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투의 현장에서 - 집단지성의 승리, 김천의료원 70일간의 기록
김천의료원 지음 / 소금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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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책이다. 이런 책을 만날 때마다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갖게 된다. 꼭 읽어야 한다는... 나 대신 실천한 분들에게 작은 빚이라도 갚는 심정의 일단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 마스크의 상용, 사회적 거리두기, 주먹 인사... 어떤 법과 제도가, 아니면 권력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하겠는가.

 

코로나19는 이 사회에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그 바이러스 앞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약하기 짝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인간의 교만에 대한 자연의 노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감히 해 본다.

 

코로나19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엔 그 기세가 많이 꺾였다. 드러나지 않게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헌신의 앞자리에 의료진이 자리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감염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의료진까지도 피해가지 않는다. 맨 앞에서 코로나19와 맞서야 하는 사람들이 의료진이다. 환자를 돌보아야 할 의사와 간호사들이다.

 

코로나19가 대구 경북을 강타했다. 전례가 없던 메가톤 급이었다.  김천의료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다. 『코로나19 사투의 현장에서』(소금나무, 2020년 7월 14일 발행)는 김천의료원이 2월 21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뒤 4월 30일 해제되기까지 70일 간의 기록이다.

 

책의 부제(副題)에 내용을 압축해 놓고 있다. '집단지성의 승리, 김천의료원 70일간의 기록'. '집단지성'이란 말도 반갑다. 이 단어는 개인의 기능적 결합이란 뜻이 강한데, 이 책의 부제에 쓰인 '집단지성'에는 헌신과 사랑이 녹아 있다. 아주 신선하다.

 

『코로나19 사투의 현장에서』는 312쪽 분량의 책이다. 결코 얇다고 할 수 없다. 부피로 책의 거리를 재는 사람들에겐 은근히 부담스러울 수가 있겠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60명의 글쓴이가 3~4쪽 분량으로 쓴 단문이 대부분이다. 쉬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김천의료원 김미경 원장의 프롤로그와 응급의학과 임창덕 과장의 에필로그 사이에 네 개의 파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각 파트의 제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위 소제목을 잘 농축해 놓은 제목이다.

 

PART 01. 집단지성의 승리, 당신들은 영웅입니다(하위 제목으로 7 꼭지의 글).
PART 02. 그대 걱정 말아요! 우리가 지켜줄게요(하위 제목으로 13 꼭지의 글).
PART 03. 슬기로운 병동생활(하위 제목으로 25 꼭지의 글)
PART 04. 동행, 인생을 함께 걸었던 70일(하위 제목으로 13 꼭지의 글)


PART 01은 김천의료원과 관계하는 사람들의 응원 글이다. 경북의사회 회장, 대한간호사협회 회장 등 대표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코로나19와 70일간의 사투에서 승리한 김천의료원 병사들을 '영웅'이라며 칭찬한다.

 

PART 02는 전쟁으로 치면 야전사령관 격인 의료원 각 과장 13명의 코로나19 환자 치유기이다. 의사 본래의 냉정함 속에 감춰진 따뜻한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 뭉클함을 선사한다. 읽는 재미를 더하는 건 불문가지(不問可知).

 

PART 03은 최전선에서 싸운 간호사들 얘기이다. 같은 시공간을 무대로 같은 주제를 갖고 글을 쓰면서도 독특한 개성들을 발현하는 것이 감미롭다. 따라서 그들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당당함이 있다.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25꼭지의 글을 포함하고 있다.

 

PART 04는 뒤에서 묵묵히 돕는 사람들이 기록한 글이다. 시설팀, 영양팀, 생활안전팀, 경리팀 등의 전후 준비와 일 정리가 없었다면 코로나19와의 싸움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드러나진 않지만 그들도 영웅의 대열에 합류시켜야 한다.

 

70일 간의 전쟁이 4월 30일 끝났다고 했다. 코로나19와의 전면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곳 김천의료원의 국지전이 끝났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니까. 그리고 두 달 여 만에 보란 듯 멋진 책을 만들어 냈다.

