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여 년 전, 소설가 유익서를 만나 서울 인사동 찻집에서 담소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그때 이어령이 우리 대화의 주제가 될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유익서는 이어령에 대해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며 흠모의 마음을 품고 열변을 토했다. 사실 나는 그때 문학평론가 이어령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못했다. 20대부터 '독불장군'식의 글로 자기를 드러내는 예의가 없는 문인쯤으로 치부해 두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한편으론 부럽고 또 다른 한편으론 경원시하고 싶은 이중의 마음이 공존했다. 그런 나의 생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다방면에서 생각과 필력을 번득이고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굴렁쇠를 굴리는 동자(童子)'는 과거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였다.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이 아이디어가 이어령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뒤에 주창한 ‘디지로그(Digilog)’의 태동이 될 것이다.

 

이어령이 70이 넘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었다. 한 사람의 넌 크리스천이 크리스천이 된 것이 무슨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어령은 분명 다르다. 그의 이름 앞엔 자리에 따라 다른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기호학자, 문화기획자, 전 문화부장관 등. 그만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철저히 이성(理性)에 기반한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다.

 

기독교인이 된 이어령이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가 그것이다. 버틀란트 러셀이 지난 세기 초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자신이 비기독교인임을 밝힌 것과 대조적으로 이어령은 자신의 책에서 기독교인이 된 과정을 소박한 심정으로 밝히고 있다. 내가 이 책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자기 겸손의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순수와 순종에로의 회귀를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2007년 기독교인 되는 의식, 즉 세례를 받고나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한국 최고 지성의 훼절(毁節)로 보아 안쓰럽게 생각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죽음을 앞둔 노신사의 솔직한 고백이라며 위로의 마음을 갖기도 했다.

 

이어령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문필가이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글 쓰는 기술밖에 없는데, 하찮은 이것이라도 주님을 위해 쓸모가 있다면 최선을 다 하겠다"고 고백한다. 지금까지의 이어령에게서는 나오기 쉽지 않은 고백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목사의 아들 니체가 하나님을 부정하고 무신론적 실존을 주장하며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유와는 다르다. 즉 지금까지의 자기 사고(思考)에 대한 전적인 부정이 아니다. 지성을 사다리로 해서 영성의 세계로 진입한 지평의 올바른 확장이다. 

 

주어진 환경에 상관없이 종교와 정치엔 비교적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을 종교적 동물 또는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주위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이 돼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단지 무신론자요, 인본주의자요, 인문주의자를 대표했던 한국 최고의 지성이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가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은 삶의 변화에 좋은 동기를 부여해 줄 것이다. 글쟁이요 말쟁이인 이어령의 겸손이 신앙에로 연결되는 좋은 매개물,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그래서 읽은 이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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