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의 발견
남재희.박석무.김삼웅 외 지음 / 사회평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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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김두관의 발견>을 발견했다. 김두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한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까. 그래서 '발견'이다. 이것보다 더 좋은 글 제목이 있을 성 싶지 않다. 김두관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에 대한 글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 오해를 사기 쉽다. 그래서 <김두관의 발견>에 대한 서평을 쓰는 데도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정치인에 대한 책은 대부분 미화되기 쉽다. 그가 걸어온 길이 어떠하든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어디이든 우리의 정치 현실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수식어들이 붙어 독자를 붙잡는다. 서문만 읽어보면 책 내용이 훤히 보인다. 이것이 내가 정치인에 대한 책 읽기를 주저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김두관에 대한 책은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를 내 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으로 그를 말하게 한다. 이것은 대단한 장점 중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몇 년 전 알고 지내는 목사가 김두관에 대한 책을 쓴다기에 원고를 보냈던 적이 있다. 책 제목이 <내가 만난 김두관>이었는데, 나는 서울민통련 때 함께 활동한 경험에 비췬 김두관을 '변함없이 인간적인 사람'이란 타이틀로 정리했었다. 어머니, 부인 등 가족에서부터 수행팀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33명의 사람들이 김두관에 대해 쓴 글이다. 김두관 자신의 글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는 그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서 대권 주자로 운위되고 있는 그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

 

<김두관의 발견>도 김두관을 잘 아는 사람이 그에 대해 쓴 글 모음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데가 발견된다. 저자가 일곱 명이나 된다. 그것도 각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촌부(村夫)인 내가 알 정도의 사람들이니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들을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세상을 올곧게 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사람들이라 더 눈이 갔다. 남재희, 박석무, 김삼웅, 정성헌, 정상용, 김 근, 노혜경. 일곱 명의 필자, '일곱'이란 수는 성경에서는 영적 완전수라고 말한다. 완전수의 사람들이 한 인물을 두고 쓴 글이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필자들의 면면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남재희에서 노혜경에 이르기까지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고 자기 영역에 전문성을 쌓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남재희는 국회의원에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지만 내겐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언론인으로 새겨져 있다. 박석무는 중고등학교 교사와 국회의원을 역임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다산 연구가로 알려져 있다. 다산의 대중화 작업에 그가 끼친 열정은 옅지 않다.

 

김삼웅 역시 언론인이다. 아니 언론인으로만 소개하기 아까운 분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 다수의 저서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전을 그만큼 많이 쓴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대한매일신문(현 서울신문) 주필을 역임했고 참여정부 땐 독립기념관장으로 민족혼을 한 자리에 모으는데 힘을 쏟았다. 정성헌은 가톨릭농민회의 사무총장을 오래 맡아 농민운동에 헌신한 그야말로 가농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 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을 거쳐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상용은 광주 5.18 민주화동지회 회장과 국회의원으로 활발하게 움직인 경험을 갖고 있다. 그의 정의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정치적 생명에 연연했다면 당선이 보장된 광주의 지역구를 쉽게 내려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주의라는 높은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서울 강남으로 지역구를 옮겼다가 그 벽이 높다는 것만 실감한 채 낙선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정상용이 책에서 거론했듯이 노무현, 김두관 그리고 지난 총선 때 대구에서 출마한 김부겸과 함께 우직한 정치인의 반열에 올려도 좋을 사람이다. 김근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으로 칼라가 분명한 글을 써서 지식인들에게 문명을 떨쳤다. 국민의 정부 때 연합통신 사장, 참여 정부 들어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과 방송위원회 위원을 지낸 분이다.

 

나는 노혜경이 시인인지 몰랐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노사모가 동시에 연상되는 것은 그 모임에서 노혜경의 역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내가 <김두관의 발견>에 글을 올린 필자들을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먼저, 그들은 삶에 생각을 맞추려고 노력한 것이 김두관과 닮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언행일치를 늘 염두에 둔 삶을 산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는, 그들은 이 책에서 김두관을 마냥 칭찬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주장에 김두관을 가져다 붙였다고나 할까. 각 글의 중반부까지는 김두관에 대한 언급이 없어 좀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셋째, 이들이 기대하는 정치인 상(像)은 서민 지향적인 것인데, 말이 아니라 생활에서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그리고 있다. 거기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 김두관이라는 식이다. 김두관이 말했듯이 서민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라 서민 자체인 정치인…. 

 

이렇게 자기 입장이 뚜렷한 사람들이 한 인물 김두관에 대해 기술하는 글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김두관의 발견>을 두 번 정독했다. 흔치 않는 일이다. 이유가 뭘까? 김두관에 대해 천편일률적으로 칭찬만 늘어놓은 책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뚜렷한 근거 없이 추상적 미화 일변도였다면 읽다가 중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각 필자의 입장에서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정치 영역을 설명한 다음, 그 일을 해 낼 적임자로 김두관을 가시권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꼭 김두관이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지 않다. 김두관이 자기들의 생각에 가깝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 채….