 

60명의 글을 4개의 PRRT로 나누어 엮었다고 했다. 출판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글쓴이가 10명만 돼도 출판 날짜 맞추기가 어렵다. 원고가 제 날짜에 도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60명이 쓴 글을 두 달 여 만에!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 김미경 원장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의료원 대표에게 드리는 형식적인 헌사(獻辭)가 아니다. 직원들의 언급을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하면 '사랑', '신뢰',  '공감'이 될 것이다. 사랑은 관심으로 나타나고, 신뢰는 헌신으로 이어진다. 공감은 바로 동지 의식이다. 김미경 원장의 서반트 리더십이 돋보였다.

 

필력들도 만만치 않다. 원고를 다 모아 최종 윤문(潤文)을 했겠지만 소재와 글 이음 그리고 잠정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글의 전개가 좋았다. 대부분 꽁트(掌篇, 짧은 산문)에 속하는 글이지만 일기 형식의 글, 액자 소설에 포함시켜도 무방한 글(정진혁 과장),   프롤로그 임창덕 과장의 '끝과 시작'은 초현실주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감미로웠다.

 

책 맨 앞 쪽 서지 정보란에 이 책의 지은이는 김천의료원으로 되어 있다. 김천의료원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썼다는 말이다. 김천에 살면서 김천의료원의 역사가 100년이나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가까운 것을 당연시하듯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원에 대한 고마움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 것 같다.

 

김 원장을 비롯한 의료원 구성원들이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 후 걱정한 내용들이 책 중간 중간 나온다. 눈 앞의 수익만 따진다면 거절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공의료기관이니 만큼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다. 사랑과 헌신은 만국 공통어다. 코로나19 앞에 보인 김천의료원의 집단지성은 지역에 좋은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전염병은 사람을 멀리하게 만든다. 이웃, 직장 동료 심지어 가족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그럴 수 없다. 감염이 창궐할수록 환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당연 위험이 따른다. 70일 간이란 기나긴 사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의료원 직원 중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도 기록해 두어야 하겠다.

 

코로나19가 연일 뉴스에 오를 때에도 구체적 내용까지 우리가 다가갈 수 없었다. 일반 시민이 돕고 실천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환난의 위기 앞에서 국민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길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김천의료원이 다시 생동감 넘치는 병원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흐뭇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김천의료원이 국가 재난의 때에 큰 몫을 감당했으니 발전의 동력은 당연지사(當然之事). 70일 간의 사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 ‘휴머니즘이 피어올린 아름다운 향연’으로 하면 어떨까. 수고한 분들에게 큰 박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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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2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그분을 생각한다
한승헌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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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책을 읽기는 오래간만이다. 잠자리 들기 전 짧게는 30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잠을 자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읽다 보니 자정을 지나고 있었고, 더 읽다보니 300쪽을 넘어가고 있었다. 353쪽의 부피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내 눈을 강하게 붙들 거라는 예감을 순간 했었다. 이유가 있다. 지은이 한승헌 변호사는 오랜 기간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온 사람이다. 글 중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소개되지만 시국 사건 변론을 하다가 구속된 적도 있다. 정의를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 삶을 살았다.


한 변호사는 법조인 중 유려한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 문학인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니, 변호사와 문인이라는 두 영역에 두루 활동 공간을 갔고 있으니 그를 변호사 겸 문인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훌륭한 수필가이다.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은 만남 자체가 깨끗하다. 만나는 상대가 깨끗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깨끗하다. 여기서의 깨끗함은 정의와 진리와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약자를 사랑하는 마음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것을 한 데 묶어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해 두자.


책 제목이 <그분을 생각한다>이다. ''가 아닌 '그분'을 책 제목에 포함시킬 때는 사람이 아닌 절대자()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의 '그분'은 사람이다. 변호사인 그가 변론을 맡았던 사람들이 많고, 법을 연결고리로 만나 교제한 사람들이 더해진다.


