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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평점 :
이 책은 탁월한 전기작가인 츠바이크가 [정신세계의 건축가들]이란 책에서 다른 문인들과 함께 다루었던 발
자크를 좀더 크고 세밀한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츠바이크는 앞서의 책과 구별하여 큰 발자크란 별칭을 달고
이 책을 썼는데 이는 작가가 그만큼 이 천재적인 작가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발자크의 인생은 그 자체가 한편의 소설처럼 드라마틱한 요소를 고루 가지고 있다. 츠바이크의 표현대로 10
명의 작가도 생산해 내지 못할 작품들을 써 갈겨댄 시대의 천재이면서도 일상의 삶은 온갖 속물적인 것으로
얼룩진 다면적인 성격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온라인 상에서는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사람이 오프라
인 상에서는 아주 엉뚱하거나 무지한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놀라운 집중력과 무한한 지적 편력
그리고 다함이 없는 에너지로 불멸의 작품들을 써냈다. 그러나 현실 삶에서는 끝없는 돈의 추구, 여성 편력,
귀족주의의 추구로 표현되는 속물적인 인간의 표상이었다. 이 천재에게 있어 그 양면 삶의 절충점은 결코 없
었다.
수준높은 교양을 가진 지적 인격체로 표현될 수 있는 작가라는 존재가 이렇듯 이중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다
는 것에 대해 다소 의아해지는 부분이 있지만 당시의 유럽 나아가 혁명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던 프랑스사회
에서는 아주 낮선 인간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발자크는 프랑스 혁명 뒤 전쟁영웅 나폴레옹이 부상하던 시기
에 인생의 노련한 승부사였던 시민계급 출신의 아버지와 그보다 30여년이나 젊은 계모밑에서 태어났다. 가
엽게도 어머니의 사랑은 그에게는 소설속에나 있는 얘기였다. 일찌감치 부모곁을 떠나 기숙사가 있는 학교
에 보내졌던 그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책을 통하여 온갖 지식들을 빨아들이면서 이 복잡한 세상에
눈을 떠갔다.(어제의 세계의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스무살 청년이 되어 공증인으로서 평범하지만 안정된 직
업이 눈앞에 있던 그에게 가슴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작가에의 열망은 그를 평범한 그 직업에 매달려
있게 하지 않았다. 글로서 세계를 정복하리라. 나폴레옹이 칼로서 정복한 세계를 펜으로 완성하리라. 나폴레
옹처럼 그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나폴에옹처럼 그도 이미 천재였다. 스무살 청춘의 시절
부터 온갖 세상살이에 눈뜨게된 그는 또한 너무 조숙했다. 처음의 작품에서 무참한 실패를 하고 나서 그는
우선 돈을 벌어야 했다. 무수한 글품을 팔았으며 인쇄소 등 닥치는 대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문학외
에서는 백이면 백 실패였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폭발적인 괴력의 소유자였던 그에게 인생의
물러섬이란 없었다. 순간적으로 생각하고 즉흥적으로 시작한 그의 온갖 사업들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거나
몽상적이었기에 혹은 너무 순진했기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문학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진지함이
나 집중력 그리고 글감을 찾아내는 천재적인 안목이나 필력은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의 여성편력 또한 화려
했다. 수많은 여성을 상대하면서도 하나하나의 여성에 집중하고 전력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한 삶은 생이 마쳐질 때까지 일관됐다. 죽기 직전에 결혼을 하였지만 평생을 독신아닌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결코 행복하거나 여유로운 삶이 아니었다.
그에게 수많은 여성은 성적인 쾌락의 대상이 아니었다. 계모로부터 받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대신
하는 피난처이자 조언자였으며 신분상승을 위한 창구였다. 그러기에 상대한 여성들은 언제나 자신보다 나이
가 많거나 아니면 유부녀였으며 신분이 높은 귀족들이었다. 그러나 여성도 돈도 그의 문학적인 성공만큼 인
생에 성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평생을 채무자로 살았으며 자신이 선택한 여성에게는 하인처럼 노예처럼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그의 삶은 화려했으나 지속적이지 못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갔으나 손과 발은 과거에
붙잡혀 있었다. 그에게 자유를 주었던 것은 오로지 문학 뿐이었다. 그러나 그 자유를 붙잡기 위해 바친 그의
노력은 너무나도 헌신적인 것이었다. 독자들은 츠바이크가 펼쳐놓은 발자크의 일생을 추적하며 그의 천재적
인 작품에 경탄하기도 하고 코미디 같거나 속물적인 삶에 비웃음을 날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무릇 역사의
천재들이 그러하듯이 그의 작품은 그의 삶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그의 삶의 온갖 거품은 말그대로 거품일뿐
그것으로 인하여 발자크라는 거인에 대한 평가가 왜곡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아니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자유지만 그 누구도 그의 몸으로부터 새어나온 작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 츠바이크의 예리하면
서도 애정어린 필치로 낱낱이 해부되어있는 발자크의 일생을 보며 한 천재 예술가의 외로운 말년을 생각한
다. 영감처럼 쓸쓸한 거인의 생을.
이 책은 시중에서 이미 절판됐다. 이런 좋은 책들은 왜 다시 발행되지 않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