 

남재희는 흔히 비판적 보수주의자 지칭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지인(知人)을 갖고 있다. 언론인, 국회의원, 장관을 거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百戰老將)이다. 그는 유신 정권 때 여당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멀리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건전한 사고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건전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재희는 우리의 정치지형에 대대적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양반층 정치인(사장, 고위관료, 법률가, 박사 등등)을 서민층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확 바꿔보면 어떨까 하고 주문한다. 농사로 치면 심경(深耕)을 하듯. 나는 그의 이 말이 감정에 격해 나온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심경의 정치 변화, 이것은 정치 발전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재희는 그 서민층을 대표할 수 있는 예로 김두관 같은 정치인을 꼽고 있다. 시골 마을 이장에서 출발해서 농민운동, 지역 언론 <남해신문> 발행인, 민선 군수, 초대 행자부 장관을 거쳐 도백에까지 오른 김두관을 남재희가 서민층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언급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날고뛰는 보수 정객이 부지기수인 마당에 비판적이라곤 하지만 보수적 시각을 가진 인사가 진보 개혁적 정치 행보를 걸어온 김두관을 예거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 말은 <김두관의 발견>에서 김두관을 의식하고 사용한 말이 아니라, 그 전 어느 정치 신인을 추천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언론인 남재희는 이 책에서 김두관의 미숙한 언론관(言論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보수 언론의 대명사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에 대선 출마 예상자들을 두고 한 말에서 작은 허점이 노정된 적이 있다. 이것도 중앙정치인이 아닌 순박한 지방 정치인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일이라며 너그럽게 봐주고 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위 아래 구분하지 않고 한결같이 겸손한 김두관이 언론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는 언론인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찾아가서 대화하는 정치인이다.

 

박석무는 경세가(輕世家) 다산 정약용의 목민관을 현실에 가장 잘 적용시키는 정치인으로 김두관을 든다. 특이하게도 2세기 반 이전의 봉건왕조 관료였던 정약용의 경세 철학이 오늘날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시대를 앞서 살다 간 다산의 탁월함을 읽을 수 있다. 김두관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는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백성은 가난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지 못한 것에 분노한다)은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에 나오는 말이다. 다산의 애민사상(愛民思想)은 단단한 동양 사상에 기초하고 있고, 백성(국민)을 사랑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 가치를 인정받는 진리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이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석무는 김두관에게서 다산을 발견했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발양(發揚)되어야 하는가에서 2세기 반의 시간을 두고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 지방 자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다산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모두 지녀, 작은 고을에서 제왕의 역할을 했던 지방관, 즉 군수 현감 현령 등의 수령들을 그 지방의 최고 지도자로 여기고 그들이 지녀야 할 자격이나 자질이 어떠해야 하느냐에 대한 접중적인 논의를 폈다(p.53). 봉건 왕조 시대 때 지방의 중요성을 인지(認知)하고 사상을 전개했다는 것은 위험천만(危險千萬)하면서도 결코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에서 다산의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 김두관의 목민관이 다산에게서 기인(起因)했다고 박석무는 결론 맺고 있다. 

 

독립기년관 관장을 지낸 김삼웅은 김두관의 역사안(歷史眼)을 두 가지 경험을 들어 평가하고 있다. 중국 유주시(柳州市)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머물렀던 장소에 전시실을 꾸미고 개관행사가 열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행사에 불청객 김두관이 불쑥(?) 찾아와서 관심을 보인 것에 대해 몹시 인상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는 상황에서 중국에 공부하러 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궤적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상웅은 김두관이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몇 되지 않는 지중파(知中派) 중의 한 사람이라고까지 적고 있었다.

 

또 한 번은 김두관이 몇몇 지인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독립기념관 관람을 왔었다고 한다. 행자부 장관을 물러나고 쉬고 있을 때였다. 김두관이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전시실을 빠지지 않고 관람하면서 수첩에 필요한 것을 꼼꼼히 메모하는 모습에서 공부하는 정치인을 발견했다며 흐뭇해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는 장차관 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적지 않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메모해 가면서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관람을 하는 정치인은 김두관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역사 인식이 문제가 될 때가 있다. 그들만의 탓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식민사관을 도려내기까지는 아직도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김삼웅은 김두관이 역사의식이 뚜렷한 정치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가톨릭농민회 운동의 상징적 활동가 정성헌은 김두관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왔다고 한다. 김두관이 남해에 내려가 농민운동을 할 때, 정성헌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성헌은 김두관을 알고 지낸 사람이기 때문에 관심 갖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김두관의 인생 역정이 그가 추진하는 생명운동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 정성헌은 앞으로의 운동은 인간 중심의 운동이라기보다 평화 생명 중심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맡고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은 극좌도 극우도 아닌 중도의 길을 걷는 생명운동인데 여기에 근접해 있는 정치인으로 김두관 지사를 들고 있다.

 

광주 민중항쟁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정상용은 한(恨)이 많은 사람이다. 개인의 한이라기보다 광주의 한, 민족의 한이다. 그를 비롯한 동지회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광주민중항쟁이 국가가 정한 기념일이 되었고, 망월동이 국립묘지로 승격되었으며 만족할 액수는 아닐지라도 보상금까지 받게 되었다. 그 후 정상용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방분권주의자 김두관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정상용의 말에 의하면 김두관을 보다 깊이 알게 된 것은 언론운동가 김태홍으로 인해서였다고 한다. 김태홍은 기자협회 회장일 때 일어난 말지 사건의 주역일 뿐 아니라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였고, 뒤에 광주 광산구청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다.