'그분'의 대상에는 문학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승헌 변호사는 법이라는 그물로 그들을 이 사랑의 향연으로 조심스럽게 모셔온다. 약전(略傳)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은 27명에 달한다. 27명이 한승헌에게 '그분'들이다. 한 변호사가 '그분'이라고 할 정도면 독자들도 관심 갖고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27명의 인물들의 공통점은 뭘까. 출생지가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각기 다르다. 크게 묶어 예술인 법조인  종교인 등으로 대별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종사하는 일이 제각각이다. 여기서 꼭 한 가지 공통점을 뽑아낸다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다는 것, 지은이는 이것을 '사서 고생한'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1855년생인 녹두장군 전봉준에서부터 현재를 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아우르고 있으니까 기간 상으로 150년이 넘고, 공간상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 심지어는 금단의 땅 북한까지 포괄하고 있다. 출생 연도 별로 인물을 배치해서 설명하고 있으니 서사적 묘미까지 맛볼 수 있다


한승헌은 예리한 눈으로, 그러나 따뜻한 마음으로 인물들을 그려낸다. 지은이도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27인의 인물들을 두 개의 틀로 그리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인물의 시대상황과 삶의 행보를 원경(遠景)으로, 저자가 직접 교감하고 확인했던 인간적 측면을 근경(近景)으로 해서 썼다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사람을 조망하고 있으니 종횡(從橫)이 정밀하게 묘사되고 있는 셈이다. 글 중에는 장례식 조사도 있고 추도사도 있으며, 책 발간을 축하하는 인사의 말 등 발표 장소와 시기가 각기 다르다. 그러나 저자가 '그분'이라고 표현한 인물들을 그리워하는 심정만은 절절하다.


이래도 한 평생, 저래도 한 평생이라고 했다.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허무주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노랫말이다. <그분을 생각한다>에 나오는 '그분'들은 그렇기 때문에 허무주의가 아니라 철저한 이타주의로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의미 있는 한 평생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다.

 

책 사이즈도 소지하기에 알맞다. 문고판보다 조금 큰 사륙판 변형(140195)이다. 책이 멀어지는 시대를 거스를 수 있는 좋은 매개물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세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피한다. 직접 읽어 보시라. 대신 그분들의 이름만이라도 알릴 필요는 있겠다. 목차에 있는 순서대로이다. 출생 순서이기도 하다.

 

전봉준 장군, 함석헌 선생, 김재준 목사, 이응노 화백, 신석정 시인, 소설가 안수길 선생, 이병린 변호사, 시민운동가 조아라 선생, 이태영 변호사, 이돈명 변호사, 김관석 목사, 이우정 교수, 김대중 대통령, 김찬국 목사, 송건호 선생, 리영희 교수, 신동엽 시인, 천상병 시인, 인민예술가 정창모 선생, 소설가 남정현 선생, 이어령 교수, 박우동 전 대법관, 박현채 교수, 김상현 의원, 인혁당 사형수 여저남 군, 김경득 변호사, 문재인 대통령(이상 27)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기를 권하지만 관심 가는 인물을 취사선택해서 읽어도 무방하다. 불의가 정의가 되고, 악이 선으로 둔갑하기 쉬운 가치 혼란의 시대에 과거 산소같이 살다 간 선인(先人)들을 만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책이라는 확신으로 독자 제현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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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와 도요히코 평전 - 사랑과 사회 정의의 사도 밀알 아카데미 34
로버트 실젠 지음, 서정민.홍이표 옮김 / 신앙과지성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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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위해 책 한 권을 놓고 이렇게 씨름해 보기는 처음이다. 이유가 뭘까. 책이 두꺼워서?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이어서? 아니다. 사람에 기인한다. 일본 사람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일본의 참 지성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쉽게 접근되지가 않는 일본인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이 책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평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목회자요 사회운동가인 가가와 도요히코는 내가 바라는 인간 상(像) 중 하나였다. 참 목회자가 되는 것도 어렵다. 참 사회운동가가 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을 가가와 도요히코는 잘 해 냈다.

기독교인 비율이 1%도 채 안 되는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은 흔치 않다. 언뜻 생각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외 지금 소개할 책의 주인공 가가와 도요히코 정도이다. 이들은 일본뿐 아니라 이웃나라에도 적잖게 영향을 미쳤다.

신앙과지성사 최 대표에게 책을 한 권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틈틈이 책을 읽어 나갔다. 읽는 도중 원문 대조가 필요한 곳이 있어서 Robert Schildgen의 Toyohiko Kagawa : apostle of Love and social justice(Centenary Books, 1988) 원서를 어렵게 구입했다. 

