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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평점 :
N을 위하여 / 미나토 가나에 / 재인
'고백'을 읽고 '야행관람차'를 읽었습니다. '왕복서간'을 아직 읽지 못했으니, 이번이 세번째군요.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N을 위하여'를 읽고나니...이 작가, 참 일관성 있구나. 그리고 그 일관성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제법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칭찬이냐구요? 물론 칭찬이지만, 극찬까진 아닐테지요.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고 그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보이려 노력한다. 무지개나 팔색조까지는 아니지만, 빨간색을 중심으로 때론 주황이었다가 때론 분홍이 되기도 하는 작가. 그러나 주황도 빨강에 가까운 주황이고 분홍 역시 너무 진해서 살짝 촌스럽고 부담스러운 분홍인 작가. 이 정도가 그를 세번째 만나면서 받게 된 인상입니다. '고백'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냉정하게 말해 이번 세번째가 거기서 가장 멀리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아쉽게도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초장부터 너무 김을 빼버렸네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커서 좋은 말이 쉽게 나오질 않는 모양입니다. 최근 읽은 어떤 소설보다 물 흐르듯 잘 읽혔고, 이야기의 초입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금세 파악이 될 정도로 명확하고 심플하다는 장점이 분명했음에도 뭐가 그리 아쉽고 부족했던 것일까요?
N이 너무 많다
이 이야기는 제목 그 자체가 중의적이고, 얽히고 설킨 N들의 서로를 향한 감정들, 사랑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동력입니다.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N이 너무 많더군요. 모두가 N이다보니 모두가 모두에게 감정을 갖고 있더군요. 그렇다보니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도 너무 여러가지 뜻이 담기게 되어 읽는 내내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이건 모두가 주인공인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깁니다. 주인공이 분명함에도 주인공이 아닌 인물에게까지 감정을 주는 것, 이것이 과연 새로운 시도일까요?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이 나머지 모든 인물들을 배려하고 걱정하며 오지랍넓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게 과연 매력적인 걸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산만함을 너머 이해불가의 지경에까지 이를 정도였습니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거지? 그 정도의 감정이 느껴지지도 전달되지도 않는데, 행동은 감정을 너머 주제넘게 과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야기 자체가 도통 공감이 가질 않았습니다.
사랑도 너무 많다
작가는 이 작품을 러브스토리로 생각하고 썼다고 하더군요. 이 역시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겠지만, 앞서 말했듯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인물 모두에게 빠짐없이 어떠한 감정을 갖고 있는데...그 중 과연 몇개나 사랑인 걸까요? 제가 보기엔 사랑이라 할 수 없는데. 그저 우정이고, 호감이며, 잘해야 뜨겁지 못한 사랑 언저리의 감정일 뿐인데 그들의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해주기 힘든 것들을 서로에게 해주고들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겠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아쉽게도 그렇게는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게 사랑이라면, 아휴...힘들어서 어떻게 사나요? 모두를 사랑하고 모든 게 사랑이란 뜻인데, 그 감정과잉의 세상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이건 절대 일상이 아닌 겁니다. 아무리 허구라지만 이 정도로 감정과잉의 인물들이 모여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뿜는 이야기라니요.
하나의 N을 향한 하나의 사랑
물론 이것이 바로 작가의 세계이고 색깔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먼저 읽은 '고백'이나 '야행관람차'는 그러한 과잉된 인물들의 과잉된 행동이 충분히 납득이 되었습니다. 그네들은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에 던져진 인물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N을 위하여'가 속한 세계는 앞의 두 작품과는 분명 다릅니다. 의문의 살인사건을 중심에 두고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진술과 고백을 따라가며 그 퍼즐을 맞춰가는 구조이긴 하지만, 이들은 정상적인 세계에서 일상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작가도 이들에 대한 감정묘사를 전편들에 비해 확실히 담담하고 차분하게 유지한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한 명이 또 한명에게, 였으면 그들의 과한 감정이 충분히 이해됐을 겁니다. 그러나 한명이 나머지 모두에게 같은 크기의 감정들을 분출하다보니 이들은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더군요. 속속 밝혀지는 그들의 범상치않은, 불행함을 넘어 참혹한 성장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의 애정결핍은 용인되는 지점 이상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작가가 이들을 통해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작가가 주장하는 궁극의 사랑의 실체가 진짜 무엇인지...저는 아쉽게도 알 수 없었습니다. 왜 모두가 N이어야 했을까요? 하나의 N을 향한 S들의 사랑 혹은 하나의 N이 여러 S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주는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컸던 이야기, 'N을 위하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