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8.15 광복 이후 우리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서 시작해 현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1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굴곡의 현대사를 이어왔다. 좋든 싫든 그 11명은 우리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이끌어 왔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바로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따라서 국민은 늘 대통령의 입을 쳐다 보며 삶의 질 제고를 꿈 꾸었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의 자리에서 아니면 국무회의에서 또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그가 펼칠 국정 철학을 국민들에게 알려왔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알리는 국정을 준비하는 데는 많은 참모들이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연설비서관이 정리해서 올린 문건을 중심으로 대통령은 국민 앞에 발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용 문건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재미있게 하는 참모들이 있다. 의무감 뒤에 따르는 프라이드도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 하나에 속하는 이가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이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에게 연설문을 작성해서 올린 연설 비서관이었다. 한 사람도 아닌 두 분의 대통령에게 중용되어 일을 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는데, 독자들의 반응도 꽤 좋은 모양이다. 출판 두 달만에 20쇄를 찍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처럼 대통령의 글쓰기라기보다 솔직히 지은이 강원국의 글쓰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또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으로부터 글쓰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 전직 대통령은 글쓰기에 관한 한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 중 자기 생각을 글과 말로 거침 없이 표현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은이가 모셨던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들 정도가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붙는 별칭 중 하나가 '수첩 공주'이다.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와서 그것을 읽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독서량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수첩 공주 운운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최근에는 개각을 하면서 보기에도 거북스럽게 회전문 인사가 되풀이되자 언론에서는 수첩에 적어둔 인사풀이 동이 나지 않았나 의심을 받기까지 했다. 대통령이 이 정도면 연설 비서관을 비롯해서 참모들이 좀 잘 모시면 표가 덜 날 텐데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더 구체적으로 자기의 생각으 글로 매끄럽게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지은이가 두 대통령에게서 받은 글쓰기의 영감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계발하기만 한다면 본인도 놀랄 정도로 좋은 글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이 책은 불어넣어 주고 있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들은 원칙과 당위론적 내용으로 채워져 내 것으로 만들기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머리에 머무는 글쓰기를 벗어나 손으로 직접 쓰게 만드는 비법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은 들어가는 말과 나가는 말격인 집필 후기를 빼고 모두 이야기 열 마당 328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마당과 장에서 최고 통치자 대통령과 연설 비서관 사이에 오고 가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대통령은 권위를 좋아하고 체면에 민감하며 상황 논리를 꿰뚫는 그야말로 우리 범인과는 별종으로 이해되기 쉬운데, 지은이 강원국이 소개하는 두 대통령(김대중 노무현)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 먼저 친근감을 갖게 한다. 각 마당과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장들 속엔 그런 정감 넘치는 모습들이 세밀하게 스케치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 몇 개를 적기(摘記)하면 가령 이런 것들이다. 3.대통령과 축기 경기 한판-생각의 숙성 시간을 가져라, 7. 손녀 뻘 되는 비서 앞에서 연습하는 대통령-결국은 시간과 노력이다, 8.대통령 전화 받고 화장실에서 나온 이야기-메모하라, 11.짚신으로 나물을 만들 수 없습니다-자료가 관건이다, 17.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시작보다 중요한 퇴고, 21.대통령의 언어 vs 서민의 언어-쉽게 쓰자, 25.손목시계에 침묵이라고 써놓은 김 대통령-잘 듣고 많이 말하라, 28.어느 연설보다 위대한 웅변 '눈물'-이미지를 생각하라, 31."하느님 뜻에 따르겠다니요?"-유머에도 법칙이 있다, 37.국민을 위한 짝사랑 연서-편지를 써야 할 때, 40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거명하기 등

 

이야기 열 마당 속 40 개의 장 중에 생각나는 대로 정감 넘치는 것들을 위에 열거했지만 각기 장이 모두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적합한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책은 지은이 경험의 산물임을 두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경험을 허투루 풀어놓지 않는다. 책을 손에 잡으면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다. 맨 뒤에 수록된 48 권의 참고 문헌은 이 책이 한 권의 에세이(小論)집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 강원국은 두 대통령 밑에서 연설 비서관으로서의 생활이 행복했다고 회고했지만 솔직히 그 생활이 그렇게 행복한 생활이었을까 의문이 간다. 왜냐하면 많은 독서량을 확보하고 있으면서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쓰는 똑똑한 대통령을 모신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긴장 풀린 호락호락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한 김영삼 대통령 같은 분과 함께 일하는 것이 부담 없고 훨씬 여유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군대식으로 밀어붙이는 현대 신화의 주인공 이명박 대통령이나 수첩이 없으면 모든 게 올 스톱 되는 현 박근혜 대통령 같은 분이면 널널하게 비서관 생활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다른 대통령에 비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경외(敬畏)로운 위치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부족한 점이 있을 때 참모들이 보완해 줘야 할 인물이라는 것을 지은이는 지적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이 가진 훌륭한 정치적 경륜과 뚜렷한 역사의식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오는 리더십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연설 비서관 등 참모들의 역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노무현 대통령을 우리가 슬픈 마음으로 추억하는 것은 그분이 가진 서민 정서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희망 사항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는 책으로 나는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권하고 싶다. 바쁜 국정의 한 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두 대통령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런 노력하는 대통령 밑에서 참모로서 또 얼마나 신명나게 뛰어야 했는지, 그렇게 노력하고 뛴 결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글을 잘 쓰기 위해 그렇게 해 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여진다. 글쓰기에 대해 안내하는 책은 많되 진정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책을 독파함으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짚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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