이 책이 일본에서는 2007년에 번역 출판되었다. 賀川豊彦記念松澤資料館 監譯 <賀川豊彦-愛と 社會正義を 追い求めた生涯>(新敎出版社, 2007)가 이 책인데 내친김에 그것까지 일본에서 공수해 왔다. 나 나름대로 많은 공을 들인 독서요, 서평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은 3국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전의 주인공은 일본 사람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이다. 그 사람을 미국인 실젠(Robert Schildgen)이 영어로 썼다. 또 그 영서(英書)를 한국의 서정민·홍이표 두 박사가 우리말로 번역을 했다.

그만큼 공감대가 확장되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 앞머리에 책의 부피가 많다는 뜻을 비쳤는데 정확하게 568쪽이다.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재미있는 문학 작품처럼 술술 읽힌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지 않게 된다. 내용도 좋고 번역도 잘 되었다.

번역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덧붙이자면 창작에 가까운 번역이라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문장 하나하나 아니, 단어까지도 세밀한 고증을 거쳐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역자 주와 내용 주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점이 이것을 말해 준다. 연보도 원서에서 대폭 보완을 했다.

무엇보다도 원서에는 없는 수많은 사진들은 역자들이 발로 뛰며 수집한 것들이어서 의미가 적지 않다. 관계되는 사진을 적재적소에 삽입하고 설명을 부기해 놓음으로써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원서와 일어 역본보다 완성도가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가가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실젠이 쓴 평전이다. 서정민 교수도 역자 후기에 썼듯이 일본인이 아닌 제3국의 사람이 쓴 이 평전은 객관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일어뿐 아니라 영어 자료까지 충분히 섭렵하고 책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기류(傳記類)가 hagiography(칭찬 일변도)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인이 쓴 가가와 전기도 여러 종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전기의 맹점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실젠의 이 책은 평전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자료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책 뒤에 첨부한 후주와 참고문헌 그리고 찾아보기는 한 권의 훌륭한 학술서적을 연상케 한다. 후주를 꼼꼼히 읽어보면 일서와 영서에 신문 잡지 기사까지 인용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중요한 부분은 관련 인사를 찾아 가 인터뷰까지 해서 내용을 채우고 있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앞뒤로 두고 모두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 제목만 나열한다고 해도 가가와 도요히코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대강을 그려볼 수 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일으킨다. 장(章)의 제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신비적 반역자의 형성, 제2장 생각을 행동으로, 제3장 빈민가 속으로, 제4장 아메리카 간주곡, 제5장 노동쟁의의 주도, 제6장 농민과 피차별 부락민을 적시며, 제7장 '하나님 나라' 운동, 제8장 미국을 뒤흔든 일본의 협동조합 운동가, 제9장 태평양전쟁의 광풍 속에서, 제10장 전시하의 평화주의자, 제11장 재건과 참회, 제12장 평화를 만드는 사람.

가가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거스르는 반역자였다. 그 반역의 꼭짓점은 정의와 약자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이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지성인이었다. 빈민들은 사랑과 섬김의 대상이었고,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도미(渡美)를 했다.

미국에 가서도 그의 관심은 노동운동 등 사회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그가 일본으로 돌아와서 사회운동을 하는 데 큰 지침이 되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이었고, 태평양전쟁에서의 패전 뒤 일본을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세계 평화가 그의 목표였다.

책의 부피에 압도당하는 사람은 한 장(章)씩 독파한다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도 좋다. 아마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대구대학교 내 '賀川豊彦硏究會'라는 데에서 가가와에 대한 책(黑田四郞 『나의 賀川豊彦 연구』)을 출판했던 적이 있다.

가가와에 대해 잘 몰랐던 때여서 '일본 사람에 대한 책을?', 거기 더해 '일본인 이름을 딴 연구회까지 대학에 버젓이?' 일종의 반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가가와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그로 인해 일본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는 해방 뒤 우리나라를 방문해(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사과를 한 첫 일본인이다.

학술 서적으로도 모자람이 없다고 했지만, 넓게 볼 때 교양 도서에 속하는 책이다. 책을 추천한 사람들의 면면에서도 그것이 읽혀진다. 곽금순(한살림연합 상임대표), 김형미(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소장), 김정혜(두레 대표), 차흥도(감리교 농촌선교훈련원 원장), 古屋安雄(가가와 도요히코 학회 회장).

