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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자연에 도전한 인간의 모든 역사
크리스 보닝턴 지음, 이정임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퀘스트란 말은 알다시피 탐구, 추구라는 뜻이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무언가를 계속 추구해 나간다. 그 무언
가는 일종의 끌림이면서 끌어가는 자석과 같은 것일 수 있다.성장하면서 어느순간 자기에게 새겨진 털어낼
수 없는 유전자를 뒤늦게 발견하고 놀라게 되지만 그 길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되고 만다. 남은 것은 얼
마나 열정을 다해 몰입하느냐의 문제다. 이 책은 극한적인 모험과 탐험에의 추구라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
이 거대한 자연을 상대로 어떻게 도전하고 응전해 나갔는가를 기록한 기록물이다. 모험과 탐험의 역사는 인
류문명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20세기를 넘어서는 지금 인류의 발길이 닫지 않은 곳은 없다. 자연을 정복
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이미 달에까지 그 흔적을 남긴지 오래 됐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신의
두발과 두손으로 그리고 오로지 육체의 힘만을 이용하여 거대한 자연속으로 자기의 온몸을 던지려는 사람
들이 있는 법이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들을 가장 어려운 코스를 이용하여 오른다든지 스스로의 힘과 지식
만으로 운행되는 배를 타고 거대한 대양을 건넌다든지 두다리만을 이용하여 오지를 탐험한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그들을 그 거대한 자연속으로 내모는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다. 자신에게 새겨진 겉잡을수 없는 유
전자. 모험을 통해서 정신의 고양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도전속에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일상의 평범한 일들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 책에는 강과 바다
하늘 그리고 산등 여러방면에 걸쳐서 대단히 선구적이고 도전적인 모험과 그들의 도전을 기록하고 있다. 저
자인 크리스 보닝턴은 유명한 산악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히말라야 같은 고산을 등반한 등반가들
의 얘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산을 좋아해서 히말라야 등반에 관한 책들을 많이 구해서
읽는 편인데 이미 읽었던 메쓰너의 낭가파르밧 등반기라든지 모리스 에르조그의 안나프루나 초등의 얘기가
보닝턴의 시각으로 다시 씌어져 있어 무척 반가웠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엄홍
길이나 박영석 그리고 한왕용같은 걸출한 등반가를 배출했다. 특히 박영석같은 경우는 남극 북극 모두에 깃
발을 꽂으므로 세계 최초로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완등, 7대륙 최고봉 등정, 남북극 등정을 모두 이루는
것)을 달성한바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이 전부 서구의 모험가들의
얘기인 점이다. 그동안의 모험을 서구인들이 주도해 왔기도 하지만 저자가 영국인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것
이다. 그러나 동양에도 우에무라 나오미 같은 탁월한 모험가 없었던 것은 아니기에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방대하고 다양한 모험이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을 읽는 한 키워드는 개별 모험이야기들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이다. 각각의 모험에서 발생하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가를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1969년의 독일 낭가파르밧 원정대와 1970년의 영국 안나푸르나 남벽 원정대의 등반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당시의 등반은 오늘날처럼 소규묘의 인원으로 구성하여 스피드있게 정상을 등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원정대를 보내서 조금씩 전진하면서 등정에 이르는 일종의 극지법 등반이 주류였다. 당연히 원정대의 대장의 역할은 등정자보다 중요해서 원정의 성패가 대장의 지휘 통솔 능력에 달려 있었다. 당시 독일원정대의 대장은 헤를리히코프박사였는데 자신의 사촌형을 낭가파르밧에서 잃어버린 후 히말라야 원정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등반경험이 별로 없는 그는 주로 베이스켐프에 머물면서 원정을 지휘했는데 그러므로서 선등자와 충분한 교감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당시 선등자는 그 유명한 라인홀트 메쓰너였는데 그는 원정이 끝날 때까지 대장이 선등자의 상황을 몰라준다고 불평했던 것이다.(결국 헤를리히코프는 등정을 포기하고 철수하라고 했는데 메쓰너는 이를 무시하고 치고 올라가 등정해 버렸던 것이다.) 반면 영국원정대의 대장은 크리스 보닝턴으로 그는 당대 탁월한 등반가였다. 그는 베이스켐프에는 적당한 인물을 배치해 놓고 자신은 선등자의 바로 아래 캠프에 머물면서 보급과 등정에 관한 지휘를 하였다. 그 자신이 등반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대장이 선등자와 바로 교감할 수 있는 위치에서 지휘를 한다는 것이 팀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등반이었다. 당시의 히말라야 원정대의 대장의 위치는 군대로치면 사령관과 같은 역할이었는데 오늘날 CEO들이 이 책을 읽으면 기업을 운영하는데 훌룽한 시사점을 얻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