 

김태홍과 김두관 등이 중심이 되어 영호남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머슴골'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지역 갈등의 소모성을 함께 인식하고 영호남 대립의 상처를 보듬으며, 한걸음씩 좁혀가 보자는 마음으로 만든 모임이 '머슴골'이었다고 한다. 활동을 하면서 경상도 단체장 김두관이 호남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한없이 넓어 둘은 의기투합했고, 이런 정황을 김태홍이 정상용에게 전해서 김두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상용은 소인배가 판을 치고 있는 정치에 김두관 같은 통 큰 정치인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김두관에 대해 거는 선배 정치인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김근은 언론인이다. 그의 언론 이력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는 그를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다. 지역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그의 논설을 읽으면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원함을 맛본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김근이 김두관을 주목하고 있다. 반목과 적대사회의 통합을 위해서 김두관과 같은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근은 김두관의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 않은 인생행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제도 정치권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현실에 물들게 마련인데 김두관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근은 사람 차별만큼 기분 나쁘고 비인격적인 것도 없다면서 영호남의 지역 구도를 누구보다 우려하는 사람이다. 나아가 이것은 단지 우리나라 내의 지역 차별뿐 아니라 한국에 와 있는 이주 외국인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따뜻한 인정을 나누며 그들의 필요를 도와줄 때,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위하는 친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외국인들에게 너무 야박하게 대우해 줌으로써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들이 자국으로 귀국한 뒤 철저한 반한파(反韓派)로 만드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에 관심 두고 있는 김두관을 김근은 발견하고 있다.

 

노혜경은 시인이다. 참여정부를 출범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한 노사모를 만드는 데도 그녀가 일익을 담당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미국 소설가 나다나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을 원용하여 김두관을 이끌어내고 있다. K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노혜경은, 글의 주인공 어니스트의 입을 빌려 큰 바위 얼굴을 만드는 것은 개더골드 같은 황금도,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같은 힘도, 올드 스토니 피즈의 권력도 아니고 순박한 사랑과 자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큰 바위 얼굴이 된 어니스트는 정규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밭에서 일하며 하루하루의 일상적 노역을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모든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들과는 달리, 태어나 단 한 번도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변방의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어니스트와 가장 닮은꼴의 정치인을 꼽으라면 K형(김두관) 외에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노혜경의 김두관 대망론인 셈이다. 시인의 눈으로 보는 한 정치인이 이렇게 따뜻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문학의 힘이고 진실의 힘에 의해서일 것이다. 시인 노혜경의 글은 <김두관의 발견>을 결론짓는 압권(壓卷)의 글이다. 직접 당신이오가 아니라 큰 바위 얼굴을 원용한 간접 지칭이 더 설득력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의 글로 '<김두관의 발견>을 발견하다'로 제목을 정한 이유가 얼마간 해명되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덧붙여 '발견'이라는 단어를 쓴 또 다른 소이(所以)가 있다. 일곱 명의 필자가 붓을 놓고 난 뒤의 막간 글 때문이다. 이 글들은 '김두관의 발견 기획위원회'에서 쓰지 않았나 싶은데, 김두관에 대해 미처 모르고 있었거나 안다고 해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소중한 '발견'이 되는 것이다.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동아일보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자신을 왜 이렇게 심하게 때리느냐며 하소연하면서, 자신이 과거 생활이 어려워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하던 월간지 <신동아> 외판을 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들더라는 것이다. 과거의 고난을 유머로 승화시킨 실 예화이다. 남해신문을 만들면서 기사에서 배달까지 1인6역을 하며 지역 주민들을 섬겼다는 이야기, 지방자치와 분권의 중요성을 잘 아는 김두관 지사의 의회 출석률이 100%(참고로 서울시장을 지낸 오세훈은 같은 기간 의회 출석률 29.7%)로 도의회(道議會)를 존중했다는 이야기 등이 신선한 삽화처럼 글 사이에 끼어 있다.

 

김두관의 큰형은 독일 광부 출신이다.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남해군에 아름다운 관광명소 독일마을을 만들었고,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개발에 강력하게 대항한 것은 댐 건설로 파괴되는 환경 문제도 문제이지만 실제 농민들이 입을 피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다는 것, 70세 이상의 가난한 노인 분들에게 혜택을 주는 틀니 사업은 '사람 중심 행정'의 모범 사례로 꼽을 수 있는데도 처음엔 다수당의 반대가 심했다는 것 등은 오늘날 필요한 환경 보호와 진정한 복지가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나는 봉하 마을로 조문을 갔었다. 상가(喪家)를 지키고 있을 김두관에게 연락을 하니 밤샘을 한 뒤, 싸우나에 가서 씻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의 영결식장이 서울로 잡혔다. 서울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김두관에게 연락을 취하니 뒷정리를 위해 봉하 마을에 남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두 봉하 마을을 뜬다면 그 뒷일을 누가 처리하겠는가? 대청소, 회계정리, 황색 리본 간수, 방문자 명단 정리 등등을 말이다. 그때 김두관으로 인해 한 방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책은 적고 있다.

 

"제가 이 동네 경남 촌놈입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소리 소문 없이, 대부분이 모르게 뒷마무리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김두관 자신인들 장례식장에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며 감동적이라고 적고 있다.