모두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성격을 말해 주고 있다. 물신주의와 성장제일주의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지향해온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빈민들과 함께 젊음을 불 사르고 노동자와 농민들의 깨우침을 위해 열과 성을 다 한 가가와다. 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접점에 생활협동조합이 있다며 조합운동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가가와 도요히코다. 지금의 일본 농협과 세계 최대 규모의 코프고베는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가가와 도요히코의 정의를 추구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출발했고 끝마쳤다. 목회자는 사회의 흐름에 초연하게 교회만 잘 돌보면 된다는 의식이 우리 교계에 만연해 있다. 이런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가가와 도요히코 읽기를 권하고 싶다. 사랑해야 할 범주가 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끝으로 몇 가지 보완할 것들을 지적하고 서평의 소임을 마치려 한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오탈자가 드문드문 산견된다. 가령 '조의(賻儀)'(조의⟶부의, 37쪽), '엥겔⟶헤겔'(61, 62쪽), '사신'(使信⟶私信, 275쪽, 원문은 his message of the social gospel of Christianity로 되어 있음). 재판 때 수정할 것들이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간디와 슈바이처와 함께 20세기 초반 3대 성인으로 일컫는 사람이다. 그러나 가가와는 우리에게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 36년의 탓이 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제의 한국 지배를 반대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와 상면함으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바란다.
 
"일본의 교회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 해 주십시오!"
(Please do your best for world peace and the church in Japan)
 
가가와 도요히코는 이렇게 유언을 남기고 1960년 4월 23일 자택에서 하늘나라의 부르심을 받았다. 향년 72세였다.

 

*필자 이명재 / 덕천성결교회 목사, 김천일보 발행인, 호서대 강사,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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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일격 마르틴 루터
염창선.황진훈 지음 / 컨콜디아사(재단법인한국루터교선교부유지재단)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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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아 들고 강한 힘을 느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에게서 개혁의 힘을 느꼈고, 부가적으로 책 제목이 또 그 힘을 뒷받침했다. '반전의 일격'은 하나님께서 루터를 통해 중세 유럽을 정신적으로 결박하던 가톨릭에 일격을 가해 반전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루터는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주님이 교황청에 '일격'을 가하셨다"(12쪽)고 했다. 물론 겸양지사謙讓之辭다.

 

종교개혁의 시발始發 마르틴 루터! 루터는 내 앞에 늘 큰 산으로 우뚝 서 있다. 그런 연유인가. 루터에 대한 글은 읽을수록 새롭다. 그의 신학과 신앙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난 1월 중순 저자 염창선 박사로부터 선물로 받은 책이 <반전의 일격, 마르틴 루터>(컨콜디아사)다. 그날이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한 날이기도 해서 내게는 의미 있는 기념 선물이 됐다.

 

표지 안쪽 제목 밑에 "이 책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거듭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엮은 것"(3쪽)이라고 했지만, 비기독교인이 교양서적으로 읽어도 좋은 책이다. 중세 유럽의 역사 안목을 넓혀 줄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유럽사는 기독교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학자 루터가 끼친 영향은 다방면을 포괄한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독서 욕구를 충족할 책이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은 신앙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광범위하고 전방위적이다. 그의 개혁 정신은 16세기에 일어나고 끝난 사건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 진행돼야 할 테제이다. 신앙뿐 아니라 개혁해야 할 것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

 

그 점에서 이 책의 출판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독자를 과거로 데려가는 작업이라기보다 과거의 마르틴 루터를 오늘로 불러오는 작업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간다면,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개혁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부피가 그렇게 크지 않다. 234쪽이다. 그렇지만 루터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거의 빠짐없이 담고 있다. 면죄부 반박 95개조 논제, 성상 파괴에 대한 입장, 농민운동에 반대한 이유, 성례 개혁 등 루터의 진수眞髓를 농축해서 정리해 놓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됐다. 머리말과 추천사, '들어가며'가 본문 앞에 배치됐고 본문 뒤에 '마무리하며'와 참고문헌, 별첨이 붙었다. 별첨도 예사로 보면 안 된다. 마르틴 루터 연표, 마르틴 루터 관련 주요 유적지(주소 및 관리소 연락처)가 별첨의 내용이다.

 

책은 일반적으로 한 마리 토끼를 잡는 데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학술 서적은 연구를 위해 필요하고 실용 서적은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교양서적은 마음의 양식을 쌓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반전의 일격, 마르틴 루터>는 여러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쓰였다.

