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탐험가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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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 19세기 이성과 합리주의가 세상을 온통 지배하던 사회에 비이성적이며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은 정신심리학의 거대한 광구 속으로 돌진해 들어간 3명의 선구자 혹은 광신자

들에 관한 전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세 명 중에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선구자로 그 이후 시대의 모든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사실 교과서적인 것 외에 얼마나 알고 있을까?)그

보다 앞선 시대의 프란츠 안톤 메스머나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창시자인 메리 베이커 에디는 그다지 잘 알려

져 있지 않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메스머나 에디는 인간을 이해하는 방향과 질환의 치료에 인간의 정신세계를 주목했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에 대한 접근방법이나 환자의 치료방법에서 매우 구별되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인

물됨 만큼이나 말이다. 그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길은 사실 오늘날의 정제되고 세련된 의학적 기준에서 보

면 퍽이나 유치하게 여겨질 발상들이었지만 당시의 세계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생각들이었다.

메스머의 경우를 보자. 당시는 인간의 심리나 최면을 이용한 환자의 치료는 마술사 아니면 미친 약장수 취

급을 받던 시대였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놀라운 집중력으로 최면의 세계를 이용하여 환자를 치료하였으니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한 것은 당연했다. 그는 평생을 음지의 학문연구 속에서 살아야 했던 불운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 책에서 츠바이크가 가장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메리 메이커 에디는 그 극적인 삶으로 인해 아주 인

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마흔이 넘도록 중증 신경증환자였던 그녀가 어떻게 심리치료를 받고 자리에

서 떨쳐 일어났는가 아니 자리에서 떨쳐 일어난 정도가 아니라 가히 신적인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를

의학자적인 심리분석과 기자적인 호기심에 그만의 독특한 필치로 매우 다이내믹하게 형상화 해냈다. 이 책

은 절망의 나락에서 천상의 날개를 단 여인으로까지 극단적인 변신을 거듭한 한 여인의 삶을 숨가쁘게 추적

해 냄으로서 도데체 한눈을 팔 겨를 없이 단숨에 책을 읽게 한다.

이제 프로이트에 대하여 애기할 차례이다. 사실 100여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프로이트라는 거대한

산맥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 나갔는데 역시 츠바이크구나 하는 경탄을 하

게 한다. 어렵다면 어렵다고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의 핵심 개념을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나마

군데 군데 설명해 가면서 그의 인물됨과 시대 배경을 적절하게 섞어가는 솜씨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그

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부분은 쉬운 프로이트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작가는 프로이트

생전에 그와 교류를 나누었던 사람이다. 프로이트라는 거장과 서신을 주고 받으며 그의 학문의 탁월성에 일

찌기 개안한 츠바이크는 그에 대한 경외감인지 조금 조심스럽게 프로이트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일부 소개하고 있어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다. 

이 책이 쓰여진 때로부터 벌써 80여년이나 지난 오늘날에 의학적 혹은 심리학적 지식이 전무한 독자로서도

책의 내용은 사실 시사성이 떨어진 과거의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어떠한 계기를 통하여 인생의

변화가 시작되는가. 그에게 다가온 운명의 시간 그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들을 어떻게 포착하여 순간을

영원으로 환원해 내는가 하는 것은 무릇 범인들의 끝없는 관심사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여전히 동시대에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여러 가지 관점으로 읽을 수 있다. 정신심리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그 전사로서의 역사의 인

물들에 주목하면서 읽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독자같이 그 방면에 문외한인 자로서 한 인간의 지적 혹은

정신적 추구가 어느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말이다. 물론 어느 관점에서

읽더라도 츠바이크가 명징하게 펼쳐놓은 삶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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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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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어제의 세계'는 평생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소망했던 한 인간이 자신의 전생애에 걸친 시대와 사회

를 살아낸 이야기이다.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결국은 고향과 조국으

로부터 버림받은 삶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지만 평생에 걸쳐 통합된 유럽과 코스모폴리탄적 세계를 갈망

하였던 사람이다. 그 자신 정치에는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고 애정도 없었지만 바로 그 광포한 정치로 인해

여리고 순수한 영혼에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스스로를 마음의 감옥속으로 유폐시킨 채 그토록 사랑하

고 그리워하던 예술과 낭만의 거리로부터 추방되었던 것이다.

문학으로 일군 명예와 영감이 넘쳐나는 예술가들과의 숱한 교류를 통한 정신적 고양을 경험하였지만 결국

덧없이 스러져가는 황혼처럼 죽음이 그의 신체와 영혼에 드리워졌다. 츠바이크는 유럽문화의 중심이자 예

술의 향기가 넘쳐나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태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김나지움의 학교시절부터

도식적이고 제도화된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름대로의 문학적 소통을 통하여 인생의 활로를 열어간다.