 

김두관의 섬김은 몸에 체화되어 있는 듯하다. 겸손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이다. 섬김의 리더십이 대권 주자에게 뺄 수 없는 덕목이 될 것이다. <김두관의 발견>을 쓴 일곱 명의 필자가 모두 김두관 열렬 지지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의 잣대인 혈연 지연 학연 교연(敎緣) 등을 떠나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오는 12월 대선에서 김두관이 야권 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한 정치인에 대해 포장된 미화가 아니라 객관적 평가라는 점에서 다른 정치인 관련 책자와 차이가 난다. 필자 각인이 주어진 영역에 전문성을 담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글의 논리성도 돋보인다. 끝으로 '옥의 티'같이 여겨지는 것은 일곱 사람이 한 정치인에 대해 글을 쓰는 만큼 내용의 중복성이 가끔 눈에 띈다는 점이다. 하지만 책의 성격 상 피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12월 대선 뿐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두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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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붙잡힌 전도자 -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
김인중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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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좀 권위를 지킬 줄도 알고 일반 사람들과는 품위가 달라야 하며 어딘지 모르게 거룩하게 보여야 한다는 선입견들을 가지고 있기가 쉽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 와중에 김인중 목사를 만났을 때, 그는 전혀 별개의 목회자로 내게 다가왔다. 몇 년 전 우리 교단 연합 집회 강사로 그가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강단에도 근엄하게 올라오지 않았다. 마치 토끼가 산비탈을 뛰어 올라가듯 그런 모습으로 강대상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급히 올라오다가 전기선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난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의를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 한 쪽엔 창피함이 남아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는 그 특유의 '한 바퀴 기도'로 좌중을 제압했다. 시장 경찰서장 구청장 교육감 동장 대학총장 학장 파출소장 법원장 지검장 학교 교장 회사 사장 등 100여명의 이름을 쉬지 않고 외어 대어 회중들을 웃게 만들었다가 놀라게 했다. 그의 앞에는 체면도 위신도 발붙일 여지가 없다. 그는 전도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전도가 알파요 오메가인 셈이다. 어렵게만 생각되던 전도가 그의 말대로 한 번 해 봐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뀌는 것을 그의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동일하게 느꼈을 것이다.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가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성령에 붙잡힌 전도자>가 그것인데, 작년 11월 초판 인쇄로 되어 있으니까 최 신간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엔 전도에 관한 김 목사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목회자를 실천에 강한 사람과 이론에 강한 사람으로 구분한다면 김인중 목사는 실천에 강한 목회자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도 결코 실천에 뒤지지 않는다. 그의 전도가 생명력을 가기고 있고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론이 뒷받침된 실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만 풍성하고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그의 '실천 전도학'이 소중하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1972년 허허벌판 안산(당시 명칭은 반월 공단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에서 일곱 명의 성도로 안산동산교회를 개척하여 지금은 2만 가까운 출석교인을 가진 대형 교회로 성장시켰다. 그의 열정과 하나님의 은혜가 맞물려 이런 성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그는 책갈피 중간 중간에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고 김인중 목사를 교회 성장주의자로 보면 안 된다. 그는 교회를 규모와 양으로 평가하는 데에 극도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해서 나온 결과라면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양적으로 성도 수를 늘리고 외형적으로 교회의 규모를 넓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목회자가 아니다.

 

전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대명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전도에 대해 소개한 책자는 너무나 많다. 이론서에서부터 실무 경험서에 이르기까지 널려 있는 것이 전도학 책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가 쉽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 있다. 이론서는 당위를 강조한 것들이 대부분이며, 실무 경험서도 특정한 사람에 의해 특정한 시기에 특별한 장소에서 경험한 것들이기 때문에 일반화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난 전도에 대한 책을 그래서 잘 읽지 않는다.

 

한 전도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강사로부터 새로 나온 전도 책이라며 읽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면 전도에 대해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인중 목사는 성령의 사람이다. 불신 가정에 태어나서 가난으로 어머니와 형제 몇을 잃고 방탕한 아버지마저 자신을 내 팽개쳐 그야말로 천신만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따라 교회에 나간 김 목사는 그때부터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아왔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신앙인의 롤 모델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김인중의 <성령에 붙잡힌 전도자>는 전도 보고서이다. 전도 중심의 교회가 어떻게 부흥해 왔는지를 진실하게 밝힌 책이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살게 되는 도시' 인 안산에서 안산동산교회가 발전해온 이야기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계에 가장 건강한 교회로 세워나가는 과정을 한 목회자의 눈으로 돌이키고 있다. 자신의 전도와 교회 부흥 이야기를 드러낼 목적으로 책을 썼다면 그렇게 호감을 가지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본 장들을 거쳐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순종 그리고 은혜에 붙들린 자신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하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붙잡는다.