 

각주가 꼼꼼하게 붙어 있고 참고문헌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으니 학술 서적으로도 손색없다. 책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쉬운 문장으로 돼 있다. 밑줄을 치면서 꼼꼼히 읽어도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 학술 서적도 쉽게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마르틴 루터의 전기문 성격도 지녔다. 별첨의 '마르틴 루터의 연표'는 그의 생애를 요약해 놓은 것이다. 1483년 11월 10일 출생에서부터 1546년 2월 22일 비텐베르크 궁정교회에 묻힐 때까지, 전 생애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루터 관련 독일 유적지 여행의 가이드 역할도 한다. 별첨의 '마르틴 루터 관련 주요 유적지'에는 스물다섯 군데의 유적지 주소와 전화번호가 병기됐다.

 

중세 교회는 타락의 극점을 달리고 있었다. 9차에 걸친 십자군 출전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리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만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입고 말았다. 면죄부 판매는 이 무마책으로 짜낸 교황청의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 전사자들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죄(벌)를 사함 받는 면죄부 매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사해 연옥에 가 있는 영혼을 천국으로 들어 올리기 위해 면죄부를 사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것을 믿었다. 여기에 재미를 본 교황 권력은 베드로성당을 신축하면서 드는 거액의 재정을 면죄부 판매로 보전補塡하려 했다. 루터는 면죄부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루터가 이 문제를 항의하려고 비텐베르크궁정교회 정문에 붙인 것이 95개조 논제(Die 95 Thesen)다.

 

이 책은 여러 용도로 읽힐 수 있다고 했다. 그 용도를 종합해 말하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사'로 명명할 수 있겠다. 루터의 출생에서부터 그의 개혁이 다른 나라에 끼친 영향까지 짧지 않은 기간의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핵심을 다 기술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저자가 "마르틴 루터의 주요 서적과 그 배경, 핵심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13쪽)고 언급한 것에서도 내용을 알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목차 중 각 장 제목만 순서대로 소개하면 이렇다. △무대가 준비되다 △일격을 가하다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다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다 △일상 속에서 실천하다 △개혁의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책의 대강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 특징이기도 한데,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을 '심층 이해'와 '표'로 보충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공자라면 손수 찾아 공부할 부분이지만 일반인을 위한 장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학술 서적이면서 동시에 교양서적이라고 언급한 이유도 여기 있다.

 

<반전의 일격, 마르틴 루터>는 두 사람이 썼다. 독일에서 역사신학으로 학위를 받은 염창선 박사는 대학교수다. 다른 한 사람은 산업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장으로 일하는 황진훈 박사(북한학)이다. 즉 학자와 일반 신도가 함께 만든 책이다. 학술 서적 겸 교양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책 요소요소에 삽입된 루터와 관련 있는 흑백사진은 눈의 피로를 풀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선명하게 인쇄된 흑백사진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이건 오로지 독일 현지에 근무하는 황진훈 박사의 공이다. 염창선 교수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어떤 때는 사진 3장을 다시 찍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이스레벤까지 500Km 거리를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열정이 녹아 선명한 사진이 적재적소에 삽입된 책을 만들 수 있었다.

 

루터의 95개조 논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95개조를 8개 항으로 나눠서 정확하게 번역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횃불이 여기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데, 95개조를 온전히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세밀히 살펴보기 바란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루터와 더 가까워졌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는 루터 종교개혁의 모토였다. 추천사를 쓴 종교교회 최이우 목사가 지적했듯이, 루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은 이 종교개혁의 구호가 500년 후인 오늘까지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을 뜻한다. 루터를 읽으며 교계를 되돌아봤다. 세속화가 그 도를 더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는 지금,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제현諸賢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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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기도
백수복 / 성지 / 1995년 7월
평점 :
품절


백수복 목사는 우리 교단뿐 아니라 교계에서도 알아주는 문필가이다. 그의 손을 거쳐 저술(著術)되고 제작된 책이 120 여 권이나 된다고 하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이 신약 27권 중 절반에 가까운 13권을 쓴 것도 기적이지만 백수복 목사의 출판 업적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이번에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꿈을 이룬 인생에는 열정과 연단이 있다>(도서출판 진흥)는 긴 이름을 가진 책이다. 이 제목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12명 믿음의 용사들에게 함께 적용할 수 있는 주제 문장이기도 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가 그리고 '심는 대로 거둔다'는 구절(갈 6:7)이 떠오르는 내용들이다.