이런 상황은 베를린에 유학한 대학생활까지 이어진다. 일찍이 유럽의 다른 나라 시인들의 시를 번역하거나

혹은 여행이나 교류를 통하여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고 나누어 주었던 츠바이크의 관심은 전 유럽을 관통하

는 것이었다.

빈에서 태어나 짤즈부르크에서 오랜 생활을 살았지만 그의 생의 일관된 지향점은 울타리 없는 유럽의 정신

과 자유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유럽통합의 전사로 소개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

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내기 보다는 문학과 예술을 통하여 형성된 한 인간의 내면의 삶

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데 더 커다란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하겠다. 그의 인격형

성에 관계되는 온갖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등을 통하여 유럽의 어제의 역사와 예술지도는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츠바이크의 자서전이라고도 하겠는데 전기작가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츠바이크가 자신의

일생을 자신의 방식으로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 황혼이 깔려오는 석양 무렵 클래식기타나 피아노의 선

율이 잔잔히 흐르고 있는 카페에서 때론 나지막하게 때로는 격하게 자신의 일생을 독자에게 들려주고 있는

츠바이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활동의 폭이 워낙 컸기에 그의

삶은 개인적인 일상으로 축소되기보다는 유럽의 지성과 예술의 역사를 동시에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그의 매력적인 문체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는 책이다. 그의 문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더욱 빛

을 발하는 듯 하다.

유럽의 문학세계를 풍미하던 츠바이츠에게 찾아온 두 번의 전쟁은 너무나도 가혹했던 것 같다. 결국 말년의

츠바이츠는 전쟁을 피하여 브라질까지 멀어져 갔지만 상한 영혼은 더 이상 안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표현대로 성급하게 세상을 하직한다. 그런 면에서 츠바이크의 유서로 시작하는 이 책은 안타깝게도 슬프다.

그리고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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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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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 한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  작가의 표현대로 별 같은 시간을 포착하여 그와 그 시대의 삶을

그려내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솜씨는 과연 명불허전이라고 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츠바이크는

우연적이거나 아니면 일상의 단순한 일들로 묻혀 버릴 뻔한 사실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감별해

낸다. 마치 생선을 앞에 놓고 가시와 살코기를 예리하게 발라내듯이 그의 칼은 살점하나 흐트러트리지 않으

면서 역사의 핵심부분들을 도려낸다. 장인의 솜씨와 안목으로. 그리하여 이미 죽어버린 역사를 살아있는 역

사처럼 요리해 내는 것이다. 한 인간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과 그의 뱃가죽의 두께로 그의 삶, 그의 시대를

통찰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작가의 역사관과 세계관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머리말을 보자.

"역사상의 별 같은 순간은 이후 수십 수백년의 역사를 결정한다. 전 대기권의 전기가 피뢰침 꼭대기로 빨려

들어가듯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시간의 뾰족한 꼭지점 하나에 집약되어 실현되는 것이다. 단 한

번의 긍정이나 단 한번의 부정, 너무 빠르거나 혹은 너무 늦거나 하는 일이 이 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서 개인의 삶, 민족의 삶 심지어는 인류전체의 운명의 흐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사소한 것의 연속이지만 그런 것들의 집약된 결과가 어느 순간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힘에 의해 역

사적인 결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별처럼 등장하는 천재들의 입김을 통하여 역사는 변환된다는 것이다. 그

의 글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영웅주의적 역사관이라고 할까. 하지만 천재나 영웅들의 출현도 평지돌출이

아닌 기나긴 역사의 응집의 힘이 만들어내는 결과라고 츠바이크는 이해하고 있다.

츠바이크의 글에서 한가지 아쉽다고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느낀 점의 하나는 역사변환의 어떤 우

연적 요소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다 보니 역사발전의 필연성이 다소 무시되는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동

로마제국의 멸망이 잊혀진 문 '케르카포르카'가 우연히 열려 있음을 기화로 촉발되었다든지 혹은 워털루에

서 황제 나폴레옹의 직접적인 명령만을 기다리다가 구원병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그루쉬 장군으로 인하

여 유럽의 역사 아니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다는 것이라든지 하는 부분은 다소 수사적인 표현이라고 여겨지

더라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소설보다도 재미있고 시처럼 리드미컬하며 산문처럼 우아하고 교향곡처럼 장중한 그의 문체와 글은