 

250쪽에 가까운 분량의 책을 순식간에 독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김 목사의 필력 때문인 것 같다. 그는 행동도 말도 스피디하다. 이것저것 재는 사람이 아니다. 스피디한 성격으로 가끔 헛말이 나오고  넘어지는 실수를 하는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의 솔직한 마음의 결과인 것 같아 모두 좋게 생각한다. 이 책은 전체 4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와 장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전도 행전을 엿볼 수 있기에 충분하다. 소개하면 세부 부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1부 ‘내가 이 복음을 가장 사랑하기에’는 1장 나는 빨간 수첩이 좋다. 2장 침묵하지 말고 일단 외쳐라. 3장 전도 열정만이 생명을 살린다. 2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처럼’에는 4장 성령 받은 전도자의 전도 스타일. 5장 전도는 오직 발로 뛴 만큼 된다.  6장 기도로 전도하는 '한 바퀴 기도' 3부 ‘전도하는 이 기쁨을 모두 알도록’에는 7장 뜨거운 전도자가 전도자를 낳는다. 8장 이대로 따라하면 누구나 전도한다. 9장 모든 설교의 결론은 언제나 전도. 4부 ‘행복한 전도자, 다 되게 하소서’에는 10장 전도의 꽃은 셀 교회가 피운다. 11장 도시 지형을 바꾸는 전도의 능력. 12장 3%의 영향력으로 도시를 거룩하게.

 

각 부와 장의 제목에 김 목사의 전도 메시지가 다 담겨 있다. 이 중 특별히 기록해 둘 것은 전도 기록을 위해서 빨간 수첩을 준비하는 것. 굳이 빨간 수첩을 고집하는 이유는 예수님 십자가 보혈을 연상하게 하고 또 영적 죽음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김 목사의 '한 바퀴 기도'는 벌써 유명하다. 그의 교회가 있는 안산 전 지역을 관공서 아파트 단지 등을 한 바퀴 돌며 이름을 대고 그들의 영혼구원과 평강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짧아도 두 시간 많게는 네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개인 전도도 중요하지만 단체전도 집단전도를 위해 교회 시스템을 셀(Cell) 체제로 바꾸어 교회가 더 건강하게 되었다며 셀 교회로의 전환을 권장하고 있다.

 

그는 복음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주창하고 있는 것이 3%의 신실한 크리스찬이 97%의 시민을 책임진다는 '3%의 영향력' 사역을 들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구약에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계하면서 남은 자 사상을 말씀하셨고,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도 그의 책 <역사의 연구>에서 창조적 소수를 말한 바가 있다. 3%가 97%를 책임진다는 것은 3%의 염분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한다는 현상에서 원용한 것이지만 이미 성경과 역사에서도 다루어 검증된 법칙이기도 하다. 3%의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안산 동산고등학교는 이미 명문 미션 스쿨로 자리잡았다. 믿는 자의 자녀들이 그 학교에 가고 싶어 중학교 때 학교 소재 도(道)인 경기도로 전학을 간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이 학교는 오로지 김 목사의 의지의 산물이다. 본인이 고학하며 공부한 과거 경험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 학교에서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단련 받은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적 자리에 앉아 그 자리를 하나의 선교 센터로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 할 때, 강건한 주님의 나락가 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 이 학교를 경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산동산교회의 내외적 사역을 소개함으로 서평을 마치려고 한다. 이 교회의 사역은 다른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큰 도전을 줄 것이다. 교회 내 사역으로 동산교회의 감성동산 사역이 있다. 사랑나눔 36.5도, 21일 성품 캠페인, 감성리더십센터, Thanks Giving, NGO박람회 등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사역이다. 또 교회 밖 사역으로는 해드림은행, 아워홈(Our-home), 러브 박스(Love-box), 러브미(Love-米), 푸른꿈 학교, 해피 700 등의 일들이 지역에 빛을 발하고 있다. 어느 교회든 벤치마킹해도 좋은 사역들이란 생각이 든다.

 

김 목사는 교회를 세상과 분리해서 생각하고 운영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 사업은 이익 창출에 목적을 두지만 교회에서 하는 주님의 일은 손해 보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서 숫자 놀음에 젖어 있는 현금, 그의 주장은 상쾌함을 가져다준다. 그는 안산동산교회의 장애인 작업장을 그 예로 들고 있다. '푸른동산 보호작업장'이 그것인데, 여기엔 50 여명의 장애인들이 천연 비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이문이 남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제조에 들어가는 원가가 판매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장을 기쁨으로 운영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깊이 새기면서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교계에 안산동산교회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큰 교회여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김인중 목사의 참된 목회관이 전 성도들과 어우러져 지역에 선한 영향을 끼치며 하나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기 때문에 자랑스럽다. 세상 논리가 교계를 지배한 지 오래이고 사랑을 말로는 풍성하게 외치지만 실천에 옮기는 데는 인색한 교계이다. 또 모였다 하면 편 가름이요 주도권 다툼이어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교계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한 편 김인중 목사가 이끄는 건강한 교회 안산동산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다는 것은 어둠 저편의 한 줄기 빛으로 작용한다. 빛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김인중 목사의 <성령에 붙들린 전도자>에서 이 빛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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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문준경의 신앙과 삶
주승민 지음 / 킹덤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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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민 교수는 교회사(敎會史)를 연구하는 중진학자이다. 그가 2000년에 공간한 바 있는 도서 제목 <초대교회 집중탐구>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서양교회사를 연구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교회 역사에도 관심을 두고 간간히 글을 쓰는 것 같더니 1년 전에 <순교자 문준경의 신앙과 삶>이라는 묵직한 책을 출간했다. 

