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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빌브라이슨은 우리로 치면 백두대간 종주같은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나선다. 그런데 그 길이가 자그만치 삼천킬로미터가 넘으니 우리 백두대간 남쪽구간의 한 6배정도나 되려나? 그 길을 2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그 시작이 가상하다. 완주하는 사람들이 10%도 안된다고 하니 그 고되고 험난한 여정을 미루어 짐작할 만도 하겠다. 더구나 처음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뚱뚱한 친구 녀석이 딸려 있어 영 신통치 않아 보인다.
이렇게 다소 어설프게 시작한 그들의 트레일을 독자는 터덜터덜 따라가게 되는데 도시의 때가 잔뜩 묻은 것 같은 카츠의 넋두리나 별로 재미없거나 뻔한 에피소드를 지루할만큼 듣다 보면 ‘그런데 저치들이 여기를 왜 걸어가고 있지?’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들의 트레일에서는 흔히 말하는 거대한 자연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고 어쩌고 하는 그런 내용은 없다. H.D.소로우의 [월든]에 나오는 사색의 글귀같은 것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친구인 카츠는 걷는 동안에 끊임없이 투덜거리면서 음식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고 이따금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내려가는 도시에서 처음 만나는 여자에게 추파를 보내다 곤욕을 치른다든지 하는 것이 일상이다. 저치들이 뭐하려고 저런 고생을 할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유사한 다른 여행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증기에 덮힌 거대한 협곡을 내려다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사의 덧없음을 뼛속깊이 느끼는 것이었다’ 라든지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우리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할 말을 잃고 울면서 혹은 웃으면서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었다’ 라든지 하는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런 감흥 쯤은 초월했거나 아니면 천성들이 너무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하여 작가의 글 자체가 긴장감이나 엄숙함 고요한 사색의 색감과는 거리가 멀고 보다 쾌활하고 명랑한 색감이 묻어 있기 때문일까?. 하여간 카츠라는 친구가 그의 트레일 기간 중에서 가장 즐겁고 감동을 느낀 일은 생필품의 공급을 위해서 내려갔던 작은 도시의 가게에서 종주하는 산악인을 처음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에게 산에서의 생활과 장비들을 흥이 나서 소개해 주었을 때였다는 것이다. 농담이라도 다소 심하다.
책은 종주하는 길의 숲이나 계곡의 아름다움보다는 각종 통계와 수치를 동원해 숲이 얼마나 소멸해 가고 있는지 또는 트레일의 건설 역사 같은 것과 트레일에서의 살인사건 발생일지, 흠곡의 내습 빈도 등의 종주 외적인 얘기로 일관한다. 따라서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 독자로서는 종주길이 어떻게 이어지고 어떤 산이 있고 무슨 호수가 있으며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와 숲의 모습, 동식물의 생태환경이 어떠하다든지 하는 등의 기본적으로 예상했던 내용의 글은 별로 볼 수 없다.
그래서 혹여 애팔래치아를 걸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별로 쓸모가 없지 않나 싶다. 더구나 첫 페이지의 개략적인 지도 외에는 단 한 장의 지도나 사진도 없어 활자로만 그 기나긴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따라가야 한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작가는 왜 그 장대한 산길의 트레일에 들어섰는지. 그것도 먹보에 짜증 잘 내는 친구까지 동행하면서. 책을 읽은 독자의 나름대로의 결론은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종주를 시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책을 쓰기 위해 애팔레치아 트레일이라는 자신에게도 벅찬 여정에 뛰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작가는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작가를 탓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무언가 허전하다. 애팔래치아라는 거대한 숲으로 초대를 했으면 적어도 그 거대한 자연속에서 어떤 감흥쯤은 느끼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결론적으로 이 책은 미국의 자연과 산림정책 그리고 애팔래치아의 지질과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되 한 번 트레일을 해 보고 싶다든지 혹은 트레일을 통해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변모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관심이 있다면 그다지 별로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되 묻는다. 혹시 내가 너무 심각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