아가거라. 그대가 무엇을 해야 할지 거기서 그대에게 알려 주겠다!"

 

그 뒤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과도 손을 끊고 가난한 이들과 나병 환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당대의 젊은이들을 부패시키는 돈과 출세욕, 탐욕과 쾌락, 그리고 허망한 공명심이 우상임을 깨달은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면서 상속권까지 포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했다.

 

"나의 아버지,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신발과 지팡이를 벗어 던지고 통옷에 허리띠를 맨 차림이었다. 무소유의 생활을 실천한 것이다. 그를 따르는 형제 3명으로 시작한 작은 형제회는 1221년 이른바 '돗자리총회' 5천 여 명으로 불어났다. 프란치스코는 죽을 때까지 2년 동안 자기 몸에 예수 수난의 상흔을 지니고 다녔고, 병상에서 쓴 '태양의 찬가'('피조물의 찬가'라고 부르기도 함)는 이탈리아 문학사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사랑의 기사이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 나병 환자에게 입을 맞추고 입고 있던 옷을 나눠주며, 길에서 아무나 붙잡고 '형제여,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묻곤 했다.

 

그는 1226년 10월 3일 저녁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나이 44세 때의 일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승에서 보낸 햇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형제들에게 가까이 간 사랑이 중요하다. 프란치스코는 당대 가난한 사람들만의 형제를 넘어 오늘날까지 빈자(貧者)들의 따뜻한 친구로 남아 있다. 개신교 역사학자 폴 사바티에는 "세기를 통틀어 가톨릭 교회가 낸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고 그를 평했고,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백년마다 한 번씩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다면 인류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병자와 가난한 자의 친구로서 복음과 사랑을 전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더 그리워진다. 이 사회에 이기주의와 물질 숭배가 편만(遍滿)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2의 그리스도로까지 불리는 프란치스코, 그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상생의 길을 찾아 볼 때이다. 얇지만 결코 작지 않은 책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는다면 빈 마음을 채우는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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