 

내가 이 책을 입수한 경로는 좀 특이하다. 교회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관심을 두고 있는 학자의 논문이나 책은 즐겨 읽는 편인데, 주 교수의 이 책은 며칠 전에야 입수했다. 출간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었는데 구입과 읽기에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우리 지역에 한 전도 훈련 프로그램이 석 달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기에 가니 주 강사가 훈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도서라며 주 교수의 이 책을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순교자는 믿음을 위해서 목숨을 던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 표지 하단에도 박혀 있듯이 영어 'martyr'는 '순교자'를 뜻한다. 그런데 대부분 하나님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martyr'는 원래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313년 이전 초대교회 때, 로마 사회에서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순교하다', '순교자' 등으로 뜻이 확장된 것이다.

 

본서 추천의 글에서 주남석 기성 총회장도 말했듯이 장로교의 주기철 손양원 목사와 같은 순교자를 우리 교단도 가질 수 있어 든든하다. 주 교수가 책의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강조한 ‘순교자 영성’을 되새기며 읽어 볼 일이다. 주 교수는 헌정사에서 "이 책을 사랑하는 성결교회와 한국교회에 헌정합니다."라고 밝힘으로써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교계에서 널리 읽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1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앞에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외 7명의 ‘추천의 글’이 올려져 있다. 우리 교단(기성)을 넘어 타 교단의 중진 목회자들의 추천사로 볼 때, 문준경 전도사를 교단을 넘어 우리 기독교 전체의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추천의 글을 보내 준 목회자들도 이런 저자의 의도에 호응해서 문준경 전도사는 우리 기독교사에 빛날 순교자라는 것을 함께 밝혀주고 있다.

 

문준경 전도사가 우리에게 알려지기는 오래지 않다. 그가 1891년에 태어나 1950년에 순교했으니 59세의 일생을 살다가 간 사람이다. 그의 사역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반도 최남단 신안군이라는 지방에서,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주님의 일을 한 것이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순교 기념관을 건립하고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순교자 문준경을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가 남긴 기록이라고는 세 개의 짧은 글밖에 없다(‘임자면 교회 부흥기’ 「활천」1937, 84. ‘후증도교회 성전 건축기’ 「기쁜소식」1937, ‘나의 구원과 봉사’ 「기쁜소식」1938). 문 전도사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자료의 결핍을 들고 있다. 이런 좋지 않은 조건에도 주 교수는 발로 뛰며 자료를 발굴하고 증언을 듣고 현지를 방문하는 등 최대한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수고가 중후한 한 권의 문 전도사에 대한 책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책 뒤에 부가(附加)되어 있는 참고 도서를 보니까 학술 논문뿐만 아니라 지방 군지(郡誌), 개 교회사, 대학원 석사 논문까지 소개되어 있었다. 자료가 될 만한 것은 작은 것이라도 관심을 두고 모은 학자의 마음이 읽혀졌다. 그렇다고 이 책을 온전한 학술 서적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먼저 각주 처리가 되지 않았으며, 또 저자의 상상력이 많이 동원되어 문 전도사를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문준경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둔 서적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자료와 증언이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 책으로 문준경의 업적과 순교 나아가 역사적 인물로 보게 하는 데는 필요충족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고 생각한다. 총 11개 장으로 구성된 짧지 않은 글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물론 11개 장 중 1장부터 6장까지가 문준경이 순교하기까지의 일대기에 해당하고 7장은 김준곤 목사의 추모 글이며 나머지 8장에서 11장까지는 문준경에 대해 주 교수의 생각을 다듬은 글들을 모았다.

 

평이한 글에 필요한 관련 사진까지 요소요소에 삽입되어 있어서 읽기에 아주 편했다. 이런 사진을 일일이 찾아 책에 올린다는 것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할 것이다. 주 교수의 학자적 성실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문준경의 순교적 영성이 면면히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지게 된다. 기독교계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순교적 영성만큼 우리의 신앙을 강고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저자도 이런 바람으로 이 책을 상재(上梓)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문준경을 우리의 진정한 신앙 선배라는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좋은 믿음의 선진이 있을 때 좋은 신앙인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저자의 학문적 진지함과 성실성 그리고 작은 것에까지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기뻤다. 좋은 저자는 늘 독자의 형편을 고려하고 함께 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적 사항도 없지 않다.

 

먼저, 이 책이 대중을 대상으로 읽게 할 목적으로 쓰였다고 해도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의미도 없지 않은 만큼 학술서적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유 명사 뒤에 붙이는 호칭을 통일시킬 필요가 있다. 어떤 때는 '~님' 자를 붙였다가 또 다른 곳에서는 붙이지 않는 등 통일성이 결여 된 곳이 산견(散見)된다. '~님'자를 생략하고 그냥 '목사', '전도사' 등의 단어를 쓰도 무방할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연구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 객관적인 눈을 갖고 보는 것이다. 문준경 전도사에 대해서도 이 눈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에 대해 지나친 폄하를 피할 일이지만 사실을 무시한 과도한 평가도 피해야 한다. 가령 이런 경우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녀(문준경)가 영성면에 있어서나 실천면에 있어서 당시 같은 교단에서 섬기던 이들 중 탁월해 육지의 어느 큰 교회에서 청빙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다 포기하고 섬 선교의 전문가로 발돋음함에는 그녀가 얼마나 희생적인 사역자였는가를 가늠케 하여 결국 그녀의 회심이 철두철미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이 책 74쪽)

 

