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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의 동서양 고전탐사 1 - 알퐁스 도데.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프리드리히 니체 ㅣ 탐사와 산책 7
이병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이런 책을 왜 이제야 만나게 됐는지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동안 별로 읽을 만한 책이 없다고 속으로 투덜거린 내가 너무 한심할 정도로 훌륭한 책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병주라는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선생자신이 읽고 사숙했던 동서양 고전들과 그 작가들의 얘기다. 자신이 고전을 만나게 된 동기로 시작해서 고전과 저자의 일생을 더듬어 나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책을 만나게 된 동기가 극적이어서 그 자체가 한편의 소설과도 같은데 선생의 손을 거쳐 다시 소개되는 고전들의 향기가 책을 덮은 뒤에도 떠나지 않는다. 이 책에 소개된 책과 작가들은 너무나 유명한 사람들이요 그들의 책들은 대부분 한번쯤은 읽었던 책들이다. 그러나 선생의 고전탐사를 따라가다보면 내가 그동안 읽었던 방식이 얼마나 허술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은 단순한 교양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영혼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권의 고전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엄숙한 생각도 해본다. 그 중에서도 청년 이병주가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사숙했던 토스토예프스키의 얘기는 이 연말연시에 새삼스럽게 내 영혼을 흔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반체제적인 모임에 참여하고 금서를 읽었다는 이유로 사형집행을 당하기 직전에 감형되어 저 혹독한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길에 자기 형에게 썼다는 편지를 소개하면,
형님! 나는 낙담하지 않습니다. 어딜 가도 삶은 삶입니다. 삶은 우리의 내부에 있는 것이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불행 속에 있어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이며 인생의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이 생각이 나의 살과 피가 되었습니다. 여하간 내겐 사랑할 수도 고민할 수도, 기억할 수도 있는 피와 살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처럼 풍부한 정신 세계가 내 내부에 비등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이 나이에도 뇌세포가 곤두서는 것 같다. 편지는 이어져서........
과거를 돌이켜보건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과오와 나태와 무능한 생활을 했는지 후회 막급입니다. 얼마나 시간을 소홀히 했는가.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해왔는가를 생각하면 창자가 잘리는 느낌입니다. 삶은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삶 자체가 행복이어야 하는 겁니다. 일순간 일순간을 영원의 행복으로 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형님! 맹세합니다. 나는 희망을 잃지 않고 정신과 육체를 淸淨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이런 고전들을 새롭게 만나게 해준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오래된 책임에도 계속 출판하고 있는 출판사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올해에는 어떤 삶이 내게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도 무슨 삶이건 삶은 삶이므로 소중히 살아 나가겠다고 다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