유사한 다른 역사이야기들과는 애초에 비교하기가 뭣할 정도로 빼어난 감이 있다. 아울러서 이런 훌륭한 글

을 유려하고 솜씨있게 번역해서 독자들에게 내놓은 번역자의 공 또한 무시 못하리라.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도 이 책의 장점은 엄청나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퇴근시간에 버스정류장에서 이 책을 읽다가 하마터면 버스

를 놓칠 뻔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처음 읽는 독자들께서는 화장실에서나 혹은 아이를 돌보면서는 읽지 마

시라. 책에 빠져 뭔가 일이 잘못될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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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꼭 살아 돌아간다 - 전설적인 클라이머, 조 심슨의 생존 실화
조 심슨 지음, 정광식 옮김 / 예지(Wisdom)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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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영화나 픽션같은 상상속의 세계보다 더 비현실적인 현실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9.11테러라든지  동남아의 쓰나미 해일같은 경우도 그러한 경우라고 하겠다. 영화나 소설도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인 것이다.

이 책의 내용도 이처럼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할 정도의 극한적인 인간생존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잔인한 책이다. 주인공이 정상을 등정한 후 하산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

진 채 베이스캠프까지 굴러와서 구조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인간 한계의 한 극점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

프다.

언론이나 서평란에서 이미 생존기의 고전으로 평가된 이 책은 원래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라는 책으로 같은

번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던 책이다. 책의 내용은 남미의 안데스 산맥의 시올라 그란데라는 고봉을 등반한 후

조난당한 두 명의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자일 파트너인 조 심슨과 사이먼은 아직 사람이 한번도 등정한 적이 없는 이 험산의 최난벽인 서벽을 통하

여 정상에 오른다. 알파인 스타일로 정상 정복에 도전했던 그들은 예상과 달리 험난한 설벽에서 2번의 설동

을 파고 비박을 하는 등 악전고투 끝에 정상에 오르지만 지쳐있는 상태에다 악천후로 방향을 잘 잡지 못하

고 허둥지둥 하산하는 과정에서 조 심슨이 크레바스로 떨어져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다. 자일파티에서 한 명

이 부상을 당하면 부상당한 당사자는 말 할 것도 없고 나머지 한 명도 같은 죽음의 운명속에 빠진 것이나 진

배없다. 사이먼은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에 동상에 걸린 손가락으로 조를 1,000여미터가 넘는 벽 아

래쪽으로 한구간씩 달아 내린다. 식량과 연료가 바닥난 그들은 어두워진 상태에서도 게속해서 하강을 시도

한다. 수직의 암, 빙벽이 끝나고 빙하지대로 접어드는 마지막 구간에서 조는 사이먼이 내려주는 자일에 매달

려 내려오다 엄청난 오버행에 오도가도 못한 상태에 빠진다. 십수미터 아래에는 커다란 크레바스가 아가리

를 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위에서 확보를 보면서 조를 달아 내리고 있던 사이먼은 매달린 조의 무게만큼 팽팽해진 자일을 움켜잡

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처한다. 한시간이 지났는가. 더 이상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조

는 둘 다 떨어져 죽느냐 아니면 사이먼을 버리느냐의 마지막 기로에 서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반 무의식적

상태에서 자일을 자른다. 툭 하고 끊어진 자일, 조는 크레바스로 추락한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조는 크

레바스 속의 얼음 다리에 걸려 잠시 살아난다. 다리가 부러지고 탈수와 탈진속에 크레바스에 갇힌 조는 스스

로 생명을 거두려는 생각과 살아보려는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탈출을 생각하고 자일을 회수한다. 땡겨진

자일의 끝을 확인하는 순간 조는 절망감이나 사이먼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뜻밖에도 평온해진 자신을 본다.

그리고 새롭게 탈출의 욕구와 희망을 가지고 벌레처럼 꼬물거리며 벽에 붙어서 기어코 크레바스를 탈출한

다. 이때부터 베이스캠프까지 살아 돌아오는 과정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방불케 한다. 부러진 다리로 빙하를

건너고 모레인 지대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정신과 육체는 만신창이가 된다. 자다 깨다 잠시 혼절했다가 다시

기어가고 하는 과정은 인간 의지의 시험장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본능적인 꿈틀거림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편 사이먼은 조가 크레바스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절망감과 자괴감속에 캠프로 돌아온다. 사이

먼은 자기가 조를 죽인 것인지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스스로를 다짐해보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공허함과 자괴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산은 그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며 오르려던 산이 더 이

상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귀찮고 지겨워진 것이다. 사이먼은 친구의 유품을 챙기고 남은 옷들은 모두 불태워

버린다. 그리고 떠날 준비를 한다. 사이먼이 떠날 준비를 마치고 잠이 든 새벽녘 이제 캠프 근처까지 기어온

조는 거의 환각상태에서 사이먼을 부른다. 그리고는 갑자기 자기 머리위에 우주선이 나타난 듯한 착각을 한

다. 바로 사이먼의 후레쉬가 자신의 머리를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드디어 생환한 것이었다. 이 비현실

적일 정도로 기가 막힌 상황에서 둘은 뜨거운 눈물을 쏟는 수 밖에.

