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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끝까지 사랑하라 -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루트 파우 수녀의 삶과 사랑
루트 파우 지음, 미하엘 알부스 기록, 도현정.장혜원 옮김 / 지향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이름은 [처음처럼 영원히]입니다. '한의사 수녀의 늦깎이 사랑'은 이 책의 부제(副題)입니다. 저는 이 책을 신재용 원장님으로부터 추석 선물로 받았습니다. 목사인 제게 신 원장님은 따스한 편지 말미에 추신을 달았습니다.
"김정희 수녀님(미국 난달 전 회장)의 책 1권을 동봉합니다. 수녀님 책이지만 시간 나실 때 읽어 주시면 그분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시간 날 때가 아니라 오늘 일부러 도서관에 가서 독파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존 번연은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이라는 우화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의 고난을 흥미진진하게 기술해 놓은 책입니다.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발걸음하는 여정은 신앙인이라면 신구(新舊)를 가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처음처럼 영원히](도서출판 이유)는 김정희 수녀님의 영적 신앙고백의 기록입니다. 1986년 홀로 도미해서 나름대로 자기 영역을 확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그는 자기 일에 성실했습니다. 한 경영대학원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한의과대학에서 석‧박사 학위(Ph.D.)를 받은 노력파입니다. 그 후 실력을 인정받아 사우스 베일로(South Baylo University) 한의과대학 교수와 병원 지도교수, 병원장으로 미국 사회에 한‧양방 교류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도 남달랐습니다. '동의난달'하면 우리나라에서 소외계층에 무료의료 시술, 대중문화 보급 등에 앞장서온 봉사단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해성한의원 신재용 원장님이 설립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선행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 공로로 동의난달이 2010년 서울복지대회에서 봉사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또 설립자 신재용 명예이사장님은 그해 도산봉사상을 수상한 바도 있습니다. 김정희 수녀님은 동의난달의 미국 지부 회장을 맡아 봉사에 뛰어난 달란트를 발휘했습니다.
신앙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국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이상 방점을 하나님께 맞추어 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그래서 세상일도 열심히 하고 주님의 일도 열심히 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을 병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 16: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김 수녀님은 이런 말씀에 순종하여 대학교수 병원장 등 세상일을 내려놓고 영적 순례를 결단합니다.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수녀복이 좋아서 수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다짐한 것도 꼭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김 수녀님은 남은 생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소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삶의 목적을 찾아 떠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힘든 영적 순례를 결행합니다. [처음처럼 영원히]는 김 수녀님이 미국 뉴멕시코에 있는 '성삼성모회'(Society of Our Lady of the Most Holy Trinity))에 입회하여 지원기, 청원기, 수련기를 무사히 마치고 수녀가 되는 과정에서 느낀 한 사람의 묵상록입니다.
앞뒤에 위치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총 4부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끝없는 갈증과 욕망의 괴로움'에서는 세상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결단하고 수도원에 입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고, 이어 2부에서는 미국 생활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수많은 만남과 가슴 아픈 이별들'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단단히 각오하고 들어온 수도원이지만 모든 것이 서투르고 세상의 감정이 남아 꿈틀대는 것을 '사라지지 않는 괴로움과 갈등'으로 엮으면서 수도원에 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밝히고 있으며, 4부에서는 수녀복을 입고 주님의 신실한 종이 되기 위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당신 안에 머물게 될 나의 길'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김영희 수녀님의 [처음처럼 영원히]를 읽으면서 여느 신앙 간증집과는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며 은혜 받고 사울이 바울로 변했듯이 180도 바뀐 인생 여정을 그야말로 모범적으로 기록해 놓은 간증집들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은 이 책에서 자신을 완전히 억제하며 오로지 주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글의 주 맥락은 하나님 중심이지만 김 수녀님의 인간적인 고뇌도 피하지 않고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 미운 사람, 좀 덜 힘든 것을 찾으면서도 곧 뉘우치는 그의 모습에서 참으로 인간적이고 진솔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이 책을 더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바쁜 생활로 10여년 냉담을 한 사실도 서슴없이 밝히고 있고, 수녀원에 입소하면서도 고국에 계신 노모와 형제들에겐 비밀로 한 것이라든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국(異國)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서운함 등도 솔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작은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 순화되고 말지만 이런 과정을 드러내놓고 밝히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세상에 모든 승부를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신앙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참된 진리와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영역임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김 수녀님의 언어 구사는 매우 평범합니다. 전문적인 신앙 용어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한 특징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 페이지의 여백마다 관련 사진을 덧붙인 것도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쉽게 읽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또 각 소제목에 딸린 글의 분량이 매우 짧습니다. 한두 쪽, 길어야 세 쪽을 넘지 않습니다. 굳이 형식에 따라 글의 종류를 분류하자면 신앙적 장편(掌篇)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가 쉽게 다가가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정확한 나이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아주 늦게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정희 파우스티나 수녀님입니다. 세상 고난 다 극복하고 삶이 원숙해진 경지에서 주의 여종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만큼 더 귀하게 쓰임 받을 것을 말해줍니다. 한 가톨릭 신자가 수녀가 되기까지의 고뇌와 번민 갈등 그리고 결단, 뒤이어 걷게 되는 수도원 생활에 동참함으로써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길 바라고, 신앙인은 신앙의 토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처음처럼 영원히]는 두루 읽힐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며 일독을 권합니다.
*부기
<처음처럼 영원히>(도서출판 이유)는 알라딘에서 검색되지 않습니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수녀님의 책을 빌려 서평을 올립니다. 알라딘에서는 출판사와 상의해서 책을 확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