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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할 순 없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탄로가 나기 마련이지요. 그러므로 저는 이번에도 정직한 고백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최인호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는다고. 그러니 최인호의 지난 시간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최인호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였는지, 솔직히 나는 알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별들의 고향', '겨울나그네', 심지어 '상도'까지. 저에게 최인호의 소설들은 영화와 드라마의 원작으로 기억될 뿐입니다. 그러니 저는 순수문학보다는 대중들의 기호를 잘 파악하고 그들이 쉽게 접근 가능한 베스트셀러를 양산한 작가 정도로 최인호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맞게 알고 있는 것인지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저에게 최인호는 그저 잘 모르는 소설가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무지로 인해 저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최인호? 이제 제법 나이가 많을텐데 아직도 소설을 쓰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저 신문의 서평란을 지나치려는 참이었지요. 그런데 웬일인지 이 노작가의 신작 소식이 책 소개란 첫머리에 그것도 대문짝만하게 실려있더군요. 지치고 초췌한 기색이 역력한 작가의 사진과 함께 말입니다. 그제서야 저는 이 노작가가 최근 암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으며 그렇게 생사를 오가며 병과 싸우는 와중에도 펜을 놓치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낯인은 타인들의 도시'라는 소설은 바로 그러한 사투의 결과물이더군요. 이쯤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끝내 써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작가란 언제든 어떻게든 쓰는 사람이라지만 죽음과 맞바꿔도 좋을 정도로 작가의 모든 것을 불사르게 하는 이야기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래서 읽어봤습니다. 최인호라는 작가의 소설을 처음으로, 하필이면 (현재까지의) 마지막 소설을, 말입니다.
 

미칠 수 있겠니 / 소설 / 최인호 / 여백 (2011)


그러나 소설은 솔직히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상한건진 모르겠지만 쉽사리 몰입되지 않았고, 정독하기도 쉽지 않아 띄엄띄엄 빠르게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조금은 뻔하고 지루했던 탓입니다. 솔직한 이유를 하나 더 보태자면 문체와 대사가 자꾸만 부대끼고 서걱거렸던 탓이었습니다. 즉, 내용도 형식도 저에게는 그리 인상적이거나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작가의 전작들을 알지 못하기에 이것이 생사의 경계에 선 절박함에서 나온 과도한 의욕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그냥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소설들에 길들여진 제가 문제인건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동시대를 사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K라는 남자의 3일간의 혼란과 방황이 자신을 찾는 여정이고, 부서지고 해체되어 자신이라 여겼던 것들은 낯설어지고 낯설기만 했던, 전혀 자신과 무관하다 여겼던 타인들이 낯익은 듯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많이 보아온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새로운 이야기란 대체 무엇이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야기 자체의 익숙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그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삶과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즉 우리는 여전히 불확실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제는 불확실을 불확실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덧 낡아 보이는, 불확실을 확실하게 말해도 좋은, 불확실에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모호함의 정체를 두 눈으로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불치병과 싸워가며 가열차게 이야기를 지어낸 그 가상함을 기특하게 여기며 칭찬만 할 순 없겠습니다. 그 눈물나는 사투 때문에 소설이 특히 더 좋게 느껴졌으며, 군데 군데 순간 순간 울컥했노라고 할 순 없겠습니다. K가 곧 작가이며, 죽음과 가까운 삶을 경험한 작가가 존재의 무력함과 존재의 상대성을 새삼 깨닫고는 그 깨달음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썼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박수치고 싶진 않습니다. 정말 그런 것이었다면 작가는 조금 더 진심어린 소통을 위한 고민을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과잉된 자의식과 지나친 이입이 조금 더 뜨거워도 좋을 소설을 되려 차갑게 식게 만든 것은 아닐까.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그럼에도 작가의 다음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전 작품을 더 늦기 전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역시나 이 작품을 둘러싼 작가의 스토리가 제 마음을 움직인 탓일테지요. 이렇게 이야기를 둘러싼 이야기가 더욱 극적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그것이 곧 역사이고 이야기인가 봅니다. 장대하고 경이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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