이 책은 우리 교단(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활천>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 숨은 성결인'이란 이름으로 작년(2016년) 한 해 연재했던 글들이다. 여기에 황예식 전영규 목사를 포함시키고 있다. 우리 성결 교단 사람들 중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은 신앙인들이다.


이런 게 바로 역사화 작업이 아닐까. 묻혀 있는 인물을 발굴하여 역사라는 수레바퀴 위에 동승시키는 것, 백수복 목사는 일찍이 <성결교회 인물전>(1-16집)에서 이런 작업을 주도적으로 해 온 바 있다. 그를 역사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는 과거를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다.


교회사가 민경배 교수가 추천사에서 "백수복 목사가 쌓아 올린 문집들은 우리 역사의 소중한 유산으로 길이 수장(收藏)해서 회자(膾炙)되데 우리 교회나 겨레의 긍지로 간직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뜻일 것이다. 백 목사의 글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역사적 형안(炯眼)의 결정(結晶)이다.


이 책엔 12 명의 모범적 신앙인들이 수록되어 있다. 평신도와 목회자가 여섯 사람씩이다. 20세기 말에 엄습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뭇 사람들의 삶과 사고를 형해화(形骸化)시키고 있다. 탈 이성적(理性的)이고 탈 중심적인 사고(思考)는 신(神)의 존재까지도 회의하게 만든다.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것들이 세상에 차고 넘친다. 우상이 득세하고 있다. 이 책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임을 보여주고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 할 때, 세상 삶도 부요해 진다. 이 책은 증명하고 있다.


삶이 곧 전도라는 믿음으로 전 가족을 구원시키고 주님께 칭찬 듣는 가정을 일군 이정님 권사(첫 번째, 전 처의 9남매는 하나님이 선물한 보석들!), 사모의 길을 상처 싸매고 보호하는 붕대로 여기며 헌신해 온 이정말 사모(다섯 번째, 천사처럼 살다간 '사랑의 붕대'), 오직 예수 한 분 만을 위해 희생적 삶을 산 임종순 전도사(일곱 번째, 현대판 한나의 기도, 총회장의 어머니), 훌륭한 목사 가문을 일구는 데 밀알이 된 이문순 집사(여덟 번째, 한 알의 밀알이 썩어 탐스러운 열매를) 등의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하게 만든다. 네 명 모두 여성들이다. 근대까지 우리 역사에서 여성은 이중의 고통을 이고 살아야 했다. 봉건적 습속(習俗)에서 믿음에 승리한 그들의 삶이 경이롭다.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전쟁고아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한 함용석 장로(두 번째, 한국의 조지 뮬러), 하나님 찬양으로 전도 왕이 된 김광진 장로(세 번째, 세상의 별에서 하나님의 별로!), 어린이 교육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킨 이용윤 목사(네 번째, 한국의 페스탈로찌), 한국 기독교 신풍운동의 주역 황예식 목사(열한 번째, 한국판 소크라테스의 성결교회 선구자) 등의 이야기를 읽을 땐 느슨해진 신앙의 허리띠를 조여 매게 된다.


전쟁고아로 주위의 도움을 받아 신학을 공부한 뒤 공군 군종감이 되어 군 복음화에 쓰임 받은 전을성 목사(여섯 번째, 전쟁고아가 공군 군종감 되어),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었지만 결국 자유 대한의 품으로 돌아와 유명 부흥사의 직임을 잘 감당한 전영규 목사(열두 번째, 역경을 극복한 한국판 25시의 주인공) 등은 목회의 도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입지전적 인물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 감찰(監察)의 연속이다. 국내외를 불문한다. 그런데 솔직히 외국의 삶 속에서 말씀 위에 굳게 선다는 것은 갑절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언어와 풍토성 등 많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의지로 미(美) 오리건주 5선 의원(상원 3선, 하원 2선)을 지낸 임용근 의원(아홉 번째, 미국의 꿈 'American Dream'을 실현한 오리건의 5선 의원), 캐나다에서 연극으로 복음을 전하는 최인섭 전도사(열 번째, 캐나다를 감동시킨 연극인) 이야기는 읽는 이의 마음을 저미게 한다.


