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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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처방전을 받고 근처 약국에 가서 약을 타서 나오려고 하는데 판매대에 있는 노란색 [레모나]가 눈에 띄었다. 그 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이에게 그 것을 사주려고 했었다는 생각이 났다. 한통을 들고 약사에게 값을 치루려고 하니까 약사가 지나가는 말로 누가 먹을 것인지를 물었고 나는 피곤해 하는 아이 얘기를 했더니 요새 새로 나온 비타민제가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하면서 처음 보는 제품을 소개했다. 그것은 [레모나] 통보다 부피도 훨씬 컸고 가격도 3배 정도 비쌌다. 그 때 이제 늙어가고 있는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아이도 같은 시간 속에 묻혀간다는 구슬픈 생각이 갑자기 들었으므로 그 비타민제를 샀다. 원형의 약통을 하얀 비닐종이에 싸들고 출근하는 내게 아는 사람들마다 봉투의 내용물과 그 용도와 효능에 대해 연속적으로 물었다. 나는 아침부터 피곤해졌다.

사실 전날만 해도 나는 병원에 갈 일이 전혀 없었다. 옆 자리의 동료 직원이 갑작스럽게 일이 생겼다며 결근하는 바람에 그의 일의 일부를 처리하게 됐고 다음날 대직을 해주어서 고맙다며 그 직원이 저녁을 샀는데 음식점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와 2차를 갔다가 마침 그 친구의 집이 근처에 있다고 하여 친구의 집으로 3차를 가게 됐는데 그날 따라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9층이 친구의 집이었는데 계단을 오르다가 가게에 간다는 그의 부인을 만났다. 집에는 9살 먹은 그의 딸이 자고 있었는데 원피스인 잠옷의 색깔이 노란색이었다. 나는 가는 길에 멜론을 사 가지고 갔었는데 그의 부인이 그것을 몰랐는지 레몬을 사왔다. 레몬을 보는 순간 며칠 전 공휴일에 아이와 함께 집 앞의 불곡산에 올라가서 맛있게 먹었던 오렌지에 대한 기억이 났다. 나는 친구에게 칼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가져온 칼을 보니 스위스 제 빅토리녹스 칼이었다. 내가 수 년 전 직장에서 단체로 보내주는 해외연수 길에 선물로 사서 친구에게 주었던 기억이 났다. 조금의 흠집도 없이 아직도 반짝이는 스텐레스날 그대로였다.  그런데 칼을 사용하지 않고도 벗길 수 있었던 레몬의 껍질을 벗기다가 그만 그 예리한 칼날에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지혈이 잘 되지 않아 병원에 갈까 했으나 귀찮기도 하고 취기로 인해 아픔을 느끼지 못했는지라 결국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 밤을 넘겼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손가락의 상처가 덧 나 있었다. 이 것이 내가 출근길에 병원에 들리게 되었던 이유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생각 속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무수히 겹쳐진다. 내가 옆자리 직원의 대직을 하지 않았으면, 아니 그전에 옆의 직원에게 돌발적인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 내 책상앞에 놓여 있는 약통은 약국에 그대로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 있을까. 친구의 집에서 레몬주스를 먹고 그의 어린 딸의 노란 잠옷을 보지 않았다면 내가 약국에서 노랗게 포장돼 있던 [레모나]를 발견했을까. 아니 내가 수년전에 그 친구에게 문제의 스위스제 빅토리녹스 칼을 선물하지 않았었다면 그렇다면.............. 이처럼 지금 나에게 이렇게 일어 났던 일들은 연속적인 것인가. 아니면 공간속에 중첩적으로 섞여 있는 것인가.

이 책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나오는 단편 [끊임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이와 같은 시간에 대한 수수께끼를 다루고 있다. 즉 ''공간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포괄하는 시간의 구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적합한 비유는 아니지만 얼마전에 개봉되어 인기를 끓었던 영화 [메트릭스]를 통해서 우리는 프로그램상의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을 이중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확인한 바도 있다. 종전까지의 시간에 대한 생각 즉 시간은 무한히 계속되고 공간은 무한히 확장되어 있다고 본 뉴턴이나 시간이란 개인적이고 특별한 상태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고 파악한 쇼펜하우어(164쪽 22번 주 참조)와 달리 보르헤스는 주인공인 유춘의 말을 빌어"시간의 다른 차원들 속에서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비밀스럽고 분주한 알버트와 나"와 같은 개념으로 시간을 바라 본다. 이를테면 내가 친구에게 빅토리녹스 칼을 선물하지 않고 같이 근무하는 직원에게 선물했다고 하자. 산을 좋아하지만 물건 챙기는 데는 서투른 그 직원은 등산갔다가 칼을 잃어버렸을 것이고 다른 등산객이 그 칼을 주워 갔을 것이다. 그럼으로서 칼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됐고 그 공간속에서 다른 시간의 흐름을 타는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이처럼 다른 차원에서 순간 순간 지금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이 무한히 엮어지며 전개되는 삶이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삶이. 놀랍지 않은가.

난해하지만 보르헤스라는 늪에 빠지면 결코 헤어나기가 어렵다는 리뷰어들의 평처럼 독자는 지금 이 책 중에 몇개의 단편만을 읽었지만 이렇게 사고의 확장을 통한 충일한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이 근래 없었던 것 같다. 이 시간에도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 서 있는 내가 혹여 지금 다른 차원의 공간속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보르헤스의 생각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 현재의 시간이 지니는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그를 앎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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