사실 이 책이 그저 단순한 조난과 그 후의 생존기였다면 독자들에게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으

리라. 책은 정상등정 후 조가 부상당한 순간부터 생환할 때까지 두 사람의 심리상태를 면밀하게 추적한다.

자신의 한 몸뚱이도 감당하지 못하는 수직의 절벽에서 한순간에 짐덩어리로 전락해버린 자신을 놔두고 친

구가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조,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는 같이 죽을 운명속으로 내던져진 사이

먼의 내면세계.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에게 연결된 자일을 끊는 사이먼의 심리상태와 내동댕이져친 조의 마

음을 참으로 예리하게 추적하고 있다.

책은 조와 사이먼의 내면을 각자의 독백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조와 마주친 사이먼. 그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리고 조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사이먼을 만나게 될지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차마 책장을 넘기기가

어렵다. 사이먼은 조에게 도데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살며시 고개를 돌리자 조가

얘기한다. "고맙다, 나를 산에서 내려준 네가 고맙다"고. 아마 조의 이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사이먼은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조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상태에서 이제는 자기를 살리기 위해 그

런 행동을 했노라고 스스로 자위한다. 그러나 현장에 있지 않고 단지 활자로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더듬어가

는 독자로서는 사이먼이 산악인으로서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

이먼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자일을 자른 행위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크레바스에 떨어진 조가 죽

었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하고 수색도 하지 않고 철수 해버린 것은 너무 성급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만약

에 조와 사이면의 상황이 바뀌었다면 어떠했을까?  역시 결론을 같았을까?  허나 사람의 일을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 더군다나 살고 죽는 일의 엄숙함을 말이다.

이 가혹한 생존의 드라마는 조에게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경제적인 성공과 명예가 또 다른 인생의 산으

로 그에게 등정을 허락했던 것이다. 그 스스로 인정하듯이 시올라 그란데를 무사하게 등정하고 하산하였다

면 그보다 더 혹독하고 험한 산을 목표로 계속해서 전진했을 것이고 자신도 알 수 없는 (죽음을 포함한) 또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혹독한 시련속에서 살아난 조. 자신의 말대로 패가 주어졌는데 그

패를 가지고 안전플레이를 할 것인지 블러핑을 칠 것인지 아니면 올인할 것인지는 패를 가진 사람의 몫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만 말이다. 어떤 패가 주어 지는지는 그들의 몫이 아니지 않는가.

시올라 그란데라는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올인했던 그지만 그에게 작가라는 패가 다시 쥐어질 줄은 그도 몰

랐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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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폭풍과 슬픔 세계산악 명저선 10
로버트 크래이그 지음, 성혜숙 옮김 / 수문출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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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74년 여름 파미르의 고봉인 레닌봉 등반에서 숨져간 등반가들의 도전과 생존을 위한 분투를 다

른 드라마이다. 당시의 등반은 등반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으며 대자연이 때로

는 얼마나 냉엄한지를 여실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등반에 참여한 1974년 미국의 파미르 원정대는 다소 독특한 면이 있었다. 당시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자처하고 있던 소련은 폐쇄된 국가였으므로 자연히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파미르고원 일대도 산악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금단의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는지 소련은 국제사회에 문호를 개

방하는 취지에서 각국의 등반대에게 파미르의 특정 산악지역에 등반의 문을 열고 각국에 초청장을 보냈는

데 전세계에서 170여명이나 되는 등반가들이 나라별로 대거 등반대를 조직하여 파미르 고원으로 몰려들었

던 것이다.

미국도 미국산악연맹 중심하에 다수의 고산등반가들을 모집하여 20여명이 넘는 등반대를 구성하여 파미르

에 파견하게 된 것이다. 파미르고원 일대는 6-7,000미터급 산이 즐비한 곳으로 파미르를 중심으로 하여 힌

두쿠시산맥 곤륜산맥 천산산맥 카라코람산맥등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최고봉은 코뮤니즘봉이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레닌봉이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연히 등반대는 레닌봉

을 중심으로 하여 나인틴봉(일명 제19차 공산당회의봉)을 등반하는 것으로 정하여 졌는데 정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코스에서 등반이 이루어졌다.

