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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폭풍과 슬픔 ㅣ 세계산악 명저선 10
로버트 크래이그 지음, 성혜숙 옮김 / 수문출판사 / 1989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1974년 여름 파미르의 고봉인 레닌봉 등반에서 숨져간 등반가들의 도전과 생존을 위한 분투를 다
른 드라마이다. 당시의 등반은 등반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으며 대자연이 때로
는 얼마나 냉엄한지를 여실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등반에 참여한 1974년 미국의 파미르 원정대는 다소 독특한 면이 있었다. 당시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자처하고 있던 소련은 폐쇄된 국가였으므로 자연히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파미르고원 일대도 산악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금단의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는지 소련은 국제사회에 문호를 개
방하는 취지에서 각국의 등반대에게 파미르의 특정 산악지역에 등반의 문을 열고 각국에 초청장을 보냈는
데 전세계에서 170여명이나 되는 등반가들이 나라별로 대거 등반대를 조직하여 파미르 고원으로 몰려들었
던 것이다.
미국도 미국산악연맹 중심하에 다수의 고산등반가들을 모집하여 20여명이 넘는 등반대를 구성하여 파미르
에 파견하게 된 것이다. 파미르고원 일대는 6-7,000미터급 산이 즐비한 곳으로 파미르를 중심으로 하여 힌
두쿠시산맥 곤륜산맥 천산산맥 카라코람산맥등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최고봉은 코뮤니즘봉이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레닌봉이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연히 등반대는 레닌봉
을 중심으로 하여 나인틴봉(일명 제19차 공산당회의봉)을 등반하는 것으로 정하여 졌는데 정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코스에서 등반이 이루어졌다.
2차대전 이후 30여년 만에 개방된 이 지역에 각국의 등반대는 기대반 설레임반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리
고 눈덮힌 정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폭풍설과 눈사태가 기다
리고 있었다. 폭풍설과 눈사태가 지나간 뒤의 결과는 너무도 비참했다. 15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 너
무 참담하고 어이없는 결과였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 20여명의 대규모 인원으로 편성된 미국대는 4개의 등반팀으로 나누어 여려코스로
분산되어 등반을 한다. 그 중에 나인틴봉의 북벽을 치고 올라갔던 등반대는 정상을 900여미터 남겨놓은 제4
캠프에서 연속되는 눈사태를 만난다. 많은 눈이 내리고 난 후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자 쌓인 눈이 습기를 머
금어 단단해지면서 일행은 눈사태를 예감하였지만 미처 다른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
로 게리 울린이라는 대원이 질식사한다. 같은 텐트의 바로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저자도 눈더미에 갇혔으나
곧바로 동료대원들에 의해 구조되었고 불과 60센티♧?떨어지지 않은 곳에 누워 있던 게리 울린이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일행은 슬퍼할 여유도 없이 등산화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장비들이 쓸려가 버린 상태에서 크
레바스속에서 비박을 하면서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며 구조를 기다린다. 또 다른 눈사태의 공포와 싸
우면서.
한편 레닌봉 등반에 나선 각국의 원정대들도 다가오는 폭풍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베이
스캠프에서는 각국의 원정대들에 기상악화라는 예보를 무선으로 계속 보냈으나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더러 일부 등반대가 연락 받은 시점의 위치는 대부분 정상등정을 코앞에 둔 지점이었다. 이 때 과감하게
정상등정을 포기하고 하산을 결정한 미국대와 달리 일본대, 국제여성 혼합대 그리고 8명으로 구성된 소련여
성대 등은 과감하게 아니 무모하게 정상으로 향한다. 그들은 결국 눈폭풍에 갖히게 되고 국제여성 혼합대원
중에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나마 제3캠프에 모여있던 다른 나라의 등반대들의 도움으로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비극의 끝이 아니었다. 정상으로 향하던 8인의 소련여성대원들은 부실한 장비속에 눈폭풍의
한가운데 노출되어 있었다. 그들은 정상에 올라 단일 여성대 최초로 레닌봉을 등정한 기쁨에 들떠 있다가 세
찬 눈보라속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의욕이 앞섰던데다 대자연 맞서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했던 그녀들은
이제 아무도 구조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절망적인 상태로 빠져들었다. 설동을 파기에는 부근의 눈들은 너무
도 단단했으며 가지고 있던 텐트로는 눈바람을 감당할 수 없었다. 대원들은 한명 두명 의식을 잃어 갔다. 대
장인 엘비라는 가장 나이어린 여자대원 2명이 의식을 잃었다고 베이스캠프에 보고해왔다. 베이스캠프는 절
망에 빠지고 그들을 구할 방법을 찾았으나 각 캠프에 올라가 있던 다른 대원들마저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
에서 구조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것이다. 소련여성등반대장 엘비라는 이따금씩 이어지는 베이스와의 무선
통화에서 하나둘씩 스러져가는 대원들의 상황을 침착하게 보고한다. 이윽고 희망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엘
비라마저 "사랑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안녕"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통화는 끊어진다.
한 등반대 전체가 삶과 죽음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그 비극적 상황이 생중계로 노출되는 가운데 베
이스캠프의 대원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충
격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윽고 폭풍설은 물러갔지만 참혹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베이스캠프는 무거운 정적속에서 숨져간 등반
가들의 원혼을 기리는 추도식을 준비한다. 시편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
로하여금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며.......]를 낭송하는 가운데 게리 울먼의 추도식은 진행되고 소련당국은 사
고 조사에 나서게 된다.
베이스캠프까지 밀어닥쳤던 폭풍설에 그 모습을 감추었던 에델바이스는 햇살 속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
다. 1974년 여름의 이 비극적인 파미르 등반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은 대자연 속에서는 언제나 겸허해야 한다는 것, 한낮 곤충들도 폭풍이 다가오기 전에 숨을 곳을 찾는데 이
성을 가진 인간들이 자신들을 과신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이 등반에서는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떠난 베이스캠프 뒤의 험한 설산에서는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하얀 눈들이 무너져 내
리고 있었다.
책은 이제는 잊혀진 그날의 등반을 대원들의 일기 등을 통하여 이처럼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어 우리에게 감
동과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