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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의 힘 (전2권) / 돈 윈슬로 / 황금가지 (2012)

 

자, 드디어 <개의 힘>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소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단순히 분량이 길어서 어마어마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솔직히 물리적 분량은 그 장대한 서사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적습니다. 10권쯤 되는 대하소설로 완성됐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개의 힘>이 다루고 있는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넓이와 깊이는 만만치가 않습니다. 말그대로 시대 그 자체라고, 혹은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거 이거, 안되겠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두서없이 중구난방 생각나는대로 한없이 떠들게 될 거 같습니다. 얼마나 정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하나씩 하나씩 꼭 짚을 것들만 짚으며 이 길고 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겠습니다. 그 첫번째는...

 

집중과 생략

 

<개의 힘>이 놀라운 이유는 무수한 인물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엄청난 사건들이 정신없이 연달아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쫓아가기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로 복잡한 플롯의 이야기가 이 정도로 무리없이 잘 읽히다니...기적 혹은 마술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수십명의 인물들의 30년의 세월을 다룬 엄청난 이야기를 두 권 분량으로 감당해내기 위해 중간 중간 무수한 생략을 감행했음에도 이야기는 끊기는 일이 없고, 따로 안내표가 첨부되어 있을 정도로 등장인물이 많지만 이야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른 다음부터는 굳이 안내표에 의지하지 않아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전사(前史)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효과적인 단순화가 가능했던 것은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솎아내 중요인물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앞서 말했듯 과감한 생략을 통해 보여줄 것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상상할 수 있도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그거야 좋은 이야기의 당연한 조건 아니야?'라며 당연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 소설은 도저히 이 정도의 단순화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진짜, 과장을 좀 보태서 표현하자면...작가가 미치거나 신들리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말도 안되는 일을 해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이 엄청난 소설을 너무나 편안하고 쉽게 읽는 행운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트와 아단

 

그 불가능한 단순화를 가능하게 하는 인물은 당연하게도 주인공인 아트와 아단처럼 보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 따위를 초장부터 우습게 허물어버리는 우리의 주인공 아트와 흔히 절대 악의 상징처럼 표현해내기 쉽지만 '상대적 선'인 아트보다 인간적이고, 아트보다 유약한 '상대적 악' 아단. 이 둘의 존재로 <개의 힘>은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결코 선하지 않은) 신들의 이야기, 즉 신화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인간의 복잡한 모든 내면을 몽땅 간직한, 그렇게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두 기둥이 선과 악, 삶과 죽음, 인간과 신, 이승과 지옥(이 소설에 천국 따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니까요)을 끊임없이 오가는 덕분에 우리는 한눈 팔 새 없이 이 소설이 그려내는 지옥도의 한복판에 떨어져 이들과 함께 그 처절한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앞서 말했듯이 신에 들린 듯 일필휘지로 평생을 걸고 서로를 쫓고 서로에게 쫓기는 이들의 집요한 추격전을 매인플롯 삼아 이 복잡다단한 지옥도를 단순화했던 것입니다.  

 

진짜 주인공

 

그러나 이 소설이 진짜 놀라운 이유는 우리가 당연히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아트와 아단이 실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어쩌면 주인공이라는 말이 꼭 맞는 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작가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대변하고 상징하는 인물을 주인공이라 부른다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네, 이미 이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개의 힘>의 진짜 주인공은 칼란과 노라입니다. 분명 이들의 이야기는 서브플롯이고, 이들은 아트와 아단을 보조하는 인물들이지만, 아트와 아단이 인간이 아닌 '신'이기에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진짜 인간 중의 인간인 칼란과 사라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소설 속에서...마땅히 인간이 느끼고 누려야 할 사랑을 느끼고,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희망을 지닌 유일한 인물들이 바로 칼란과 노라인 것입니다. 작가는 아트와 아단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지옥의 다름 아니라 말해놓고는, 슬그머니 이들을 통해 이 세상이라는 지옥이 그래도 살만하다고, 살아낼 가치가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말의 긍정이 가능한 것은 후안 신부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희망의 정체

 

그렇습니다. 후안 신부라는 매개가 없었으면 이 거대한 소설은 결코 숨막히는 지옥을 벗어나지 못햇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는 이 소설이 소름끼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마땅히 천사 그 자체여야 할 후안신부조차도 절대 선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바로 <개의 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랑과 희망의 진짜 얼굴인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 자신의 희망을 구현하기 위해 후안신부가 행하는 절대악과의 협상과 타협, 그리고 그 끝에서 맞이하는 전혀 고결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스스로도 원치않았던 타의에 의한 희생까지. 작가는 후안을 그렇게 희망의 상징이 아닌 절망의 상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도 희망도 결국 없는 것이냐구요? 끝내 지옥의 구렁텅이로 우리를 몰아넣고 만 것이냐구요? 아닙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후안신부라는 존재를 통해 작가는 이 소설을 사실의 세계가 아닌 진실의 세계로 진입시키는 경지를 보여줍니다.

 

진실과 마주하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타락했고, 이렇게까지 지옥같아? 정말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이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야! 이게 진짜라고? 거짓말! 이건 다 거짓말이야!"

 

작가는 이러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마치 기다렸다는 듯 후안신부의 죽음으로 거짓말처럼 인간성을 되찾은 칼란과 사라를 본격적으로 부각시키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은 이야기란, 진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혹자는 이 소설이 현실을 과장하고 오독했다고, 그렇게 우화에 불과하다고 폄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해도 그게 과연 잘못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사실보다는, 불편한 진실을 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야기꾼의 책무이고,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개의 힘>이 그리고 있는 한없이 불편한 진실의 세계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불편한 진실의 세계가 편안한 사실의 세계로 변하는 그날까지, 두눈 부릅뜨고 세상과 맞서야 할 것입니다. 시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후안신부가 그랬고, 어느 순간부터 아트가 그랬고, 결국에는 칼란과 사라도 따랐듯이. 살아있는 동안, 기꺼이 그 지옥의 고통을 감내할 끈기와 용기가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인지, 희망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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