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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문준경의 신앙과 삶
주승민 지음 / 킹덤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주승민 교수는 교회사(敎會史)를 연구하는 중진학자이다. 그가 2000년에 공간한 바 있는 도서 제목 <초대교회 집중탐구>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서양교회사를 연구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교회 역사에도 관심을 두고 간간히 글을 쓰는 것 같더니 1년 전에 <순교자 문준경의 신앙과 삶>이라는 묵직한 책을 출간했다.
내가 이 책을 입수한 경로는 좀 특이하다. 교회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관심을 두고 있는 학자의 논문이나 책은 즐겨 읽는 편인데, 주 교수의 이 책은 며칠 전에야 입수했다. 출간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었는데 구입과 읽기에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우리 지역에 한 전도 훈련 프로그램이 석 달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기에 가니 주 강사가 훈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도서라며 주 교수의 이 책을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순교자는 믿음을 위해서 목숨을 던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 표지 하단에도 박혀 있듯이 영어 'martyr'는 '순교자'를 뜻한다. 그런데 대부분 하나님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martyr'는 원래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313년 이전 초대교회 때, 로마 사회에서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순교하다', '순교자' 등으로 뜻이 확장된 것이다.
본서 추천의 글에서 주남석 기성 총회장도 말했듯이 장로교의 주기철 손양원 목사와 같은 순교자를 우리 교단도 가질 수 있어 든든하다. 주 교수가 책의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강조한 ‘순교자 영성’을 되새기며 읽어 볼 일이다. 주 교수는 헌정사에서 "이 책을 사랑하는 성결교회와 한국교회에 헌정합니다."라고 밝힘으로써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교계에서 널리 읽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1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앞에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외 7명의 ‘추천의 글’이 올려져 있다. 우리 교단(기성)을 넘어 타 교단의 중진 목회자들의 추천사로 볼 때, 문준경 전도사를 교단을 넘어 우리 기독교 전체의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추천의 글을 보내 준 목회자들도 이런 저자의 의도에 호응해서 문준경 전도사는 우리 기독교사에 빛날 순교자라는 것을 함께 밝혀주고 있다.
문준경 전도사가 우리에게 알려지기는 오래지 않다. 그가 1891년에 태어나 1950년에 순교했으니 59세의 일생을 살다가 간 사람이다. 그의 사역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반도 최남단 신안군이라는 지방에서,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주님의 일을 한 것이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순교 기념관을 건립하고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순교자 문준경을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가 남긴 기록이라고는 세 개의 짧은 글밖에 없다(‘임자면 교회 부흥기’ 「활천」1937, 84. ‘후증도교회 성전 건축기’ 「기쁜소식」1937, ‘나의 구원과 봉사’ 「기쁜소식」1938). 문 전도사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자료의 결핍을 들고 있다. 이런 좋지 않은 조건에도 주 교수는 발로 뛰며 자료를 발굴하고 증언을 듣고 현지를 방문하는 등 최대한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수고가 중후한 한 권의 문 전도사에 대한 책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책 뒤에 부가(附加)되어 있는 참고 도서를 보니까 학술 논문뿐만 아니라 지방 군지(郡誌), 개 교회사, 대학원 석사 논문까지 소개되어 있었다. 자료가 될 만한 것은 작은 것이라도 관심을 두고 모은 학자의 마음이 읽혀졌다. 그렇다고 이 책을 온전한 학술 서적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먼저 각주 처리가 되지 않았으며, 또 저자의 상상력이 많이 동원되어 문 전도사를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문준경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둔 서적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자료와 증언이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 책으로 문준경의 업적과 순교 나아가 역사적 인물로 보게 하는 데는 필요충족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고 생각한다. 총 11개 장으로 구성된 짧지 않은 글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물론 11개 장 중 1장부터 6장까지가 문준경이 순교하기까지의 일대기에 해당하고 7장은 김준곤 목사의 추모 글이며 나머지 8장에서 11장까지는 문준경에 대해 주 교수의 생각을 다듬은 글들을 모았다.
