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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숨 쉬러 나가다 / 소설 / 조지 오웰 / 한겨레출판 (2011)

국내 초역. 이 한마디의 홍보문구와 그 옆에 새겨진 조지 오웰의 이름만으로 우리는 이 책, '숨 쉬러 나가다'를 꺼내 듭니다. '1984'와 '동물농장',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은 독자라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 세권의 대표작을 아직 읽지 못한 그러나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했던 예비 독자들 또한 오히려 이 세 편을 읽기 전에 그의 초기작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럴듯 하겠다는 생각에 선뜻 손이 갔을 터 입니다. 저의 경우는 뭐 그 중간쯤입니다. 세 권의 대표작 중 아직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지 못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의 작품 중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 있었다니, 얼른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그러나 막상 읽게 된 '숨 쉬러 나가다'는 생각했던 것과는 혹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소설이었습니다. 조지 오웰의 작품들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실망과 당혹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할 만큼, 조지 오웰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그의 작품세계와 스타일을 오해할 만큼 그 형식이나 내용이 낯설고 그다지 '조지 오웰'스럽지 않다고 느껴졌거든요.   

일단 제가 당황스러웠던 것은 선명한 비유와 풍자, 그리고 숨 샐 틈 없이 직조된 촘촘한 구조로 독자들을 자신이 만든 세계로 몰아넣어 그 억압된 세계의 부조리함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과 달리 이번 소설은 마치 일기나 에세이를 보는 듯 너무나 느슨하고 헐거운 읆조림에 불과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여전히 날카롭고 통찰력있는 비유와 진단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긴 했지만 그 역시 한 개인의 사적인 주절거림 뒤에 숨은 탓에 그리 인상적이거나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으며, 전체적인 구조는 구조라 칭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단선적이고 평이합니다. 가족과 직장이라는 견고한 울타리에 둘러쌓인 채 전쟁을 앞둔 침울한 사회분위기에 염증을 느낀 중년의 남자가 숨을 쉬기 위해 소소한 일탈을 감행했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 이 소설에 담긴 이야기의 전부이며, 이 이야기는 주인공 남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소설이 물론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일상적이고 사변적인 방식의 소설을 조지 오웰이 썼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조지 오웰은 왜 이러한 소설을 썼던 것일까요? 아마도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이자 메시지일 것일 테지요? 제 짧은 생각으로는 아마도, 1차대전이 끝나고 2차대전이 발발되기 직전의 영국 서민계층의 별볼일 없는 일상을 통해 당시의 숨막힐 듯 답답한 사회분위기를 가감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차대전을 이미 겪은, 전쟁의 무서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중년의 주인공이 다시 또 끔찍한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전쟁 자체보다 그 이후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며 몸서리치는 모습. 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이런 걱정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자조하며 전쟁이 곧 시작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 가장으로써 가족 누구와 진심으로 소통하지 못하면서 그저 돈버는 기계로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자신의 처지에 답답해하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잠깐의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찾고 싶어 발버둥치는 애초로운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는지요. 불평하고 비난하며 불안해하고 걱정하지만, 자신은 억압받고 있고 고통받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정작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행동하고 발언할 용기는 갖고 있지 않은, 여전히 순응하고 복종하며 그러한 부조리한 사회의 일원으로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 말입니다. 

무려 80여년전에 쓰여진 이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깊게 공감하고 있다는 건, 지금 현재도 그때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뜻일테지요? '1984'와 '동물농장'을 읽었을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조지 오웰의 혜안과 통찰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이 일상 깊숙이 침투한 우리의 패배감과 무력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지난 시간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통해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을 잠시 잠깐이나마 떠올리며 남은 생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우린, 최소한의 낭만 조차 허락되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는건 아닌지요. 이것 참. 모르겠습니다. 저도 훌쩍, 단 며칠이라도, 이곳을 떠나, 좋았던 그 시절 그 곳으로 가봐야겠습니다. 그저, 숨이라도 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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