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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알렉스 / 피에르 르메트르 / 다산책방 (2012)

 

읽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안 읽히는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읽는 내내 다음이 궁금해 조바심이 났음에도, 그랬습니다. 물론 책두께가 만만치 않았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도 답은 아닌 듯 합니다. 더 두꺼운 책들도, 몇권 분량의 책들도 한번 꽂히면 쉬임 없이 읽어내곤 했으니까요. 그럼 이 잘 쓰여진, 충분히 장르적이고,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소설을 읽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첫째는, 낯선 구조 때문일 겁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의 컨벤션을 여러번에 걸쳐 배반합니다. 가녀리고 수동적인, 꼼짝없는 피해자로 알았던 주인공 알렉스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1막의 끝이 그 첫번째이고, 무지막지한 가해자로 돌변한 알렉스의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살인행각이 펼쳐지는 2막이 두번째, 그리고 그런 알렉스가 돌연한 최후를 맞이하는 2막의 끄트머리가 세번째, 그러한 그녀의 기막힌 인생과 그녀의 최후를 둘러싼 충격적 미스터리가 밝혀지는 3막이 마지막 네번째입니다.

 

이러한 반전과 비틀기는 읽는 이들의 몰입도를 극도로 높이는 동시에 신기하게도 일정 정도의 거리두기 효과 또한 가능하게 합니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알렉스의 처지에 동화되어 가슴을 졸이다가, 알렉스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면 그녀의 납득 불가능한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며 저도 모르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 때문에 저는 내처 읽지 못한 채 잠시 책장을 덮고 숨을 돌리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더랬습니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 소설의 더딘 독해속도의 또다른 이유가 흔치않은 캐릭터 때문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알렉스라는 캐릭터는 곧 구조 자체라 할 만큼, 낯설면서도 이 소설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를 동정하고 결국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유일한 목표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를 멈추게 한 것은 알렉스 뿐이 아닙니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독자 편에 서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또다른 주인공, 카미유 반장 또한 저에게는 그리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터무니없이 작은 키는 물론이고, 그의 어둡고 예민한 내면, 범상치않은 성장환경과 여태껏 살아온 인생까지. 알렉스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결코 일반적인 형사반장 캐릭터라 할 수 없는) 그의 '낯선 특별함'에 솔직히 저는 이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아내를 잃은 상처와 예술가로서는 최고이지만 엄마로써는 빵점이었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 때문에 그는 알렉스 사건을 너무도 더디게 진행시킵니다. 알렉스를 마주할때마다 그의 인생을 좌우한 그녀들이 떠올라 계속 부대끼며 내적으로 침잠할 뿐, 좀체 사건의 중심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꼼짝없이 그의 속도를 따라야 할 우리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가 어서 상처를 딛고, 영민하고 냉철한 민완형사의 면모를 보여주기를 바라지만 그는 오히려 우리를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여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만들고 맙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그렇게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저도 모르게 이 소설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카미유의 페이스대로 주저하고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알렉스의 실체를 깨닫고 그녀의 아픔과 뒤늦게나마 마주하는 순간... 알렉스와 카미유 반장에게 흠뻑 동화되고 만 것이지요. 그러니 갈수록 속도는 더디어져만 갔습니다. 카미유가 알렉스를 통해 자신과 마주하고 상처를 극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알렉스의 행동을 이해하고 알렉스의 가엾은 인생을 위무하는 일 또한 머리보다는 마음을 써야하는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여러가지 상념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끝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알렉스. 자신의 상처에 허덕이다가 그런 그녀를 살아있을 때 지켜내지 못한 카미유. 그리고 이들이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관심과 사랑도 베풀지 않은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까지. 누구를 탓하며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 지 난망해질 뿐 그 어떤 답도 찾아지지 않아...읽는 내내...그리고 읽고 나서도 마음이 더디디 더뎠던 소설, '알렉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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