평이한 글에 필요한 관련 사진까지 요소요소에 삽입되어 있어서 읽기에 아주 편했다. 이런 사진을 일일이 찾아 책에 올린다는 것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할 것이다. 주 교수의 학자적 성실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문준경의 순교적 영성이 면면히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지게 된다. 기독교계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순교적 영성만큼 우리의 신앙을 강고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저자도 이런 바람으로 이 책을 상재(上梓)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문준경을 우리의 진정한 신앙 선배라는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좋은 믿음의 선진이 있을 때 좋은 신앙인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저자의 학문적 진지함과 성실성 그리고 작은 것에까지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기뻤다. 좋은 저자는 늘 독자의 형편을 고려하고 함께 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적 사항도 없지 않다.
먼저, 이 책이 대중을 대상으로 읽게 할 목적으로 쓰였다고 해도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의미도 없지 않은 만큼 학술서적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유 명사 뒤에 붙이는 호칭을 통일시킬 필요가 있다. 어떤 때는 '~님' 자를 붙였다가 또 다른 곳에서는 붙이지 않는 등 통일성이 결여 된 곳이 산견(散見)된다. '~님'자를 생략하고 그냥 '목사', '전도사' 등의 단어를 쓰도 무방할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연구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 객관적인 눈을 갖고 보는 것이다. 문준경 전도사에 대해서도 이 눈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에 대해 지나친 폄하를 피할 일이지만 사실을 무시한 과도한 평가도 피해야 한다. 가령 이런 경우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녀(문준경)가 영성면에 있어서나 실천면에 있어서 당시 같은 교단에서 섬기던 이들 중 탁월해 육지의 어느 큰 교회에서 청빙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다 포기하고 섬 선교의 전문가로 발돋음함에는 그녀가 얼마나 희생적인 사역자였는가를 가늠케 하여 결국 그녀의 회심이 철두철미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이 책 74쪽)
물론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반드시 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화의 함정에 빠져 문 전도사에게도 또 저자에게도 나아가 우리의 기독교사에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나의 소견으로는 일제시대 여성 사역자로서 아무리 탁월한 능력과 실력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뭍의 큰 교회에서 그런 여성 사역자를 담임으로 청빙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고 있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를 보는 데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 상황에 대해 두 이론(異論)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죽창에 의해 숨을 거두게 되었다는 주장'과 '가슴 부위에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주 교수는 이 두 주장 중 전자를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 근거로 두 목사의 증언을 들고 있다. 그럴 수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저자는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일제시대 총탄이 부족한 것을 생매장하거나 죽창 등으로 사용해 죽인 예를 들고 있다. 그런 전통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죽창을 사용해서 문준경을 죽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주장에 약간의 비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해야 하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시대 일본의 만행과 6.25전쟁 때의 공산군의 만행을 억지로 등치시키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또 죽창이냐 총탄이냐를 굳이 선택해야만 하는 것인가도 의문이다. 6.25를 소재로 한 전쟁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바와 같이 총과 나무 죽창 등의 수제(手製) 무기를 병행해서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많았다. 역사는 사실(事實)에 근거해야 하고 사실(史實)을 밝혀나가는 작업임을 고려할 때 치밀한 논구는 필요하나 선택이 아니라 종합해야 할 때도 많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이 책은 대중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판을 거듭하여 출판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아주 사소한 문제지만 몇 곳 정정할 곳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재판 때 참고하기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를 가리킨다.
배제학당-배재학당(34), 동거동락-동고동락(42, 110), 시각 장애자-시각 장애인(46), 배운데로-배운대로(64), 비로서-비로소(92), 감래-감내(120), 김기약-감기약(141), 선상-선산(144), 9홉 켤레-아홉 켤레(149), 무려 6억 5천원-무려 6억 5천만원(167), 전 인구의 40% 정도-전 인구의 25% 정도(169), 대표의장-대표회장(185), 재단-제단(236) 등
몇 가지 지적을 했지만 이것이 책의 장점과 가치를 낮추게 하지 않는다.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우리의 삶이 또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실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충언이 될 것이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좋은 학문적 열매들을 맺어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는 저자 주승민 교수에게 찬사를 보내며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