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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포칼립스
대니얼 H. 윌슨 지음, 안재권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로보포칼립스 / 데니얼 H. 윌슨 / 문학수첩

 

드디어 '로보포칼립스'를 읽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컸었는데...

놀랍게도 소설은, 저의 기대를 뛰어넘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각설하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웅장한 묵시록 서사시, '로보포칼립스'입니다.

 

형식

 

한번도 본 적없는, 엄청나게 새로운, 까지는 아니지만 '로보포칼립스'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는 분명 신선합니다. 주인공이나 화자의 개념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않으면서 (로보포칼립스의 주인공이자 중심화자는 분명 코맥 월러스입니다) 다양한 인물군상들을 각 챕터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다중플롯을 선택함으로써 주인공의 시선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각도와 시점에서 로봇반란이라는 전지구적 사태를 조명하고 묘사해 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뭐, 이정도야 이미 수많은 현대소설에서 시도되어왔던 것이라 그리 새롭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다중풀롯이 신선해 보이는 것은 이야기 자체와 형식을 자연스럽게 결합시키는, 작가의 참신한 시도 덕분입니다. 즉, 작가는 근미래의 비약적으로 발전된, 모든 것이 기록되고 녹음되는 CCTV 기술이라는 이야기 속 설정을 적극 활용해 주인공인 코맥 월러스가 수집된 CCTV자료를 들춰보며 지난 로봇전쟁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다중플롯을 구현해낸 것입니다.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상, 그것도 인간의 눈이 아닌 강력한 적, 로봇의 눈으로 기록된 모든 것들을 통해 전쟁의 역사를 생생하게 되돌아본다. 어떻습니까,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싶을 정도로 기특하고 영리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그리고 '로보포칼립스'가 더욱 대단한 것은 이러한 다중플롯은 인물들이 많아지고 이야기도 길어질 수 밖에 없어 자칫 산만하고 늘어지기 십상임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작가가 과감한 생략을 통해 이야기 전개를 위해 꼭 필요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해 제공하고, 각 챕터마다 보고서 형식, 시나리오 형식, 청문회 질의응답 형식 등으로 서술형식을 다채롭게 해 챕터와 챕터 사이의 남은 이야기들을 독자 스스로 능동적으로 추리하고 그려보는 재미를 주는 방법으로 이 거대한 서사시를 한 권 분량으로 효과적으로 압축해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보지 않은 것마저 실제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만지고 느끼며' 로봇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리얼리티

 

이러한 생생함이 가능한 것은 참신한 형식에 더해 실제 일어난 현실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마치 진짜처럼 느껴지는 리얼리티 덕분이기도 합니다. '터미네이터'나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누가봐도 '뻥'처럼 보이지만, '로보포칼립스'는 정말 충분히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이는 작가인 로봇공학 전문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이해 또한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로봇이 어느 수준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이만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로봇이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는 못한다거나 로봇이 순식간에 인간이 이루어놓은 문명을 단번에 장악하고 압도하지는 못하고 제법 오랜 시간의 틈이 생긴다는 점에서 '로보포칼립스'는 현실이 아님에도 충분한 리얼리티를 확보해 내는데 성공합니다.

또한 인간들이 도시를 벗어나 상대적으로 기계문명이 발전하지 않은 시골로 피신해 로봇에 투박하지만 조직적으로 대항하는 방식이나, 로봇들이 인간의 문명을 연구하고 진화하기 위해 인간 포로와 자연 생물들을 관찰하고 섣불리 문명체계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설정도 또한 이 이야기에 그럴듯한 개연성을 부여해줍니다. 

 

다만, 클라이막스를 포함한 후반부와 결말이 긴장감 넘치던 초중반부에 비해 조금은 느슨하고 싱겁다는 인상이 들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인간적인 로봇이 인간의 편에서 로봇과의 싸움을 종결한다. 인간적인 그리고 환경적인 여유와 조화를 무시한채 오로지 테크놀로지의 발전에만 몰두했던 인간의 과도한 문명화에 대한 반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해내는 탁월한 엔딩일수도 있겠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마무리 때문에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와 재미를 떠나서 이러한 메시지 전달조차 희미해진 것은 아닌지 분명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로보포칼립스'는 새로운 형식과 지금껏 보지못한 극강의 리얼리티로 비인간적인 현대문명과 이를 창조해낸 인간들에게 경고장을 던지고 SF장르 특유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은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스필버그가 이 간단치 않은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완성해낼지 모르겠지만, 평소 테크놀러지와 휴머니즘의 조화라는 화두에 관심이 많았던 그이기에 그 결과물이 사뭇 기대가 됩니다. 아직 확신하긴 이르지만, 스필버그라면 스토리와 비주얼 모두를 놓치지 않은 말그대로의 새로운 영화를 창조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로보포칼립스'이기에 가능한, 그리고 스필버그이기에 가능한, 그런 영화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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