이 책은 신실한 그리스도인 열두 명의 약전(略傳)이라고 해도 좋다. 거기에 부록으로 넣은 지은이 인터뷰 기사까지 포함하면 열 세 명의 약전이 된다. 지은이 백수복 목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기독교 저술가이다. 이 책이 출간될 시점에 그는 큰 상을 하나 받았다. 제1회 대한민국 기독교 예술대상(출판부문) 수상이 그것이다. 이런 중후한 작가가 풀어 놓는 흥미진진한 믿음의 이야기는 마음을 달뜨게 만든다. 기대하고 읽어도 좋으리라.


이 책의 특장(特長) 몇 가지를 붙이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첫째, 글이 매우 쉽게 읽혀진다. 이건 백수복 목사 글의 특징이기도 한데, 남녀노소(男女老少) 누구나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다. 나아가 신자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둘째, 매 쪽마다 관련 사진을 넣어 이해를 돕고 있다. 미처 사진을 구하지 못한 경우 삽화(揷畵)와 동영상을 캡처한 사진으로 대신하는 성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활천>에 연재된 글을 읽은 사람도 이런 사진을 곁들여 다시 읽는다면 새로운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관련 인사의 논(論), 서간, 추모사 등이 첨부되어 글의 내용에 신뢰성을 갖게 한다. 또 이런 첨부 글은 전체 글의 흐름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 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독서에 가속력(加速力)을 붙여 준다. 이것은 시각(視覺)을 중요시하는 시대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백문이불여일견(百問而不如一見)'이란 말이 있듯이 직접 읽어보는 것이 제일이겠다.


넷째, 여기에 소개된 믿음의 사람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 간 성결인들이다. 그래서 더 값지다. 한 일보다도 과대평가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여기 소개된 사람들은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역사는 객관성을 담지(擔持)될 때 가치가 있고, 역사적 인물도 이런 관점으로 평가될 때 의미가 더해진다. 역사가는 이런 작업을 해 내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백수복 목사가 큰일을 해냈다.


강준민 목사 등 각 방면의 사람들이 추천사를 써 주었다. 책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평가서와도 같다. 교단의 큰 일꾼 안봉화 권사, 교회사의 권위 민경배 박사, 기성 총회장을 지낸 이만신 목사, 예장 총회장을 지냈으며 시인이기도 한 김순권 목사, 서울신대 총장을 지낸 교회사가 강근환 교수, 청주 서문교회 박대훈 목사, 한국성지순례선교회 회장 박경진 장로 등.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책의 내용을 보증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몇 가지 지적 사항도 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책을 찾는 사람이 많으면 판을 거듭해야 한다. 그때 보정(補正)되어야 할 사항들이다. 오탈자와 띄어쓰기의 어긋남이 많이 발견된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만든 데서 왔을 것이다. 사진의 삽입으로 내용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사진에 설명이 없는 것들이 많다. 다음 판에는 보완되기를 바란다. 출판사에 대한 것인데 표지와 책 말미 서지 사항에는 '도서출판 진흥'으로 되어 있는데, 속표지에는 '(주)신한아트'로 되어 있다. 두 곳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출판사 이름을 통일시키는 것이 좋겠다. 추천사에 이름이 올라간 이만신 목사는 지금은 이 세상 분이 아니다. 책 87쪽 '백수복 목사를 논(論)함'에서 따온 것이지만 새로 출판하는 책에 돌아가신 분의 추천사를 넣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백수복 목사가 쓴 책의 제목이 <꿈을 이룬 인생에는 열정과 연단이 있다>이다. 열두 명 믿음의 용사들에 대한 주제 문장이라고 했다. 여기서 떠 오른 사자성어가 고진감래(苦盡甘來), 즉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이고, 성경 말씀에서 뽑은 것이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강준민 목사가 '이 책을 고난 중에 있는 분들과 믿음으로 시련을 극복하기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추천의 글)고 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 한 말일 것이다. 책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믿는 자로서 소망을 가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한 권의 책을 남기기도 어렵다. 백수복 목사는 120 여 권의 책을 공간했다고 한다. 앞으로 여기에 몇 권이 더 첨가될지 모른다. 출판을 통한 그의 문서 선교를 응원하며 건필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도하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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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1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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