물론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반드시 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화의 함정에 빠져 문 전도사에게도 또 저자에게도 나아가 우리의 기독교사에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나의 소견으로는 일제시대 여성 사역자로서 아무리 탁월한 능력과 실력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뭍의 큰 교회에서 그런 여성 사역자를 담임으로 청빙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고 있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를 보는 데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 상황에 대해 두 이론(異論)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죽창에 의해 숨을 거두게 되었다는 주장'과 '가슴 부위에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주 교수는 이 두 주장 중 전자를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 근거로 두 목사의 증언을 들고 있다. 그럴 수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저자는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일제시대 총탄이 부족한 것을 생매장하거나 죽창 등으로 사용해 죽인 예를 들고 있다. 그런 전통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죽창을 사용해서 문준경을 죽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주장에 약간의 비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해야 하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시대 일본의 만행과 6.25전쟁 때의 공산군의 만행을 억지로 등치시키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또 죽창이냐 총탄이냐를 굳이 선택해야만 하는 것인가도 의문이다. 6.25를 소재로 한 전쟁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바와 같이 총과 나무 죽창 등의 수제(手製) 무기를 병행해서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많았다. 역사는 사실(事實)에 근거해야 하고 사실(史實)을 밝혀나가는 작업임을 고려할 때 치밀한 논구는 필요하나 선택이 아니라 종합해야 할 때도 많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이 책은 대중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판을 거듭하여 출판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아주 사소한 문제지만 몇 곳 정정할 곳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재판 때 참고하기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를 가리킨다.

 

배제학당-배재학당(34), 동거동락-동고동락(42, 110), 시각 장애자-시각 장애인(46), 배운데로-배운대로(64), 비로서-비로소(92), 감래-감내(120), 김기약-감기약(141), 선상-선산(144), 9홉 켤레-아홉 켤레(149), 무려 6억 5천원-무려 6억 5천만원(167), 전 인구의 40% 정도-전 인구의 25% 정도(169), 대표의장-대표회장(185), 재단-제단(236) 등

 

 몇 가지 지적을 했지만 이것이 책의 장점과 가치를 낮추게 하지 않는다.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우리의 삶이 또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실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충언이 될 것이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좋은 학문적 열매들을 맺어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는 저자 주승민 교수에게 찬사를 보내며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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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끝까지 사랑하라 -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루트 파우 수녀의 삶과 사랑
루트 파우 지음, 미하엘 알부스 기록, 도현정.장혜원 옮김 / 지향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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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이름은 [처음처럼 영원히]입니다. '한의사 수녀의 늦깎이 사랑'은 이 책의 부제(副題)입니다. 저는 이 책을 신재용 원장님으로부터 추석 선물로 받았습니다. 목사인 제게 신 원장님은 따스한 편지 말미에 추신을 달았습니다.  

 

"김정희 수녀님(미국 난달 전 회장)의 책 1권을 동봉합니다. 수녀님 책이지만 시간 나실 때 읽어 주시면 그분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시간 날 때가 아니라 오늘 일부러 도서관에 가서 독파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존 번연은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이라는 우화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의 고난을 흥미진진하게 기술해 놓은 책입니다.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발걸음하는 여정은 신앙인이라면 신구(新舊)를 가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처음처럼 영원히](도서출판 이유)는 김정희 수녀님의 영적 신앙고백의 기록입니다. 1986년 홀로 도미해서 나름대로 자기 영역을 확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그는 자기 일에 성실했습니다. 한 경영대학원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한의과대학에서 석‧박사 학위(Ph.D.)를 받은 노력파입니다. 그 후 실력을 인정받아 사우스 베일로(South Baylo University) 한의과대학 교수와 병원 지도교수, 병원장으로 미국 사회에 한‧양방 교류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도 남달랐습니다. '동의난달'하면 우리나라에서 소외계층에 무료의료 시술, 대중문화 보급 등에 앞장서온 봉사단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해성한의원 신재용 원장님이 설립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선행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 공로로 동의난달이 2010년 서울복지대회에서 봉사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또 설립자 신재용 명예이사장님은 그해 도산봉사상을 수상한 바도 있습니다. 김정희 수녀님은 동의난달의 미국 지부 회장을 맡아 봉사에 뛰어난 달란트를 발휘했습니다. 

 

신앙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국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이상 방점을 하나님께 맞추어 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그래서 세상일도 열심히 하고 주님의 일도 열심히 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을 병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 16: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김 수녀님은 이런 말씀에 순종하여 대학교수 병원장 등 세상일을 내려놓고 영적 순례를 결단합니다.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수녀복이 좋아서 수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다짐한 것도 꼭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김 수녀님은 남은 생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소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삶의 목적을 찾아 떠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힘든 영적 순례를 결행합니다. [처음처럼 영원히]는 김 수녀님이 미국 뉴멕시코에 있는 '성삼성모회'(Society of Our Lady of the Most Holy Trinity))에 입회하여 지원기, 청원기, 수련기를 무사히 마치고 수녀가 되는 과정에서 느낀 한 사람의 묵상록입니다.

