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아프리카 - 정해종의 아프리카 미술기행
정해종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주문하여 읽게 된 것은 한 주의 책을 소개하는 일간지의 귀퉁이에서 이어령 선생의 추천 글을 읽고 나서이다. [터치 아프리카! 이 책은 상상력과 열정이 식어가는 우리에게 생명의 불꽃을 보여주는 하나의 거대한 조각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 깊이 기록되어 있는 암호들을 해독해준다. 성냥골에 불이 붙는 것처럼, 내안의 아프리카가 섬광처럼 켜진다.]라는. 이 시대의 대가가 이렇게까지 평가한 책의 내용은 무엇일까.

‘상상력과 열정이 식어가는 우리에게’는 맞는 말이로되, ‘내면 깊이 기록되어 있는 암호들’이라니........아프리카는 내게 아니 우리에게 너무 멀리 있다. 우리 의식속의 아프리카는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낙후되어 있어 전혀 모범으로 삼을 곳이 아닌 곳. 타잔이나 동물의 왕국. 혹은 저자의 얘기대로 콜라병을 눈에 갖다 대고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는 부시맨의 모습, 그리고 에이즈나 굶주림으로 동물처럼 죽어가는 저 비참한 사람들의 버려진 땅으로 대개 기억된다. 그러나 독자들의 이러한 편견을 깨부수려는 듯 저자는 처음부터 남아메리카의 광대한 대지 위를 매우 서정적인 리듬을 타고 상륙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머리글 한편은 그 책 전체와 맘먹는 값어치를 한다고 믿는다. 저자가 시인이라는 것을 확인하여주는 서문의 멋진 글을 보자. [밤의 평원은 사방이 다 별이다. 운전대 위로 길게 사선을 그으며 바로 눈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는 별똥별들을 바라볼 땐, 마치 내가 외계의 어느 행성을 찾아가는 고독한 우주 나그네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암흑의 대지를 빠르게 지나면서 멀리서 보면 내가 별똥별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평원은 자유를 가르치면서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아프리카 평원의 아득한 밤길을 달리면서 쓴 것 같은 이 글은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한 독자의 시선을 유혹하는 매혹적인 글이다.

무릇 좋은 기행문이란 자기가 체험하고 느낀 곳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애정이 있어야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래야 눈에 보이는 단순한 풍광이 아닌 그곳의 실체에 대한 곰 삭여진 글이 나오는 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성형의 남아메리카 기행집인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라든지 이희수의 ‘세계문화기행’중의 터키편 같은 글을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수에 젖은 듯 이국의 공기와 대지의 냄새를 전해주는 작가의 글에서는 그 곳 사람들의 살 냄새가 더불어 풍겨지는 법이다.

터치 아프리카라. 남아메리카 대륙의 광대한 길들을 부드럽게 터치하며 달리던 작가의 차가 멈춘 곳은 짐바브웨이다. 이곳은 아프리카의 조각의 대명사인 쇼나조각의 고장이다. 쇼나조각은 돌의 본성에 대한 영적 접근을 통해 아프리카 토착문화의 역동적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특히 돌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정과 망치 등 전통적인 도구만 이용해 돌 그 자체에 영혼을 불어넣은 자연의 조각이라는 점에서 서구의 조각과는 차별을 갖는다고 한다.(책 17쪽 설명).

쇼나조각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를 찾아가는 저자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부시맨들의 회화로 옮겨간다. 사물을 바라보는데 원근법과 일관된 시점이라는 현대 회화의 원칙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의 그림. 그래서 어떤이들로부터 어린아이들의 그림 같다는 이유로 유치한 것으로 해석되는 그림에 문명이전의 지고지순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또 다른 방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실제로 부시맨의 회화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로부터 오히려 모던한 평가를 받는 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동안 살아왔던 그들은 서구의 관점에서의 이른바 문명에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 그들은 전쟁의 경험이 없었으며 따라서 전술도 없는 소집단 생활로 인하여 강한 부족으로부터 쫓기어 자기 땅에서 밀려났다. 부시맨들이 갈수록 더한 가혹한 환경에 처하게 된 것은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상륙하고서 부터이다. 그들은 부시맨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끊어진 고리를 이어주는 살아 있는 화석쯤으로 여겼다. 땅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를테면 흰개미들이 짓밟힌 자기 집을 복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나 풀잎이 스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시간 혹은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을 통해 짐승의 흔적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정확히 알아낼 수가 있으며 심지어는 짐승의 배설물만 보고도 그 짐승의 성별, 나이, 크기, 건강상태 등을 알 수 있다고 한다.)이 탁월했던 그들을 서구 열강들은 전쟁에 동원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20세기가 지나도록 벌판의 미아처럼 유랑하거나 쫓기고 착취당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그들이 마침내 정치적인 자각을 하게 되는데 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한 것이 문화적인 정체성의 회복이었다. 그 방편 중의 하나가  현대예술 프로젝트로 나타났으며 그런 과정을 통하여 부시맨 부족의 전통적인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작품을 통해 부시맨들은 문화전통을 회복하고 더 나은 삶을 누려야 하는 권리와 자신들이 남아프리카 문화유산에 얼마나 중요하고도 독특한 공헌을 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부시맨들의 회화와 작품의 전개과정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피폐된 역사까지 안내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장, 저자는 이제 흑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타운십을 찾아간다. 그곳은 인류가 아프리카에 대하여 가지는 어떤 부채 같은 현장이다. 그들의 비참한 현실이 우리의 이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되는가. 아니다. 작가는 전세계 인구 63억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해 놓을 때 그 중에 20명이 영양실조이고 1명은 아사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으며 15명이 비만이라는 사실로 치환해서 다수의 정상적인 사람들의 책임을 아프게 묻고 있다.

아프리카 미술여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아프리카문화의 정체성 그리고 현실, 그들의 아픈 역사와 현재의 삶까지 더듬어 확인 할 수 있다. 아프리카는 있는가? 지은이가 처음에 자신에게 묻듯이 독자에게 물었던 질문에 스스로 아프리카는 이렇게 대양너머에 자리 잡고 있다고, 그리하여 당신의 내면 깊이 자리하고 있는 환상과 무지의 심지에 불을 켜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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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2005-11-0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성의 잇게 잘 쓰셨네요.. 일간지 서평 부럽지 않네요.. 저도 읽었는데 할말이 너무 많아 정리가 안되든데..필자의 필력이 예쁜표지가 그리고 감동을 주는 그림과 조각들과 기행문적인 요소들이 정말 잊고잇던 아프리카를 불러 일으키지요.

이끼낀 바위 2005-11-0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이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부끄럽구요. 하여간 아프리카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책이었어요. 저자의 말대로 아프리카는 대양너머에 그렇게 자리잡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해서 그냥 무시하고 흘려 버릴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들의 아픔엔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만이 가지는 시원적인 문명은 그 자체로  소중히 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