2차대전 이후 30여년 만에 개방된 이 지역에 각국의 등반대는 기대반 설레임반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리

고 눈덮힌 정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폭풍설과 눈사태가 기다

리고 있었다. 폭풍설과 눈사태가 지나간 뒤의 결과는 너무도 비참했다. 15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 너

무 참담하고 어이없는 결과였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 20여명의 대규모 인원으로 편성된 미국대는 4개의 등반팀으로 나누어 여려코스로

분산되어 등반을 한다. 그 중에 나인틴봉의 북벽을 치고 올라갔던 등반대는 정상을 900여미터 남겨놓은 제4

캠프에서 연속되는 눈사태를 만난다. 많은 눈이 내리고 난 후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자 쌓인 눈이 습기를 머

금어 단단해지면서 일행은 눈사태를 예감하였지만 미처 다른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

로 게리 울린이라는 대원이 질식사한다. 같은 텐트의 바로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저자도 눈더미에 갇혔으나

곧바로 동료대원들에 의해 구조되었고 불과 60센티♧?떨어지지 않은 곳에 누워 있던 게리 울린이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일행은 슬퍼할 여유도 없이 등산화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장비들이 쓸려가 버린 상태에서 크

레바스속에서 비박을 하면서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며 구조를 기다린다. 또 다른 눈사태의 공포와 싸

우면서.

한편 레닌봉 등반에 나선 각국의 원정대들도 다가오는 폭풍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베이

스캠프에서는 각국의 원정대들에 기상악화라는 예보를 무선으로 계속 보냈으나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더러 일부 등반대가 연락 받은 시점의 위치는 대부분 정상등정을 코앞에 둔 지점이었다. 이 때 과감하게

정상등정을 포기하고 하산을 결정한 미국대와 달리 일본대, 국제여성 혼합대 그리고 8명으로 구성된 소련여

성대 등은 과감하게 아니 무모하게 정상으로 향한다. 그들은 결국 눈폭풍에 갖히게 되고 국제여성 혼합대원

중에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나마 제3캠프에 모여있던 다른 나라의 등반대들의 도움으로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비극의 끝이 아니었다. 정상으로 향하던 8인의 소련여성대원들은 부실한 장비속에 눈폭풍의

한가운데 노출되어 있었다. 그들은 정상에 올라 단일 여성대 최초로 레닌봉을 등정한 기쁨에 들떠 있다가 세

찬 눈보라속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의욕이 앞섰던데다 대자연 맞서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했던 그녀들은

이제 아무도 구조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절망적인 상태로 빠져들었다. 설동을 파기에는 부근의 눈들은 너무

도 단단했으며 가지고 있던 텐트로는 눈바람을 감당할 수 없었다. 대원들은 한명 두명 의식을 잃어 갔다. 대

장인 엘비라는 가장 나이어린 여자대원 2명이 의식을 잃었다고 베이스캠프에 보고해왔다. 베이스캠프는 절

망에 빠지고 그들을 구할 방법을 찾았으나 각 캠프에 올라가 있던 다른 대원들마저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

에서 구조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것이다. 소련여성등반대장 엘비라는 이따금씩 이어지는 베이스와의 무선

통화에서 하나둘씩 스러져가는 대원들의 상황을 침착하게 보고한다. 이윽고 희망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엘

비라마저 "사랑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안녕"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통화는 끊어진다.

한 등반대 전체가 삶과 죽음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그 비극적 상황이 생중계로 노출되는 가운데 베

이스캠프의 대원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충

격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윽고 폭풍설은 물러갔지만 참혹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베이스캠프는 무거운 정적속에서 숨져간 등반

가들의 원혼을 기리는 추도식을 준비한다. 시편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

로하여금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며.......]를 낭송하는 가운데 게리 울먼의 추도식은 진행되고 소련당국은 사

고 조사에 나서게 된다.

베이스캠프까지 밀어닥쳤던 폭풍설에 그 모습을 감추었던 에델바이스는 햇살 속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

다. 1974년 여름의 이 비극적인 파미르 등반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은 대자연 속에서는 언제나 겸허해야 한다는 것, 한낮 곤충들도 폭풍이 다가오기 전에 숨을 곳을 찾는데 이

성을 가진 인간들이 자신들을 과신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이 등반에서는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떠난 베이스캠프 뒤의 험한 설산에서는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하얀 눈들이 무너져 내

리고 있었다.

책은 이제는 잊혀진 그날의 등반을 대원들의 일기 등을 통하여 이처럼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어 우리에게 감

동과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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