 

앞뒤에 위치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총 4부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끝없는 갈증과 욕망의 괴로움'에서는 세상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결단하고 수도원에 입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고, 이어 2부에서는 미국 생활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수많은 만남과 가슴 아픈 이별들'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단단히 각오하고 들어온 수도원이지만 모든 것이 서투르고 세상의 감정이 남아 꿈틀대는 것을 '사라지지 않는 괴로움과 갈등'으로 엮으면서 수도원에 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밝히고 있으며, 4부에서는 수녀복을 입고 주님의 신실한 종이 되기 위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당신 안에 머물게 될 나의 길'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김영희 수녀님의 [처음처럼 영원히]를 읽으면서 여느 신앙 간증집과는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며 은혜 받고 사울이 바울로 변했듯이 180도 바뀐 인생 여정을 그야말로 모범적으로 기록해 놓은 간증집들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은 이 책에서 자신을 완전히 억제하며 오로지 주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글의 주 맥락은 하나님 중심이지만 김 수녀님의 인간적인 고뇌도 피하지 않고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 미운 사람, 좀 덜 힘든 것을 찾으면서도 곧 뉘우치는 그의 모습에서 참으로 인간적이고 진솔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이 책을 더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바쁜 생활로 10여년 냉담을 한 사실도 서슴없이 밝히고 있고, 수녀원에 입소하면서도 고국에 계신 노모와 형제들에겐 비밀로 한 것이라든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국(異國)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서운함 등도 솔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작은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 순화되고 말지만 이런 과정을 드러내놓고 밝히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세상에 모든 승부를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신앙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참된 진리와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영역임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김 수녀님의 언어 구사는 매우 평범합니다. 전문적인 신앙 용어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한 특징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 페이지의 여백마다 관련 사진을 덧붙인 것도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쉽게 읽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또 각 소제목에 딸린 글의 분량이 매우 짧습니다. 한두 쪽, 길어야 세 쪽을 넘지 않습니다. 굳이 형식에 따라 글의 종류를 분류하자면 신앙적 장편(掌篇)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가 쉽게 다가가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정확한 나이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아주 늦게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정희 파우스티나 수녀님입니다. 세상 고난 다 극복하고 삶이 원숙해진 경지에서 주의 여종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만큼 더 귀하게 쓰임 받을 것을 말해줍니다. 한 가톨릭 신자가 수녀가 되기까지의 고뇌와 번민 갈등 그리고 결단, 뒤이어 걷게 되는 수도원 생활에 동참함으로써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길 바라고, 신앙인은 신앙의 토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처음처럼 영원히]는 두루 읽힐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며 일독을 권합니다.

 

*부기

<처음처럼 영원히>(도서출판 이유)는 알라딘에서 검색되지 않습니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수녀님의 책을 빌려 서평을 올립니다. 알라딘에서는 출판사와 상의해서 책을 확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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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여 년 전, 소설가 유익서를 만나 서울 인사동 찻집에서 담소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그때 이어령이 우리 대화의 주제가 될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유익서는 이어령에 대해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며 흠모의 마음을 품고 열변을 토했다. 사실 나는 그때 문학평론가 이어령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못했다. 20대부터 '독불장군'식의 글로 자기를 드러내는 예의가 없는 문인쯤으로 치부해 두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한편으론 부럽고 또 다른 한편으론 경원시하고 싶은 이중의 마음이 공존했다. 그런 나의 생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다방면에서 생각과 필력을 번득이고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굴렁쇠를 굴리는 동자(童子)'는 과거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였다.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이 아이디어가 이어령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뒤에 주창한 ‘디지로그(Digilog)’의 태동이 될 것이다.

 

이어령이 70이 넘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었다. 한 사람의 넌 크리스천이 크리스천이 된 것이 무슨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어령은 분명 다르다. 그의 이름 앞엔 자리에 따라 다른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기호학자, 문화기획자, 전 문화부장관 등. 그만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철저히 이성(理性)에 기반한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다.

 

기독교인이 된 이어령이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가 그것이다. 버틀란트 러셀이 지난 세기 초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자신이 비기독교인임을 밝힌 것과 대조적으로 이어령은 자신의 책에서 기독교인이 된 과정을 소박한 심정으로 밝히고 있다. 내가 이 책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자기 겸손의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순수와 순종에로의 회귀를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2007년 기독교인 되는 의식, 즉 세례를 받고나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한국 최고 지성의 훼절(毁節)로 보아 안쓰럽게 생각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죽음을 앞둔 노신사의 솔직한 고백이라며 위로의 마음을 갖기도 했다.

 

이어령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문필가이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글 쓰는 기술밖에 없는데, 하찮은 이것이라도 주님을 위해 쓸모가 있다면 최선을 다 하겠다"고 고백한다. 지금까지의 이어령에게서는 나오기 쉽지 않은 고백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목사의 아들 니체가 하나님을 부정하고 무신론적 실존을 주장하며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유와는 다르다. 즉 지금까지의 자기 사고(思考)에 대한 전적인 부정이 아니다. 지성을 사다리로 해서 영성의 세계로 진입한 지평의 올바른 확장이다. 

 

주어진 환경에 상관없이 종교와 정치엔 비교적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을 종교적 동물 또는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주위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이 돼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단지 무신론자요, 인본주의자요, 인문주의자를 대표했던 한국 최고의 지성이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가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은 삶의 변화에 좋은 동기를 부여해 줄 것이다. 글쟁이요 말쟁이인 이어령의 겸손이 신앙에로 연결되는 좋은 매개물,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그래서 읽은 이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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